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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달마가 의회로 간 까닭은…

등록 2004-08-19 00:00 수정 2020-05-03 04:23

[2004 여름, 숨겨진 아시아 | 스리랑카]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JHU당의 승려 의원, 의회의장 뽑는 날에 ‘짠’ 하고 나타났는데…

▣ 콜롬보= 수마두 위라와르네(Sumadhu Weerawarne)/ 기자

자티카 헤라 우루마야(JHU)당을 내건 225명에 이르는 승려들이 225석 스리랑카 의회로 진출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들은 문명인의 공정한 규칙을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다. ‘민족유산당’이라는 뜻을 지닌 그 정당은 시민들을 당원으로 삼았지만 정작 선거에서 후보자를 황색 승복으로 뒤덮는 데는 한계를 드러냈다. 그들은 설교와 기도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해나갔다.

공포영화에서 액션영화로

그러자 비평가들은 “정치는 승려들의 몫이 아니고, 따라서 이 세상 어디에도 승려들이 정당을 만들어 선거에 참여한 경우가 없고 또 승려가 통치자가 된 적도 없다”며 비웃었다.

그러나 2004년 4월2일 선거에서 JHU는 기어이 9석을 확보했다. 비록 전체 225석에서 9석이란 게 대수롭지 않은 숫자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 중요성만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건 지난 선거에서 어느 정당도 독자적인 정부를 구성할 만한 다수당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마당에 불교 승려들의 지원은 의회에서 주류로 남고자 하는 정당들에게 막대한 원군이 되고도 남았다.

그리고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이끄는 ‘동맹’은 거의 모든 의석을 장악했지만, 대통령은 그녀의 동맹에게 비주류 정부를 구성하라고 요구했다. 맞선 JHU는 정치적으로 정부든 야당이든 누구도 지원하지 않을 것이며, 다만 정의를 수호하는 쪽에 설 것이라는 결심을 밝혔다. 그러나 그들 승려 가운데 한명이 갑자기 실종되면서 JHU는 처음부터 장애물에 걸려들고 말았다. 악의적인 갱이 그 승려를 납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포가 확산됐고 경찰이 수사에 돌입했다. 이 사건은 4월22일 의회가 첫 회의를 열기 바로 전에 벌어졌다.

그 첫 번째 회의는 의회 일을 총괄하는 의장을 뽑는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하여 정부와 야당 모두가 의장 선출에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있을 때, 갑자기 실종됐던 그 승려가 다시 정부쪽 의원과 함께 홀연히 나타났다. 그렇게 실종과 복귀를 삽시간에 해치운 그 승려는 또 다른 JHU 승려와 함께 정부쪽 후보로 나선 의장에게 표를 던졌다. 나머지 7명 JHU 승려 의원들은 창피해 어쩔 줄을 몰라했다. 결국 중립을 지키겠다던 JHU 승려 의원들은 자신들 가운데 2명을 야당 후보에게 표를 찍게 함으로써 균형을 맞추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 순간 의회는 아수라장으로 돌변했고 승려 의원들은 화난 정부쪽 의원들로부터 습격을 당했다. 그렇게 해서 처음부터 의회는 고통스러운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현재 스리랑카 정치판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이기적이고 당파적인 이유를 내세워 헌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이들은 현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마칠 내년 이후에도 계속 대통령 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현 스리랑카 헌법이 대통령의 재임만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 정부는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대통령 직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대통령 임기를 아주 폐기하거나, 아니면 그녀에게 유례가 없는 3선 도전을 인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탈법적 3선을 노리는 쿠마라퉁가

야당들은 오직 쿠마라퉁가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정부의 욕망을 분명히 거부하고 있다. 이 사안은 의회와 정당들 사이에 씁쓸하고도 원대한 ‘거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증거는 이미 의회의 첫날 폭력 충돌 속에서 뻔히 드러났다.

그런 가운데, 의회로 진출한 불교 승려들은 정의의 정신이나 상호 화해를 외치지도 못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일마저 실패했다. 붓다, 그 대선생의 가르침은 의회 안에서도 불교 국가라는 스리랑카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외로운 붓다, 잠자는 붓다. 승복만이 휘날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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