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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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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니와 절망이 넘치는 지중해

등록 2004-09-17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이슬람의 엄숙함과 뜨거운 해변, 살찐 자본주의와 가난한 젊음이 뒤섞인 모로코를 가다 </font>

▣ 카사블랑카(모로코)= 글 · 사진 이선주 전문위원 nowar@tiscali.fr

아랍 국가들을 통틀어 부를 때 흔히 ‘이라크에서 모로코까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라크와 모로코는 모두 22개 나라의 아랍국들 가운데 각각 극동과 극서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랍’이라는 민족적 변수와 ‘이슬람’이라는 종교 및 문화적 변수 탓에 뭉뚱그려 불려지기도 하는 아랍 국가들은 오늘날 극동에선 전쟁이 한창이라면 극서의 ‘해가 지는 나라’ 모로코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그 실체보다 같은 이름의 영화로 한국에 더 잘 알려진 카사블랑카, 대서양을 끼고 길게 이어지는 이 도시의 해변가를 걷노라면, 이슬람국이 아닌 유럽의 어느 해변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언론에서 정치를 찾아보기 힘든 나라

행정수도인 ‘라바트’에서 100여km 떨어진 카사블랑카는 모로코가 프랑스보호령(1912~56)이던 시절, 계획적으로 경제 중심지로 개발되어 지금까지 쉬지 않고 팽창해온 도시다. 경제수도인 탓에 아랍계 이슬람 국가들 가운데 가장 서구화됐다. 모로코 내에서도 가장 발달한 도시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복합적인 의미로 ‘없는 게 없다’는 느낌과 더불어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정서가 다른 도시에 비해 물씬 풍긴다.

비키니의 현란함과 이슬람 사원의 엄숙함, 도대체 실내구조를 짐작키 어려울 정도로 광대한 주택들과 찌들어가는 빈민촌들, 신형 최고급 자가용들 사이로 오가며 손을 내미는 구걸인 등 한꺼번에 다가 오는 극단적 대비를 적절히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이게 공존이라면 상당한 톨레랑스에 기반하는 것이며, 각자 따로의 결실이라면 심각한 사회불평등에다 무질서인 셈이다.

이런 나의 의문에 어느 우익계 신문의 기자는 이렇게 맞받아친다. “빈부의 격차는 국가의 경제발전과정에서 불가피하며, 모로코 사회에서 드러나는 여러 양상들은 어느 경제발전 사회에서도 예외 없이 발견되는 점들이다. 중요한 것은 모로코가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며, 다른 아랍국들에 비해 월등히 안정되고 민주적인 나라라고 자부한다.”

모로코 언론에서는 좀체로 정치 문제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내 정치는 그야말로 ‘만사형통’이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거다. 이전에는 언론들이 매일 국왕 선전만 했다. 모로코에는 두 가지 사회 범주가 있다. 하나는 늘 만사형통만을 외치는 왕의 측근들과 언론들, 다른 하나는 현실에서 실업과 가난에 허덕이는 서민들”이라고 한 택시 운전기사가 한탄조로 내뱉었다.

이전 국왕 하산 2세의 독재정치는 정치와 사상범들을 감금했던 ‘타즈마마르’라는 악명 높은 교도소의 존재와 막대한 부의 축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터다. 38년의 장기 집권으로 다져놓은 절대권과, 생존시 쿠데타와 혁명을 염려해 막대한 재산을 외국에 숨겨놓고 세계 갑부 수위권에 든 하산 2세였다. 1999년 하산 2세의 사망과 더불어 즉위한 그의 아들 무하마드 6세(41)가 현 국왕이다. 그는 ‘알 알라위인’가의 18번째 계승자다. 1666년부터 왕위는 이렇게 이어져왔다. 국왕이 국가의 수반으로 정치적으로나 군사 및 종교적으로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절대권을 가진 절대군주제를 21세기에도 고수하고 있는 모로코의 정치·사회적 양상들이 꽤 흥미롭다.

“오늘 ‘젊은이의 축제’와 ‘왕과 민중의 혁명기념일’을 축하하면서 우리는 이 두 사건이 보여준 용기와 희생을 상기한다.” 지난 8월20일에 열린 57주년 혁명기념일 행사에서 행한 국왕 축사의 한 토막이다. ‘왕과 민중의 혁명’이라는 다소 안 어울리는 표현이 붙은 혁명 사건은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보호령 기간을 전후로 모로코 권좌는 프랑스쪽이 점령해 무난한 왕을 앉히려는 일련의 왕갈이 교섭이 있었다. 그 덕분에 현 국왕의 조부인 무하마드 5세가 1927년 즉위한다. 그러나 그 뒤 무하마드 5세가 차츰 독립 성향을 내비치자, 프랑스는 1953년 그를 외국으로 추방하고 그의 사촌을 권좌에 앉힌다. 이 사건으로 평소 독립을 갈구하던 국민들이 주동이 되어 일어난 반란이 1953년 ‘민중봉기’다.

