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장애인올림픽 100일 앞두고 맹연습 중인 수영 국가대표 김지은 선수
▣ 송호진 한겨레 스포츠부 기자dmzsong@hani.co.kr
야구모자를 눌러쓴 그는 왼쪽 다리를 가볍게 올려 와인드업을 한 뒤 환한 웃음을 ‘초구 직구’로 던지더니, 이어 곡선을 그리는 공을 뿌렸다. “야구장 가서 몇 번 연습했는데 좀 아쉬웠다”고 한 건 공이 두산 포수 홍성흔 앞에서 한 번 튀겨 글러브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사진이 인터넷에 떴고, 그는 하루가 넘게 검색어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4월20일 프로야구 두산과 SK 경기 시구자였던 그의 미니홈피엔 하루 수만 명이 다녀갔다. 인터넷 사진 밑엔 “연예인 같은 외모”라는 반응과 “어? 무슨 장애요?”라는 궁금증이 뒤섞였다. 그가 마운드까지 뒤뚱뒤뚱거리며 조심스럽게 걸어온 것이 생략된 사진은, 또 그의 웃음은 그런 의문을 가질 법하게 만들었다.
병명인 ‘뇌병변’이 인기 검색어로 등극[%%IMAGE4%%]
그런데 “내 병명이 정확히 뭐지?”라며 밝게 되묻는 건 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별 불편이 없기에 “내가 장애인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그의 이름 김지은(25)과 함께 ‘뇌병변’(중추신경 손상으로 인한 복합적인 장애로 뇌성마비·뇌졸중·뇌경색을 총괄하는 말)도 덩달아 인터넷 주요 검색어가 됐다.
그 장애를 안고 태어난 그는 빨리 걷지 못한다. 다리가 꼬이거나, 힘이 없어 땅에 주저앉을 때도 많았다. 스스로 넘어지기도 했으나, 누군가 밀치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는 짓궂은 남자애들이 걷는 모습을 따라하며 놀리기도 했고, 밀기도 했죠. 그땐 상처도 컸고, 암울하기도 했어요. 물론 여중·여고에 가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요.”
그러나 지금 그는 더디 갈 뿐, 조금 늦게 목표 지점에 도착할 뿐, 더 이상 넘어지지 않는다. 그가 물속에 들어간 2006년 2월부터 찾아온 변화다. “정말 운동과 담을 쌓았던 내가…”라며 그 자신도 놀라게 만든 변화.
떠들썩했던 인터넷을 뒤로하고, 그는 다시 부산사직수영장 물속으로 들어갔다. 베이징장애인올림픽(9월6~17일)이 100여 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와의 대화도 3시간 가까이 하는 오후 훈련이 끝난 밤이 돼서야 가능했다.
“하다 보니 단기간에 국가대표도 되고 세계선수권도 나가고 올림픽에도 출전하게 됐으니 정말 신기하네요.”
처음엔 다리에 힘을 붙이기 위한 재활 치료가 목적이었다. 연인의 권유였다. 그를 도우며 헌신적으로 함께했던 그 사랑은 지금 곁에 없지만, 옛 연인은 그에게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해준 사람이었다.
물속에서 그는 빨랐다. 수영 시작 두 달 만인 2006년 4월 대구 전국장애인수영대회 2관왕에 오르더니, 7월엔 국가대표가 됐다. 인터넷으로 국가대표 발탁을 확인한 날, 아버지는 딸을 껴안고 “잘했다, 잘했어”라며 등을 두드렸다. 김지은은 그해 9월 장애인전국체전에서 보행장애 S7등급(절단·기타장애·뇌성마비·척수마비 10등급 중 7등급) 부문 여자 최다인 4관왕을 거머쥐었고, 2007년 오사카 대회 3관왕, 2007 장애인전국체전 3관왕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현재 키가 170㎝인 그는 학창 시절 많이 말라 ‘젓가락’이나 ‘거뼈’(거대한 뼈다귀)란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수영을 한 이후 몸의 균형이 잡힌데다 상체 웨이트트레이닝을 꾸준히 해 그런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그가 상체 훈련에 집중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발차기 능력 일반인의 20%, 상체가 중요
“일반인 발차기에 비해 20% 정도밖에 힘을 쓸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팔과 어깨 힘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매일 오전 고무줄 당기기 등 상체운동을 하고 있죠. 무릎 굽혀서 하는 푸시업은 한 번에 30개 정도 할 수 있어요.”
