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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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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 소렌,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 거야!

등록 2004-08-19 00:00 수정 2020-05-03 04:23

[2004 여름, 숨겨진 아시아 | 인디아]

정적들의 조작으로 궁지에 몰린 양질의 정치가… 젊은 열정이 늙은이들의 욕정 속에 퇴보한다

▣ 델리=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 전 편집장·핵문제 전문 칼럼니스트

“‘Mr. Clean’ 내각의 한 고참 장관이 경찰로부터 30년 전에 저지른 ‘학살’ 혐의를 받자 인디아 수도 델리에서 도망쳐버렸다?”

기괴한 소리라고? 그러나 이건 지금 델리와 자르칸드(Jharkhand)주의 주도 란치(Ranchi)를 배경 삼아 석탄·광업 장관 쉬부 소렌(Shibu Soren)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매우 흥미로운 실제 ‘상황극’이다. 그리고 소렌에 대한 무성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어떤 이는 소렌이 자르칸드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보고, 또 어떤 이는 소렌이 남부 카르나타카(Karnataka)의 울창한 숲 속으로 도망쳤다고 여긴다.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를 물어뜯다

기다렸다는 듯이 중앙정부 야당이며 동시에 자르칸드주 정부를 구성하는 일부이기도 한 바라티야 자나타당(BJP)은 “민주주의를 오염시킨 타락한 장관 소렌이 델리에서 사라진 채 내각에도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고 질타하며 상·하 양원을 대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정부는 “장관의 결석은 일정상의 문제일 뿐”이라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어떤 장관이든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 내각회의도 해당 장관이 주제가 아닌 다음에는 불참할 수 있다.”

그러나 정직과 내핍으로 결점 없는 평판을 지녀왔던 만모한 싱(Manmohan Singh) 총리가 이끄는 정부 입장에서 볼 때 이건 매우 난처한 사건이었다. 오랫동안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임원을 지내면서도 양복 한벌로 버텼던 싱 총리는 이 일로 크게 당황했다.

이에 야당 BJP는 전 정부를 운영하는 동안 부총리 아드와니(Advani)를 비롯해 장관 셋이 형사소추를 당하기까지 했던 장본인들로 이 사건을 놓고 ‘이중성’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더욱 섬뜩한 건,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BJP가 구성하고 있는 자르칸드주 정부가 소렌에게 죄를 덮어씌우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미줄처럼 얽힌 이 믿기 힘든 사건의 배경은 계획적인 거짓말이라는 경향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1975년 소렌이 자신이 속한 아디와시스(Adivasis) 토착민과 무슬림 충돌로 10명이 사망한 그 사건에 과연 개입했는지 여부가 의문이다. 게다가 소렌을 고발하는 재료란 것도 전혀 입증되지 않은 한 개인의 사망신고서가 전부다. 이건 전형적인 인디아 경찰들 짓거리다! 경찰은 69명 피고인들의 사건부를 4년이나 끌며 들고 다녔다. 이것도 전형적인 인디아 경찰이다! 그리고 소렌에게 영장을 발부하기까지 또 7년이나 끌었으나, 그마저도 집행된 적이 없다. 그사이 69명 피고인 가운데 25명이 사망했고, 증인 50명 가운데 20명이 사망했다. 또 있다. 최근 체포영장은 소렌의 정적에 의해 재발급됐다는 사실이다.

인디아에서 형법은 오랫동안 정적을 학대하고 보복하는 도구로 사용돼왔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기억하기 바란다! 특히 우익 정치가들은 그걸 무자비하게 활용해왔다. 뿐만 아니다. ‘정치 관련 범죄’가 최근 부쩍 늘어나는 현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폭력단원, 공갈범, 강도, 살인마들이 대거 정치에 입문하고 있는 추세다. 예전에는 정치가들이 그런 무리들을 동원해 자신을 보호하거나 상대를 위압하는 정도였으나, 이젠 그런 무리들이 직접 정치에 뛰어들어 스스로 합법성을 얻고 사업을 키워나가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정당들이 더 범죄와 유착하는 경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 야당인 극우힌두민족주의 BJP는 역사가 깊은 현 여당인 의회당(Congress Party)보다 더 범죄적 속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볼 때, 최근 소렌 사건은 법을 희화하고 형법 정의제도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그리고 인디아의 가장 소중한 업적인 민주주의를 평가절하하고 말았다.

소외된 이들 편에 섰던 정치가

소렌이 결백한지, 아니면 사건에 개입했는지를 지금 당장 말하기는 힘들다. 비록 소렌이 1990년대 의회당 정부 생존을 위해 그의 아디와시스 토착민 정당을 끼고 뇌물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그런 건 ‘부드러운’ 범죄에 해당한다. 살인사건 개입에 비하자면 말이다.

그러나 소렌이 지금까지 소외당한 그룹들을 대표해 자기주장을 펼쳐왔던 정치가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이는 무시당한 소수들의 소리를 전하고자 애썼던 정치가다. 그러나 주류 정치는 부정과 부패를 통해 그런 소외당한 그룹들을 뽑아 매력적인 자리에 앉힘으로써 소리를 잠재웠다. 소렌의 경우도 예외로 보기 힘들다. 지금 인디아 정치판은 젊은 열정이 늙은이들의 욕정 속에서 퇴보하고 있는 꼬락서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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