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중동에서 흥행… 아랍인들이 기독교를 새로이 이해하는 계기
암만= 글 · 사진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아주 감동적이고 서사적이다.”
“누가 평화의 걸림돌인지 중동 문제의 본질을 잘 깨닫게 해준 영화다.”
“그동안 직접 접할 수 없었던 기독교인이 믿는 예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예수의 죽음 보며 흐느끼는 사람들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인 멜 깁슨이 제작한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가 중동 전역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서구에서 유대인 단체들과 일부 기독교 보수주의 진영의 반발과 테러, 상영금지 위협 등으로 수난을 겪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독재적이고 반유대적이며 너무 잔혹하고 폭력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는 중동 이슬람권에 새로운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수의 생애 마지막 12시간을 잔인하리만치 사실적으로 125분간 화면 가득히 영상화한 이 영화는 중동 이슬람권에 새로운 문화 코드로 등장한 것이다.
한국보다 앞서 3월16일에 이 영화가 공개 상영된 것은 VCD나 DVD 버전이 시중에 돌아다닐 즈음에 뒤늦게 개봉관에서 묵은 영화를 보던 그간의 사례에 비춰보면 조금은 이례적인 일이다. 시간이 갈수록 상영 국가와 상영관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이 영화가 상영 중인 중동의 이슬람 나라로는 요르단을 비롯해 쿠웨이트, 카타르, 레바논, 시리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이다. 3월 중순 암만 시내 중학교 교실에서는 학생들 사이에도 서로 를 봤는지 묻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슬람교를 믿는 학생들 사이에도 이 영화가 얼마나 큰 관심을 끌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간 중동 지역에는 예수의 생애를 그린 영화 (Jesus) 아랍어판이 시중에 나돌았으나 공개적으로는 기독교 영화를 볼 수 없었다. 는 다른 기독교 영화보다 더 사실적으로 성경의 기록을 담고 있다. 현지 기독교인들조차 이 정도일 줄은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 영화가 중동에서 공개 상영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제 를 보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이는 요르단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다. 요르단 암만의 대형 매장인 메카몰 4층에는 8개의 상영관을 갖춘 가장 현대적으로 지어진 시네마타운이 있다. 기독교 인구가 4% 정도인 요르단에서는 교회나 학교 등에서 오는 단체 관람객들도 많다. 적지 않은 이슬람교도들도 이 영화를 보고 있다. 125분의 짧지 않은 상영 시간 동안 관객석 곳곳은 새어나오는 한숨과 나지막한 흐느낌이 뒤엉킨다. 이 눈물과 감동에는 종교의 차이가 없다. 그야말로 많은 관객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눈시울을 적시며 영화관을 속속 빠져나온다. “예수가 몸으로 겪은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이 이렇게 처절한 줄 몰랐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에게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반응이다.
이슬람 교리 속에서 예수는 죽지 않아
모처럼 이슬람교도들이 아무런 편견 없이 기독교인들의 믿음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반유대적이라는 영화가 이슬람교도들에게 어떤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교리적으로 이 영화는 이슬람의 가르침에 위배된다. 이슬람교도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나, 그가 십자가에서 고통을 겪었다는 점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슬람의 경전 코란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 않았다고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코란 4장 니싸아(여인) 장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알라의 선지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다’라고 그들(유대인들)이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그들(유대인들)은 그(예수 그리스도)를 살해하지 않았고, 십자가에 못박지도 아니했다. 그런 논리를 만들었을 뿐이다…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뿐이지 (결코) 그(예수 그리스도)를 살해하지 아니했다. 알라께서 그를 (하늘에) 오르게 하셨으니 알라는 권능과 지혜로 충만하심이라.(157-158절) 이슬람 학자들은 물론 일반 교도들조차 단호하게 말한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지 않았고,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 매달았을 뿐이다. 오히려 예수는 죽지 않고 승천했다. 이슬람 전통에서 예수 대신 십자가에 못박힌 인물은 가롯 유다이다.”
그러나 영화 속의 예수는 십자가에서 실제로 고통을 겪었고, 죽었으며, 다시 부활했다. 이슬람교도들은 이런 주장을 교리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는 이슬람교 신앙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한 사상이 담겨 있는 영화인 셈이다. 그런데 중동의 이슬람 세계에서 는 버젓이 적지 않은 무슬림 관객들 앞에서 상영되고 있는 것이다. 쿠웨이트·카타르 등 걸프 지역의 관객들은 대부분 현지 이슬람교도들이다. 영화관이 없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캠 버전(캠코더로 영화관에서 촬영하여 만든 영상물)의 불법 복제 CD와 정품을 복제한 DVD 등이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다. 젯다 지역은 1만원 정도 하는 DVD판이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판매업자들은 말한다. 영화 내용에 반발하는 성난 이슬람교도들의 상영 금지 시위라도 벌어질 것 같지만 이슬람 종교계에서는 반응이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영화를 보는 것일까? 그것도 온통 검은 천으로 온몸을 감싸기까지 하고 이 영화관을 찾은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카타르나 쿠웨이트에서는 관객의 절반 이상이 현지 이슬람교도들로 채워지고 있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수반도 유혈 충돌 와중에 라말라 집무실에서 DVD판으로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반유대주의는 무슨… 아주 감동적이고 서사적이었다.” 그의 촌평이었다. 영화 관람을 마치고 빠져나오는 관객들 틈에 베일을 쓴 이슬람교도 여성들의 붉어진 눈시울은 영화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짐작케 한다. “인간의 사악한 음모를 볼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정말 치가 떨린다.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 있는가? 죄 없는 사람을 저런 처참한 상황까지 끌고 가다니….” 같은 영화를 보고도 이렇게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묘하다. 이들 중에는 “예수를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로 부르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며 성경을 읽어봐야겠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 영화의 영향은 중동 이슬람권의 온라인 공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부 이슬람 사이트에는 “영화를 보니 예수가 그리스도이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었다고 묘사한다. 영화 말미에는 그가 부활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정말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올라와 있다. 이것은 새로운 논쟁이 되고 있다. 그동안 중동 이슬람권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학교에서 이슬람 역사와 코란을 배워야 했다. 날마다 이슬람 사원에서 하루 5차례씩 외부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는 예배 안내 방송과 설교까지도 듣고 있다. 국민의례는 이슬람식으로 진행된다. 반면 이슬람교도들은 개인의 선택에 의해서이기도 하지만 기독교에 대해 들을 기회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교회는 제한된 영역에 갇혀 있어야 했다. 기독교는 제한된 이들만이 접할 수 있는 불온한 어떤 것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 일부 이슬람교도들이 그들의 이웃인 기독교인들의 믿는 방식과 내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슬람교도들의 기독교 바로 알기가 시작된 것이다. 수난당하는 예수는 중동 이슬람권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화해를 돕는 중재자로 부상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중재자로
일각에서는 열기의 원인을 중동 이슬람권의 반유대주의 정서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관심은 이런 이념적인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념과 정치, 종교의 틀에 갇혀 있지 않은 이곳의 평범한 사람들은 감동할 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중동의 이슬람교도들도 에 모여들고 있다. 전쟁과 분쟁으로 수난받는 중동은 지금 이 영화를 통해 새로운 인식에 눈뜨고 있다. 이슬람의 신앙과 확신에 반하는, 종교적으로 불순하게 비칠 수 있는 내용과 반유대주의 교과서로 오용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는 이제 중동 이슬람권의 새로운 문화 코드로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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