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전 총리 단독 인터뷰… 그에게 다시 듣는 22년의 현실정치와 '아시아적 가치'의 뿌리
아시아에서 ‘반세계화의 선봉장’이 되었던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 최근 끝난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 콸라룸푸르=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 유니스 라오(Eunice Lao)/ 전 기자
2004년 3월29일 푸트라자야의 퍼다나 리더십 파운데이션(Perdana Leadership Foundation). 대형 초상화들에 담긴 마하티르(Dr. Mahathir Mohamad) 전 총리가 방문객을 맞았다. 화려하지도 천박하지도 않게 적당히 잘 꾸민 사무실이지만, 아시아 최장기 집권자 가운데 한명으로 ‘가공’할 위력을 지녔던 그의 22년 세월에 비춰보면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전에 볼 수 없던 편안함이 묻어나왔고, 1시간 동안 마주 앉았던 인터뷰 자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동’이 없었다. 그게 지난 3월21일 끝난 총선에서 217석 가운데 198석을 차지한 정당 ‘후견인’으로서 느끼는 만족감 탓인지, 아니면 22년 동안 지고 왔던 그 무거운 총리 직책을 벗은 홀가분함 탓인지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기대했던 독설도 찡그림도 없는 ‘심심한’ 인터뷰였다. 몇 차례 가슴을 찌를 만한 질문을 던져보았으나, 그는 더 이상 ‘정치가’가 아니었다. 세상을 눌러보는 중후한 ‘노신사’였을 뿐.
한국 정치와 말레이시아 정치
- 요즘 한국 정치, 탄핵을 보고 있나?
= 한국 경제는 매우 발전했지만, 정치는 늘(적합한 단어를 찾으려는 듯 멈칫거림)….
- 불안정?
= 불안정하고, 정치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가능성이…. 노무현 대통령이 너무 자유주의자가 아닌가 싶고….
- 그런 한국에 대한 인상은?
= 너무 과거에 집착하는데, 이제 미래를 보고 갈 때다. 우리도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수많은 이들이 죽었지만 말레이시아인들은 지금 일본을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로 여길 뿐, 더 이상 과거를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동아시아 경제블록’이니 ‘아세안+3’을 말할 때, 중국이 일본을 미심쩍어하고 일본이 한국을 수상쩍게 여기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 본론으로 들어가서, 국민전선(BN·Barisan Nasional)이 말레이시아 이슬람당(PAS·Parti Islam SeMalaysia)을 압도적으로 누른 이번 총선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
= 유권자들이 새 총리의 리더십을 기쁘게 받아들인 결과다. BN 압승에는 지난 1999년 선거 당시 논란거리였던 부총리(부패와 동성애 행위로 수감 중인 안와르)의 사안을 유권자들이 더 이상 화제로 삼지 않는데다, 특히 최근 경제 안정이 크게 작용했다.
- 이번 PAS 참패를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 정치 종말로 보는가?
= 아니다. 우린 PAS를 잘 안다. 극단적인 정치성을 지닌 그들은 다시 일어선다. PAS는 앞으로 5년 동안, 다음 선거 때까지 정부를 흠집 내고 증오하는 정치 선동을 할 것이다. 불행히도 사람들이 그런 선거운동을 받아들인다는 건데, 다음 선거에서 PAS는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것이다.
- 근데 이번 선거에선 왜 PAS가 참패했나?
= 나를 엄청나게 증오하고 때렸던 PAS가 다시 새 총리를 흠집 내려 했으나 새 총리가 대꾸하지 않자 공격 지점을 찾지 못했던 탓이다. 또 “옳은 무슬림이 아니면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PAS의 말이 처음엔 받아들여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민들은 그런 말에 따분해졌다.
- 유권자들이 흔들린 까닭이 PAS에 대한 따분함 탓이란 말인가?
