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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 현 총리가 타이를 더럽힌다

등록 2004-07-29 00:00 수정 2020-05-03 04:23

[아시아 정치지도자의 고백 | 추안 리크파이 타이 전 총리 1 ]

추안 리크파이 타이 전 총리 인터뷰…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청 따르는 게 ‘국제사회 기여’인가

▣ 방콕=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7월8일, 민주당(Democrat Party)의 한 모퉁이 정원에는 녹색 컨테이너 예닐곱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멋진 아이디어지?” 닥터 부라낫(Buranaj·추안 리크파이 비서)은 지난 4월 한국 방문 때, 한 정당이 컨테이너를 당사로 쓰는 걸 보고 와서 ‘베낀’ 것이라 귀띔해주었다. 한국판 부패정치 수출, 그 남세스러움은 이루 말하기 힘들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왜 그런 걸 수입했나? 부패로 부도난 걸 선거 앞두고 겉치레로 때운 건데….” 그이와 노닥거리는 사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추안은 수줍음 띤 미소로 ‘올드 프렌드’(old friend)라 부르며 손을 잡았다. 나는 이 바닥에서 본의 아니게 프로-추안 저널리스트(pro-Chuan journalist)가 되어 있었다. 사실은 현 총리이자 최고 갑부인 탁신 시나왓(Thaksin Sinawatra)에 대한 나의 정서적인 거부감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면서 주변 동료들이 농담 삼아 붙인 말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 동안 추안과 대여섯번 공식 인터뷰로 마주 앉았지만 늘 ‘비수’로 그를 후벼팠던 기억뿐이다. 내가 그이를 만난 건 모두 타이 현대 정치사가 격변을 겪을 때였고, 그이는 총리였거나 아니면 야당 당수였으니.

정치가인 추안으로부터 정치적으로 감동할 만한 일은 없었다. 그이의 정치란 건 화려한 적도 없었고 엄청난 개혁을 넘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시민들로부터 인기를 끌 만한 무슨 일을 저지른 적도 없다. 그이는 두번이나 총리를 했지만, 그 총리가 지닌 ‘플러스 알파’ 한번 써먹지 못하고 다음 선거에서 늘 깨지는, 그런 정치가였다. 한마디로 정치가 추안은 밋밋했고 심심했다. 그럼에도 그이가 스무번도 넘는 군사 쿠데타로 얼룩진 타이 현대정치사에서 누구보다 중요한 시민 정치가임을 부정할 수 없다. 타이 정치학자들마저 흘겨 넘겼지만, 추안은 부정부패로 뒤덮인 아시아 정치사에서 ‘돈’에 손대지 않은 유일한 정치가였다. 또 하나, 시민들로부터 늘 결정과 실행이 더디다고 ‘느림보’라 욕먹었던 추안은 아시아 현대 정치사에서 유일하게 법과 원칙을 지키고자 애쓴 정치가였다. 그 점에서만큼은, 나는 추안을 눈여겨봐왔다. 그 점에서만큼은, 나를 ‘프로-추안’이라 마음껏 비난해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지금 아시아에 가장 필요한 건, 돈 안 먹고 법 잘 지키는 정치가다. 그런 점에서 추안은 ‘별종’이었다.

4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도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까다로운 그이의 성격 탓에 ‘재미’가 별로 없었다. 끝판에 예술가 추안으로 이야기가 넘어가서야 활기가 돋았지만, 아무튼 통역을 맡았던 닥터 부라낫이 까물어칠 지경이 되면서 인터뷰를 끝냈다.

- 얼마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선거를 참관한 인상은 어땠나?

= 시각적으로, 아마도 이념적으로는 선명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짧은 민주주의 경험 속에서 밝은 미래를 엿보았다. ‘군인정치’ ‘금권정치’라는 공통적인 역사를 지닌 아시아가 다시는 그런 뼈아픈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서로에 대해 많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탁신의 부정적 영향, 세대를 관통할 것

- 타이로 되돌아와서, 요 며칠 사이 민주당 지도부 가운데 일부가 신생 마하촌(Mahachon Party)에 합류하면서 내분을 겪고 있는데, 민주당이 쪼개지는 건가?

