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도 배기고, 목도 아프고, 도저히 잠이 안 와서 일어나 앉았다. 물 한잔 마시고 나니 지금 이 순간을 짧게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시간일 수도 있다. 늦은 밤 11시7분이 지나는 시간에 진료실에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는 일이 또 있을까. 흐르는 강에는 같은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지 않은가. 하여 잠시 몸 담근 이 시간을 기록한다.
진료실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유튜브에서 잔잔한 음악을 골라 틀었다. 5년 전 들여놓은 블루투스 스피커는 아직 쓸 만하다. ‘타닥타닥’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를 뚫고 음악이 흐른다. 문득 얼마 전 환자에게 선물받은 화분을 들여다본다. 아, 맞다. 꽃봉오리가 터지려고 했지. 다가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신입생처럼 얼굴이 상기된 봉오리 하나가 막 터져나오려 한다. 참 귀엽고 생기롭다. 서너 달 전 환자가 선물해준 화분이다. 환자가 다음 진료 예약일에 오면 꽃봉오리 터진 것을 보고 기뻐할 것이다. 그전에 난 하나를 가져다줬는데 지금도 잘 키우고 있다. 덕분에 그 환자가 진료받으러 오면, 으레 우리는 화분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한다.
“아직도 꽃대가 안 나왔어요? 하, 그것참. 작년에도 안 나오더니 나올 때가 되었는데 말이에요.”
“뭐, 올해는 나오지 않겠습니까? 기다려보죠.”
“아니, 그냥 내가 다음에 올 때 꽃대 나온 거로 하나 가져다드릴까요?”
“괜찮습니다. 놓을 곳도 없어요.”
화분 이야기로 시작하다보면 사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오간다. 다음에는 막 피어난 꽃나무의 이름을 물어봐야겠다. 이름도 모른 채 키우고 있었다.
밤 11시30분이 지나고 있다. 아직 여기서 세 시간을 더 머물러야 한다. 당직도 아닌데 병원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응급실 응급의학과 과장님들과 의료진이 모두 격리된 까닭이다. 저녁에 119구조대가 환자 한 분을 데리고 왔다. 환자는 심장이 정지돼 응급실의 모든 인력이 동원돼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환자의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에선 폐렴이 발견됐고, 소견상 바이러스 폐렴이 의심됐고, 역학 관계상 코로나19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뒤늦게 바이러스 검사를 했고,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접촉자 모두 격리됐다.
물론 응급실은 폐쇄됐다. 병동 입원환자를 돌볼 의사가 없게 됐다. 갑작스럽게 일이 터지니 병원 직원이 전화했고, 나는 저녁을 먹으면서 전화를 받았고 그런 연유로 병원에 오게 되었다. 병동을 대강 한 바퀴 돌고, 별일 없음을 확인한 뒤 나는 내 진료실에서 환자의 코로나19 검사가 음성으로 확인되기만을 기다리면서 대기 중이다. 오늘 전국에 코로나19 환자가 100명 이상 발생했지만, 우리 지역 확진자는 없었다. 조금만 기다리자. 두 시간 뒤면 결과가 나오고, 아마 검사 결과는 음성으로 보고될 것이다. 그리고 격리된 의사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면 나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사람이나 사회는 복잡한 부품이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 같지만, 기계가 따라 하지 못하는 융통성이 있다. 하나가 모자라면 다른 하나가 채워주고, 채워주다 지치면 또 다른 하나가 도와주고 응원한다. 나 역시 병원에 긴급한 문제가 생겼으니 와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받았을 때, 즉시 가겠다고 흔쾌히 대답했다. 까짓것, 나도 아쉬웠던 적 많았고 도움을 늘 받았던 사람으로서 이까짓 것 못할 리 없지 않은가.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만두를 남길 수는 없더라는 것이다. 세 개째 만두를 반으로 잘랐을 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면서 잘린 만두 사이로 만두 국물과 김치를 밀어 넣고 있었다. 김치만두에 김치를 더해 먹으면 맛이 기막히다는 이 식성은, 어쩔 수 없이 유산균에 중독된 한국인의 입맛인가.
“선생님, (이런저런 상황 설명 생략) 와줄 수 있으세요? 지금 좀 긴급한 상황이라.” “예, 알겠습니다.” 만두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 대답이 짧았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포만감은 사라지고, 빗줄기는 더 거세어져만 간다. 이름 모를 꽃송이와 함께 보내는 작은 방의 정적 속에 나는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을 적어 내려가고 있다. 이런 당직은 정말 할 만두(도) 하다.