= 한 부분이었다는 뜻이다. 정부쪽에서 젊은 피를 대량 수혈했고, 특히 여성조직 확장이 크게 작용했다. 말레이연합국민기구(UMNO·United Malays National Organization)의 조직원 반이 여성인데, 그들이 정부를 적극 지원했다.
- 화제를 새 정부로 옮겨보자. 새 내각을 어떻게 보나?
= 일부 옛 인물들이 자리를 지켰고 또 일부는 새 피로 채웠다. 내 생각엔 그리 나쁜 내각 구성은 아닌 듯싶은데, 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좀더 두고 보자.
- 새 내각에 약점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나?
= 난 그런 걸 말할 수 없다. 옛 인물들은 경험을 전해줄 것이고, 새 인물들은 열심히 일할 것이다. 모두 매우 열성적으로.
- 사실은 이미 예상했던 구성이라 전혀 놀라지 않았다. 다만, 새 정부가 변화를 약속한 사실에 비춰보면 매우 실망스러웠다.
= 내각이 활동하기도 전에 뭐라 말하긴 힘들다. 선거 전엔 장관들을 모두 바꿀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실용적인 면을 고려했다고 본다. 실망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바로 그 인물들이 이번 승리를 이끌었는데 그들을 모두 쫓아낼 수는 없다.
나의 가장 큰 업적은 ‘인종간 조화’
- 이제 당신이 총리였던 시절을 되돌아보자. 스스로 가장 큰 업적을 꼽는다면?
= 다인종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인종간 조화였다. 내가 총리가 되자, 리콴유(전 싱가포르 총리)는 나를 ‘극단주의’라 불렀고, 중국계는 나를 극렬하게 반대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을 ‘과격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나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내가 원한 건 인종간 조화였고, 결국 말레이시아에서 그 조화를 실현했다. 그리고 1969년 인종폭동 같은 일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았다.
- 인종간 조화를 위해 부의 분배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해왔는데, 얼마나 성취했나?
= 공평했다고 믿는다. 1969년 이전엔 다수 말레이계가 고작 2%의 부를 지녔던 데 비해 소수 중국계가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경제정책(NEP)을 통해 오늘날 비교적 그 부의 균형을 이뤄냈다. 이상적으로 보면, 각 인종 공동체가 그 크기에 맞는 부를 지녀야 하는데, 거기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신경제정책 목표는 말레이계가 최소 30%, 중국계와 인도계가 40%, 나머지 30%를 외국인들이 지닐 때 달성될 수 있다.
- 총리직 22년을 거치면서 스스로 결점을 꼽는다면, 족벌주의나 부패?
= 사람들이 족벌주의와 부패를 내 결점이라 비난하지만, 난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이들이 성공하면 무조건 족벌 꼬리표를 붙였다. 내가 족벌주의 비난을 면하려면 내가 선택한 이들이 모두 실패해야 한다는 논리인데, 그러면 신경제정책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부패를 말한다면 그건 기록에 나와 있다. 내가 총리가 되면서 처음으로 했던 말과 일이 부패 추방이다. 나는 부패 척결을 원치 않은 적도 없고 또 방관하지도 않았다. 부패를 처벌하고 있지만, 문제는 정확한 증거를 잡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그래서 부패는 누구든 다루기가 쉽지 않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유럽에서도 일본에서도 어디서든 마찬가지다. 부패를 줄일 수는 있지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 당신이 총리 때 애쓴 일 가운데 하나인데, 테러리즘과 그에 따른 불확실성이 지역안보 문제에 어떻게 작용한다고 보는가?