= 셋인데…. 민주당 자원이 그쪽으로 빠져나가더라도, 새 정당 만드는 걸 반대하지 않는다. 사실 꺼림칙한 구석이 없진 않지만, 민주당을 새로 다듬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 민주당 내에 큰 지분을 지닌 사난(Gen Sanan Kachornprasar) 전 사무총장은 마하촌을 지원하면서도 여전히 민주당 당적을 지니겠다고 하는데?

= 그런 건 생각할 가치도 없다. 이미 그이는 떠났다.

- 사난의 지원을 받아 대표가 된 반얏(Banyat Bantadtan)도 마하촌으로 갈 것 같나?

= 반얏은 민주당 대표다. 그이 역할은 다르고, 사난과 관련이 없다고 본다. 다만, 마하촌을 만들어 나가는 이들이 모두 반얏을 지원했던 인물이라는 묘한 지점이 없진 않지만….

- 민주당을 이끌 새 인물을 생각하고 있는가? 젊은 세대 기수 격인 아비싯(Abhisit Vejjajiva)인가?

= 아직 자신을 드러낸 이가 없다. 아비싯이 충분한 잠재력을 지녔음에는 틀림없다.

- 만약 특정한 상황이 온다면 당신이 다시 전면에 나설 수도 있나?

= 지도부 돕는 게 내 일이다. 의원직은 유지하겠지만, 내가 지도자가 될 생각은 없다.

- 전면 복귀 절대 없다는 뜻인가?

= (손을 저으며) 당 지도자가 되려면 자기 의지를 밝힌 다음 선거를 통해 그 의지를 확인받아야 한다. 내겐 그 의지부터가 없다. 12년 동안 대표를 했다. 충분하다.

- 현 정부 이야기를 좀 해보자. 탁신 총리 정부가 무엇이 문제인가부터.

= 타이 역사에서 가장 혼탁한 금권선거로서 그 출생부터가 비극이었다. 탁신이 최대 주주로 연립정부를 결성하는 날부터 정부가 져야 할 ‘책임장치’가 교란당해버렸다. ‘신속 결정’을 내건 탁신 정부는 대개 한달이면 되는 의회 내 위원회 설치 과정을 타이 역사에 유례가 없는 네달 동안이나 끌며 지연했다. 그러면서 탁신은 연립정부에 참여한 정당들을 자신의 타이 락 타이당(Thai Rak Thai)으로 흡수해서 300석이 넘는 공룡을 만들어 의회 내 총리 비판 기능을 무력화했다.

또 탁신은 추종자들을 모든 정부 조직에 심어 정부 기능을 사유화하며 민주주의의 뼈대인 ‘독립성’을 뒤흔들어놓았다. 정부 정책도 독점적인 사업을 통해 최대 갑부가 된 탁신과 그 주변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운용해왔다. 탁신이 소비를 자극한 결과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부분 소비가 집중적으로 늘어나면서 반대로 가계부채지수는 크게 오르고 말았다. 나는 탁신이 저지른 부정적인 영향이 세대를 관통하며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염려하고 있다.

- 그런 차원에서 탁신이 외친 ‘마약과의 전쟁’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 나는 탁신 정책 가운데 많은 부분을 인정하지만 그 실행 방법은 인정하지 못한다. 마약과의 전쟁이 대표적이다. 마약 박멸을 지지하는 것이, 정부가 길거리에서 3천여명에 이르는 시민을 초법적으로 사살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이라크 파병은 동티모르 때와 달라

- 남부 무슬림분리주의 기운에 대처하는 정부 태도는 어떻게 보아왔나?

= 앞서 말했듯이, 법 절차 없이 시민을 살해하는 정부, 바로 그런 모습이 남부 무슬림 사태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탁신 정부의 남부 무슬림 정책은 한마디로 최악이다. 그렇게 안보가 위협받을 만한 살상과 폭력은 지난 200년 역사에서 없었던 일이다.

- 탁신 정부의 대이라크 파병 문제는?

