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LG아트센터 ‘입성’ 앞두고 있는 극단 여행자의 · 극단 인혁의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요즘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는 ‘불안한 희망’에 떨고 있다. 3~4월 봄바람과 함께 시작될 ‘오늘의 젊은 연극인 시리즈’를 앞두고 있기 때문인데, 이름도 외우기 힘든 벨기에의 현대무용단이나 딱딱한 독일어 악센트와 함성이 난무하는 요령부득의 연극을 들여올 때도 눈 하나 깜빡 않던 것에 비하면 눈에 띄는 차이다.
소극장 연극이 넘보기엔 너무 높았던…
그동안 우리나라 최고의 조명과 음향시설을 갖췄다고 하는 LG아트센터는 대학로의 소극장 연극들이 넘보기엔 ‘너무 높은 그곳’이었다. 꾸준히 실험성과 예술성을 중시하는 프로그램들을 꾸려왔다고 해도 LG아트센터의 관객층은 대학로와는 ‘다른 계급’처럼 보였다. 젊은 연출가의 무대라고 하면 영화감독이자 연극연출가로서 이미 ‘스타’의 대열에 낀 장진씨의 정도였다.
LG아트센터의 흔치 않은 기회를 잡은 행운의 주인공들은 극단 여행자(대표 양정웅)와 극단 인혁(대표 이기도). 1990년대 중·후반에 극단을 창단한 두 연출가는 짧은 시간 동안 작품성으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등 셰익스피어와 브레히트의 작품을 우리 정서로 번안해 호평을 받은 극단 여행자는 2003년 카이로 국제실험연극제에서 로 대상을 거머쥐어 국제적 공인을 받았다. 일찍이 스페인에 본거지를 둔 다국적 극단 ‘라센칸’의 단원으로 스페인·일본·인도 등에서 연극을 익힌 양정웅(36)씨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조명·음악·분장 등이 어우러지는 ‘이미지 연극’으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닦아왔다.
한편, 이윤택(국립극단 예술감독)씨가 이끄는 연희단거리패에서 조연출을 맡았던 이기도(35)씨는 10년전인 1994년 ‘인혁’(인간혁명의 줄임말)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세상에 대한 도전장처럼 내밀며 극단을 탄생시켰다. 전통 연희 양식을 변용시키는 방법의 문제와 세상에 대한 관심이 녹아 있는 창작극을 꾸준히 내놓고 있는 뚝심 있는 연출자다. 이번에 선보일 여행자의 (幻)이나 인혁의 모두 소극장 형식으로 초연됐던 것으로 1천석가량의 대극장 무대에 맞게 다시 내용을 가다듬었다.
3월19~26일 먼저 무대에 오를 은 셰익스피어의 를 번안한 작품이다.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의 예언에 휘말려 한 평범한 인간이 파멸되는 과정을 그린 는 그동안 여러 연출가들에 의해 다양한 버전으로 재창작됐다. 그렇다면 스타일리스트 양정웅씨는 어떻게 새로운 를 보여줄까?