쫓겨난 국왕, 민중이 복귀시키다

1955년 망명을 떠났던 이전 국왕이 돌아와 복위하고, 1956년 모로코는 독립을 맞이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이웃 나라 알제리에서 발생한 독립전쟁의 여파 탓이 컸다. 따라서 1953년 민중봉기는 국민들의 용기를 보여주는 동시에 현 왕족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건으로 규정되어 ‘왕과 민중의 혁명’이라는 절묘한 표현이 붙게 된 것이다. 이처럼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절대 왕권은 큰 부담 없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로코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있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충돌을 줄이면서, 하나의 모로코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군주제가 적절하다.” 마치 국왕 대변인이 말하듯이 한 정치인이 얘기한다. 사실 군주제만을 체험해온 나라의 국민들에게 와닿는 ‘국왕’의 어감을 한국인으로서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콧수염과 턱수염의 젊은 왕이 ‘가난한 자들의 왕’이라는 서민들의 희망을 안고 즉위한 지도 어느덧 다섯 해가 흘렀다. 수염을 말끔히 정리한 왕의 모습처럼 그간 여러 가지 변화도 있었다.

지난 2002년 언론법이 약간 수정되기는 했지만, 국왕 관련 보도에 대한 처벌이나 금기사항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에도 국왕을 풍자만화로 그리고 왕가의 예산을 밝힌 한 시사주간지가 ‘국왕 모독죄’라는 죄목으로 폐간되고, 해당 언론인은 실형을 선고받은 일이 있었다. 따라서 국왕이나 왕가와 관련해선 자유로운 비판이 전혀 불가능하다. 게다가 공권력에 의한 가위질뿐 아니라, 절대군주제 아래에서 오랜 세월 동안 익숙해진 언론인들의 ‘자율적 가위질’도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슬람 국가라는 편견으로 비키니 대신 클래식한 수영복을 챙겨서 나섰던 모로코의 해변에는 낯뜨거울 정도로 야한 비키니들의 유혹과 남녀의 애무가 난무한다. 이슬람의 수난시대에 전통 고수보다는 현대화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로코는 지난 7월부터 미국과 경제자유협정을 맺었고, 지금껏 친유럽, 특히 친프랑스 노선을 유지했으나 점차 미국쪽으로 옮겨가며 실용주의를 펼치고 있다. 여느 자본주의 사회와 그대로 닮아가는 모로코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슬람 사원을 찾는 신도들의 신앙의 정체가 자못 궁금해진다.

9·11 테러나 3·11 스페인테러에 연루된 모로코인들이 다수 존재하듯이, 알카에다 조직에 연루된 모로코의 젊은이들도 많다는 분석이 서방 세계에서 나오고 있다. 그만큼 절망한 젊은이들의 사회에 대한 분노가 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모로코는 알카에다의 테러가 일어난 아랍 국가다. 절망감에 빠진 젊은이들의 증가와 이슬람 영향력의 가세는 모로코의 경제발전과 왕권에 대한 위협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뜻있는 이슬람주의자들은 지난해 5월 카사블랑카 심장부에서 일어났던 테러가 모로코 사회에 가져온 변화를 지적한다.

“이제부터 관용주의는 끝났다.” 테러 직후 국왕은 이렇게 외쳤다. 새 왕의 즉위와 9·11 사태의 여파로 모로코 사회에 알게 모르게 퍼져가던 이슬람 재기의 기운은 그렇게 해서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다시 경찰력이 증강되고 사실상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유령의 관용주의도 끝이 났다. 그 뒤 진행된 사태는 국민들이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겁먹은 이슬람 교도들이 자진해서 면도를 하고 이슬람 상징의 복장이나 표상들을 벗어버리는 웃지 못할 일들이 일어났다”라고 어느 독실한 이슬람 교도가 덧붙인다.

9 · 11, 관용주의는 끝났다?

모로코 국왕의 혈계인 알 알라위인 왕가는 아랍계 이슬람국들 가운데 요르단 국왕과 함께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의 후손이라고 자부하는 왕가다. 그리고 그 옛날 모로코는 지중해를 건너 스페인에 8세기 동안 이슬람 문화를 심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현재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를 가르는 지브롤터해협에는 오늘도 유럽에 닿기 위한 행렬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 가운데 있는 자들은 비자를 내밀고, 없는 자들은 훨씬 까다롭고 처절한 방법으로 바다에 몸을 던진다. 바다에서 주검을 건져내는 일은 이미 일상이 되어버렸다. 마치 화려한 장례식이라도 치르듯 8월의 뜨거운 태양은 아름다운 지중해와 대서양 위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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