= 나는 이라크 파병에 강력히 반대해왔다. 국제사회 기여라는 원칙은 일부 국가(미국)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동티모르 파병을 결정했던 총리로서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사안은 유엔 결정에 따른 것이었고 또 한쪽 당사자이던 인도네시아 정부까지 환영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동티모르 파병은 우리 돈 한푼 들이지 않았고 인명 피해도 없었다. 국제사회나 타이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었다.

- 크루 세(Krue Se) 모스크 진압 사건을 통해 폭력적인 탁신 정부 태도가 잘 드러났는데?

= 그건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근본적으로 목격자가 없는 탓이다. 원칙인데, 정부의 모든 집행은 반드시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공권력을 통한 살해나 체포는 장기적으로 더 큰 문제를 초래할 뿐,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범죄자를 처형할 필요가 있다면, 법정을 통하면 된다. 일부에서는 탁신 정부가 ‘재빨리’ 처리하는 방식을 성공이라 여기는지 모르겠지만, 그 모든 문제는 장기적으로 사회와 국가가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들이다. 기자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지만, 탁신 정부는 광고 통제까지 해가며 언론을 압박하는 걸로 그 모든 본질을 감춰왔다. 할 말은 참으로 많은데, 타이 사람으로서 타이 정부 비판을 외국 언론에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다.

- 두번에 걸친 당신의 총리 재임 시절로 돌아가보자. 당신 업적은 뭐라고 보나?

= 내가 첫 번째 총리가 되었을 때는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을 때였고, 두 번째 총리가 되었을 때는 국가 경제가 위기를 맞을 때였다. 첫 번째는 1992년 5월 민주화운동이 벌어진 뒤 새로운 쿠데타가 염려되는 상황이었는데, 그 쿠데타를 방지하면서 민주화를 이뤄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 당시, 나는 군인들이 국가안보에만 신경을 쓰도록 유도하면서 더 이상 정치에 관여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시민정치가 군으로부터 자유롭게 했다. 그리고 노동복지부를 만들어 소외당한 노동자들을 처음 국가자원으로 인정했던 일도 기억에 남는다.

- 당신은 늘 ‘원칙주의자’ ‘법치주의자’란 소리를 들어왔는데, 어째서 1992년 학살 주범인 수친다(Gen Suchinda) 같은 장군들을 법정에 세우지 못했나?

= 그 자체가 법의 명령이었다. 누구도 법을 떠나서는 다른 이들을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인데, 당시 수친다는 쫓겨나기 전에 의회에서 이미 자신을 위한 사면법을 통과시켜버렸다. 쿠데타로 정부를 장악한 모든 군사독재자들은 자신들이 권력으로부터 떠나기 전에 언제나 사면법을 통과시켜버렸다. 결국 지금까지 그이들을 처벌할 수 없었다. 법의 함정이었다.

내가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 1992년 민주화운동 뒤 만든 신헌법에 따르면 쿠데타로 집권한 이들을 처벌할 수 있나?

=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면 가장 먼저 법을 폐기해버린다. 다행히 신헌법 제정 뒤에는 아직까지 쿠데타가 없었으니, 지금 뭐라 말할 수가 없다. (폭소)

- 1997년 경제위기로 넘어가보자. 많은 시민들은 경제위기와 함께 물러난 차왈릿(Chavalit Yongchaiyudh) 정부에 이어 새 정부를 맡은 당신을 비난해왔다. 당신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가이드라인을 좇아 나라를 팔아먹었다고도 하고.

