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는 싶었지만 의문을 지울 수는 없었다.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국 리그를 지배한 뒤 메이저리그로 날아간 일본인 내야수들은 모조리 실패했다. 해운대 모래알처럼 차고 넘치는 중남미의 젊고 탄력적인 말근육의 내야수들도 마이너리그에 가득하다. 이 상황에서 한국 리그의 유격수가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에 주전 내야수로 자리잡기를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강정호의 얘기다.
2014년, 강정호는 말 그대로 한국 리그를 ‘씹어먹었다’. 0.356의 타율과 40개의 홈런, 117개의 타점을 올리고 준수한 수비력까지 겸비한 한국 리그의 강정호는 만화 같은 유격수였다. 그럼에도 그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을 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의문부호를 붙였다. 한국 리그의 심각한 투고타저 현상에 기댄 그의 타격 기록은 과잉돼 있고, 날아오는 타구의 질과 힘이 다른 메이저리그의 내야에서, 절대적인 수비력이 필요한 유격수를 맡기엔 그의 수비력도 미지수라고 입을 모았다. 심지어 일부는 포수로 입단한 강정호의 재능을 살려, ‘타격이 되는 포수’로 변신한 뒤 메이저리그로의 ‘맞춤형 진출’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의 전반기가 지나갔다. 피츠버그의 강정호는 전반기 72경기에 나서 0.268의 타격과 60개의 안타, 29개의 타점에 4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3위 팀의 핵심 내야수가 되었다. 아롤디스 채프먼의 100마일(160km)짜리 총알을 때려 2루타를 만들기도 했고, 철벽 마무리 트레버 로즌솔에게는 홈런을 포함한 4타수 3안타를 때려내며 3번의 악몽을 선물해주었다. 팀 사정상 3루에 정착한 수비는 연일 아름다운 포구를 이어가고 있다. 최소 2~3년은 필요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한국에서 만들어낸 내야수 강정호는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그 어떤 일본의 ‘내야수’들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영원한 개척자, 박찬호로부터 출발한 메이저리그 1세대에 이어, 김병현, 서재응, 김선우, 추신수, 최희섭으로 이어지는 메이저리그 2세대는 모두 한국 야구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선수들이다. 류현진에 이르러 강정호로 이어진 3세대는 비로소 한국 야구 리그가 메이저리그로 선수 수출이 가능한 리그임을 증명하는 중이다. 류현진이 한국의 에이스 투수가 메이저리그의 에이스도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면, 강정호는 한국의 야수가 메이저리그의 내야를 지킬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강정호의 안타 하나, 수비 하나가,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미래에, 경우의 수를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류현진과 강정호로 대표되는 이들 ‘3세대’의 특징은 로커룸과 벤치에서의 생활이다. 과거 메이저리그 1·2세대의 초기 개척자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낯선 시선들 앞에서 외롭고 예민한 투쟁을 이어갔음을 감안하면(박찬호의 날아차기와 김병현의 손가락 욕 등) 특징적인 변화다. 등판이 없는 날, 류현진은 더그아웃에서 늘 동료들과 장난을 치고 있고, 강정호는 싸이의 말춤을 추기도 한다. 10년 가까이 한국 리그를 먼저 겪으며 개인의 생존이 아닌 ‘팀플레이어’로서의 중요함을 익히고 갔기에 가능한 장점들이다. 미국에서 싸워야 할 대상을 상대팀으로만 집중시켜놓는 이들의 친화력은 이들 3세대가 써내려가는 성공 신화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벤치에서 강정호의 회사원 머리(혹은 ‘나훈아’ 머리)는 단연 눈에 띈다. 삭발하거나 가운데만 남기거나 짧게 세워 멋을 낸 다른 선수들의 외모에 견주어 살짝 촌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강정호는 메이저리그에 멋 내러 간 게 아니다. 그는 스스로를 시험해보기 위해, 한국 리그를 증명하기 위해 갔다. 강정호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책임감을 지고 달리는 선수다. 그의 가르마에서 회사원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한국 야구의 중흥기였던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의 선수 명단에 강정호는 없다. 어쩌면 한국 야구의 다음 중흥기는, 메이저리그 내야수 강정호를 중심으로 열어가게 될지 모른다. 목동 나훈아의 미국 순회공연은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김준 스포츠 칼럼니스트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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