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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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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캠핑의 풍속사

군사훈련의 일환으로 영친왕 이은이 처음 시작한 캠핑… 60년대 청소년 캠핑에서 80년대 이후 가족 캠핑이 대세로
등록 2011-10-13 16:55 수정 2020-05-03 04:26
» 오래전부터 캠핑이 독자적 레저활동으로 자리잡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국의 캠핑은 최근까지도 등산이나 낚시 등의 레저활동을 위한 보조수단에 머물러 있었다. 1981년 6월 철쭉제를 구경하려고 소백산에 몰려든 행락객들이 산 곳곳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 오래전부터 캠핑이 독자적 레저활동으로 자리잡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국의 캠핑은 최근까지도 등산이나 낚시 등의 레저활동을 위한 보조수단에 머물러 있었다. 1981년 6월 철쭉제를 구경하려고 소백산에 몰려든 행락객들이 산 곳곳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의 캠핑을 처음 경험한 이는 영친왕 이은이다. 순부(純附) 5권, 7년(1914) 4월16일치 기록에는 이런 기사가 등장한다. “왕세자가 유년 학교의 야영 연습을 위하여 천엽(지바)현 야지 연습장에 출장갈 뜻을 전보로 알리다.” 당시 영친왕이 다니던 학교가 일본 육군중앙유년학교였으니, 실록이 언급한 야영 연습이란 군사훈련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조선소년척후군 창설이 모태

민간 차원의 캠핑은 1922년 조선소년척후군(한국 보이스카우트의 전신)이 창설되며 본격화됐다. 1924년 8월13일치 는 소년척후군 인천지부가 같은 달 8일 강화군 전등사에서 야영했다는 소식을 단신으로 전한다. 1927년에는 잡지 (1927년 7월5일)이 청소년 조직을 중심으로 막 보급되기 시작한 캠핑 활동을 여름휴가 특집으로 다룬다. 캠핑의 효능과 함께 장소 선정 요령부터 비품과 음식물, 천막 설치법 등 캠핑의 기본 사항을 간략히 소개했는데, 기사가 열거한 야영 필수품은 천막, 모포, 방수의, 내의, 수통, 인촌(燐寸·성냥), 등촉(랜턴), 도끼, 칼, 노구솥 등으로 오늘날의 캠핑 품목과 별 차이가 없다. 비슷한 시기 잡지 은 ‘자연으로 나갑시다’라는 칼럼을 통해 “갑싼 광목으로 간단하게 천막을 지어 경성으로 말할 것 갓트면 삼청동 시내가에나 청량리 송림 속에 처놋코 여름 동안에 밤을 가서 지내는 일은 누구든지 할 수 잇슬 것”이라며 ‘조선 실정에 걸맞은 야영 활동’을 적극 권장한다.

1930년대부터는 ‘야영’이란 말 대신 ‘캠핑’이 보편적 용어로 사용되는데, 1929년 일본 규슈에서 열린 국제야영대회에 YMCA 학생들이 조선 대표로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신문에는 ‘캠핑도 여름 한철! 산과 물의 품 속에 안겨서 한여름 시원히 지냅시다’ ‘세속의 도피장 캠핑의 상식… 방랑은 열혈 청춘의 건강한 병이었다’ 같은 트렌드 기사들이 빈번히 등장했다.

캠핑은 1960년대에 접어들어 행락철 사건사고와 청소년 탈선의 온상으로 지목된다. ‘깡패들 캠핑학생 습격, 물건 뺏고 소녀까지 납치’( 1960년 10월31일), ‘불량학생 10명이 캠핑습격… 여대생 필사의 탈출’(1964년 7월28일) 같은 기사들이 줄을 잇는데, 캠핑 간 외지 학생들이 현지 불량배들에게 얻어맞고 돈을 빼앗겼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캠핑장 습격사건’에는 비교적 부유한 도시 학생과 가난한 농촌 청소년들 사이의 계층적 위화감이 적잖이 작용한 것 같다.

1968년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작원들의 청와대 습격사건 이후에는 접경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돼 캠핑객을 간첩으로 오인해 총격을 가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그해 8월 경기도 연천에서는 캠핑 학생 2명이 야간에 초병의 사격을 받아 숨졌다. 비슷한 사건이 1970년 10월 경기도 양주에서 일어나 인권단체가 진상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에는 청소년들의 ‘혼성 캠핑’이 사회문제가 된다. 1976년 9월 서울 도봉산 계곡에서 캠핑하던 고교생들이 함께 간 여학생을 두고 다툼을 벌이다 ‘소줏병 살인’으로 번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종교단체가 주관하는 행사를 제외한 모든 중고생들의 야외 캠핑이 한동안 금지됐는데, 그런다고 여름의 태양과 함께 들끓는 10대들의 혈기가 식을 리 없었다. 다들 알게모르게 삼촌과 아버지의 텐트를 챙기고, 냄비와 석유버너를 준비해 계곡으로 해변으로 떠났다.

가족 단위 휴양의 본격화

‘가족 캠핑’이 본격화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다. 저금리·저달러·저유가의 3저 호황 덕분에 소득이 늘어난 도시 중산층을 중심으로 서구식 소비문화가 확산되며 가족 단위 휴양이 보편화됐다. 콘도나 펜션 같은 휴양용 숙박시설이 부족하던 당시에는 해변이나 계곡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것이 유일한 휴양 문화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캠핑은 여름휴가철에 집중됐고, 이동 수단은 버스나 기차 같은 대중교통에 주로 의존해 요즘의 대세인 오토캠핑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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