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아줌마 이혼만세!

등록 2001-01-31 00:00 수정 2020-05-02 04:21

드라마 신드롬… 박살나는 순종 이데올로기에 박수가 터진다

지난 1월9일 밤, 텔레비전을 켜놓은 많은 가정에서 박수소리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이날 시청자들을 흥분시킨 것은 축구 한·일전에서 펼쳐진 한방의 역전골이 아니라 한편의 드라마 속 이혼법정이었다. 드라마 에서 오삼숙(원미경)과 장진구(강석우)의 이혼판결이 난 순간이었다. 물론 감격에 겨운 목소리는 대부분 여성의 것이었다. 다음날 문화방송 홈페이지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역전의 용사 오삼숙에 대한 지지 메일이 쇄도했다. “작가님, 연출가님 감사합니다”,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릅니다”, “이혼판결 속시원하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내가 다 눈물이 났다. 기뻐서”…. 한 네티즌은 “작가가 여성특별위원회에서 상을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하는 제안까지 했다. 시청자들은 무슨 심보로 한 가정의 파경에, 여성의 삶에서 가장 치명적인 상처라는 이혼에 쌍수를 들고 반긴 것일까? 드라마는 어쩌자고 용서와 화해라는 묵시를 깨고 법원을 나서는 원고 오삼숙의 발걸음에 위풍당당 행진곡의 배경음악을 깐 것일까?

‘19세기 아줌마’ 당당히 포문을 열다

드라마 의 바람이 거세다. 지난해 9월 말 ‘가부장적인 집안의 순종적인 전업주부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변신하는 과정을 그린 코믹 홈드라마’라는 기획으로 시작된 이 드라마는 방영 뒤 두달이 지날 때까지도 그저 그런 드라마 가운데 하나로 묻히는 듯했다. 그러나 11월 말부터 시청률이 가파르게 올라가더니 지금까지 30%를 달리면서 쾌속순항하고 있다. 정확히 순위로 따지면 1등은 아니다. 최근 방영이 끝난 서울방송의 나 한국방송공사의 에 여전히 밀린다. 그렇지만 를 두고 벌어지는 공방의 열기는 다른 드라마를 단연 앞선다. 이혼판결이 나기 전 일간지에 앞다투어 ‘아줌마를 이혼시켜라’는 압박성 칼럼과 기사가 등장했던 사실은 이 드라마가 뿌리고 있는 이상열기를 가늠케 한다.

에 대한 여성시청자들의, 그리고 일부 남성시청자들의 지지는 이제 신드롬으로 변해가는 양상이다. 현실에서는 세쌍 중 한쌍의 부부가 이혼을 할지언정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되도록 피하는 이혼을, 뻔뻔할 정도로 씩씩하게 그리는 것에 시청자들이 갈채를 보내는 형국이나, 드라마에서 장진구가 던지고 오삼숙이 받아쳤던 ‘학문적 동지(이성친구)’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고 있는 것은 아줌마 신드롬을 보여주는 예다. 주부가 주요인물로 등장하는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는 묘하게 갈리는 지류에 자리잡고 있다. 원류는 비슷했다. 전업주부로 장손의 맏며느리로 ‘월급없는 파출부’이자 ‘새경없는 몸종’인 오삼숙은 드라마 초기에는 ‘19세기 아줌마다’, ‘아줌마를 비하한다’는 비난의 화살을 받았다. 그러나 “나두 전에는 그눔의 한국사회가 쳐주는 거는 다 믿었어요. 오빠네처럼 살면 그거 진짜루 잘사는 거겠다 그랬어. 오빠네는 대한민국 최고 일류니까”라고 믿던 삼숙이 “솔직히 한국사회가 여태까지 나 사는 데 뭐 하나 보태준 거 있어? 나 같은 사람 속여먹고 주눅이나 들게 했지?”라며 당당하게 포문을 연 순간 그 흐름이 갈렸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신드롬을 발전시키는 동력이 발생했다.

