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에너지특집기획3]유채꽃, 석유와 싸우다

등록 2003-06-04 00:00 수정 2020-05-02 04:23

독일에서 경유소비량의 2%를 웃도는 환경에너지 바이오디젤… 정부 세금 면제로 가격 경쟁력 갖춰

〈싣는 순서〉

1) 에너지 전쟁은 계속된다.
2) 석탄은 석유의 대안인가?
3) 식물에서 기름을 뽑는다.
4) 석유 부산물도 자원이다.
5) 에너지 식민지 벗어날 길 없나.


베를린에서 아우토반(속도 무제한 고속도로)을 타고 시속 약 250㎞로 얼마나 달렸을까? 차창 바깥에 온통 노란색으로 뒤덮인 들판이 끝없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초록빛으로 짙어가는 독일의 초여름 들판 곳곳에 나타나는 유채꽃밭은 노란 물감을 그대로 들어부은 듯 싱그러웠다. 지난 5월20일 독일 중북부 니더작센주의 중소도시 레아로 가는 길. 간간이 지평선 너머로 풍력발전용 거대한 풍차들이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하노버와 브레멘을 거쳐 북부지역이 더 가까워질수록 고속도로 주변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유채밭도 더 자주 눈에 띄었다. 바람결에 흔들릴 때마다 노랗게 반짝이는 유채꽃밭은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름 들판’으로 불린다. 기름? 유채기름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정확하게 말해 기름 들판이란 ‘바이오디젤’(BioDiesel)을 일컫는다.

유채꽃 기름에 알코올 반응시켜

바이오디젤은 유채, 폐식용유, 콩, 쌀겨 등에서 추출한 식물성 기름과 알코올을 반응시켜 정제한 물질로, 디젤엔진 차량연료인 경유를 대체하는 연료로 사용된다. 이른바 ‘식물성 자동차연료’라고 할 수 있다. 대개 일반 경유에 바이오디젤 5~30%를 혼합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독일은 100% 순수 ‘바이오디젤’(BD100)만을 차량 연료로 쓰고 있다. 독일에서 생산되는 바이오디젤의 원료는 대부분 유채꽃 종자기름이다. 오스트리아의 바이오연료연구소에 따르면 전 세계 바이오디젤의 84%를 유채꽃 기름으로 생산한다. 독일에서 바이오디젤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이름 없는 제품’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어디에나 알려져 있다. 약 50만대의 차량이 바이오디젤을 연료로 쓰고 있으며 바이오디젤 사용차량의 60%가 트럭, 나머지 40%가 승용차다. 모든 주유소는 아니지만 독일 전역의 약 1500여개 소규모 주유소에서 바이오디젤을 팔고 있다. 도로 사정을 고려하면 30㎞마다 하나의 바이오디젤 주유소가 있는 셈이다.

유럽과 미국 등은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1990년대 중반부터 바이오디젤을 개발해 경유를 대체해나가고 있다. 전 세계 바이오디젤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럽의 8개 바이오디젤 생산국의 생산능력은 연간 총 212만t. 이 가운데 독일의 생산능력이 100만t에 이를 정도로 독일은 대체에너지 중 바이오디젤 분야에서 가장 앞서는 나라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바이오디젤 생산 및 보급 확대를 통해 유럽에서 2005년에 경유의 2%, 2010년에는 경유의 5.75%를 바이오디젤로 대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독일은 이미 유럽연합의 목표치를 넘어서고 있다. 독일에너지기구(DENA)에 따르면 독일의 바이오디젤 판매량은 91년 200t에 불과했으나 해마다 늘어 지난해에는 55만t에 이르렀다. 독일 전체 차량 경유소비량(2400만t)의 2%를 웃돈다. 독일에너지기구의 대체에너지 담당자인 크리스토프 차이스는 바이오디젤 시장상황을 이렇게 압축했다. “독일에서 바이오디젤 생산 및 판매시장은 이미 상당한 정도로 성장한 단계에 와 있다. 우리는 이제 오히려 또 다른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아우토반을 네 시간 남짓 달려 다다른 오엘뮐레 레아 코네만이란 회사는 니더작센주의 중소도시 레아에 자리잡고 있다. 코네만의 연간 바이오디젤 생산량은 11만t으로, 독일의 20여개 바이오디젤 생산기업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공장 굴뚝처럼 치솟은 여러 대형 연료탱크들이 이곳이 화학공장임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공장장 한스 그로스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간 생산공장 내부에는 바이오디젤을 뽑아내는 수많은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힌 채 서너개 연료탱크에 연결돼 있었다. 원료인 유채꽃 종자기름에 알코올을 반응시킨 뒤 필터로 여과해 연료 성분을 분리해 내는 방식으로 바이오디젤을 추출한다. 모든 과정은 컴퓨터자동제어 시스템으로 이뤄진다. 몇 차례의 성분 분리과정을 거치자 금빛의 투명한 바이오디젤이 뚝뚝 떨어졌다. 한스 그로스는 “하루 320t씩 바이오디젤을 생산하는데 거의 다 팔린다. 바이오디젤은 미세먼지가 아주 적기 때문에 경유에 비해 폐암유발 가능성도 그만큼 적다. 우리 공장이 독일에서 친환경적인 바이오디젤 연료를 처음 개발해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며 자부심을 보였다. 유채꽃 기름을 원료로 쓸 경우 바이오디젤뿐만 아니라 화장품 원료로 쓰이는 글리세린까지 최종 생산물로 얻을 수 있다.