= 이 지역의 안보 문제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정부를 무력으로 뒤엎겠다는 시도를 하면서 더욱 예민해졌다. 말레이시아에서도 이슬람주의자들이 군대 무기를 탈취하는 일이 벌어졌고, 또 이슬람 정당 소속 젊은이들 가운데는 파키스탄으로 유학 가서 알카에다와 접선한 조직원들도 있다. 그들이 훈련받고 말레이시아로 되돌아와서 정부를 무력으로 타도하겠다고 나섰고, 이미 ‘9·11 공격’ 이전에 기독교도를 살해한 경우도 있다. 우린 곧장 보안법(Internal Security Act)을 동원해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대처했기 때문에 말레이시아의 안보 상황을 지켜낼 수 있었다. 물론 일부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인도네시아쪽과 선을 달고 있지만, 인도네시아가 워낙 큰 나라고 또 테러리즘에서 우리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어 그 모두를 감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필리핀을 포함한 아세안(ASEAN) 지역이 모두 불안정한 상태다. 테러리즘에는 국경이 없다. 지역안보를 위해서는 테러리즘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적극적인 정보 교환이 필요하다.
- 당신은 이 열린 세상에 아직도 보안법(ISA)이 필요하다고 믿는가?
= 보안법은 예방법이다. 예방법이란, 만약 어떤 범죄가 많은 이들을 살해하거나 국가를 불안정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면 그 범죄가 성립되기 전에 차단하는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범죄 성립 이전에 그 증거를 법원에서 밝히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예방법은 법원으로 가지 않는다.
- 인권 유린과 정치적 악용으로 지탄받아왔는데도?
= 축적된 증거를 통해 감금했다. 감금당한 이들은 변호사와 인권단체를 만날 수 있다. 또 당국은 6개월마다 재조사를 한다. 그리고 문제가 없으면 석방한다. 보안법은 법 규정 내에 있다. 이런 건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도 필요하다면 법 없이 체포하고 감금해왔다. 관타나모(미국 정부가 탈레반을 불법 체포·감금해온) 미군 기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알고 있지 않는가? 말레이시아에서는 선거 때마다 야당이 이 보안법을 들고 나왔지만, 시민들은 정부에 표를 던졌다. 그건 보안법을 지원한다는 뜻이다. 시민들은 이 보안법이 자신들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하라
- 당신 철학으로 넘어가보자. 당신이 이슬람주의를 강하게 거부해온 것은 이슬람이 본디부터 세속적(비종교적)인 개발모델과 양립할 수 없다고 믿은 탓인가?
= 사람들이 이슬람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이슬람은 삶의 방식이지, 예배의 방식이 아니다. 이슬람은 모든 걸 아우르고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이슬람 속에 있다. 어떤 이들이 이슬람은 개발과 양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해석의 문제다. 같은 무슬림이지만 여기 말레이시아에서는 여성들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가리지 않듯이. 그런 건 이슬람의 가르침이 아니다. 우린 이슬람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우린 종교적 관용을 지녔다. 이슬람에서는 다른 신앙심을 지닌 이들을 존중하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세속적인 국가와 이슬람 사이에는 문제될 게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임을 주장하지만 세속적인 국가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개발이 가능하다.
- 그래서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국가지만 이슬람법 대신) 식민주의 법(영국법) 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건가?
= 만약 그 법을 폐지해버리면 나라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 당장 인종간 분쟁이 터질 것이다. 무슬림과 비무슬림 모두에게 공평해야 한다. 그게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다. 공평하기 위해 그 법 제도를 이용할 뿐이다.
- 당신이 주장해온 서양 주도권의 위험성을 정리한다면?
= 중국은 겨우 2천마일 거리에 있지만 우릴 공격한 적은 없다. 포르투갈은 8천마일이나 떨어져 있지만 우릴 공격했다. 자, 누굴 두려워해야 할까? 서양은 독립국인 우리 내정을 여전히 간섭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상과 가치를 우리에게 강요했다. 이젠 동성간 결혼도 좋다고 우기고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도 가정이라 부르며 우리에게도 그걸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 그건 자신들 종교에서도 죄라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다. 또 서양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우며, 심지어 종교적 관습에서도 자신들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무슬림인 우리들이 이슬람이란 종교를 제어할 수 없다고도 말한다. 그래서 우린 서양이 강요하는 윤리적 가치를 원치도 않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자유무역만 해도 얼마나 일방적인가? 그들이 거대한 은행을 말레이시아에 들고 온다면 우리 은행과 회사들은 모두 파산해버리고 만다. 그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을 내걸고 한국과 아시아 회사들을 모조리 헐값에 사들였다. 이렇게 진실을 말해온 나를 그들은 ‘안티 웨스턴’(anti-western)이라 불렀다. 내가 거짓말을 했나?
