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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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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여인의 한판 역전승!

등록 2004-05-28 00:00 수정 2020-05-03 04:23

예상 뒤엎고 인도 총선에서 승리한 국민회의… 소냐 간디는 ‘외국인’ 논란에 총리직 고사

델리= 우명주 전문위원 greeni1506@hotmail.com

20일간 이어진 14대 인도 국회 하원의원 선거는 다소 놀라운 결과를 보이면서 막을 내렸다.

선거 전에 실시된 모든 여론조사는 집권 여당인 인도국민당의 압승을 예측했으나 결과는 반대로 최대 야당인 국민회의의 승리로 끝났다. 국민회의는 비교적 인도 전역에서 고른 득표를 얻어 8년 만의 재집권에 나섰다. 선거가 시작되기 전 국민당은 높은 지지율에 고무되어 현재와 같은 연정 체제가 아닌, 단일 정당으로서 집권할 가능성도 점쳤다. 하지만 5차례에 걸쳐 선거가 치러지는 동안 나온 출구조사 결과는 국민당의 승리 전망을 어둡게 했다. 그러자 국민당은 이슬람 유권자들을 겨냥한, 그때까지의 친이슬람 유세를 중단하고 나렌드라 모디 구자라트 주지사와 같은 극우 힌두교 지도자들을 아직 투표가 실시되지 않은 지역의 선거 유세에 긴급 투입하며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예상되는 선거 결과는 국민당의 과반수 획득이 불확시하다는 것이었지, 결코 선거 패배가 아니었다.

농민 · 빈민이 국민당에 등 돌린 이유

그러나 선거 결과는 선거 전 여론조사와 출구조사 결과를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소니아 간디가 이끄는 국민회의연합은 543석 가운데 219석을 얻어 189석을 차지한 국민당 연합을 앞질렀다. 선거 결과가 발표된 직후 바지파이 총리는 압둘 칼람 대통령을 만나 사임 의사를 전달했다. 이번 선거에 임하는 국민당의 핵심 구호는 ‘빛나는 인도’였다. 바지파이 정부는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인도 경제를 자신들의 선거 승리를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 10월로 예정된 일정을 앞당겨 선거를 실시했다. 하지만 ‘빛나는 인도’ 슬로건이 해당되는 계층은 오직 도시에 거주하는 중산층들뿐이었다. 도시 중산층들의 몇배에 해당하는 시골의 수많은 농민들과 도시의 빈민들에게 빛나는 인도 캠페인은 오히려 박탈감만을 불러일으켰다. 또 빛나는 인도의 수혜자들인 도시 중산층들은 거의 투표를 하지 않았고, 나머지 유권자들만이 투표에 나섰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55~60%에 불과해 역대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번 선거의 결과를 단순히 반국민당, 친국민회의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이번 선거를 결정지은 것은 ‘반정부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총선과 함께 실시된 안드라프라데시 주의회 선거에서도 국민당의 핵심 동맹정당인 텔루구 데삼 정당 소속의 현 주지사 찬드라 바부 나이두가 낙선했다. 그는 안드라프라데시주의 수도인 하이데라바드를 인도의 ‘사이버 수도’로 만드는 등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한 탓에 당선이 확실시돼왔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도시와 농촌 사이에 큰 간격을 벌여놓았고, 이는 결국 그의 낙선으로 이어졌다. 전통적인 국민당의 표밭인 구자라트에서도 국민당은 가까스로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했을 뿐이다.

이런 ‘반정부 감정’은 선거에 승리한 국민회의의 경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국민회의가 집권하고 있는 카르나타카주에서 국민회의는 전체 28석 중 8석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카르나타카의 수도 방갈로르는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며 번영하고 있지만, 그곳의 농민들은 지난 4년간 계속된 심각한 가뭄으로 고통을 받아왔다. 지난해 카르나타카에서는 농가 부채로 인한 농민 자살이 큰 문제로 대두됐으나 국민회의 정부는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한편 국민회의는 이번 선거 결과를 당수 이탈리아 출신인 소니아 간디의 태생을 더 이상 국민들이 문제 삼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선거 유세 기간 중에 국민당은 끊임없이 소니아 간디의 태생 문제를 선거 유세의 주제로 삼았다. 특히 구자라트 주지사인 나렌드라 모디는 거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발언으로 소니아 간디를 공격했다. 2002년의 구자라트 의회 선거에서 참패했던 국민회의가 이번 선거에서는 전체 26석 가운데 12석을 차지한 것은 구자라트 주민들이 나렌드라 모디의 극우힌두적인 태도와 독설적인 언변을 혐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재무장관 출신의 싱 총리 지명에 호평