환경효과 크고 연비 차이 거의 없어

바이오디젤의 환경적 가치가 과연 어느 정도이길래 유럽연합 차원에서 바이오디젤 생산·보급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바이오디젤은 자동차 배기가스의 주요 원인물질인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이 기존 경유에 비해 훨씬 적다. 바이오디젤의 산소함량(10% 이상)이 높기 때문인데, 경유 80%에 바이오디젤 20%를 섞은 연료(BD20)를 쓸 경우 일반 경유에 견줘 일산화탄소(CO), 탄화수소(CO), 이산화질소(NO2), 이산화황(SO2), 미세먼지(PM) 등 대기오염물질 배출이 15∼30% 정도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오디젤에 함유된 산소로 인해 완전연소가 쉽기 때문에 오염물질을 덜 배출하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CO2)의 경우 유채꽃이 생장하면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이것이 바이오디젤로 변환돼 연소되는 탄소순환 과정을 밟는다. 따라서 경유를 전혀 섞지 않은 BD100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일반 경유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물론 바이오디젤 혼합비율 및 바이오디젤 원료에 따라 오염저감 효과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바이오디젤을 썼을 때 연료 소비량과 출력은 어떨까 코네만이 아우디 A4차량을 대상으로 테스트한 결과 바이오디젤 5.97ℓ를 넣으면 100㎞(1ℓ당 16.7㎞)를 달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의 요스턴 코네만 사장은 “바이오디젤과 경유의 연비 차이는 거의 없다. 시장에서 소비되는 것보다 조금 더 생산하고 있는데 연비가 좋고 가격도 경유보다 싸기 때문에 바이오디젤을 찾는 디젤차량 운전자가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디젤에는 탄소(C) 및 수소(H) 외에 산소(O)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실제 열량(열에너지)은 경유보다 10% 정도 적다. 그러나 거꾸로 산소가 기름의 연소를 돕기 때문에 부족한 열량을 벌충하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너지기구 크리스토프 차이스는 “같은 양의 경유와 바이오디젤을 넣었을 때 연비 차이를 느끼기 어렵지만 정확하게 측정해보면 바이오디젤의 연비가 약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연비 측면에서 경유와 엇비슷한 바이오디젤을 독일 소비자들이 일부러 찾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코네만 사장은 “자기 차가 대기오염을 적게 발생시킨다는 환경의식을 가진 사람도 일부 있겠지만 무엇보다 싼 가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에서 바이오디젤에는 차량 연료에 붙는 특별소비세가 완전 면제된다. 반면 기존 경유(2003년 5월 현재 주유소 판매가격은 1ℓ당 80유로센트대 초반)에는 1ℓ당 43유로센트의 세금이 부과된다. 경유 값의 절반 정도가 세금인 셈인데, 바이오디젤이 독일에서 경유와 당당히 경쟁하고 있는 바탕에는 이런 면세 혜택이 있다. 특히 독일연방의회는 지난 99년부터 환경세(Eco-Tax)를 도입해 환경에 손해를 끼치는 에너지는 시장가격이 높아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바이오디젤은 그만큼 상대적으로 또 다른 혜택을 보는 셈이다. 독일에서 바이오디젤에 세금을 안 물리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무엇보다 자동차연료법에 대체에너지에 대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바이오디젤에 대한 면세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나머지는 ‘사회적 가치’의 영역으로 △대기오염을 줄이고 △외국에서 수입해온 비싼 경유를 독일 안에서 대체할 수 있고 △유채꽃 재배농민들을 지원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독일 연방정부는 유채꽃 재배농민들에게 친환경적 식물이란 이유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대형 석유자본의 견제

