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코로나19 공포라는 유령이. 감염병 공포는 유령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감염병 공포는 바이러스보다 더 빠르게 퍼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 몸에 침투해 생명의 장기인 폐를 마비시킨다면, 공포 바이러스는 인간의 컨트롤타워인 뇌에 침입해 이성을 마비시킨다. 폐가 마비되면 숨을 빼앗겨 생명이 스러진다. 이성이 마비되면 일상생활이 비정상으로 된다. 그 끝은 혼돈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이제 세계 대유행 감염병을 뜻하는 팬데믹(Pandemic)이란 새로운 이름을 단 코로나19는 세계 곳곳을 질주하고 있다. 감염병 공포는 한국뿐만 아니라 각국에서 경제·보건의료·정치·종교·스포츠·문화·교육 등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것들을 바꿔놓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밑바닥에 감염병에 대한 비정상적인 공포가 깔려 있다.
공포는 감염병의 영원한 동반자감염병은 늘 공포와 함께 찾아왔다. 어제까지의 세상에서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그렇다. 그러나 치명적인 감염병의 대유행과 관련한 공포가 지구온난화, 환경파괴 등과 맞물리면서 공포가 우리 뇌 속에 단단히 각인됐다. 인간은 오랫동안 호모사피엔스란 종 자체를 멸절시킬 수 있다는 위험의 공포에 노출됐다. 여기에는 언론·정치인·전문가·환경운동가 등이 한몫했다. 핵전쟁, 살충제()와 환경호르몬() 같은 화학물질, 인구 폭발(), 자원 감소(), 식량 위기, 에이즈, 기후 위기, 유전자변형식품, 생명공학, 질병X, 소행성·혜성 충돌 등이 위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수십 년간 대재앙을 반복해 들려주는 공포 문화는 위험끼리 서로 견인하며 더욱 증폭됐다. 이런 위험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와 소설, 미래예측 보고서, 영화 등은 사람들의 공포를 더욱 극대화했다. 아마겟돈과 세상의 종말은 때론 사이비 종교로 이어져 사회를 혼란 속에 빠뜨렸다. 상상이나 근거 없는 예측이 곧 현실이 될 것처럼 여긴 사람들 사이에서 공포 바이러스가 퍼져나가 뇌 속에 나사못처럼 박혔다. 누군가가 여기에 자극을 주기만 하면 언제든지 공포 바이러스는 활성화된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이 이 공포 바이러스를 다시 일깨웠다.
인간이 위험을 대하는 태도는 위험마다 다르다. 물론 사람마다, 나라마다 다르기도 하다. 폴 슬로빅 등 위험 사회학·심리학자들은 사람이 특히 더 위험하게 느끼는 위험의 특성이 있다고 말한다. 신종 감염병 같은 새로운 위험, 비자발적 위험, 전세계에 치명적 결과를 가져다주는 위험, 과학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위험, 주의해도 피하기 어려운 위험, 균등하지 않게 영향을 끼치는 위험 등에 상대적으로 더 크게 위험을 느낀다는 것이다. 즉, 공포를 가지게 된다. 코로나19를 비롯한 많은 치명적 감염병이 이에 해당한다. 방역에서는 일반인의 이런 위험 인식을 바탕으로 위험(위기) 소통과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하면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최근 발생한 에볼라바이러스병과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신종플루 등에 의한 인명 손실은 이전 유행 감염병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결핵은 봉건체제를 무너뜨린 중세의 흑사병보다 더 무서운 감염병이다. 지금도 전세계 인구 4분의 1이 감염된 결핵은 19세기 초엔 전체 인구 7분의 1을 숨지게 했을 정도로 흔한 질병이자 정말 오래된, 치명적인 감염병이었다. 지금까지 10억 명 넘는 희생자를 냈다고 한다. 1918년 전세계를 휩쓴 공포의 스페인독감(인플루엔자A)은 5천만 명 정도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2003년 사스의 세계 유행은 환자 8096명과 사망자 774명을 낳았다. 2012년부터 산발적으로 중동과 한국 등에서 유행하는 메르스 사망자 수도 2012년 첫 환자 발생 이후 환자 2500여 명과 사망자 862명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홍콩독감에 이어 두 번째로 팬데믹을 선언한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 때는 7억~14억 명이 감염돼 15만~57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공포는 환자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낳는다. 감염병 역사에서 고전적 이야기다. 나병(지금의 한센병), 페스트, 결핵, 매독 등 거의 모든 감염병에서 벌어진 보편적 현상이다. 감염병이 병원미생물 때문에 생긴 것인 줄 모르던 시대나 알던 시대를 구분하지 않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선언된, 첨단과학기술 시대의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포가 몰고 오는 혐오와 차별, 그리고 낙인 문화는 20세기 후반 에이즈 유행 때 극명하게 잘 드러났다. 1980년대 초반 원인 모를 괴질이 미국을 덮쳤다. 인간 면역체계가 무너져 각종 감염병에 손쓸 수 없고, 희귀암이 게이 청년층에 퍼졌다. 3년 뒤 인간 면역체계를 공략하는 생면부지의 바이러스가 범인임을 밝혀냈다. 그리고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의 수혈이나 혈액제제, 안전하지 못한 성관계로 전염되는 것을 알았다.
