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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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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더러와 나달 “그대 있으매”

우아한 스트로크와 적토마 다리 ‘환상의 라이벌’에 세계가 환호
등록 2009-02-13 14:46 수정 2020-05-03 04:25

만약에 테니스가 피겨스케이팅처럼 심판이 점수를 매기는 경기라면, 과연 라파엘 나달이 로저 페더러를 이길 수 있었을까? 로저 페더러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포핸드 스트로크를 구사한다. 테니스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가장 모범적인 포핸드 스트로크. 라켓을 전광석화같이 휘둘러 강력한 볼을 상대의 코트 구석에 빠르게 꽂는다. 말 그대로 ‘언터처블’(Untouchable). 더구나 그에겐 강력한 서브도 있다. 테니스 교과서 1장 1절에 나올 법한 모범적인 전략. 강력한 서브를 넣어서 짧게 뜨는 리턴을 유도하고 구석을 찌르는 강력한 위닝샷(Winnig Shot)으로 끝내기가 페더러의 장기다. 2월1일 멜버른에서 벌어진 2009 호주오픈 남자단식 결승, 페더러는 경기에 이기고 승부에 졌다. 경기를 통틀어 174점을 따서 173점을 딴 나달보다 포인트에서 앞섰지만, 세트스코어 2 대 3으로 패했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이인 스포츠 라이벌. 2009 호주오픈 시상식에서 우승자 나달(왼쪽)이 슬픔에 젖은 페더러를 위로하고 있다. REUTERS/ DARREN WHITESIDE

어쩌면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이인 스포츠 라이벌. 2009 호주오픈 시상식에서 우승자 나달(왼쪽)이 슬픔에 젖은 페더러를 위로하고 있다. REUTERS/ DARREN WHITESIDE

포인트에서 이기고 세트에서 져

세트 경기인 테니스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결과다. 하지만 단순히 점수만 문제가 아니다. 347번의 포인트 랠리 가운데 대부분은 페더러가 여러 번 강력한 스트로크로 나달을 구석으로 몰았지만 나달이 적토마 같은 다리로 끈질기게 쫓아가 무쇠 같은 팔목으로 다시 받아 넘기다 결국엔 나달의 강력한 스트로크 단 한 번이 승부를 가르는 식이었다. 만약에 이것이 피겨였다면, 심판들은 페더러의 우아하고 강력한 스트로크에 김연아의 점프처럼 가산점을 줄줄이 달아주었을 것이다.

평온한 테니스 황제 시대의 ‘언터처블’을 터치하는 사나이가 등장했다. 처음 나달에겐 단지 튼튼한 다리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스트로크 자세는 정석이 아니었고 강력한 ‘포스’를 뿜지도 않았다. 페더러가 2위 없는 1위 같았다면, 나달은 3위 같은 2위였다. 당시 페더러는 테니스 역사상 가장 완벽한 무결점 선수로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20살의 나달에겐 그저 튼튼한 다리로 하는 끈질긴 수비가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공의 튀는 속도가 느린 클레이코트에서 열리는 프랑스오픈에서나 튼튼한 다리로 열심히 받아넘겨 우승하는 선수로 여겨졌다. 테니스 역사를 스쳐간 적잖은 스페인 선수가 ‘클레이코트용’이었던 것처럼.

2007년까지 테니스 코트에는 단지 ‘페더러와 페더러 아닌 선수들’이 있었을 뿐이다. 페더러는 2007년까지 윔블던 5연패를 비롯해 12개 메이저대회 타이틀(2008 US오픈을 우승해 통산 13번)을 차지해 2000년대 중반 남자 테니스를 재미없게 만들었다. 이어서 2008년 8월까지 237주의 연속 세계 랭킹 1위라는 전인미답의 기록도 세운 테니스의 황제였다. 더구나 2008년 당시 페더러는 27살, 아직도 절정기가 서너 해는 남아 보였다. 2008년 시즌 개막 당시, 팬들은 생각했다. 올해도 여자 테니스나 봐야겠군, 누가 페더러를 이기겠어. 아, 유일한 관심사는 페더러의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유독 클레이코트에 약해 프랑스오픈 우승 경력만 없는 페더러가 올해는 그마저 석권하는 것이었다.

언터처블을 터치한 명승부

세상의 일들은 짐작과 달라서 슬프고 즐거운 법이다. 웬일인지 황제는 2008 시즌 초반부터 실족하기 시작했다. 호주오픈을 놓쳤고, 프랑스오픈에서 나달에게 0 대 3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마지막 세트는 한 점도 따지 못하고 0 대 6 패배. 이것은 단순한 한 번의 패배가 아니라 근본적 변화의 시작이었다. 영원히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페더러가 누군가를 두려워하고 있었고, 결코 페더러를 위협하지 못할 것처럼 보였던 나달이 페더러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운명의 2008 윔블던 오픈 결승, 잔디 코트에 강한 페더러의 텃밭에서 벌어진 진검승부. 결과는 4시간48분 명승부 끝에 3 대 2 나달의 승리로 끝났다. 5세트 점수는 9 대 7. 역대 최장 기간인 237주 세계 랭킹 1위의 시절도 그렇게 끝났다. 무엇보다 페더러는 이제 나달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콤플렉스를 가지게 됐다.