2월22일 방전늦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오늘 휴진이었지만, 이른 아침부터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오는 통에 잠을 설쳤다. 간밤에 상태가 나빠진 환자도 있었고, 오늘 갑작스레 퇴원을 요구하는 환자도 있었다. 모두 다 전화로 해결해야 했다. 아직 피곤이 덜 풀린 몸을 끌고 자동차에 올랐다.
배터리 방전이 잦은 원인이 배터리가 오래된 탓이라고 들었기에, 병원 안 가는 오늘 배터리를 교체하기 위해 자동차정비소를 찾았다. 고객휴게실 텔레비전에서 놀라운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대구와 경북 청도에서 집단발병이 심각한 상태였다. 어떻게 한 병원에서 100명 가까운 환자가 진단될 수 있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아무리 밀폐된 공간이라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병원은 고령 환자와 만성질환자가 모인 곳이어서 병원 내 집단감염 소식은 다수의 사망자 소식을 예고했다. 또한 폭발적으로 환자 수가 늘어난 지역은 병원과 의료진이 대처하기 쉽지 않을 것이었다. 보건 당국이 대책을 마련해 조처하고 있음에도 걱정이 앞선다. 시민들도, 방역 당국도, 일선에서 일하는 의료진도 모두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낼 것이다. 어휴, 이게 뭔 일이람. 불과 일주일 전에는 전혀 다른 미래를 예상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지금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칫 기나긴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2월24일 삶의 템포오전 내내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있기는 쉽지 않았다. 천막인 임시진료실의 추위는 둘째 문제였다. 마스크와 고글과 머리 위까지 덮어쓴 보호장구가 답답함을 싫어하는 나에게는 몹시 불편했다. 오전 일과가 끝나고 모든 장구를 벗어버렸을 때, 피부가 숨을 쉰다는 걸 새삼 느꼈다. 진료실에서 비누로 싹싹 세수하고, 납작 눌린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흔들어 깨워 두피가 숨 쉬게 해주었다. 콧등 위 가로로 새겨진 고글 자국은 저녁이 될 때까지도 보였다.
선별진료소는 환자들로 북적였다. 전국에 코로나19 환자가 가파르게 늘면서 병원을 찾는 환자 중에 선별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코로나19 검사 건수도 늘었다. 정부는 위기경보 단계에서 심각 단계로 상향 발표했고, 병원에서도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됐다. 기존 선별 진료에서 더 나아가 모든 호흡기 증상 환자를 다른 경로를 통해 구분된 공간에서 진료하고, 호흡기 입원환자도 병원에서 따로 구분해 치료해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요구하는 ‘안심병원’ 충족조건이다.
병원에서는 점심시간에도 모여 계획을 세웠다. 방호복을 벗어버리자마자 점심 회의에 참석하고, 밀린 병동 환자를 살피다보니 오후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분주하고 고된 날이다. 퇴근길 라디오 진행자가 말했다. “평소 퇴근길답지 않게 통행이 원활합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가 말했다. “마트에 갔더니 물건이 많이 없더라고. 어떤 할아버지는 쌀을 60㎏ 사 갔다네.” 누군가 삶의 속도를 맞춰주는 메트로놈을 빠르게 조정해놓은 느낌이다. 사실, 사람들 몸속에 대사 리듬을 빠르게 하는 아드레날린 분비량이 늘었을 거고, 몸의 대사 속도는 빨라졌을 것이다. 사람들의 몸 움직임은 빨라졌고, 정신은 분주해졌고, 목소리는 반음 올라갔다.
오후 회진 때였다. 80살 ㄹ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오셨어?” 할머니의 어투와 표정이 느긋하다. 내가 되물었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
“맛있었지.”
“뭐가 맛있었어요?”
“간장하고 김치하고 먹었지.”
“애걔, 그게 맛있었어요?”(건더기 하나 없는 허여멀건 죽에 간장과 김치 두어 점이 맛있을 리 있을까?)
“맛있어, 맛있었지.”