삼숙의 갈등은 남편이나 시어머니와의 것으로 축약되지 않는다. 삼숙의 싸움 상대는 남편과 시댁식구를 포함한, 자신을 둘러싼 제도이고 평생 자신을 훈육해온 순종 이데올로기다. 그는 하나씩 하나씩 자신을 감싸고 있던 제도와 이데올로기의 감옥을 열고 나간다. 그래서 호주제 폐지나 엄마성 물려주기, 일가창립 신청 등 삼숙을 주눅들게 했던 지식인들의 ‘구호’가 오히려 그의 삶 속에서 온전하게 녹아들게 된다. 주부임을 밝힌 한 네티즌의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면 계속 결혼생활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라는 문제제기처럼 요즘 아줌마들의 문제의식에 는 자연스럽게 눈높이를 맞춘 것이다. “삼숙이 이혼을 하기까지의 심적 변화과정을 지루하리만치 차분히 보여주고 법적인 문제들도 가감없이 보여주면서 ‘그래도 착한 며느리’, ‘그래도 가정의 울타리’라는 강박의 성에 살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배워버린 이 시대 여성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있다.” 계간지 의 황오금희 편집장의 평이다. 황오 편집장의 말처럼 는 한달여간이나 재판상 이혼과정이나 위자료, 재산분할, 양육자 지정청구 등 법률적 문제들을 끈질기게 짚고 있어 일부 시청자들로부터 ‘이혼을 부추기는 거냐’, ‘지루하다’는 비판도 듣고 있다. 재미있는 건 주로 남성이나 젊은 시청자들로부터 이런 핀잔을 받는 반면 많은 주부들로부터는 도움이 된다는 호평을 받고 있는 점이다.

아줌마간의 계급차별

사진/각자의 자리에서 이해관계로 부딪치는 의 가족들은 가족주의의 허상을 깨면서 현실에 가까운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 가 기존 드라마와 갈리는 부분은 오삼숙이라는 인물의 역동성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 중요한 변화는 드라마에서 관습적으로 그려온 가족의 하모니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는 데 있을 것이다. ‘장진구네 식구들 가운데는 정상적인 사람이 없다’는 한 네티즌의 비난은 일면 맞는 말이다. 드라마에서는 언제나 할아버지가 인자하게 웃고 있고 이모는 다정하게 설거지를 돕는 모습이 ‘정답’처럼 반복돼왔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엄연히 다른 모습일 수도 있지만.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파격의 정도는 장진구 아버지 역을 맡은 이순재씨의 모습에서 쉽게 드러난다. 이제까지 근엄하고 강직한 아버지 역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이순재씨는 에서 엎드려 방걸레질을 한다. 아들을 교수자리에 앉히기 위해 퇴직금을 내놓으며 체통을 차리기 위한 거짓말을 짜내고, 무참해진 며느리를 연민하다가도 아들의 애인이 집을 내놓을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한다.

