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교도 총리 취임으로 간디 집안과 화해 분위기… 분리 독립 진압과 암살의 악순환 끊어질까
델리= 우명주 전문위원 greeni1506@hotmail.com
5월22일 만모한 싱이 인도 제14대 총리로 공식 취임했다. 싱은 최초의 시크교도 출신 총리라는 점에서 시크교도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다주었다. 또 그의 취임이 소냐 간디의 임명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간디 집안과 시크교도 사이의 질긴 원한의 해소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광고
시크교도 학살한 폭동은 누구의 책임?
시크교는 15세기 말 파키스탄의 펀자브 지역에서 나나크에 의해 세워진 종교다. 영국에서 독립한 뒤 인디아대륙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되자 펀자브의 서쪽은 파키스탄 영토가 되고, 동쪽은 인도 영토가 되었다. 그러자 파키스탄령 펀자브에 살던 시크교도들은 인도로 옮겨와 인도 북부에 자리잡은 지금의 펀자브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현재 시크교도들은 인도 전체 인구의 약 3%를 차지한다.
시크교는 제5대 구루(스승)인 아르준이 이슬람 무굴 황제에 의해 살해된 뒤 평화주의에서 점차 호전적으로 변해갔다. 제10대이자 마지막 구루인 고빈드 싱이 시크교도의 군사집단인 ‘칼사’를 창설해 확고한 군사적 토대를 마련한 뒤 그 호전성은 절정에 달했다. 머리와 수염을 자르지 않고 빗, 강철 팔찌, 양날 단도를 지니고 짧은 바지를 입는 것과 남자 시크교도들에게는 ‘싱’(사자), 여자들에게는 ‘카우르’(암사자)라는 성을 붙이게 한 것도 이 칼사의 전통이다.
광고
이후 시크교도들은 인도가 독립할 때 인도 연방에 편입되기보다는 펀자브에 독립적인 시크 국가인 칼리스탄(독립의 땅)을 만들고자 했다. 이들의 분리독립운동은 1980대 초반에 가장 극렬했다. 1984년 시크 분리독립운동의 지도자인 자르나일 싱 빈드란와레는 펀자브주의 암리차르에 있는 시크교의 가장 성스러운 사원인 황금사원을 분리주의자들의 요새로 삼았다.

당시의 인도 총리가 바로 소냐 간디의 시어머니인 인디라 간디이다. 인도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의 외동딸인 인디라 간디는 분리주의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시크교도들의 성전인 황금사원을 무력 진압하는 ‘푸른별 작전’을 지시했다. 1984년 6월5일 아침 7시 인도 군대의 탱크가 황금사원으로 진격했고 수백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황금사원 일부와 시크교의 본부인 아칼 타크트가 파괴됐다.
광고
자신들의 성전이 공격당한 이 사건은 시크교도들에게 큰 모욕이자 상처가 되었다. 이때부터 시크교도들은 국민회의로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인디라 간디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푸른별 작전’이 있은 지 4개월 뒤인 1984년 10월31일, 인디라 간디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위해 자신의 저택에서 개인 사무실로 가던 중 자신의 시크교도 경호원에 의해 암살당했다. 두 사람의 암살범 중 하나인 비안트 싱은 총을 내려놓은 다음 자신을 체포하려는 다른 경호원들에게 펀자브어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당신들은 이제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라”고 말했다. 인디라 간디는 병원으로 이송 도중 소냐 간디의 무릎에 머리를 누인 채 사망했다.
인디라 간디가 시크교도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인도의 힌두들은 격분했다. 인도 전역, 특히 수도인 델리에서 시크교도들을 상대로 한 폭동이 벌어졌다. 머리와 수염을 깎지 않고 머리에 터번을 쓴 시크교도들은 쉽게 눈에 띌 수밖에 없었고 며칠 동안 약 4천여명의 시크교도들이 힌두교도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인디라 간디 사망 뒤 총리직을 이어받은 사람은 인디라의 아들이자 소냐 간디의 남편인 라지브 간디였다. 그는 며칠이 지나서야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할 것을 지시하고 방송에 나와 폭동을 멈춰줄 것을 힌두들에게 호소했다. 이 때문에 많은 시크교도들은 국민회의 정부가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있다. 또한 일부 국민회의 당원들은 폭동을 배후조종했다는 의혹까지 받았다.
