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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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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 후유증

등록 2005-01-07 00:00 수정 2020-05-03 04:23

[마음살리기]

▣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drwoo@freechal.com

남아시아를 강타한 지진해일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실감이 안 났는데, 막상 화면으로 바닷물이 덥치는 장면을 보니 소름이 쫙 끼쳤다. 나도 일 터지기 불과 보름 전에 그 지역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더 착하게 살라는 뜻인가 보다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순식간에 참변을 겪은 이들의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만났던 한 지하철 기관사는 5년 전의 악몽 같은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속도를 줄이면서 역사에 진입하는 도중, 느닷없이 창문이 깨지면서 무언가가 그를 덮쳤다. 플랫폼에서 어느 승객이 자살하려고 뛰어든 것이다. 지금도 그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밤마다 시꺼먼 누군가가 덮치거나 쫓아오는 악몽을 꾸다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툭하면 깜짝깜짝 놀라고 신경질이 늘어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다. 들것에 옮겨지던 부상자의 거친 숨소리가 환청처럼 계속 귓가에 맴돈다고 한다.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승객을 보면 선로로 튀어나올까봐 자기도 모르게 급제동을 걸 뻔했다는 기관사도 있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처럼, 조건반사적으로 반응을 하게 되는 셈이다.

갑작스런 참변을 겪은 사람의 10%가량은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는다. 자책감과 죄책감, 존재에 대한 회의로 우울증에 빠지거나, 주검에서 흘러나오는 피, 끔직한 주검 조각 등을 계속 떠올린다. 구조대원이나 소방대원 중에도 나중에 정신적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있다.

당사자와 주변에서 명심할 일은 이런 비극적 경험이 생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다른 피해자를 구조해주지 못했다는 ‘생존자의 죄책감’에 시달리곤 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질문도 판단도 하지 않아야 한다. 참변을 겪은 직후 나타나는 이런 증상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는 것을 잊지 말자. 주변에서는 당사자가 미친 게 아님을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리도록 해보자. 누군가를 도와주는 봉사활동에 몰두하는 것도 좋다. 괴로움을 중화할 수 있다.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에는 주변 사람들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이 필요로 할 때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성급히 충고를 하려 들거나 무엇을 해야 한다고 제안하기에 앞서 일단 귀를 열고 옆에 앉아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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