간결하고, 나직하게 오가는 대화가 맛깔났다. 그 대화 속에는 어떤 분주함도 긴장도 없는 평온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지난주 목요일 인공호흡기를 떼는 데 성공했다. 2주 정도 폐렴으로 생사의 기로에 있었던 분이다. 보호자에게 연명치료를 안 하는 게 어떨지 생각해보라고도 했는데, 할머니는 폐렴을 이겨내고, 혼자 숨 쉬는 것도 해내고, 기어코 입으로 식사하는 데도 성공했다. 어찌 맛없을 수 있겠는가. 먹는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입으로 한입 한입 떠넣고, 오물오물 씹어 삼킨다는 것 자체가 소소한 기적이다. ‘바로 그 속도’ 한술 두술 입으로 떠넣어 먹고 씹어 삼키면서 행복을 느끼는 그 속도가 ‘삶의 속도’의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할머니가 인공호흡기에 의존했던 2주간의 생활을 끝내고, 튜브를 입 밖으로 제거한 뒤 내게 첫 번째로 한 말은 너무 재밌고 좋았다. 그때도 할머니는 평온한 표정과 잔잔한 음색으로 이렇게 말했다. “살겠어?”
2월25일 이중은폐 감염오후로 접어들자, 비가 그쳤다. 햇살이 임시진료실 천막에 내리쬐자 오후의 한기가 조금 가셨다. 날만 좋았으면 직원들이 조금 고생을 덜 했을 텐데, 오늘 아침은 비도 오고 바람까지 불어서 원무를 보고 환자를 보고 진료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발끝이 얼얼했을 것이다. 평소 같으면 답답했을 법한 레벨D 방호복이 이런 날에는 오히려 포근하고 편안함을 준다. 지난 주말에는 비바람에 천막이 날아가기도 했다. 오늘 오후 늦게 임시사무실용 컨테이너가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바람으로부터 발끝은 좀 지켜줘야 하지 않겠나 싶다. 불안도 바람 타고 돌아다니는 듯싶다. 외국이나 대구 지역에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선별진료소를 찾았다. 오늘은 코로나19 검사자 중 증상이 없는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바이러스도 바람처럼 천막이나 컨테이너 가건물로 막아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바이러스는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사람을 숙주로 하기 때문에 천막보다 세고, 컨테이너보다 세고, 당연히 병원 건물보다도 더 세다. 그렇잖은가. 킹을 잡으면 체스판은 끝난 거니까. 코로나바이러스는 킹의 몸속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 일종의 기생충(Parasite)이다. 부잣집에서 일하고 월급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그 지하실에 살림을 차리고 아예 집 밖엔 나갈 생각도 하지 않는 ‘세포 내 절대 기생체’다.
그 기생체는 주인집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얹혀살면서도 식구를 늘려가려는 건 생명의 본성이니까. 숙주의 유전물질을 빌려 쓰면서 번식하는 것인데, 주인집의 주방과 침실을 빌려 쓰면서 자손을 늘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주인집에 들키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 젊은 집주인들은 똑똑하게 무인 보안시스템이나 감시카메라를 이용해서 무단 침입한 놈을 초기에 잡아내거나, 면역력이 떨어진 노인들은 발견이 늦어 기생가족이 집을 점령해버리기도 할 것이다.
어찌 됐든 언젠가는 주인집과 기생가족의 혈투가 벌어지게 마련이다. 내쫓으려는 주인집과 버티려는 기생가족의 충돌! 결론은 어떻게 될까? 주인집의 대응 능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 결론이 기생체의 전파 속도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의 번식과 전파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숙주를 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숙주에 의존해서 사는 바이러스는 숙주가 사멸하면 함께 운명한다. 무단 침입한 기생체가 집주인이 되는 데 성공하는 순간, 모순되게도 기생체도 함께 운명하게 된다. 하여 사람에게 경미한 증상만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오래오래 산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사회의 코로나19 전파는 행운 하나를 얻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보이지 않게 활동하는 사람들’인 신천지를 만난 것이다. 일반적으로 종교행사를 위해 사람들은 실내 공간에 모인다. 신천지 예배의 좌석 배치는 일반 종교보다 훨씬 밀접하다. 그리고 이들은 아주 열심히 포교 활동을 한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모이는데,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만나는 포교 방식을 보인다. 자기 신분이 드러나면 곤란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진단이 늦어질 것이고, 그렇다면 지역사회로의 확산을 막을 수 없게 된다. 바이러스로서는 절호의 기회일지 모르나, 방역 당국에는 정말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바이러스도 안 보이고 감염자도 안 보이는 ‘이중은폐(double blind) 감염’ 상태가 된 것이다.
