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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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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을 몰아내라

등록 2005-03-31 00:00 수정 2020-05-03 04:24

[마음살리기]

▣ 우종민/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drwoo@freechal.com

그는 피곤하다. 두해 전까지도 일은 늘 많았지만 집중적으로 하면 밀리지 않았다. 바쁠 때는 주말에 나와서 일하기도 했으나 언제 일이 많을지 예측할 수 있어서 조절이 가능했다. 아침이면 수영도 하고 주말에는 학원도 다녔다.

그러나 지난해 부서를 옮긴 뒤부터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됐다. 언제 어떤 일이 떨어질지 예측할 수 없었다. 일의 순위를 적어봤지만 메모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점점 메모를 해놓고도 보지 않게 됐다. 몸도 여기저기 안 좋고, 입만 열면 “피곤해 죽겠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가장 괴로운 건 퇴근 뒤나 주말에도 쉬지 못한다는 점이다. 회사에서 계속 일을 시키느냐? 그건 아니다. 그러나 퇴근 뒤에도 컴퓨터를 켜서 메일을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야 안심이 됐다. 주말이면 자기 관리를 위해 이 공부도 해야 하고 저 준비도 해야 하는데 무엇부터 하나… 이 사람도 만나야 하고 저 사람한테도 연락해야 하는데 어쩌나… 누워서 고민만 하다 보내기 일쑤였다. 그러니 주말이 지나도 쉬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이 늘 일에 쫓기고 불안해서다.

사람의 신경은 고무줄과 같다. 웬만큼 잡아당겼다 놓으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세게 당기면 늘어지거나 끊어진다. 이러면 병이 난다. 배터리도 어느 정도 남아 있어야 재충전을 할 수 있다. 완전히 방전돼버리면 재충전이 안 된다. 그는 완전 방전의 위기에 있다.

우선 해결할 문제는 모범생 콤플렉스다. ‘열심히 살자’ ‘성실히 일하자’ 이 생각만으로는 도저히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 상당수는 쉬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지니고 있다. 일하는 것은 선이고 쉬는 것은 악이라는 식이다. 대개는 어릴 때부터 주입받은 개념인데, 용도 폐기해야할 낡은 도식이다. 오히려 열심히 쉬어야 한다. 왜?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쉰다는 목적이 분명할 때 쉬는 것에 대한 꺼림칙함을 없애고 더 잘 쉴 수 있다.

그리고 옥외 활동시간을 늘려야 한다. 햇볕 대신 전자파만 쬐면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 활력을 유지하려면 사람도 광합성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머릿속에서 피곤하다는 생각을 몰아낸다. 70대의 나이에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학자에게 당신은 피곤하지도 않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피로의 90%는 ‘피곤하다는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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