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트래퍼트에서 본 맨유 대 레딩전, 기대했던 맞대결은 무산돼… 설기현은 스피드 올리고 박지성은 골 결정력 높여 반드시 만나기를
▣ 맨체스터=이지안 전 기자
그토록 바라던 맞대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박지성과 설기현, 두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는 2006년 12월30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대 레딩 경기에서 서로를 겨누는 ‘창’으로 조우하지 못했다.
설기현이라면 울버햄프턴 소속으로 맨유와 맞붙었던 지난해 축구협회(FA)컵 패배의 쓰라린 기억을 이번 경기로 지우고 싶었을 거다. 박지성 역시 부상 이후 첫 홈경기이니만큼 귀환한 자신의 존재를 홈팬들 앞에서 각인시키고 싶었을 게 뻔하다. 아쉽게도 이날 둘은 ‘어긋’ 만났다. 둘의 맞대결을 보기 위해 그 자리에 온 한국 팬들은 못내 섭섭한 눈치였다. 7만이 넘는 관중이 내뿜는 열기 속에 박지성과 설기현이 경기장을 누비는 풍경 하나만으로도 내 가슴은 충분히 벅차올랐다. 게다가 그곳은 축구 선수라면 한 번쯤은 뛰고 싶어한다는 ‘꿈의 구장’이자, 나 같은 맨유 팬들에겐 ‘마음의 고향’인 올드트래퍼드(맨유 전용 경기장)가 아닌가?
[%%IMAGE4%%]
박지성의 사소한 동작마다 “꺄악”
런던에 머무는 내내 올드트래퍼드에 가고 싶었다. 11월22일 맨유와 셀틱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글래스고의 셀틱파크 경기장에서 보긴 했지만, 그곳은 맨유에도 내게도 아주 지독한 원정이었다. 맨유는 무참히 패배했고, 나는 셀틱 ‘광팬’들 한복판에서 셀틱 선수 나카무라 스케의 결승골에 두 팔을 높이 치켜들고 억지 미소를 날려주며 한국말로 “망했다, 망했어!”를 외쳐야 했다.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마다 겉으로는 환호성을 지르면서 가슴으론 울고 있었다. 나를 셀틱 팬, 혹은 나카무라를 응원하는 일본인으로 여겼던 옆자리의 스코틀랜드 할아버지가 볼에다 뽀뽀를 하려는 것만 간신히 사양(?)했을 뿐, 숨 죽인 탄식마저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무사히 살아서 경기장을 빠져나가야 했다.
하지만 올드트래퍼드라면 모든 게 달라진다. 이곳에서만큼은 맨유 ‘골수팬’들이 모이는 웨스트엔드 끝자락에 앉아 친숙한 맨유 응원가를 부르며 목청껏 맨유 선수들을 응원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이날 여기서 내가 소망하던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연모했던 라이언 긱스가 공을 잡을 때마다 빽빽 소리를 질러댔고, 박지성의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리듯 환호성과 탄식을 반복했다.
경기는 가장 재미있다는 3:2, ‘펠레 스코어’로 끝났다. 신들린 듯한 호날두의 세 경기 연속 두 골과 맨유의 여전한 공격력도, 끝까지 따라붙었던 레딩의 끈기도 모두 만족스러운 경기였다. 하지만 박지성과 설기현이 공격 포인트를 올려줬으면 하는 기대는 무너졌다. 선발 출장했으나 후반전 시작과 함께 교체 아웃된 박지성과, 후반 20분에 투입돼 이렇다 할 공격을 주도하지 못한 설기현의 모습은 2006~2007 시즌 이들의 현재를 보여주는 듯해 여간 아타까운 게 아니었다.
[%%IMAGE5%%]
박지성이 고질적인 발목 부상으로 주춤했던 사이 설기현은 프리미어리거 한국 대표로 위풍당당하게 부상했다. 스티브 코펠 레딩 감독의 신임 속에 오른쪽 날개와 최전방 공격수를 오가며 시즌 초반 레딩의 돌풍을 이끌었다. 3골 2어시스트라는 공격 포인트는 신입생 프리미어리거로서 대단한 성적이다. 그러나 상황이 변했다. 레딩 최고의 스트라이커 데이브 키슨이 복귀하는 등 최전방 공격수로서 설기현의 입지가 줄어들었다. 오른쪽 미드필더 라이벌인 글렌 리틀이 한창 물 오른 어시스트 실력을 뽐내는 동안 설기현은 두 달이나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했다. 레딩 팬들은 두 달 전 설기현의 포지션 변경이 슬럼프를 가져왔다며 그가 윙어로 원상 복귀하기를 바란다. 나 역시 윙어로 선발 출장해 한 템포 빠른 크로스와 과감한 슈팅을 날리던 그의 모습이 그립다. 다만 프리미어리그에서, 특히 윙어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라도 스피드를 끌어올려야 한다. 설기현의 다소 느린 스피드는 레딩의 역습을 지체할 수 있다.
다음엔 각각 1골 1어시스트씩?