이런 과학적 성과에도 사람의 행동은 비이성적이었다. 감염자·환자 가까이 가기를 꺼리고 동성애자를 차별했다. 환자를 부도덕한 인간으로 매도하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일각에선 ‘도덕적 타락(동성애)에 대한 신의 벌’이란 낙인을 찍었다. 한국에선 아직도 이런 낙인 문화가 사라지지 않은 채 일부 기독교단체가 ‘동성애=에이즈’란 혐오를 확대재생산하는 주장과 시위를 하고 있다. ‘에이즈 감염자나 환자는 길거리를 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집단수용시설에 격리해야 한다’ ‘에이즈 감염자의 입국을 막아야 한다’ 등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주장이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 종교인, 정치인, 언론인 사이에서 막힘없이 퍼져나갔다.
에볼라바이러스병은 어느 감염병보다 높은 치사율 때문에 전세계, 특히 진원지인 아프리카에서 공포의 감염병으로 통한다. 라이베리아 출신 간호사 살로메 카르와는 그 공포의 희생자였다. 그는 2014년 에볼라바이러스병 유행 때 목숨 걸고 환자들을 돌봤다. 그 와중에 감염됐지만 살아남았다. ‘에볼라 전사’란 호칭을 얻었다. 그해 미국 시사주간지 은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인류가 희생과 박애의 상징으로 여겼던 그는 산후 합병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의료진은 에볼라바이러스병이 재발한 게 아니냐고 의심해 진료를 거부했다. 출산 닷새 만에 카르와는 숨지고 말았다. 감염병 공포가 낳은 비극이었다.
공포는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지고 유지된다. 언론의 주특기는 ‘공포 팔기’다.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겁주기는 시청자와 독자의 눈과 귀를 단박에 사로잡기 때문이다. 언론이 보인 공포 팔기는 나중에 주요 성찰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반성은 잠시뿐이다. 다시 재난이 발생하면 주특기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영국 생물학자 로빈 베이커는 에서 “인간에게 나타나는 불합리한 두려움의 원인은 매스컴의 과대 선전과 지나친 상상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맞아 시민들이 아직 자신의 지역에서 새로운 환자가 생긴 것을 모르는데도 우리 언론은 첫 발생 소식을 전하면서 그 지역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는 ‘예언적 공포 팔기’ 보도를 한다. 다들 공포에 떨고 있다는 소식에 공포를 느끼지 않는 사람조차 함께 공포 떨기 행동에 들어간다.
잘못된 믿음이 있는 한 공포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중세의 페스트, 즉 흑사병은 그냥 역병이 아니다. 대역병(Great Plague)이다. 유럽 인구 3분의 1을 포함해 유라시아 대륙에서 최대 2억 명가량을 죽인 것으로 추산되니 그렇게 불릴 만하다. 당시는 무엇이 이런 공포의 ‘괴질’을 일으키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신의 벌이나 공기 중 사악한 기운, 곧 장기(氣) 때문이라고 여겼다. 때론 자기 몸을 채찍질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편타고행(鞭打苦行)을, 때론 악마와 손잡고 흑사병을 퍼뜨렸다며 수많은 유대인을 화형에 처하는 ‘마녀사냥’을 벌이기도 했다.