장진구의 이혼과정에서 가족 각자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발언하는 양상은 흥미롭다. 시어머니 옥자(정재순)는 갖은 고상을 다 떨면서도 위자료를 내놓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며느리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 미행을 하다가 망신을 당하는 위인이다. 시누이들은 어떤가, 삼숙이 이혼한다는 말에 신문기자인 이른바 엘리트 첫째 시누이는 아이맡길 데부터 걱정하고, 장씨 집안에서 비교적 이성적인 막내 시누이조차 오빠의 이혼이 자신의 결혼과정에 흠을 낼까봐 못마땅해 한다. 분명 드라마 속 장씨집안은 마치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집단 같다. 그러나 크고 작은 일상적 갈등으로 얽혀 있는 이 가족이야말로 여지껏 드라마가 의도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피해온, 그러나 주의깊게 보면 바로 우리 주변에서 살고 있는 현실의 가족에 가깝다. 이혼할 때 상대방을 배려해서 자신의 핏줄을 고분고분 넘겨주는 부모가 어디에 있으며 당장 출근길에 아이맡길 곳이 막막한데 더이상 아이를 봐줄 수 없다고 자르는 올케의 갈등을 허심탄회하게 이해해줄 시누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영화평론가 김소희씨는 “개개인의 상황에 대한 복잡함을 부여하면서 가정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상처를 안고 있는 공간으로 그리는 것에 시청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왜 아니겠어’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또한 이 복잡한 가계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여성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다. 시어머니와 오삼숙, 두 시누이, 그리고 넓혀보면 오삼숙의 올케인 최유미(견미리)는 실상 모두 ‘아줌마’다. 그러나 아줌마라고 같은 아줌마가 아닌, 아줌마간의 계급차별을 이 드라마는 조목조목 짚는다. 일단 고부와 시누이-올케라는 태생적인 계급차별은 현실과 마찬가지로 이 드라마에서도 숙명적이다. 단지 며느리라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전업주부라는 ‘원죄’로 삼숙은 요리사, 청소부, 보모까지 떠맡아야 한다. 여기에 삼숙이 “먹물”이라 자주 표현하는 교양인과 비교양인의 차별까지 침투한다. 두 시누이들은 대학교육을 받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데 별 갈등을 느끼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당장 식사 때, 아이맡길 때만 되면 은근슬쩍 올케의 노동력에 기생하면서 정작 중요한 이야기에는 ‘무식한’ 시누이를 배제하는 데 별다른 갈등을 겪지 않는다. 가장 소극적인 착취자인 두 시누이에게서도 암암리에 배어나오는 먹물의 허위의식은 이 드라마가 통렬히 조롱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장진구들’이 ‘장진구’를 욕한다?

“지식인과 기층민의 결합”. 취중에 친구의 여동생을 건드려 임신시켜서 할 수 없이 결혼했으면서 이렇듯 자신들의 결혼을 그럴듯한(그러나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로 묘사하는 장진구는 맥도 닿지 않는 전문용어를 구사하면서 아내 오삼숙을 무시한다. 포르노를 보다가 아내에게 들키자 “음란물의 유통구조를 분석”하는 것이라며 둘러대는 이 한심한 작자는 “한톨의 진실됨도 없”으면서 기층민(아내)을 착취하는 데는 거리낌없는 이른바 ‘지식인’이다.

장진구뿐 아니라 오일권(김병세), 한지원(심혜진) 등 이른바 최고 엘리트라는 교수 집단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비정상적으로 묘사되는 군상들이다. 장진구 못지않은 위선자이면서 근엄함이라는 겉옷을 덧입어 더욱 역겨운 인물로 그려지는 오일권 앞에서는 장진구의 엉성한 거짓말마저 귀여울 정도다. 오삼숙을 만나서는 ‘페미니즘’ 운운하면서 장진구 옆에 소녀처럼 기대서 시를 읊는 한지원 역시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 이 드라마에서 지식인에 대한 희화화가 지나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에 대해 작가 정성주씨는 “장진구라는 인물의 모델이 된 사람이 드라마를 보면서 장진구 욕을 그렇게 한다더라”며 알 듯 말 듯한 답변을 던졌다. 일면 위악스럽기도 한 드라마 속 지식인의 이중성에 대한 묘사는 지식인 집단과 많은 부분 교집합을 갖는 남성중심의 사회, 즉 아저씨 집단에 대한 아줌마의 가차없는 일격이기도 하다.

아줌마들의 지지와 비(非)아줌마, 반(反)아줌마들의 비판 속에서 드라마 는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50회 분량이 기획된 는 3월 초 종영을 앞두고 있다. 현재 아줌마는 말 그대로의 ‘학문적 동지’와 함께 꿋꿋이 앞길을 준비하고 있고, 아저씨는 항소를 준비하며 꿈꾸는 처녀와 동상이몽중이다.

의 끝은 어디일까? 열렬한 아줌마 지지자들의 우려와 달리 기층민 아줌마와 지식인 아저씨간의 재결합은 물건너간 상태다. 그럼 진구와 지원은 “결혼제도의 모순”을 극복하고 “영혼의 결합”을 할 수 있을까? 작가 정씨는 “그래도 장진구보다는 나은 인간인 한지원이 빨리 정신차리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운을 띄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