- 내가 고민하는 걸 잘 봐와놓고는 그런 질문을…. (웃음) 1997년 차왈릿 총리 말기에 재정위기가 왔고, 그걸 해결할 수 없었던 차왈릿 정부는 국제통화기금과 관련된 일들을 이미 다 결정하고 난 뒤에 물러났다. 사실은 내가 두 번째 총리가 되면서 그 경제위기를 풀어냈다. 외환보유고가 기껏 8억달러밖에 없는 걸 내 임기 중에 320억달러가 되도록 끌어올렸다. 나라를 팔아먹은 게 아니다. (폭소) 당시 경제 상황은 시민들 바람처럼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오죽하면 차왈릿이 물러나기 전에 “국가 경제는 곧 숨이 넘어가는 환자와 같은 상태다. 내가 총리로 있는 동안 그 환자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다. 다른 의사에게 맡기고 싶다”고까지 했겠는가? 그 무렵 차왈릿은 찻차이(Chartichai Choonhavan)에게 총리직을 넘기고 싶어했지만 시민들이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차왈릿이 이끌던 집권여당인 신열망당(New Aspiration Party)보다 두 석이 작은 야당이자 제2당인 우리 민주당이 사태를 물려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시 총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뜻하지 않게 다시 총리가 되었던 셈이다. 어쨌든 두 번째 총리 임기 동안에는 오직 경제 복구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 현 탁신 정부가 국가경제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탁신을 포함해 차왈릿 정부에서 함께 일했던 현 정부 주축들이 1997년 경제위기에 대한 사과는 고사하고 나와 민주당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 부정부패를 한번 짚어보자. 당신만은 ‘깨끗한 손’으로 불리며 고고했는지 몰라도, 당신 정부나 민주당은 별 차이가 없었다. 당신이 부정부패 척결에 의지가 없었다는 말과 같은데?

= 확실히 말해야겠는데, 민주당은 정책으로 확고한 부패 척결을 다짐해왔다. 물론 집단이다 보니 개인 하나하나를 모두 통제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당원이든 정치가든 부패 문제가 불거진 이들을 보호해준 적은 절대로 없었다. 민주당 사무총장이자 내무장관이었던 사난이 재산 신고를 허술히 해서 유죄 판정을 받던 과정에서도 우린 그를 보호하지 않았다. 선거로 태어난 정치가인 나는 돈을 정치의 거래선이라 여긴 적이 없다.

선물이나 사례금은 장학재단에 바쳤다

- 고백해보자. 그 긴 정치 인생에서 당신은 개인적으로 단 한번도, 단 한푼도 부정한 돈을 만진 적이 없다는 말인가?

= (웃음) 너무 따지지 마라! 그런 걸 만지지 않는 것도 내 권리다. 예컨대 총리 시절 여비 같은 게 나오는데, 그런 건 좀 만져도 괜찮은 거라고들 알고 있다. 책정된 돈이니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이니 말이다. 난 그런 것들도 꼭 필요한 만큼만 사용했다. 선물이나 사례금으로 받은 돈들도 모두 장학재단에 갖다 바쳤다. 받은 재산은 트랑(고향) 박물관에 모두 기증했다. 내겐 때때로 차고 다니는 손목시계 하나뿐이다. 고백컨대, 선물로 받은 술이나 담배 같은 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이게 전부다.

- 민주당 대표를 물러나고 난 뒤 삶에 무슨 변화 같은 게 좀 있나?

= 거의 비슷하다. 다만 책 읽고 글 쓸 시간이 조금 더 늘었고, 어머니를 좀더 보살필 수 있고, 만나고 싶었던 이들도 좀 만날 수 있고.

- 앞으로는 뭘 할 계획인가?

= 내 임무가 모두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아직은 정치적으로 민주당을 좀더 지원해야하고, 또 몇 군데 강의를 나가고 있어 힘들지만. 선거운동도 도와야 하고 여러 가지 행사에도 참석해야 하고…. 타이 사회에서 이런 걸 무시할 수 없다.

- 이제 정리하는 입장에서, 앞으로 10년 뒤의 타이 모습을 한번 그려보자.

= 만약 전통문화를 지키지 못한다면 타이는 주체성을 잃게 될 것이다. 예컨대, 서로를 지켜주는 가족과 공동체 문화 같은 걸 두고 하는 말인데, 그런 아시아식 삶은 세계화 속에서 여전히 중요한 자산이며 또 대항 수단이다. 염려스러운 건, 타이 사회가 심각한 빈부격차에 직면해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모두가 똑같은 부를 지닐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모두가 그 부를 소유할 권리를 지닐 수 있도록 평등한 법과 사회 체계를 마련해야 하는 게 중요한 과제다. 법만은 모두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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