바이오디젤의 실제 시장가격은 이 회사 공장에서 차로 10여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뷔로 주유소에서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신은 언제 바이오디젤을 쓸 겁니까?’(Und Wann Tanken Sie BioDiesel)라는 플래카드를 내건 이 주유소의 이날 연료 가격은 벤젠(휘발류)은 1ℓ당 102.9유로센트, 경유 82.9유로센트, 바이오디젤 65.9유로센트였다. 주유소 직원은 “경유와 바이오디젤만 비교하면 경유를 넣는 차량이 7대, 바이오디젤을 넣는 차량이 3대꼴이다. 대부분 가격이 싸기 때문에 바이오디젤을 찾는다”고 말했다. 독일 전역에서 바이오디젤은 대개 1ℓ당 80유로센트대 초반으로 경유에 비해 3∼4유로센트 정도 싼 편인데, 이 지역은 바이오디젤 생산공장이 가까워 운송비가 안 먹히기 때문에 17유로센트나 더 쌌다. 독일은 최근 연료 관련법을 수정해 경우가 섞인 바이오디젤 제품을 포함해 바이오가스 등 모든 생물분해성 대체연료에 대해서도 세금을 전혀 안 물리기로 했다.

그렇다면 바이오디젤의 직접생산비는 얼마나 될까? 원료인 유채기름을 사들여오는 비용은 1t당 300∼700달러로, 해마다 기복이 심하다. 코네만 사장은 “바이오디젤 가격의 약 85%가 원료비다. 유채를 생산하는 농민들도 먹고살아야 하므로 더 싸게 생산하기는 어렵다. 원래 가격으로 치면 경유보다 비싼 게 정상인데 세금이 붙지 않기 때문에 경유와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생산하는 바이오디젤 시장이 성장하면서 조금씩 위협을 느낀 쉘이나 BP 등 대형 석유회사들이 최근 적대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쉘·BP 등 대형 석유자본은 자기 주유소에서 바이오디젤을 전혀 팔지 않고 있는데, 이제는 바이오디젤에 대한 세금부과를 정치권과 에너지당국에 은근히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이오디젤을 쓸 수 있는 차종이 따로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BD20을 쓸 경우 디젤 차량의 기존 엔진과 연료분사장치를 그대로 이용하면 된다. 차를 타고 가다 바이오디젤 주유소를 찾기 어려우면 경유로 바꿔넣으면 된다. 다만, 순수 바이오디젤(BD100)만으로 주행할 때는 엔진계통에 쓰는 패킹과 가스켓을 새로 장착해야 한다. 바이오디젤에 함유된 알코올이 고무패킹과 가스켓을 부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성 바이오디젤의 흠으로 제기되는 것 중 하나가 겨울철에 영하 2∼3도에서 연료가 쉽게 얼어붙고 마는 현상이다. 경유에 바이오디젤을 20% 정도 섞어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의 100% 바이오디젤은 화학처리된 물을 바이오디젤에 투여해 영하 22도까지 동결점을 낮췄다.

“경유시장 5~6% 이상은 어렵다”

독일에서 바이오디젤의 시장성과 경제성은 무궁무진할까? 물론 한계는 있다. 독일에너지기구 크리스토프 차이스는 “독일은 장기적으로 수소에너지를, 단기적으로는 바이오디젤을 대체에너지로 보급한다는 전략을 세워 추진해왔다”며 “앞으로 전체 경유시장의 5∼6%까지 바이오디젤이 확대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생산가능성이란 측면에서 어렵다”고 말했다. 유채꽃 재배면적이 제한돼 있어서 원하는 만큼 원료를 사들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또 기후변화로 유채재배가 줄어들면 유채기름값이 폭등해 바이오디젤 가격이 경유보다 훨씬 비싸질 수도 있다. 특히 바이오디젤에도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대형 석유회사들의 요구가 차츰 터져나오는 가운데 독일연방의회에서 바이오디젤에 석유세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논쟁 중이다.

베를린·니더작센= 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