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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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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짜릿하다!

등록 2001-04-04 00:00 수정 2020-05-03 04:21

2001 프로야구 관전 포인트… 김응룡이 이끄는 삼성사단, 선수협 주축 선수들의 ‘한풀기’ 등

2001 시즌 프로야구가 드디어 4월5일 개막한다. 지난 1982년 출범 뒤 올해로 20년째를 맞는 프로야구는 그 어느 해보다 흥미로운 볼거리로 가득하다. 삼성이 한국시리즈 우승의 한을 풀기 위해 김응룡 감독을 영입했고, 한화가 ‘자율야구의 전도사’ 이광환 감독을 비롯해 윤동균 수석코치, 최동원 투수코치 등 호화 코칭스태프를 구성했다. 또 선수협 파동의 여파로 마해영, 심정수 등 대형 스타들이 유니폼을 바꿔 입고 친정팀을 향해 한판 복수혈전을 벌인다. 이정호(삼성), 이동현(LG) 등 걸출한 신인들은 선배들의 텃밭에 당당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2001 프로야구, 알고 보면 두배로 재미있다.

한화, 코치가 야구하면 우승?

삼성은 20년 쌓은 한국시리즈 우승의 한을 풀기 위해 18년간 해태에 몸담아왔던 김응룡 감독을 영입했다. 우승을 위해서 ‘적장’까지 매수(?)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홈런왕’ 이승엽에 가려 빛을 내지 못하고 있을 뿐 삼성에는 걸출한 스타들이 많다. 김기태와 김현욱(20억원), 임창용(20억원 추정), 김동수(17억원) 등에게 사자 옷을 입히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우승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호화 군단 삼성은 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은 했으나 정작 한국시리즈에서는 단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했다. 결국 구단 고위층은 이번엔 ‘선수’가 아닌 ‘수장’을 바꿔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미 한 차례 진통을 겪었던 ‘우승 청부사’ 코끼리 감독의 영입을 위해 삼성은 또다시 거금 13억원(5년)을 투입했다. 김 감독뿐만 아니라 ‘김응룡 사단’인 유남호, 김종모, 조충렬 등이 호랑이 유니폼 대신 사자 옷으로 바꿔입었다. 이를 두고 “삼성 라이거”라는 등 말들이 많았지만 아무튼 삼성이기에 가능한 발상이었고, 삼성만이 성사시킬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코끼리 감독이 보여줄 성과물이다. 삼성이 우승으로 가는 마지막 카드가 ‘코끼리 영입’이었던 만큼 김 감독이 삼성의 한국시리즈 ‘무관의 한’을 풀어줄 지가 올 시즌 프로야구의 최대 관심사다. 전문가들은 객관적인 전력상 올 시즌 삼성이 우승후보 ‘0순위’라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임창용, 김진웅, 이용훈, 노장진, 이정호 등으로 짜여진 선발진과 이승엽, 마해영, 김기태로 이어지는 토종 클린업 트리오는 투타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다. 더구나 김 감독은 지난해 올림픽에서도 보여줬듯이 ‘천운’을 타고난 인물 아닌가. 김 감독의 천운이 삼성에서도 통할지 지켜볼 일이다.

한화는 이희수 감독의 후임으로 이광환 감독을 선택했다. 차기 감독이 유력했던 유승안 코치 대신 이광환 감독을 장고 끝에 새 사령탑으로 영입한 것이다. LG 재임 시절 ‘자율야구’로 프로야구계에 돌풍을 일으켰던 이 감독이 5년 만에 현역 감독으로 복귀한 것이다. 지난 일이지만 당시 한화 고위층은 감독 선임을 끝내고도 코치진 구성 때문에 장고를 거듭했다는 후문이다. 고심 끝에 발표한 한화의 코칭스태프 구성은 신선한 충격이라고 할 만했다.

마흔살까지 화려한 선수생활을 하고 전 OB 감독까지 지냈던 윤동균씨를 수석코치로, 선동열과 함께 한국야구의 양대 산맥을 이뤘던 최동원씨를 투수코치로 영입했다. “코치가 야구하면 우승”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화려한 진용이다. 특히 야구계에서는 최동원 코치의 영입을 ‘뜻밖’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력은 출중했지만 독특한 카리스마를 지닌 최동원 코치는 오랫동안 야구판에서 ‘아웃사이더’로 지내왔던 인물이다. 이광환 감독도 야인 생활을 5년이나 했지만 최 코치는 90년 삼성 구단을 마지막으로 10년 동안 현직에서 물러나 있었다.

