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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의경제학|싱가포르] 낄낄낄… 그것도 돈이냐?

등록 2004-07-22 00:00 수정 2020-05-03 04:23

파산자 속출하는 거대한 소비왕국 싱가포르에서 1달러는 어떠한 대접을 받았나

▣ 싱가포르= 글 · 사진 유니스 라오(Eunice Lau)

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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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위해 열 묶음으로 나눈 각 1.7싱가포르달러(US$1)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가 심각한 ‘쪽팔림’을 당했다. 낯선 이들에게 그 1.7싱가포르달러를 주고 원하는 물건을 사라고 한 뒤, 그들 속을 파보겠다는 내 뜻은 처음부터 낭만이었음이 드러났다. 나는 거의 울면서 1.7싱가포르달러를 쥐어주었지만 모두들 낄낄대며 도망쳤다. 나는 내 돈(사실은 로부터 받은 취재비 10US$)을 받지 않는 시민들을 원망했다.

‘5C’라는 싱가포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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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내 나이 8살 때, 싱가포르가 해마다 두 자릿수로 경제성장을 거듭하던 그 황금시절, 내가 실수로 20센트짜리 동전을 하수구에 떨어뜨리자 어머니는 그 무거운 덮개를 걷어내고 손을 더럽히며 동전을 건져올렸다. 어머니는 그냥 가자고 보채는 나를 잡아먹을 듯한 얼굴로 바라보며 “이것아, 동전도 돈이다!”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어머니는 1시간이 넘도록 “오늘날 우리가 싱가포르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쩌고 저쩌고”를 늘어놓았다. 그 시절 싱가포르에는 비 내리는 날을 대비해서 열심히 저축하는 다람쥐란 놈을 마스코트로 내세운 저축장려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싱가포르에는 그 다람쥐를 대신해서 은행원들이 ‘더 빠른 현금’ ‘값싼 대출’ ‘신용카드’를 외치며 싱가포르 드림을 선전하고 있다.

930억달러 경제, 1인당 국민총생산(GDP) 2만3700달러, 외환보유고 1천억달러…. 수치로만 보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별로 꿀릴 데가 없다. 비록 싱가포르가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야 콧구멍만 하더라도. 문제는 욕망이다. 고촉통 총리는 거세게 튀어오르는 중국에 빗대 “싱가포르 사람들은 겨우 배고프지 않을 정도일 뿐”이라고 끝없는 욕망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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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싱가포르 드림=5C’라는 거국적인 이념이 생겨났다. 자동차(Car), 현금(Cash), 크레디트카드(Credit card), 컨트리 클럽회원권(Country club membership), 콘도미니엄(Condominium).

자, 그러면 싱가포르에서 미국 돈 1달러로 뭘 살 수 있을까?

의사인 록(30)은 잠시 생각 끝에 그냥 그 돈을 갖고 있겠다고 결심했다. 1달러로 살 만한 게 마땅치 않은 탓이다. 내가 취재한 10명 가운데 남성 둘은 ‘마권’을, 여성 둘은 각각 빵 한 덩어리와 망고를, 또 둘은 배가 고픈지 ‘국수’와 ‘닭밥’을 사겠다고 했다. 나머지 한명은 포기했다. 너무 시시한 대답들만 쏟아져나와 내가 먼저 지쳐버린 탓이다.

통계에 따르면, 1995년 연간 개인 가처분소득에서 부채 비율이 118%이던 것이 2001년에는 174%로 폭증했다. 말할 나위 없이 파산이 속출하고 있다. 무리한 지출 때문이다.

쪼들린 닥터 록이 100만달러짜리 집을 은행에 잡히고도 프로젝터 텔레비전의 꿈을 꾸고 있다면, 나는 취재비로 쓰지 않은 그 1달러를 어떻게 하면 에 돌려주지 않을까를 궁리하는 처량한 신세로 밤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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