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언제까지 인계철선에 목맬 건가!

등록 2003-05-15 00:00 수정 2020-05-02 04:23

주한미군 한강이남 재배치 안보와 큰 상관없어… 중요한 것은 조기경계와 초기대응 능력

지난 5월9일 고건 국무총리는 총리로는 처음으로 미 2사단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고 총리는 사단장 존 우드 소장에게 주한미군의 주둔여건 개선을 약속하였다. 그에 앞서 5월1일에도 손길승 전경련 회장이 2사단을 방문해 미군장병들을 격려한 바 있다. 이처럼 우리 주요인사들이 미 2사단을 잇달아 방문한 것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미 지상군의 한강이남 재배치 문제를 잠재우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우리가 죽으러 왔나” 미군들도 반감

그동안 우리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 때까지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 논의가 유보돼야 한다”는 자세를 견지해왔다. 미 지상군의 재배치문제는 5월1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핵심의제의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양국 실무선에서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회의를 진행 중이기 때문에 최종적인 결론에는 이르지 못하고, 원칙의 천명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흔히 주한미군의 역할은 건드리면 터지게 만들어놓은 부비트랩의 인계철선(trip-wire)과 같은 것이라고 규정되어왔다. 하지만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은 인계철선개념을 ‘파산한 개념’이라고 말한 바 있고, 허바드 미국대사는 “우리는 한국을 지키려고 온 것이지, 죽으러 온 게 아니다”라며 이 용어사용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미 2사단을 방문한 고 총리가 ‘인계철선’ 대신에 ‘전선의 동반자’(frontline partnership)라고 고쳐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주한 미 2사단을 한강 이북에 배치하여 인계철선 역할을 맡긴 것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미국의 자동개입조항이 없는 데 따른 불가피한 보완조처라고 해석되어왔다. 실제로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공통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in accordance with its constitutional processes) 행동할 것”이라고 규정하여 미국의 자동개입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북대서양조약 제5조가 “병력 사용을 포함한 필요한 행동을 곧바로(by forthwith … such action as it deems necessary, including the use of armed force)” 취한다고 하여 미국의 자동개입을 명시한 것과 구별된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북한군이 재차 남침해왔다고 가정할 때, 미국은 새로운 한국전쟁에 자동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헌법상의 절차에 따라 미 의회의 동의를 거쳐 파병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전쟁이 발발해도 미국이 참전할지 확정적이지 않으며, 설사 참전결정이 내려지더라도 미군 투입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된다. 따라서 북한은 이러한 조약상의 허점을 노려 △먼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미군 없는 상태에서 속전속결을 통해 미국의 개입 이전에 남한 전체를 무력장악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동개입조항’이 왜 유독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만 빠진 것인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이 동맹국들과 맺고 있는 미-일 안보조약이나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미국(ANZUS) 안보조약,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에도 자동개입조항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자동개입조항 포함 안 된 안보조약 많아

이러한 사실은 주한 미 지상군의 인계철선 역할이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자동개입조항이 없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라는 세간의 주장이 근거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주한 미 지상군이 한강이북에 배치되어 ‘인계철선’ 역할을 하는 것은 자동개입조항이 있고 없음과 관계없을 뿐만 아니라, 수도권이 휴전선에 근접해 있어 북한의 장거리포 사정거리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다. 주한 미 지상군의 전진배치의 의의는 북한의 남침징후를 조기발견하고 초전에 무력대응할 수 있는 막강한 화력을 전방에 배치해둔다는 데 있는 것이다.

북한이 기습남침하게 되면 종심(縱深)이 짧은 한반도에서는 어차피 전방과 후방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북한군의 남침에 대한 조기 경계경보능력과 초기 대응방어력이지, 반드시 미국의 자동개입을 위한 인계철선의 역할이 아니다. 한국은 이미 세계 13위의 경제력을 가진 중견국가이며, 지정학적으로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을 잇는 중심이기 때문에 미국의 견지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나라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때 미국이 참전을 망설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미국이 군정을 마치고 철수했던, 피폐하고 낙후된 1949년의 한국과 오늘의 한국이 가진 전략적 가치는 천양지차다.

따라서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자동개입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주한 미 지상군의 인계철선 역할을 고집하고 한방이남 재배치를 반대하는 것은 난센스다. 미군의 인계철선 역할이란 자동개입의 필요성보다는 한국 국민과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심리적인 안정의 필요성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물론 심리적 불안정은 국민의 안보불안과 외국인들의 투자 기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훨씬 안보적으로 취약한 이스라엘의 국가신용등급이 한국보다 높으며, 더군다나 이스라엘은 미국과 군사동맹관계도 맺지 않고 단지 ‘특별관계’에 있을 뿐이라는 점을 참고로 삼을 수 있다.

주한 미 지상군의 후방재배치는 한국 내 미군기지와 시설의 통폐합과 관련되어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다. 2002년 3월29일에 합의된 ‘연합토지관리계획(LPP) 협정서’는 이미 한-미 두 나라 국회의 동의를 거쳐, 같은 해 10월31일자로 정식 발효되었다. 이 협정서에 따라 2011년까지 한강이북의 미 2사단 군사기지 가운데 문산·파주 지역은 한국군이 인수하고, 의정부·동두천 지역은 계속 미군이 담당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미 국방부가 의정부·동두천 주둔 미 지상군마저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할 테니 오산·평택 지역의 땅 500만평(미 8군사령부 기지 100만평 포함)을 새로, 그것도 2005년까지 내놓으라고 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위해서도 재정립 필요

하지만 주한미군의 재배치 문제를 굳이 회피할 필요는 없다. ‘한국방위의 한국화’라는 목표로 볼 때도 주한미군의 한강이남 재배치와 그에 따르는 한국군의 전방지역 방위는 언젠가 이루어야 할 과제이다. 다만, 우리 한국군이 제대로 대응태세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한 미 지상군의 한강이남 재배치가 문제 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북핵문제의 해결 이후에 미 지상군의 재배치문제를 논의하자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 국민과 외국인 투자자의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이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주한 미 지상군의 재배치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한강이북에 배치된 주한 미 지상군은 한국군이 보유하고 있지 못한 조기 경계경보능력과 막강한 초기 대응능력을 갖고 한국방위의 보완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미 지상군의 한강이남 재배치에 따라 한국군은 미 2사단이 보유한 이러한 능력을 이전받거나 구매할 필요가 있다. 한국군은 북한이 휴전선 인근에 집중 배치하고 있는 수천문의 장사정포와 야포로부터 수도권을 방어할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 미 2사단은 대공미사일 패트리엇 대대, 아파치 공격용 헬기, 다연장로켓포, 구경 155mm 자주곡사포, B2 브래들리 장갑차, 신형 M1 에이브람스 전차 등 막강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하피(HARPY) 공대지 미사일, 대포병 레이더시스템(AN/TPQ-36, 37) 등 첨단장비도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이 이러한 최신 군사장비를 그대로 한국군에게 이전해줄지는 미지수다. 이런 점에서 주한미군의 재배치 문제를 최신 군사장비의 이전과 연계시켜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결국 주한 미 지상군의 한강이남 재배치는 미국의 자동개입이나 인계철선 역할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며, 이 문제는 한국군의 전력 증강을 통해 그 역할을 대체해나갈 때 비로소 원만히 해결될 수 있다. 이때 한국군의 자주국방 노력이 국방비의 대폭증가라는 모순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 문제는 국방예산의 대폭적인 증액 없이 국방행정의 합리적인 운영을 통해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조성렬 |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연구위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