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단순하다. 오해 마시기를! 단순하다는 것과 쉽다는 것은 다르다. 이를테면 100m 달리기! 얼마나 단순한가. 그러나 쉽지 않다. 특출한 선수들도 10초 내에 뛰기 어렵다. 그것을 분석하기도 쉽지 않다.
축구도 그러하다. 구기 종목에서 축구만큼 단순한 종목을 찾기 어렵다. 경기 규칙과 장비, 운동장 조건과 경기 방식 등 기본 조건에서 미식축구, 럭비, 배구, 야구, 크리켓, 세팍타크로 등에 비해 아주 단순하다. 오프사이드나 득점 판정에서 때로 복잡한 상황이 벌어지지만 그것이 발생하는 순간의 혼돈이지 규칙의 복잡함은 아니다. 동일 선상이냐 아니냐(오프사이드), 공이 완전히 넘어갔느냐 아니냐(득점), 그것뿐이다.
단순성과 복잡성의 조화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축구는 단순하기 때문에 모두가 열광한다. ‘남녀노소’ 열광한다. 입이 있는 자 소리쳐 외친다. 저 선수 빼! 그러나 그뿐, 그렇게 외치고는 바로 그 선수가 다시 공을 잡고 달리면 열광한다. 빼라고 해서 진짜 교체하라고, 교체 안 하면 감독도 아니라고, 비난하는 게 아니다.
축구의 원시성·속도성·집단성, 특히 경기 전개 양상이 한눈에 보이는 전지적 시각성 덕분에 누구나 직관적으로 말할 수 있는 세계가 축구다. ‘슛~’ 그것이 성공했을 때 ‘골~’ 하는 것이나 ‘아, 저 선수 빼~’는 다 같은 맥락의 열광이다.
축구는 복잡하다. 이른바 ‘축알못’인 남녀노소 누구나 경기장이나 텔레비전 앞에 모여 함성을 지를 수 있지만, 그것을 수행하는 감독이나 선수들에게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수많은 전술, 상대 팀 특징, 당일의 컨디션, 갑작스러운 부상, 어이없는 실수, 예기치 못한 퇴장 등이 숱하게 벌어진다. 야구나 배구처럼, 일단 공격과 수비가 엄격히 분리된 세계가 아니라 공격이 동시에 수비고 수비가 곧장 공격이 되는, 휴지부가 없는 복잡계다. 감독과 선수들은 이 복잡하게 엉킨 그물코의 작은 틈을 비집고 빠져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감독과 선수들의 세계이고 그들의 운명이다. 보통 사람들은 단순성 때문에 열광한다. 감독과 선수는 그 복잡성 때문에 매혹적인 세계를 창출한다. 단순성과 복잡성은 축구를 이루는 동전의 양면이다. 둘이 있어야 축구가 형성된다.
‘축구를 잘 모르면서 덮어놓고 비난하지 말라’고 하면, 그래서 실제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면 아마 축구산업은 붕괴되고 수많은 감독과 선수는 실직할 것이다. 축구를 잘 안다는 사람, 직업적으로 그 일을 하는 사람, 그 성취 때문에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거나 선수로 뛴 사람들이 ‘축구도 잘 모르면서 비난만 한다’고 하면 안 된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기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얼핏 듣기에 격조 있는 어법에 솔직한 심정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 마저 들어보자. “이기려면 축구를 좋아하고 즐겨야 한다. 월드컵에서 기쁨을 느끼고 싶다면 축구를 좋아해야 한다.” 만약 이렇게 말하고 다음을 덧붙이지 않았더라면 나는 매우 실망했을 것이다. “축구의 흥미를 알려줄 제도적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 부분이 관건이다.
‘3천만 명’ 감독의 용광로2010년 이후 프로축구 관중은 지속적으로 급감했다. 당시 연평균 1만 명 안팎이었으나 올해 상반기는 5천 명 정도다. 독창적이며 선진적인 마케팅은 없었고 오히려 승부조작이나 심판 판정 문제가 있었다. 통제되지 않는 일부 팬들 때문에 가족이나 연인이 서서히 떠나갔다. 이 상황에서 ‘이기는 것만 좋아’한 것은 구단과 감독들이었다.