절치부심의 2009 시즌이 밝았다. 첫 메이저 대회인 호주오픈, 준결승까지 경기를 보면 여전히 페더러가 우승할 것처럼 보였다. 나달은 심심찮게 상대에게 세트를 뺏겼다. 준결승에선 베르다스코와 호주오픈 역사상 최장인 5시간14분 풀세트 접전을 치르며 힘겹게 결승에 올랐다. 반면 페더러는 준결승에서 앤디 로딕을 3 대 0으로 압도했다. 나달로선 하루만 쉬고 치르는 결승전. 또다시 4시간22분 5세트 접전을 벌였다. 윔블던에 이어서 역사에 남을 명승부. 나달은 페더러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백핸드를 한 손으로 치는 페더러는 회전이 많이 들어간 채 백핸드로 오는 공에 약한데, 나달은 끈질긴 스트로크와 집요한 서브로 페더러의 백핸드를 공략했다. 여기에 하늘은 나달에게 왼손잡이 선물까지 주셨다. 게다가 나달에겐 끝없이 단련한 불굴의 다리가 있다. 요컨대, 페더러는 한 손으로 치지만 나달은 네 손으로 한다. 두 손 백핸드에 두 다리를 더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리의 문제가 아니다. 호주오픈 3세트(세트스코어 1 대 1 상황)에서 나달은 번번이 자신의 서브게임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6번의 서브게임 중에서 4번을 상대에게 빼앗길(브레이크당할) 위기에 처했다. 3세트 4 대 4. 나달은 자신의 서브게임에서 0 대 40으로 뒤지고 있었다. 한 번의 랠리만 놓치면 사실상 세트를 빼앗기는 상황이다. 나달이 비로소 지쳐 보였다. 그러나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나달의 서브에이스가 위기에 몰린 순간에 터졌고, 풀어진 듯이 보였던 다리는 다시 불끈 힘을 냈다. 그것은 체력을 넘어선 믿기 힘든 집중력이었다. 끝내 나달은 듀스 끝에 서브게임을 지켰다. 그리하여 7 대 6, 나달의 3세트 승리. 그러나 절치부심의 페더러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 시즌 같으면 3세트를 허무하게 잃고 무너졌을 텐데, 2009년의 페더러는 다시 4세트를 따냈다. 페더러는 원래 흔들림이 없는 선수였다. 나달이 흔들리지 않는 사나이를 흔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페더러의 정신력이 약한 것이 아니라 나달의 정신력이 정말로 강하다. 나달은 자신이 먼저 지친 상태에서도 상대를 끝내 지치게 만드는 선수다. 마지막 5세트, 상식적 승부라면 이틀 전에 5시간 접전을 치른 선수의 집중력이 흔들려야 마땅치 않은가? 그러나 어느새 지쳐버린 페더러가 집중력을 잃으며 나달이 5세트를 어렵지 않게 따냈다.

울어버린 페더러 “내년에 보자”

나달은 시즌마다 대회마다 장기를 하나씩 더하는 일신우일신의 화신이다. 수비만 하는 손으로 여겼던 나달의 백핸드는 호주오픈을 통해서 거침없는 에이스를 날리는 백핸드로 거듭났다. 원래 그는 실책이 없다. 포기하지 않는 다리가 있으니 실책 없는 손도 나온다. 그의 다리는 상대의 손을 지치게 만든다. ‘언터처블’이 마땅한 공을 ‘터치’해서 넘기니 상대의 손은 긴장하고 실책을 남발한다. 그렇게 스위스 시계처럼 정확하고 냉정했던 사나이 페더러마저 울려버렸다. 그러나 호주오픈 시상식에서 페더러가 울먹이며 했던 마지막 인사는 “내년에 보자”(See You Next Year). 포기하지 않고 내년에도 오겠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이제 겨우 2009 시즌 시작이다. 나달과 페더러 경기는 5세트를 보면 5경기를 본 것 같은 포만감을 안겨준다.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를 넘어야 하는 환상의 짝꿍 ‘나달과 페더러 극장’의 명승부는 계속된다.


은반 위의 라이벌
김연아-아사다 경쟁 속 우정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왼쪽부터) 연합.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왼쪽부터) 연합.

동시대에 등장해 기쁨과 눈물을 나누는 라이벌이 테니스 코트뿐 아니라 은반 위에도 있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1990년 9월, 태어난 달까지 같은 동갑내기 라이벌은 주니어 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이들은 여러모로 대비된다. 김연아가 자신이 가진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연기에 집중하는 반면 아사다는 트리플악셀 점프를 통해 모험을 시도한다. 기록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웅을 가리기 어렵다. 김연아가 4대륙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를 통해 쇼트프로그램 역대 최고 점수를 또다시 경신했고 프리스케이팅 역대 최고점도 가지고 있다면, 아사다는 쇼트와 프리를 합친 종합점수 역대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김연아는 2008~2009 그랑프리 파이널, 4대륙 대회 등에서 증명했듯 기복 없는 꾸준함을 자랑한다. 마오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하고 다음 국제대회인 4대륙 대회 쇼트프로그램 6위에 그친 사실에서 보듯이 기복이 심하지만,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트리플악셀을 성공한 전력처럼 일단 집중을 하면 놀라운 결과를 낳을 능력이 있다.
하필이면 일본과 한국의 선수로 라이벌 의식이 더욱 ‘조장’되지만, 정작 이들은 오랜 경쟁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2008~2009 국제빙상연맹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 경기가 끝난 뒤 아사다는 기량 발전의 원동력으로 김연아를 꼽았다. 김연아도 2009 4대륙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아사다와 경쟁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제는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때도 됐다”고 답했다. 2009 호주오픈 시상식, 울먹이는 페더러를 위로하며 나달이 말했다. “누구보다 당신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지금은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 라이벌의 시대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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