시크 근본주의 정당 입지 줄어들다
두 사건으로 인해 시크교도들은 국민회의와 간디 집안에 큰 원한을 갖게 되었다. 오랫동안 펀자브의 지배정당이던 근본주의 시크 정당인 시모마나 아칼리달당은 오직 국민회의에 대한 반감 때문에 인도국민당을 지지했다. 시모마나 아칼리달당의 국민당 지지는 국민당이 1999년 총선에서 최대 정당으로 성장하고 국민당 지도자인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가 총리로 취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편 소냐 간디는 1998년 국민회의 당수로 취임한 뒤 시크교도들과의 오랜 원한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1984년의 폭동을 사과하며 델리의 시크 사원들을 방문한 자리에서 소냐 간디는 “그런 사건은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남편 라지브 간디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2년 전 국민회의가 펀자브에서 아칼리달당을 꺾고 주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그런 노력의 결실일 수도 있지만 명망 높은 시크 지도자이자 시크 왕족의 후손인 아마린데르 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시모마나 아칼리달당의 부패 혐의도 한몫을 했다.
이번 총선이 있기 전 시크교도들의 단체인 시크 포럼은 국민회의 일부 정치인들의 공천에 분노를 표현하며 총선에서 국민회의에 반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시크 포럼은 델리에서 국민회의의 공천을 받은 일부 후보들이 1984년 반시크교도 폭동 연루자들이라고 비난했다. 시크 포럼은 모든 시크교도들에게 국민회의를 제외한 다른 당에 투표할 것을 호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시크 포럼 지도자들은 국민회의의 시크 지도자들이 저항의 의미로 탈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일부 의원들을 거명했는데 그 가운데는 현 총리인 만모한 싱도 포함돼 있었다.
이번에 소냐 간디가 총리 취임을 고사하고 대신 만모한 싱을 총리로 추천하면서 많은 시크교도들이 국민회의와 간디 가문에 얽힌 구원을 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반시크교도 폭동 희생자들의 미망인과 자녀를 위한 구호활동에도 크게 도움될 것으로 기대된다. 만모한 싱 총리는 재무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폭동 희생자 미망인들이 보조금을 받는 데 도움을 준 적이 있다. 이제 시크단체들은 새 정부가 희생자들의 자녀에게 일자리와 직업훈련 기회를 제공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또 이번 소냐 간디의 결정은 시크 근본주의 정당인 아칼리달당의 앞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전세계 시크교 성지들과 사원들을 관리하는 시모라니 구루드와라 프라단다크 위원회의 의장인 만지트 싱이 만모한 싱의 총리 임명과 관련해 소냐 간디에게 찬사를 보내자 아칼리달당 지도부는 크게 당황했다. 지금껏 프라단다크 위원회는 아칼리달당의 가장 큰 자금원이었기 때문이다. 인도소수종교위원회 위원장인 타르로찬 싱 역시 이번 일을 역사적인 진전이라고 표현했다. 전적으로 국민회의를 비난함으로써 정치판에서 살아남았던 시크 지도자 심란지트 싱 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기세가 수그러들었고 만모한 싱의 취임을 환영했다.
이제 국민회의를 첫 번째 적으로 간주하며 주민들에게 투표를 호소해왔던 아칼리달당은 주요 쟁점을 잃어버림으로써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칼리달당의 당수인 전 펀자브 주지사 프라카시 싱 바달은 만모한 싱을 성실하고 진실한 지도자라고 칭하며 그의 총리 취임이 시크들의 상처받은 감정을 다소 달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국민회의는 여전히 자신들의 첫 번째 적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갈라지지 맙시다”
그러나 많은 시크교도들은 이제 그들의 주장에 동감하지 않는다.
만모한 싱은 총리직 임명 뒤 5월20일에 연 첫 기자회견에서 “만약 우리가 종교의 이름으로 갈라진다면 이 나라는 위험에 빠질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싱은 1984년 반시크교도 폭동이나, 국민당 정권 아래에서 발생했던 2002년 구자라트 폭동 같은 종교분쟁은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했다. 국민회의와 시크교도간의 반목은 이제 막을 내릴 때가 온 것 같다.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헌재, 윤석열보다 먼저 한덕수 탄핵심판 선고…24일 오전 10시
민주, 한덕수 탄핵심판 24일 선고에 최상목 탄핵은 ‘일단멈춤’
[속보] ‘김건희 상설특검’ 본회의 통과…국힘 당론 반대
[속보] 연금개혁안 본회의 통과…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3%
윤석열, 사망 지지자에 “가슴 아파”…선고 기다린다더니 ‘관저정치’
“이재명 쏘고 죽겠다는 김건희, 왕조시대면 사약 받을 일”
18년 만에 연금개혁 합의…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3%
“김건희는 실행 가능한 사람” “구속해야”…‘총기’ 발언 후폭풍
캐나다, 자국민 4명 사형집행에 “중국 강력 규탄”
국힘, 윤 탄핵 ‘각하’ 궤변…법조계 “기각 불가하니 소송요건 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