신태용 감독은 말했다. “월드컵 때면 3천만 명이 다 감독이 돼서 죽여라 살려라 하는 게 아이러니하다. 대표팀 경기 외엔 관심이 없다. 일본, 중국만 가도 관중석이 80% 찬다. 우리는 15~20%인데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
검토해보자. 월드컵 때마다 ‘3천만 명’이 감독이 되는 것은, 앞서 말한 대로, 좋은 현상이다. 만약 그 수가 점점 줄면, 축구산업은 붕괴되고 숱한 실직자가 나올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 리그에는 관중이 80%나 찬다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일본이나 중국이 이렇게 리그 활성화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공격적인 마케팅과 세련된 홍보와 뛰어난 선수를 영입했는지, 신 감독도 잘 알 것이다.
야구를 비롯한 경쟁 스포츠보다 재미있어야 하고 영화관이나 물놀이 가는 것보다 훨씬 쾌적하고 짜릿한 ‘어트랙션’(끌림)을 선사해야 모여든다. 대표팀과 프로구단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서너 팀을 빼고는, 기업 구단이나 시도민 구단이나, 팬이 아니라 모기업과 자치단체장의 휘하에 있었다. 감독과 선수들은 지역 팬들을 위한 프랜차이즈 마케팅은 뒤로하고 기업 홍보와 시도 단체장 중심으로 운영했다. 선거 때마다 구단주가 바뀌고 논공행상으로 단장이나 사무국장도 바뀐다. 그사이 4년마다 오는 월드컵 특수가 시들해지고, 올해 상반기 평균 관중 5천 명 수준이라는 최악의 성적표에 머문 것이다.
그럼에도 때가 되어 ‘3천만 명’이 감독이 되어 응원하거나 한편으론 비난하면서 ‘열광의 용광로’를 자발적으로 만들고 있는데, 정작 축구인들이 ‘월드컵 때만 반짝한다’고 하면,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평소에, 축구하는 사람들은, 팬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이런 정황이 있음에도, 수많은 사람이 며칠 동안 밤을 새울 것이다. 목청껏 응원을 하고, 이긴다면 두말할 것도 없지만 설령 아쉽게 지더라도 박수를 보낼 것이다. 몇몇 고약한 사람의 고약한 말만 듣고 ‘3천만 명이 비난’한다고 판단하지 않기를. 평범한 사람들은 축구의 단순성에 열광하고 전문가와 감독들은 그 복잡성을 돌파하거나 해석해주는 것,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축구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가상의 ‘스멕독’은 누구인가그렇다면 복기해보자. 아니, 시작도 안 했는데 무엇을?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6월18일 밤 ‘철벽 스웨덴’부터 23일 밤 ‘난적 멕시코’를 거쳐 27일 밤 ‘독일 전차’로 이어지는 열흘의 밤들은, 2017년 12월2일 조 주첨 이후 결정된 운명의 종지부이기에, 이 운명의 세 경기를 제대로 보려면 지난 6개월의 중요한 관절을 꾹꾹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2월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차르’(황제) 푸틴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 팀이 결정됐다. 이후 대표팀 운영의 모든 것이 이 세 팀과의 경기, 특히 그 첫 번째 상대인 스웨덴과의 경기에 집중됐어야 한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평가전이 있었고 에이(A)매치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동아시아축구연맹 소속 팀들의 ‘EAFF E-1 풋볼 챔피언십’ 대회는 논외로 하자. 조 주첨 이전에 예고된 대회였으므로 ‘스멕독’의 전초전으로 여기기 어렵다.
2018년이 되어 몰도바, 자메이카, 라트비아, 북아일랜드, 폴란드, 온두라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볼리비아 등과 평가전을 치렀다. 자메이카와 볼리비아는 중남미에 있으니 멕시코 대리전인가. 폴란드와 보스니아는 체력이 좋으니 스웨덴이나 독일을 가상한 것인가. 글쎄, 신태용 감독도 “일본과 한국은 이웃 국가지만 전혀 다른 축구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마지막 비공개 경기 상대인 세네갈은, 멕시코와 대서양을 두고 멀리 떨어진 나라다.