2월18일 열린 극단 여행자의 ‘오픈 리허설’을 살짝 엿보니, 욕망과 유혹이 피워내는 분위기가 음습한 느낌마저 주었다. 본래 어둡고 을씨년스런 내용의 원작을 양정웅씨는 한번 더 비틀었다. 맥베스에게 왕위를 찬탈당하는 원작의 던컨왕을 여장남자의 동성애 왕 ‘해’로 설정을 바꾸고 여배우 장영남씨가 이를 맡도록 한 것이다. 사촌 맥베스를 연모하는 유약하고 섬세한 해왕 때문에 에는 근친상간과 동성애 코드가 더 얹혔다. 여자이면서 남자를, 그것도 여자이고 싶어하는 남자를 연기해내는 장영남씨는 내면의 분열을 섬뜩한 광기로 그려낸다. 배우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는 대신, 배우의 내면에서 최대한 많은 표현을 끌어내는 것이 원칙인 양정웅씨는 축제장면 같은 군중신에서는 훈련된 배우들이 아니라 제각기 떠드는 것 같은 장터 분위기를 낸다. 배우들이 내미는 손에 이끌려 관객들이 무대 위 줄다리기에도 참여하고 건네는 막걸리잔도 받아 마시게 되는데, 관객과 무대 사이 거리가 먼 대극장에서 이같은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어떻게 전달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창작극 같은 번안극… 귀신들의 말잔치
연극 속 장면 말고도 기자들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모은 것은 극단 여행자의 일상적인 신체훈련 방식이었다. 배우의 몸과 움직임을 중시하는 극단 여행자는 이런 동선들을 배우들의 내면에서 길어올린다. 이날 공개된 ‘거울 흉내내기’는 거울 안과 거울 바깥처럼 배우들이 두 무리로 갈려 서로의 감정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었다. 슬픔과 아쉬움, 그리움 등의 감정들을 몸에 담아내면서 두 사람은 호흡마저 일치하게 된다. 극단 여행자가 번안극을 하면서도 새로운 스타일을 담아 마치 창작극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이처럼 배우들의 교감을 나누며 에너지를 높여가는 데 그 비밀이 있었다.
다음날 찾은 극단 인혁의 연습실에서도 작업이 한창이었다. 4월3~11일 상연될 는 특히 대본의 탄탄함이 이름 높은 작품이다. 연희단거리패에서 이기도씨와 인연을 맺은 이해제씨가 쓴 이 대본은 우리말(경상도 사투리)의 아름다움과 치밀한 사건의 전개, 그 속에서 드러난 인간의 비극이 잘 맞물렸다는 찬사를 받았다. 2001년에는 이기도씨에게 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양정웅씨의 키워드가 ‘몸의 움직임’이라면, 이기도씨의 방점은 ‘말의 움직임’에 찍힌다. 연출자는 대사를 치는 인물이 어떤 성격인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 배우에게 끊임없이 주문을 내렸다. 이 작품은 자기가 죽어 귀신이 되었는지도 모르는 채 빈집에서 살아가며 마치 인간들처럼 아귀다툼을 벌이는 ‘불량귀신’들이 서로 헐뜯고 욕하며 ‘어떤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귀신들에게 ‘진실’을 깨우쳐줘야 하는 주인공 파북숭이를 맡은 배우 한명구씨는 불과 이틀 전 모친상을 치르고도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1999년 초연된 이래 이번이 세 번째인데, 이번엔 제작비가 2배 정도 늘어난 덕에 ‘라이브 연주’까지 끼워넣게 된다. 퓨전 국악그룹 ‘그림’(the 林)의 리더 신창렬씨가 동료들과 함께 ‘두꺼비 악사’로 등장해 해금·아쟁·스프링 드럼 같은 악기로 생음악을 들려준다. 무대 배경이 될 흉가의 지붕 대들보에 올라앉은 구렁이귀신이 노래하면, 갈대숲에선 두꺼비귀신이 연주를 하며 극을 풍성하게 만들어간다.
완성도 있는 정통 연극으로 대극장 승부 자신
“강남의 대극장에 서는 부담감이 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기도씨는 “본래 우리 작품은 대극장을 염두에 두었다”며 맞받아쳤다. “몇몇의 배우들로만 인기를 얻는 스타시스템, 개그콘서트류의 말장난 같은 대중적 오락물이 아니라, 완성도 높은 정통 연극을 보여주겠다. 드라마를 정확히 전달하는 완벽한 연기라면 어디서든 다 잘돼야 하는 거 아닌가.”
한편, LG아트센터는 ‘오늘의 젊은 연극인 시리즈’에 관객들을 대상으로 관람 비평문 대회도 연다. 두 작품 각각 대상·최우수상·우수상 모두 6편을 골라 LG아트센터의 연극·무용 관람권을 준다(02-2005-0114, www.lga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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