감염병 유행을 ‘신의 벌’로 보는 인식은 코로나19가 대유행하는 21세기에도 남아 있다. 신천지 이만희 교주가 ‘마귀의 짓’이라거나 일부 기독교 목사와 교인이 신천지 교인들의 집단감염을 두고 ‘하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벌어진 벌’로 보는 것이다.
지금은 공포보다 과학과 이성에 기대야 할 때다. 이탈리아는 중국에 이어 코로나19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국가다. 제노바는 14세기 흑사병이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해진 창구 구실을 했다. 제노바는 지금 공포의 도가니 속에 있다. 파스타면 등 먹거리와 생필품을 사러 나온 한 노인은 가게에 이미 물품이 동난 것을 보고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며 한숨을 쉬고 돌아갔다. 어느 학교 교장은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비이성적인 일들을 일갈하고 이성을 촉구하며 학생들에게 편지를 썼다. 이 편지는 감염병 공포가 가져다주는 위험과 과학과 이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다. 이는 결코 이탈리아만의 일은 아니다.
“외국인을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정부 당국 간에 격렬히 충돌하고, 최초 감염자를 히스테릭할 정도로 찾아내고, 전문가를 경시하며, 감염됐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사냥하고,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엉터리 치료법을 시도하고,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의료 위기가 오는 등 거의 모든 것이 19세기 이탈리아 문호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페스트를 소재로 쓴) 소설 (1827)에 그려져 있습니다. 사실 이는 오늘치 신문에서 튀어나온 내용이라 해도 무방해 보입니다. 질병이 전세계에 급속히 확산하는 건 우리 시대가 남긴 결과입니다. 수백 년 전에는 그 속도가 조금 느렸을지 모릅니다. 예나 지금이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벽은 없습니다. 이런 사태가 초래하는 큰 위험 중 하나는 인간관계에서 ‘독을 품는 것’, 그리고 시민의 생활을 야만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감염병 공포가 만들어내는 광기와 혼돈의 사회에서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일침이다. 인간이 공포의 포로가 되는 한 감염병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강력한 마취제다. 이성이 마비되면 마녀사냥을 하고 희생양을 찾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은 위험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사람들은 대개 치명률이 높은 감염병에 공포를 더 느낀다. 또 쉽게 전파되면 치명률이 높지 않더라도 불안에 떤다. 만약 치명률도 높고 전파도 잘된다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여기에다 어떻게 전파되는지도 잘 모른다면 공포는 증폭된다. 코로나19는 인간이 공포를 느끼게 하는 두 요인 가운데 ‘강한 전파력’이라는 확실한 무기를 지녔다.
하지만 우리는 코로나19의 정체를 상당 부분 알아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정체가 더 확실하게 드러날 것이다. 따라서 임상 경험과 과학기술로 알아낸 지식을 시민과 잘 소통하면 확산을 막고 그 속도도 늦출 수 있다. 또 감염될 경우 사망에 이를 위험이 큰 취약계층의 감염 관리를 잘하면 두려움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감염병은 그 자체로 위험 요소지만 때론 감염병 공포가 더 심각한 피해를 준다. 공포는 혼돈을 낳기 때문이다. 미국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은 에서 “위험이 실질적으로 심각한데도 사람들이 이를 느끼지 못하거나 반대로 사소한 위험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숙의민주주의만큼 좋은 도구는 없다”고 밝혔다. 외국의 저명한 학자들이 최근 잇따라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언론의 자유 보장과 민주적인 책임 시스템을 갖춘 한국의 사회·정치적 체제를 모범적 사례로 꼽는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코로나19 감염병과 그 공포에 면역력을 길러주는 건, 정확한 정보에 기초한 민주적인 소통과 긍정과 희망이라는 백신이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보건학 박사 jjahnpark@hanmail.net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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