우리 대표팀이 원하는 상대를 언제 어디서나 결정해서 맞붙을 수 없는 게 현실이지만, 이 가운데 가상의 ‘스멕독’은 누구란 말인가. 딱 맞는 상대가 아니더라도, 각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의 전술과 그에 맞선 기본 라인업과 그에 따른 치밀한 시뮬레이션이 복잡계 함수로 팽팽하게 돌아가야 했는데, 아쉽게도 막판의 평가전들마저 ‘실험’이거나 ‘트릭’이었다.
멀리 보면, 슈틸리케 감독의 전격적인 경질과 이후 어수선한 양상, 그 뒤 신태용 감독이 부임해 코칭스태프조차 원하는 만큼 꾸릴 수 없었던 결과다. 뒤늦게야 레알 마드리드에서 최고의 코치로 활약했던 토니 그란데가 스카우트됐고 하비에르 미냐노 피지컬 코치가 합류하면서, 코치 경력 1년 남짓한 김남일이나 차두리 코치의 공백을 메우게 되었다.
그란데 수석코치는 지난해 11월, 한국 축구의 첫인상에 대해 “순하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 5월 말, ‘악바리 근성이 없다”고 했다. ‘악바리’는 한국 언론의 의역이다. ‘거칠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많은 언론이 ‘악바리’로 의역했는데, 의미는 조금, 아니 전혀 다르다.
우리에게 악바리는 그야말로 ‘악으로 깡으로’다. 그란데 수석코치가 말한 ‘거칠게 하라’는 것은 ‘체력과 기술로 압박해 상대방이 잘하는 방식을 끊어버려라’는 주문이다. 상대방이 자기 방식대로 못하도록 불편하게 만들 것, 때로는 정교하게 흐름을 끊는 ‘적정 기술’로 고도의 신경전을 벌일 것, 수비는 수비수만 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자기 위치에서 공격이 중단되면 곧바로 하는 것이며, 공격 역시 상대방의 흐름을 차단하는 순간 전개된다는 것을 명심할 것, 그렇게 하기 위해 늘 공간을 상상하고 선점할 것, 그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첫 번째 볼 터치를 곧바로 드리블이나 패스가 되도록 할 것 등이 포함된 발언이다.
수석코치가, 그리고 당연히 신태용 감독이 이 부분을 아쉬워한다는 것은, 현재의 스쿼드(선수단)가 이를 뜻한 만큼 구현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원인은, 수개월 동안 수준급 팀들과 의미 있는 평가전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 또 그 이전에, 이승우나 문선민 같은 젊은 세대를 과감히 발탁해 ‘팀을 만드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세대교체’를 하지 못한 점, 궁극적으로 이 로드맵을 본인의 장기 의무로 맡아 할 만큼 흔들림 없는 대표팀 체제를 유지하지 못한 점 등이 역산으로 짚이는 대목이다.
공은 둥글다, 고로 모른다이렇게 어수선한 상황에서 갑자기 감독 자리에 올라 그 많은 난제와 비난을 헤치고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신태용 감독은 박수받을 만하다.
공은 둥글다고 한다. 왜? 축구가 단순성과 복잡성의 결합체이기 때문이다. 월드컵 개막을 코앞에 두고 스페인은 감독을 교체해버렸다. 브라질은, 4년 전, 홈에서 독일에 1 대 7로 패했다. 그게 인생이고 축구이며 월드컵이다.
역대 월드컵에서 한결같이 ‘스멕독’ 같은 강력하고 난해한 팀들과 만났다. 한때는 독일과 팽팽하게 겨뤘고, 한때는 스페인을 지치게 만들었다. 스웨덴이, 우리가 한때 심각하게 교란했던, 저 미국월드컵 때의 독일이나 스페인 이상의 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제 열흘 남짓 달아오를 월드컵에서, 기성용과 손흥민이, 이승우와 이재성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 ‘3천만 명’이 감독이 되어 열광해도 좋을 시간이 다가왔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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