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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날다

순발력·스피드 뛰어나지 않던 높이뛰기 선수 딕 포스버리, 자신이 고안한 ‘배면도’ 기술로 세계의 벽 넘어
등록 2015-08-25 20:45 수정 2020-05-03 04:28
바하마의 트레버 배리가 2011년 8월30일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종목에 출전해 바를 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바하마의 트레버 배리가 2011년 8월30일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종목에 출전해 바를 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2015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8월22일부터 30일까지 9일 동안 중국 베이징에서 벌어진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개최국 중국과 한국 등 207개국 2천여 명의 선수가 출전해, 동·하계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4대 스포츠 제전으로서 손색이 없는 대회다. 이번에는 8월30일 결승전을 갖는 높이뛰기의 역사를 바꾼 딕 포스버리에 대해서 알아본다.

1963년 4월12일 미국 메드퍼드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딕 포스버리는 높이뛰기 선수 테스트에서 160cm를 넘는 데 실패했다. “아~, 나는 소질이 없나보다.” 딕 포스버리는 너무 실망한 나머지 높이뛰기 선수를 포기하려 했다. 사실 포스버리는 높이뛰기 선수의 기본인 순발력이 떨어졌고, 스피드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다만 다리의 힘이 강했는데, 그 강한 다리 힘을 살리지 못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높이뛰기는 ‘벨리 롤 오버’가 가장 최신 기술이었다. 벨리 롤 오버는 배를 땅 쪽으로 향하게 하고 넘는 기술이다. 그러니까 공중 동작에서 들어올린 다리가 먼저 바를 넘고 일단 바에 올라탄 듯한 자세를 취한 다음에 몸을 뒤집어 배가 지면을 향하게 하면서 발구름한 쪽 다리를 넘기는 기술이다. 딕 포스버리는 이 기술로 160cm도 넘지 못한 것이다. 딕 포스버리는 기존 방법(벨리 롤 오버 등)으로는 도저히 좋은 기록을 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왜 땅을 보고 넘어야만 하지… 다른 방법은 없을까?” 포스버리는 어느 날 우연히 체조경기장에서 도마 경기를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도마 선수들이 뒤로 돌아서서 공중돌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맞아, 하늘을 보며 바를 뒤로 넘으면서 회전을 하는 거야.” 그 뒤 포스버리는 고심 끝에 막대기를 향해 달려가서 얼굴을 앞으로 하여 뛰어넘을 동안에 다리를 똑바로 뻗어보았다. 훨씬 편했다. 그러다가 같은 폼으로 하늘을 보며 누워서 넘어보았다. 더욱 편했다.

그는 결국 바에 오르는 순간 몸을 뒤로 틀어 등부터 바에 올라보았다. 이때 배는 위를, 등은 밑을 향하게 된다. 문제는 거리와 각도였다. 과연 어떤 각도, 몇m 지점에서 달려와서 발을 굴러야 자신의 강한 다리 힘을 이용해서 가장 높이 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딕 포스버리는 바 앞에서 발구름할 지점을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맞게 호흡, 보폭 그리고 속도를 조절하는 훈련을 반복했다. 그는 폭발적인 발구름을 할 수 있는 각도는 약 40도, 거리는 15m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신기술로 202cm를 넘어 메드퍼드고등학교 신기록을 세웠고, 이듬해인 3학년 때는 오리건 주립대회에서 212cm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1965년 오리건주립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에 진학한 뒤 해마다 기록이 향상돼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미국 예선 때 222cm를 넘어 메달권에 육박했다.

1968년 10월20일, 해발 2277m 고지에 자리잡은 멕시코시티. 멕시코 올림픽 주경기장. 미국의 포스버리는 자신이 고안해낸 신기술로 224cm를 뛰어넘어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4년 뒤인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40명의 선수들 중 28명이 포스버리의 기술, 즉 배면도를 이용했다. 그리고 오늘날 전세계 모든 높이뛰기 선수들이 ‘포스버리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현재 세계신기록(245cm)을 보유하고 있는 쿠바의 하비에르 소토마요르 역시 ‘포스버리 기술’로 신기록을 세웠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경기 도중 자신의 유니폼을 도둑맞아서 남의 유니폼을 빌려 입고도 238cm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딴 러시아의 이반 우코프 선수가 베이징 세계선수권대회 마지막 날인 8월30일 금메달에 도전한다.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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