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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는 없어도 된다

한국 대학생팀과 캄보디아 청년팀의 조촐한 친선경기, 몸이 부딪쳐 이는 불꽃을 볼 수 있었던 뜨겁고도 감동적인 경기
등록 2015-05-29 17:27 수정 2020-05-03 04:28

지난 5월13일 새벽(한국시각),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 경기장에서는 현존 최강의 축구팀 FC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이 열렸다. 웅장한 최신식 경기장에서 7만 명의 관중과 1억 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MSN 라인(메시-수아레스-네이마르)을 비롯한 축구계의 어벤저스들이 모여 펼친 전쟁은 축구의 어떤 경지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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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오후(한국시각), 베트남 호찌민의 통낫 경기장에서 한국과 캄보디아의 친선 축구경기가 열렸다. 한국은 22살 미만, 캄보디아는 23살 미만 연령으로 팀을 구성했다. 베트남축구협회의 초청으로 베트남팀과 친선경기를 한 지 4일 뒤 열린 이 경기에서 신태용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주력 선수를 빼고 대학생 선수로 팀을 짜 경기를 치렀다.

무명의 대학생 선수들이 출전하는, 그것도 베트남에서, 게다가 캄보디아팀과, 더구나 친선전에 불과한 이 경기가 TV로 중계될 리가 만무했고, 현장엔 취재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본부석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캄보디아 응원단 50여 명의 함성과, 한국 교민 20여 명의 안부 인사들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아직은 무명인 대학생 선수들보다 신태용·최문식·이운재 등 코칭스태프가 교민들의 이목을 끌었다. 나는 주말의 조용한 동네 운동장에서 조기축구를 감상하는 포즈로 나른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나 축구는 나른하지 않았다. ‘친히’ 찾아와준 한국팀과의 친선전은 캄보디아팀 입장에서 나름대로 ‘빅 이벤트’였다. 전반전이 시작되자 캄보디아는 맹렬하게 한국을 몰아붙였고, 캄보디아팀 응원석에서 탄성과 함성이 쏟아져나왔다. 한국의 고등학생 체형 정도로 보이는 캄보디아 선수들은 월드컵 예선이라도 치르듯 온몸을 던지며 불꽃처럼 부딪혔다. 한국 선수들에게도 나른할 수 없는 경기였다. 여기서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아 올림픽대표팀에 선발되려는 분명한 동기부여가 있었다. 베트남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예상치 못한 캄보디아 선수들의 선전에 자극받은 한국 선수들도 대학리그 결승을 치르듯 뜨겁게 맞붙었다. 몸과 몸이 부딪치는 소리와 선수들이 지르는 고함 소리들이 시장통 같은 관중석을 타고 올라왔다.

후반 5분, 한국의 선취골이 터졌다. 전반에 오버페이스를 보인 캄보디아 선수들은 후반이 되자 다리가 풀렸고, 그중 절반 정도가 경기장에 쓰러졌다. 마지막엔 온몸으로 한국의 공격을 막아내던 캄보디아의 골키퍼도 쓰러져나갔다. 피지컬에서 세계적 수준인 한국 선수들의 두꺼운 가슴에 추풍낙엽처럼 튕겨져나가던 왜소한 캄보디아 선수들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아무도 보지 않고 누구도 관심 없었지만, 양팀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하얗게 타올랐고, 경기는 그대로 1-0 한국의 승리로 끝났다.

경기 종료 뒤 한국 벤치 앞에 일렬로 도열한 캄보디아 선수들은 합장을 하는 전통적 인사법으로 한국 벤치에 감사와 존중을 표했고, 한국의 코칭스태프 또한 합장을 하며 이 변방의 축구선수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신태용 감독은 한국 선수들을 가지런히 줄세워 선수단보다 적은 수의 교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게 했다. 경기장을 찾은 교민들은 경기장 밑으로 내려가 신태용 감독과 기념사진을 찍었고, 신 감독은 교민들과 악수를 하며 응원에 감사를 표했다.

전세계에서 하루에도 수천 개의 축구경기가 열린다. 알리안츠 아레나 같은 초현대식 경기장이 아니더라도, 메시와 수아레스와 네이마르가 아니더라도, 모든 축구경기에는 그 경기 몫의 감동이 있다. 중계도 되지 않고, 취재진도 없이, 무명의 선수들이 70명 남짓한 동네 사람들 앞에서 펼친 이 경기에서, 나는 새벽의 챔피언스리그가 줄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낀다. 5월13일은 내게 바르셀로나와 뮌헨의 경기가 아닌, 한국과 캄보디아의 경기를 본 날로 기억된다. 메시가 없어도 감동적인 축구는 많다.

김준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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