드라마 의 마지막 회가 끝났다. 모든 게 김사부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만큼 사람은 성장하는 법이야.” 이렇게 말한 김사부는 자신을 싫어하는 박 교수마저 원장 자리에 앉히는 내공을 보여주었고, 두 쌍의 행복한 결말을 예고하면서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마지막 회에서 자신이 기생체임을 고백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원장님 줄 한번 잡아서 성공하고 싶어 지난 10년간 여기까지 왔다 했다. 권력에 기생하다가 자립력마저 잃어버린 눈먼 사람. 이런 사람을 ‘블라인드 패러사이트’(blind parasite)라고 이름 붙여본다. (그 악역을 한 배우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잘해냈다.) 드라마는 악역이 있어야 주인공이 빛나는 법이고, 권력에 빌붙는 사람이 있어야 “사람이 먼저야”라고 외치는 의사가 빛나는 법이다. 세상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여러 난관이 있지만 생명체는 원래 상처를 얻은 뒤에 더 단단해지는 법이니까. 한국 사회를 코로나19가 강타하고 있지만, 그리고 많은 숙제를 남겨줄 것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드라마가 해피엔딩이 될 것을 믿는다.
의대생 시절, 아마 생물학 시간이었을 것이다. 바이러스 질환을 배우다가 깜짝 놀랐다. 고등학교 농업 시간에 배웠던 ‘비루스’와 ‘바이러스’가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였다. 농업 교과서에는 비루스(Virus) 병을 농작물을 황폐화하는 몹쓸 역병 같은 것으로 소개했고, 선생님은 이것을 아주 차지게 발음해서 나는 비루스 병을 인간의 농사를 빌어먹을 정도로 헤집어놓는 나쁜 병으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비루스’를 병원성 미생물을 통칭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연쇄살인범의 이름 같은 고유명사로 이해했던 것이다. 바이러스의 실체를 알게 된 뒤 내 의식 속에 비루스는 급격히 주가 폭락! ‘애걔걔, 고작 RNA 덩어리였던 거야?’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런 ‘공포’라는 감정의 격하는 아마 무지의 불안이 꺼지면서 생긴 현상일 것이다.
바이러스의 정체가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100년 전에 바이러스 질환이 사람들에게 주는 공포란 어땠을까? 상상해보자. 역병이 돌자 사람들이 죽어가고 흉흉한 소문이 돈다. 마을 공동묘지는 이미 만석! 거리에 주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뒤의 외로움을 견뎌내는 과정이라 했던가.
역병의 현장은 그 외로움에 더해 임박한 죽음의 공포를 함께 견뎌내야 한다. 누구는 이를 천벌이라 하고, 조상을 못 모신 탓이라 하고, 누군가 한을 품고 죽은 탓이라고도 한다. 천연두나 나병 같은 피부병변을 동반하는 질환은 사람들에게 극심한 혐오를 유발해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격리되고, 콜레라 같은 설사병이 돌면 도시 전체에 풍기는 분변 냄새가 공포를 가중했을 것이다. 그때의 공포와 불안은 지금 퍼지는 사태의 몇 배 또는 몇십 배에 이르렀을 텐데, 사실 그 정도는 잘 가늠되지 않는다.
어쩌면 극대화된 공포보다 체념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 생은 망했어!”라고. 1918년 스페인에서 시작한 독감은 전세계 5천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때도 바이러스는 현미경으로도 확인할 수 없는 미생물이었고, 사람들은 막연함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공포에 떨었다. 페스트가 유럽 대륙을 휩쓸었을 때도, 천연두에 라틴아메리카의 인디언이 몰살당할 때도 바이러스는 무지의 어둠 속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불안을 유발했다.
가깝게는 100만 명이 사망한 1968~69년 홍콩 독감 때도 바이러스는 뒤늦게야 정체를 드러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을 때, 적의 파괴력과 행동양식이 베일에 가려 있을 때 ‘적에 대한 공포’는 그 자체가 무기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은 것은 나도 알지만, 대략 느낌만 이해해주리라 양해를 구하면서 다시 한번 내 경험을 말씀드린다. 비루스가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웠던 이유도 대략 비슷한 것이다.
환자 “가슴이 답답해요. 누워 있어도 한숨을 쉬게 되고요. 숨이 모자란 거 같아요.”
의사 “언제부터죠?”
환자 “그제 밤부터요.”
의사 “심리적으로 생긴 증상 같아요. 요즘 걱정이 많으시지요?”
환자 “네, 좀 걱정이 돼요. 돌아다닐 수가 없잖아요.”
의사 “걱정 마세요. 안심하시면 좋아질 겁니다.”
환자는 훨씬 편안한 표정으로 진료실 밖으로 나가려다가 멈칫 돌아보며 말한다.
“그런데요. 주사 한 대 주시면 안 돼요?”
