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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1등급이라고?

등록 2002-07-17 00:00 수정 2020-05-02 04:22

미국이 매기는 인신매매방지 등급 두 계단 뛰어오르자 여성계 곱지 않은 눈길

미국은 지난 6월5일 를 내며 각국의 인신매매방지 등급을 발표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2000년 10월에 만들어진 미국의 ‘인신매매 및 폭력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일명 반인신매매법)은 미국으로 팔려오는 여성들의 실태를 해마다 조사·공개하도록 정하고 있다. 인신매매가 범세계적 범죄인 만큼 각국의 상황은 미국의 그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미국 국무부의 배경설명이다.

한국은 올해 인신매매 위험이 적은 1등급 국가로 분류돼 지난해 3등급에서 두 단계나 올랐다. 1등급 국가는 인신매매를 방지할 법이 있고, 정부의 의지가 있으며, 제대로 방지하고 있는 상태의 나라를 뜻한다.

한국이 드물게 두 단계나 뛰어오른 까닭은 법무부가 한국 정부의 인신매매방지 노력을 강조하는 설명서를 미국 국무부에 보낸 덕이다. 법무부의 설명서는 20001년 한해 인신매매 관련 사건을 100건 넘게 기소했고, 범정부 차원에서 피해자 보호를 위한 다각적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난해 미국이 한국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발표해 국가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성부의 집행 내용 등을 종합해 정확한 정보를 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무부가 미국에 보낸 이 설명서에 대해 여성계는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낸다.

여성계가 꼽는 단적인 이유는, 한국은 성매매를 목적으로 한 인신매매를 정의하고 이를 방지할 기본 법조차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형법 등에 따른 온갖 성범죄의 기소 건수를 집계해 인신매매 처벌 의지가 있는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게 여성계의 견해다. 또한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피해자 쉼터와 가출청소년을 위한 선도보호시설까지 정부가 운영하는 성매매 피해여성을 위한 시설로 집계한 것 역시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조영희 인권복지실장은 “미국이 자기들 입맛에 맞게 각국의 등급을 매기는 것은 언짢지만, 사실은 정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지난해와 올해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상황인데 한국이 두 단계나 등급이 올랐다는 뉴스에 반색을 표할 수만은 없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2003년 조사 때까지 인신매매 방지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 나라에 대해서는 경제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이란·이라크·소말리아 등 통계나 정보가 없어 등급을 매기기 어려운 나라에 대해서는 패널티를 가한다고 했다. 자국이 정한 기준으로 자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를 줄세워 단죄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미국의 국가별 인신매매방지 분류기준은 고무줄식이라는 비판도 있다. 필리핀·오키나와와 함께 미군 기지 주변에 성매매를 목적으로 한 세계에서 가장 큰 기지촌이 있고, 기지촌을 중심으로 성매매업이 번창한 한국이 이런 미국에 ‘잘 보일 생각’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지적이기도 하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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