박지성은 힘든 재활 기간을 끝내고 복귀했으나 아직까지 그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라이벌인 호날두가 시즌 10골째를 넘기고, 역할모델인 긱스가 건재해 주전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가 주전으로 계속 기용되리란 보장도 없다. 다행히 복싱데이(boxing day) 이후 살인적인 리그 일정과 FA컵, 챔피언스리그 등의 굵직한 경기들을 치러내려면 주전 로테이션(순환)이 불가피하다. 아직 그에게도 기회는 있다. 특히 퍼거슨 감독은 2007년 새해 첫 경기였던 뉴캐슬전에서 전반 끝나기 10분 동안 박지성을 가운데 공격형 미드필더로 시험하기도 해 ‘멀티플레이어’ 박지성의 주가를 재확인했다. 숨은 일꾼으로 묵묵히 빈자리를 메워 동료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박지성 자신이 시즌 초반 공격적이 되겠노라 밝혔던 것처럼, 공격 포인트 획득에 더욱 욕심을 내야 한다. 그 누구도 의심할 바 없는 최고의 공간 창출 능력에 그가 PSV 에인트호번 시절 보여준 골 결정력만 더해진다면, 박지성은 이번 시즌 리그컵과 챔피언스리그컵을 노리고 있는 맨유의 가장 빛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이날 수많은 한국 팬들은 올드트래퍼드를 밟은 흥분과 박지성 대 설기현의 맞대결이 무산된 것에 대한 아쉬움 탓에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올드트래퍼드에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신나게 해버린 나 역시 2% 부족한 마음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경기를 끝낸 박지성과 설기현의 모습은 무덤덤했지만 편안해 보였다. 2007~2008 시즌의 맞대결은 어떨까? 물론 그때도 내가 맨유 팬이니 맨유가 무조건 이겨야 한다. 펠레 스코어에 박지성과 설기현이 사이좋게 1골 1어시스트를 나눠가지면 되겠지. 이런 흐뭇한 상상을 하며 런던으로 돌아왔다.
|
1986년 11월 사령탑에 올라 20년째 맨유를 이끌고 있는 알렉스 퍼거슨 경(Sir). 선수들 귀 옆에 얼굴을 찰싹 대고 호통을 쳐 ‘헤어드라이어 트리트먼트’라는 별명이 생겼다거나, 경기 패배의 분을 못 이겨 걷어찬 축구화가 데이비드 베컴의 눈두덩을 찢었던 일화는 이제 진부할 만큼 유명하다. 시합이 잘 풀릴 때나 안 풀릴 때나 질겅질겅 턱이 빠져라 껌을 씹고 있는 이 노감독을 한국 팬들은 애정을 담아 ‘퍼기 할배’나 ‘영감님’으로 부른다. ‘영감님’이 지난 12월31일 65번째 생일을 맞았다.
퍼거슨 경이 맨유에 기여한 정도는 60년대 맨유 전성기를 일군 맷 버스비 경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1986년 11월 맨유의 사령탑에 오른 퍼거슨의 업적은 99년 트리플 크라운(리그 우승, FA컵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3관왕)을 비롯해 프리미어리그 우승 8회, FA컵 우승 5회 등의 계량화된 수치로 끝나는 게 아니다. 이제는 ‘레전드’의 반열에 올라선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게리 네빌, 데이비드 베컴 등을 직접 발굴하고 키웠고, 이들 황금 세대가 나올 수 있게 한 유스 시스템을 정비한 것도 바로 그였다.
영국 언론들은 일제히 퍼거슨 경의 65번째 생일을 맞아 큼지막한 지면을 할애해 그의 축구 철학을 조명했는데, 는 그가 보여주는 리더십을 “고함 지르기나 호통 치기는 선수들이 감독을 존경할 때에만 효과가 있다. 퍼거슨 경은 항상 그렇게 해왔다”로 정리했다. 맨유에서 축구 인생을 시작해 13년이 넘도록 맨유에서 뛰는 백전노장 폴 스콜스는 여전히 퍼거슨에게 “죽을 정도의 두려움이 느껴진다”고 최근 고백했고, 베컴과 긱스의 자서전이나 네빌의 일기를 봐도 퍼거슨을 향한 선수들의 경외심과 두려움은 여실히 드러난다.
“퍼거슨은 모든 사람의 적이 되는 것을 즐긴다”는 말처럼 그는 축구팬들과 언론이 갖고 있는 반감을 최고의 팀워크를 만드는 데 이용한다. 이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맨유가 90년대 내내 프리미어리그 꼭대기에 있었고, 따라서 맨유 팬을 제외한 모든 축구팬들의 ‘공공의 적’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퍼거슨의 이러한 의식은 선수들의 사기를 높이려는 하나의 전술로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bbc>가 퍼거슨을 비판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뒤 2년간 <bbc>와 인터뷰하지 않았고, 지금도 경기 직후 언론과 대화하지 않는 점은 여전히 아쉽긴 하다.
알렉스 퍼거슨의 맨유 ‘제국’은 그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해가 지지 않을 것 같다. 지난해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과 자국 리그 2위라는 (맨유로서는) 초라한 성적을 딛고, 이번 시즌 리그컵과 유럽컵 두 개를 노리고 있는 퍼거슨의 전략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퍼거슨 경을 말할 때 그의 특이한 이력도 빼놓을 수 없다. 스코틀랜드 태생인 그는 클라이드 선박장의 노동자이자 노조간부로 파업을 주도한 적이 있으며, 최근 영국 금융회사 ‘버진머니’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노인 1위에 올랐다.
</bbc></bbc>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경찰 ‘전광훈 전담팀’ 꾸렸다…법원 난입 연관성 수사
인천공항 ‘비상’, 폭설 때보다 혼잡…공항공사 “출국까지 3시간”
[속보] 서부지법 방화 시도 ‘투블럭남’ 10대였다…구속 기로
“부끄러운 줄 알라” “폭동 옹호”…싸늘한 민심 마주한 국힘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으로 벌금 100만원
[속보] 경찰, ‘윤석열 체포 저지’ 김성훈·이광우 구속영장 재신청
[속보] 검찰, 중앙지법에 윤석열 구속 연장 신청
명절에 버려지는 반려동물 수천마리…힘들면 여기 맡겨보세요
고향가는 길 어쩌나...27일 월요일 대설특보 가능성
손준호 다시 축구할 수 있다…FIFA “징계는 중국에서만 유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