복수 벼르는 마해영·심정수

각설하고, 한화가 스타 플레이어 출신을 코치로 영입했으니 선수들의 기량 향상은 불보듯 뻔하지 않을까. ‘스타 출신 코치들은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다’는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올 시즌 결판이 난다. 더구나 한화는 최근 시범경기서 파죽의 7연승을 질주하며 당당하게 시범경기 1위에 올랐다. 정민철, 구대성의 일본 진출로 더욱 빈약해진 선수층을 이끌고 이같은 성적을 올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시범경기지만 말이다. 과연 화려한 코칭스태프가 이끄는 한화가 정규시즌에서도 돌풍을 일으킬지 지켜보자.

잠깐 지난 겨울을 돌아보자. 2001 프로야구는 자칫 무산될 위기에 놓였었다. 불과 2달 전만 해도 ‘시즌 중단, 야구단 해체’라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실제로 한화는 용병 데이비스와 재계약 문제로 옥신각신할 때 “올해는 한국 프로야구가 열리지 않을지 모르니 (계약을 하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며 결국 싼값(?)으로 재계약했다고 한다. 이 모든 게 바로 ‘제2의 선수협 파동’이 가져다준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가. 우여곡절 끝이지만 2001 시즌도 프로야구는 계속된다. 2년간에 걸친 선수협 파동은 야구계 안팎에 심각한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선수협 파동이 남긴 것 중 하나는 마해영, 심정수 등 선수협 주축 선수들의 방출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정식 트레이드이지만 ‘방출성 트레이드’에 가깝다. 왜냐하면 소속 구단들이 손해보는 카드임에도 불구하고 괘씸죄에 걸린 선수들을 내보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트레이드의 주된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우가 더 좋은 구단으로 이적한 선수들은 ‘웬 횡재’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롯데 소속이었던 마해영은 삼성, 두산 소속이었던 심정수는 현대에 새 둥지를 틀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방출 설움을 겪은 선수들이 친정 구단을 상대로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마해영은 시범경기를 통해 타율, 타점, 최다안타 부문에서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원래 1루수였던 탓에 새로 적응해야 하는 좌익수 수비가 서툴지만 올 시즌 홈런왕에 도전하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심정수도 마찬가지다. 잠실에서도 홈런을 펑펑 쳐댔던 심정수가 잠실보다 작은 수원으로 옮겼으니 새로 받은 등번호(44번)만큼 홈런을 때려내겠다고 벌써부터 각오가 대단하다.

야구계에는 ‘이적생이 한을 품으면 꼭 친정팀에 복수하고 말더라’란 속설이 있다. 팀간 승패도 중요하겠지만 이적 선수가 친정팀을 상대로 어떤 활약을 펼칠지도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오뉴월에 서리는 내릴까.

걸출한 신인들이 많아 신인왕 경쟁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일생의 단 한번뿐인 신인왕 타이틀. 투표함이 개봉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올 시즌 신인왕은 고졸 출신으로 우완 정통파 투수 중에서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무슨 근거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걸까. 올 시즌 유력한 신인왕 후보들의 프로필을 살펴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올해는 최고의 ‘신인 대풍’

이정호(삼성), 이동현(LG), 김희걸(SK), 김주철(해태) 등은 모두 19살로 고교 졸업 뒤 프로로 직행한 새내기들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우완 정통파 투수들. 타자 출신은 대졸 박한이(삼성), 신명철(롯데) 정도다. 확률적으로도 고졸 투수 중에서 신인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올해는 지난 92년 이후 최고의 ‘신인 대풍’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유계약선수 제도의 도입으로 프로행이 빠르면 빠를수록 유리해진 현실에서 이들이 학벌보다 실리를 택한 것은 너무도 당연했고, 그만큼 프로야구는 실력있는 ‘젊은피’를 수혈할 수 있게 됐다.

거칠고 투박한 게 신인들의 단점이자 매력이라지만 이들에게서는 그런 매력 포인트를 찾아볼 수 없다. 밸런스 등 투구폼이 안정된 만큼 볼 빠르기도 140km대 중반을 훌쩍 넘기 일쑤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공격적인 투구와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도 변화구를 던질 줄 안다. 거침없이 몸쪽을 파고드는 배짱투, 타자와 승부할 수 있는 요령투 앞에서 풋내는커녕 오히려 노련미까지 느껴질 정도다. 스타급 선수들의 해외 진출로 텅 빈 외양간이 돼버린 국내 프로야구에 혜성처럼 나타난 고졸 우완 정통파 투수들. 올 시즌 프로야구의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다. 결국 셀 수 없는 변수들이 그라운드라는 함수를 통과해 최후의 승자를 가리겠지만, 적장을 영입한 삼성, 야인 부대 한화, 복수를 벼르는 선수협 출신들, 우완 정통파 신인 투수들, 이 네 가지는 올 시즌 프로야구를 읽는 키워드임에 틀림없다.

김승기/ 스포츠투데이 야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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