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용(50) 감독이 이끄는 20살 이하 축구대표팀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면서 정 감독의 리더십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늘 자신감이 넘치고 낙관적인 정 감독은 대체적으로 전략과 전술에 능하다는 인상을 준다.
한때 대구FC 수석코치로 있었던 정 감독과 한솥밥을 먹은 성호상 대구 전력강화부장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성 강화부장은 “화내는 것을 못 봤다. 부드러운 지도자다. 상대 분석에 능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공부하는 지도자다”라고 말했다. 소통에 뛰어나고 선수들과 잘 어울리면서 믿음으로 동기부여를 이끌어내는 데 유능하다는 뜻이다.
무명 선수 출신, 유소년 축구감독 한 우물정 감독의 지도력은 무명 선수 출신에 10년 이상 유소년 축구 한길만을 팠다는 두 가지 배경을 주목할 때 뚜렷해진다. 사실 한국에서는 국가대표 등 스타 선수의 행로를 경험하지 못하면 지도자로도 출세하기 쉽지 않다. 감독에 대한 팬 인지도는 지명권을 행사하는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 협회 등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마케팅 요소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선수 시절 큰 무대를 경험한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다.
출발선부터 다른 무명 선수들은 지도자 경쟁에서 원천적으로 불리하다. 하지만 이 상황이 당당한 실력으로 겨뤄야 하겠다는 의지를 심어주기도 한다.
대구 청구고와 경일대를 졸업한 정 감독은 실업축구 이랜드에서 6년간 뛰었지만 부상으로 일찍 은퇴했다. 대한축구협회가 2000년부터 도입한 유소년 전임 지도자 제도의 2세대 감독으로, 2008년 14살 이하 대표팀 전임 지도자로 취임한 것이 코치 인생에서 전환점이었다. 명지대 대학원과 한양대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스포츠 생리학과 심리학 등을 공부한 것은 좋은 지도자로 거듭나겠다는 열정을 보여준다.
전임 지도자 1세대인 송경섭 15살 이하 대표팀 감독은 “온화하고, 침착하다. 카리스마형은 아니지만 선수들과 허물없이 지내면서도 완급을 조율하면서 장악한다”고 정 감독을 평가했다.
“편하게 훈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정 감독이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덕장’ ‘지장’으로 비치는 것은 유소년 축구의 특성과 관련됐다. 유소년 지도자는 당장의 결과가 아니라 장기간에 선수를 성장시키고 육성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일종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섬세한 코
칭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은 기본이다. 이강인은 월드컵 에콰도르와 4강전에서 최준의 결승골로 연결된 패스를 했는데, 외국 전문가들조차 골을 합작하는 과정이 창의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이강인이 정 감독을 평가할 때, “편하게 훈련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말한 것은 상징적이다. 적어도 억압받지 않는 팀 분위기가 멋진 장면을 연출하는 데 기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10년 이상 어린 선수들의 성장 과정을 오랜 기간 관찰하면서 선수의 면면을 완벽히 파악하고, 시스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큰 힘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선진국형 유소년 육성 모델을 본뜬 일명 ‘골든 에이지’를 바탕으로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눠 전임 지도자를 두고 엘리트 선수를 체계적으로 키우고 있다. 초보 단계지만 권역별 유소년 지도자와 선수 정보를 교환하고, 때로는 그들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최적화된 팀을 꾸릴 수 있었다.
여기에 프로축구연맹의 유소년 육성 정책으로, 이른 나이에 프로에서 실전 경험을 쌓는 기회가 늘면서 대표팀 선수들의 대응력이 커졌다. 실제 대표팀 21명 가운데 18명이 프로 유소년팀을 거쳤거나 현재 프로팀에서 뛰는 선수다. K리그 프로팀과 관계없는 선수는 영등포공고 출신 정호진, 독일 동포인 골키퍼 최민수, 어려서 스페인으로 떠난 이강인 등 딱 3명이다.
단단한 신뢰관계에 바탕을 둔 노련함준비하고 연구하는 지도자라도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선수와 신뢰관계는 깨진다. 정 감독은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 포르투갈전에서 졌을 때도 선수들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선수들을 편하게 해주었고 “즐겨라”며 긍정의 마인드를 심어주었다. 그리고 면밀한 상대 분석으로 이기는 경기를 펼치면서 ‘죽음의 조’에서 탈출했다. 스리백과 포백 등 전형을 자유롭게 전환하면서도 조직력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은 오랜 기간 선수들이 발 맞추며 훈련했기 때문이다.
임기응변과 실전 능력은 오랜 현장 경험의 산물이다. “상대를 한쪽으로 몰아 압박한 뒤 기회를 보려고 했다.” “점유율을 내주더라도 후반을 노렸다.” “상대에 따라 전술을 준비한다” 등 실전형 지침과 빠른 판단력에서 그의 노련함이 엿보인다. 일본과 16강전에서 점유율에서 밀렸지만 이겼고, 세네갈전에서는 5명의 수비로 안정시킨 뒤 역공으로 제압한 것은 전술가 면모를 보여준다.
지도자는 공평하게 기회를 줘서 선수를 움직여야 한다. 엔트리(경기 명부) 21명 가운데 선발 11명과 교체 3명 등 14명을 뺀 나머지는 어쩔 수 없이 벤치에 앉아야 한다. 팀 분란의 모든 문제는 뛰는 선수가 아니라, 뛰지 못하는 선수에게서 일어난다. 이번 대표팀에서는 전혀 불협화음이 나오지 않았는데, 스페인 무대에서 커 자유분방한 이강인조차 늘 “경기에 뛰지 못한 형들의 응원 덕분에 이겼다”고 선배들을 챙겼다. 골키퍼 이광연도 “나 때문에 뛰지 못하는 박지민, 최민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등 몸을 낮췄다. 동료이자 경쟁자인 이들이 한 팀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 뒤에는 정 감독이 있다.
지도자의 실력은 선수 시절 명성과 다르다정 감독은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며 능력을 키워온 풀뿌리 지도자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런 까닭에 ‘꿩 잡는 게 매’이고, 지도자의 실력은 선수 시절 명성과 직접적 관계가 없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했다.
흔히 우승의 기쁨은 자고 나면 사라지는 ‘지난밤의 눈’이라고 한다. 하지만 결승까지 올라간 선수들의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것이다. 송경섭 15살 이하 대표팀 감독은 “연령별 대표팀 선수들은 장차 A대표팀에 들어갈 후보다. 그들이 국제 무대에서 큰 경기를 경험하는 것은 대표팀 강화와 직결된다. 선수와 지도자 모두 그런 환경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다”고 했다. 정 감독의 성취는 종착점이 아니라 한국 축구가 새 출발점에 섰다는 것을 알린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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