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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웃음을 샀던 ‘V’, 승리의 ‘V’가 되다

북유럽 놀이에서 유래한 스키점프, 스웨덴의 얀 보클뢰브가 1985년 첫선 보인 뒤 거의 모든 선수가 따라한 ‘V 자세’
등록 2015-08-14 15:21 수정 2020-05-03 04:28

한반도가 연일 화로(火爐) 속 같은 열기로 뜨겁기만 하다. 그래서 이번주는 동·하계 올림픽 종목 가운데 가장 시원한 스포츠인 스키점프에서의 ‘V 동작’의 유래를 알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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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스포츠화한 스키점프는 북유럽 지방의 놀이에서 유래했다. 스키점프가 스포츠로 자리잡은 것은 19세기 중·후반부터다. 1862년 노르웨이에서 첫 대회가 열린 것으로 전해져온다. 동계올림픽에서는 1924년 샤모니 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선보였고, 이후 1964년 인스브루크 대회에는 라지힐(Large Hill) 종목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2011년 4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여자 스키점프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추가하면서 2014 소치 올림픽에서는 여자 개인 경기가 처음으로 열렸다.

스키점프의 세부 종목은 도약대의 길이에 따라 노멀힐(Normal Hill)과 라지힐로 나뉜다. 점프대의 규격을 분류할 때는 ‘케이’(K)라는 약자가 쓰이는데 K-95는 비행 기준 거리가 95m라는 의미다. 올림픽에는 남자 개인 노멀힐(K-90), 남자 개인 라지힐(K-120), 남자 단체경기(K-120), 여자 개인 노멀힐(K-90)에 4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경기에서는 선수가 날아올라 기준거리에 도달하면 기본 점수 60점이 주어진다. 여기에 1m가 늘어날 때마다 라지힐 기준으로 1.8점이 주어지고, 모자라면 반대로 1m에 1.8점씩 감점된다. 노멀힐에서는 2점이 주어지거나 깎인다. 비행거리 외에 자세도 중요한 채점 항목이다. 5명의 심판이 도약과 비행, 착지에 대해 20점 만점으로 채점해 가장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를 뺀 나머지 3명의 점수를 합산해 60점을 만점으로 평가한다.

비행시에는 바람에 잘 올라탈 수 있도록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스키 앞을 벌려 ‘브이’(V)자를 만들면 나는 거리를 약 10%가량 늘릴 수 있다. ‘V 동작’은 1985년 스웨덴의 얀 보클뢰브가 처음 선보인 기술로 보클뢰브가 198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좋은 성적을 내면서 효과적인 기술로 인정받았다.

얀 보클뢰브가 처음으로 스키 뒷부분을 겹치는 ‘V 자세’를 했을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샀지만, 1989년 노르웨이 연구팀의 풍동실험 결과 ‘V 자세’일 때가 스키를 나란히 하는 ‘11 자세’일 때보다 양력이 최대 28%나 증가해서 과학적으로도 얀 보클뢰브의 ‘V 동작’이 우세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이후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는 스키점프 종목에 출전한 모든 선수가 ‘V 동작’으로 착지를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얀 보클뢰브가 ‘V 동작’을 처음 시도해놓고도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한 개도 따지 못한 것이다. 얀 보클뢰브뿐만 아니라 스웨덴 선수들은 이제까지 치러진 동계올림픽 스키점프에서 금메달을 단 한 개도 따내지 못했다. 얀 보클뢰브가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때는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오히려 핀란드의 마티 엔시오 뉘케넨 선수가 ‘V 동작’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노멀힐 개인, 라지힐 개인과 단체전 등 3관왕에 오르는 맹위를 떨쳤다. 스키점프에서 올림픽 3관왕을 차지한 선수는 마티 엔시오 뉘케넨 선수가 유일하다.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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