그러나 선거 승리 직후 국민회의 의원 대표로 선출된 소니아 간디가 총리로 취임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자 국민당은 다시 소니아 간디의 태생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국민당은 바지파이 총리를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은 전원 소니아 간디의 총리 취임식에 불참하겠다며 보이콧 의사를 밝혔다. 현 보건부 장관이자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수시마 스와라지 의원은 소니아 간디가 총리에 취임하면 의원직을 사퇴하고 삭발을 감행하겠다고 말했다. 또 국민회의의 연맹 정당인 좌익 정당들이 공기업 매각과 사유화에 반대하는 것에 대한 우려로 인도 주식시장은 폭락을 거듭했다. 급기야 지난 5월17일 뭄바이 주식시장에서 센섹스 지수는 한때 사상 최대인 17%나 폭락했고 두번이나 거래가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소니아 간디는 새 정부 구성을 논의하기 위해 압둘 칼람 인도 대통령을 만났으나, 일반적으로 다수당 당수에게 정부 구성을 위임하는 관례와 달리 소니아는 대통령의 위임을 받지 못했다. 선거 직후 대통령의 법률 자문들은 소니아 간디의 국적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대통령은 헌법적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소니아 간디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니아 간디는 대통령을 만난 직후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총리직을 고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의 인가를 받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인도공산당(맑스주의자) 의원 대표인 솜나트 차테르지는 소니아 간디의 자녀 라훌과 프리앙카가 그의 안전을 염려해 총리직을 맡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니아 간디의 시어머니인 인디라 간디 전 총리와 남편 라지브 간디 전 총리 두 사람은 모두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선거에 출마해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라훌 간디는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 “이제 가족의 신변에 대한 불안감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니아 간디가 정계에 입문할 때 자신과 여동생인 프리앙카는 반대했다고 밝혔다.

한편 소니아 간디의 총리직 고사 선언이 있은 뒤 뉴델리 잔파트 10번가에 있는 그의 저택 앞에는 수많은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그 결정을 번복해줄 것을 호소했다. 전 국회의원인 강가차란 싱 라이푸트는 “만약 소니아 간디가 총리가 되기를 거부한다면 자살할 것”이라며 머리에 권총을 겨누다 경찰에게 제압당하기도 했다. 또 국민회의 지도부는 일괄 사퇴로 소니아 간디의 총리 취임을 간청했다. 하지만 소니아 간디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고 국민회의의 상원의원인 만모한 싱을 차기 총리로 추천했다.

시크교도인 만모한 싱은 1991년 재무장관으로서 경제 자유화 조처를 통해 갇혀 있는 호랑이로 간주되던 닫힌 인도 경제를 전세계에 열고 파산 직전의 지경에서 구해냈다. 그는 그런 정책들을 통해 인도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결국 거의 10년 뒤인 현재 인도는 ‘브릭스(BRICs)의 꽃’으로 불림으로써 그것을 입증했다. 만모한 싱의 취임이 알려지자 주식시장은 다시 상승세를 보였고, 대통령도 그에게 정부 구성을 위임함에 따라 소니아 간디는 자신도, 국민회의도, 인도도 모두 이익을 보는 현명한 처신을 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당내 알력 등 넘어야 할 산 많다

만모한 싱이 차기 총리로 결정됐으나 인도 정계와 경제계는 여전히 혼미한 상태다. 내무부 장관 자리를 넘보다가 거절당한 라시트리야 자난타달의 당수 랄루 프라사드 야다브는 거의 확실시되던 연정 참여를 취소했다. 또 만모한 싱이 일부 공기업의 매각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하자 주식시장은 하락세를 보이기도 했다. 소니아 간디가 국민회의 당수직을 계속 유지함에 따라 당내의 두 권력 중심간의 알력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렇듯 예상치 못한 선거 결과가 가져다준 파장은 만모한 싱의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한동안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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