- 당신이 외쳐온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의 출발점도 바로 그곳인가?
= 우린 아직도 유럽적 가치(European values)를 빅토리아조(Victorian age)로 설명할 수 있다. 그 시절 유럽인들은 발가벗지 않았고 동성애에 빠지지도 않았으며 매우 정숙했다. 과거에도 그들은 매우 탐욕스러웠지만, 적어도 반독점법이란 걸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은 온 세상을 독점하는 거대기업들을 만들고 있다. 우린 나라들 사이에 부를 나누길 원했다. 그러나 그들은 “왜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하냐? 우리가 더 싸고 질 좋은 자동차를 만들 수 있으니, 너희는 그만두라”고 했다. 그래도 우리가 스스로 기술을 개발해서 자동차를 만들어 수익을 올렸더니, “우리 자동차가 들어가서 너희와 경쟁할 수 있도록 너희 국내 시장을 열어라”고 강요했다. 그들이 연간 1천만대를 만드는 동안 우린 고작 30만대를 만들어왔을 뿐인데, 어떻게 공정한 경쟁을 말할 수 있겠나? 그들의 사고는 가장 큰 놈이 모든 걸 먹는 식이다. 그것은 우리들 가치가 아니다. 우린 공평하길 원했다. 그게 아시아적 가치의 뿌리다.
- 시간이 넉넉지 않으니, 이젠 정리로 들어가야겠다. 결론에 대신해서, ‘마하티르 없는 말레이시아의 미래’를 말해보자.
= 다행스럽게도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매우 실용적이라는 장점을 지녔다. 사람들이 서로 다투지 않고 다른 인종들과 나누기를 좋아한다. 또 문젯거리를 만들기 싫어하고. 따라서 나는 말레이시아가 안정을 유지하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성장하리라 본다.
한국은 '슈퍼 파워' 목표 삼지 않을 것
- 당신이 없는 새 정부에게 한마디 조언한다면?
= 과격파 위협이 무슬림인지 아니면 제3세력인지 가려내 그이들이 힘을 기르기 전에 차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유주의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행위가 손에서 벗어나 자랄 수 없도록 매우 조심스레 다루어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이 투표로 정부를 바꿀 수는 있지만, 전쟁이나 무력으로 뒤엎을 순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일이다.
- 은퇴한 뒤 일상은?
= 아침 6시에 일어나 기도하고 9시에 여기 사무실에 나와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당신 같은 이들과 인터뷰도 하고, 사람들 자문에 응하기도 한다. 또 여러 곳에서 연설을 요청해와서 많은 시간을 연설문을 작성하는 데 쓴다.
- 그동안 당신은 박정희와 한국을 엿보았다고 해왔는데, 한국 미래도 보이는가?
= 한국은 우리 모델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동쪽을 보았을 때, 한국을 보았다. 우린 학생들을 보내 어떻게 한국이 그렇게 빨리 발전할 수 있었는지를 배웠고, 우리가 한 많은 일들은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교훈 삼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지원했던 ‘재벌’도 좋은 본보기였다. 요즘 재벌을 비난하는데, 나는 그 재벌이 없었다면 한국은 그렇게 발전할 수 없었다고 본다. 아무튼 한국 사람들은 매우 열심히 일해왔고, 한국은 앞으로 거대한 산업국가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더라도 한국이 ‘슈퍼 파워’를 목표로 삼지는 않으리라 본다. 거긴 일본만 있는 것도 아니고, 중국도 있다. 한국은 그들 속에서 상호 보완해나가는 방식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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