8월8일 개막하는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뒤 열리는 장애인올림픽에 한국은 13개 종목 140여 명(선수 85명)이 참가해 금메달 13개·종합 14위를 노리고 있다. 김지은은 지금도 퇴행 장애가 진행되고 있는 남자부 민병언(절단 및 기타장애)과 함께 수영국가대표로 나간다. 배영 50m와 100m 세계기록을 가진 민병언은 금메달을 넘본다. 김지은은 자유형 50m·100m·400m, 배영 100m에서 물살을 가른다. 그는 “점점 기록이 좋아지는 것으로 봐서 금메달은 아니더라도 자유형 400m 또는 배영 100m에서 메달을 바라보고 있다. 배영 100m는 베스트가 1분35초 나오는데 세계 1위와는 10초 정도 차이”라고 했다. ‘마린보이’ 박태환(단국대 1년)이 올림픽 사상 첫 수영 메달에 도전하고 있듯, 한국은 장애인올림픽에서도 아직까지 수영 메달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조용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딸부잣집(세 자매) 막내 김지은이 그곳을 향해 뚜벅뚜벅 가고 있는 것이다.
150일 집중훈련에 들어간 그는 부산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콘도식 방에서 대표팀과 합숙훈련을 하고 있다. ‘박태환 전담팀’이 생겨날 만큼 수영에 대한 관심이 늘었지만, 김지은은 코치 1명, 보조코치 1명과 함께 훈련 중이다. 식사는 수영장 인근 식당에서 해결한다.
영산대 디자인학과를 나와 신라대 체육학 석사과정까지 밟고 있는 그에게 메달 색깔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닌 듯했다.
“수영은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줬어요. 올림픽에서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후회는 없도록 하고 싶어요. 내 자신과의 싸움이죠.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그를 지켜보는 이현옥 대한장애인수영연맹 홍보팀장이 말했다. “아직도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보고 ‘왜 밖에 나오나’ 생각하고 또 그런 이들을 여전히 불우하고 뭔가 부족한 사람들로 여기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 것 때문에 장애인들끼리는 ‘불쌍하게 보니 비오는 날 돌아다니지 말자’는 얘기까지 하죠. 장애인 1명이 행복하면 가족 4명이 모두 행복하다는 얘기가 있어요. 가장 좋은 게 운동이죠. 한 번도 자기 몸의 주인이 아니었던 분들이 운동을 통해 자기 몸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고 사회로 나오는 힘을 얻게 되거든요. 참으로 밝은 김지은 선수의 모습이 그런 중요성을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김지은의 미니홈피엔 “당신의 삶에서 힘을 얻게 됐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한국 장애인선수 대변자 되고싶어”
김지은은 “올림픽이 끝나고 석사 눈문을 쓰면 박사과정도 하고 싶어요. 국제대회에 나가면 다른 나라들은 장애인을 위한 복지제도가 좋아서인지 선수들의 연령대도 우리보다 훨씬 낮아요. 기회가 되면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에 들어가 한국 장애인선수들을 대변하는 일에도 도전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그는 넘어졌고, 때론 밀쳐져 쓰러졌고, 그러나 일어났고, 다시 걷고 있다. 더딜지 모르나, 늘 그래왔듯 그곳에 발을 디디기 위해 또 가고자 한다. 오는 8월 ‘마린보이’ 박태환이 먼저 들어간 똑같은 물속으로 한 달 뒤 ‘마린걸’ 김지은이 사상 첫 수영 메달을 위해 뛰어든다. 그 물속에서 그의 팔과 그의 밝은 마음은 발차기가 약한 다리를 조금씩 조금씩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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