진료실에서 이런 대화가 부쩍 늘었다. 뉴스를 보면 나 같은 사람마저 무섭고 심장이 조금 뛴다. 다시 마음을 잡고 삶의 속도와 리듬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비루스가 아니라 바이러스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가 대처하는 바이러스는 외모뿐만 아니라 설계도(유전자 염기서열)까지 알고 있다. 그 설계도의 일부를 증폭시켜 상대의 존재를 파악(PCR검사)하고 역학조사로 대강 어디 있는지도 안다. 우리는 인간 역사상 역병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최강파워 최강똘똘 팀이다. 물론 코로나19에 대해 안심하고 방심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과도한 걱정이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전염병 대응은 ‘과도하게’, 그러나 걱정은 ‘합리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2월27일 멋진 의료인들하루 새 환자가 505명이 늘었다. 총 1766명이다. 가파르게 느는 확진환자는 대부분 대구·경북 지역 주민이다. 오늘은 치료받지 못한 채 자가격리 중이던 70대 환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확진환자가 몰려 있는 지역의 환자들과 병원은 정말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어제 대구시 의사회장의 호소문이 있었고, 하루 만에 의사 250여 명이 확진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자원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분들의 헌신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코로나19 뉴스가 전국을 휩쓰는 통에 독감환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손 씻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개인위생에 신경 쓰는 덕에, 독감뿐 아니라 호흡기 환자가 전체적으로 줄었다. 특히 독감이 유행하던 1월에는 치료제인 페라미플루를 구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바이러스 환자는 눈에 띄게 줄었지만 세균성 폐렴 환자는 여전한 것 같다.
치료 현장에서 보면 바이러스와 세균의 활동방식이 많이 다르다. 적어도 세균성 폐렴은 전염성 질환은 아니어서 유행하지 않는다. 치료할 공간으로 격리실이나 음압병실이 필요하지 않다. 병상 사이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손 위생만 잘 지키면 된다. 게다가 세균은 항생제라는 적절한 치료제가 있다. 항생제를 팔이나 다리에 정맥주사로 투입하면, 항생제는 세균을 공격한다. 세균도 살아 있고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도 똑같이 살아 있는데, 항생제는 세균만 공격한다. 항생제는 우리 몸과 구별된 세균을 공략하도록 만들어졌다.
문제는, 바이러스는 사람 세포와 구별되는 게 없다는 것이다. 세포벽도 없고, 세포소기관도 없다. 그러니 항바이러스제를 만들기 어렵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너무 작아서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바이러스가, 얄밉게도 인간이 하는 건 다 좋아한다. 비행기도 잘 타고, 여객선도 잘 탄다. 영화 을 봐서 알겠지만 고속철도인 KTX도 좋아한다. 그리고 코로나19를 통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이 녀석들은 신앙생활도 하는 것 같다. 오늘 대구 신천지 교인의 검사 양성률이 82%라고 하는 기사를 보니, 사실인 것 같다. 별걸 다 따라 한다.
한국 천주교회는 236년 만에 처음으로 미사 중단을 발표했고, 예배를 중단하는 개신교 교회도 속속 늘고 있다. 사람이 모이는 모든 행사를 취소하는 분위기다. 지난 화요일 독서 모임도 취소됐고, 아파트 단지 탁구 모임 월례회도 취소됐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바이러스 전파를 막으려는 고육지책이다. 그러나 거리를 둘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료인이다. 오늘 용기 내어 아픈 사람들 곁에 가겠다고 한 250명의 의사 선생님들이 참으로 고맙다.
3월2일 불쌍한 눈망울들고글(보호안경)은 습기가 쉽게 찬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헬멧을 사용하면서 해결됐다. 헬멧은 습기 때문에 생긴 얼룩을 없애기 위해 여러 번 벗고 닦아야 하는 고글의 단점을 완벽하게 해결했다. 게다가 고글은 주름을 남긴다. 고글을 벗고 나면 주름 자국이 제법 오래간다. 고글이 접하는 안면부가 답답한 것은 물론이다.
고글을 벗고 거울로 확인하는 깊은 주름이 맘에 달가울 리 없다. 세월이 밟고 지나간 흔적처럼, 주름은 세월을 모두 기억하는 듯 보이니까. 새로 만난 헬멧에 살짝 기분이 좋았으나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마로 집중되는 무게감이 엄청났다. 내가 예민한 거겠지만, 30분 이상 쓰고 있을 수 없다. 대단한 기세로 날 누르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썼다 벗기를 반복해야 했다.
고글의 가장 큰 단점은 따로 있다. 고글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고글이 보호하려는 ‘눈’이다. 눈망울 두 개가 글라스의 효과 때문인지 약간 커 보이고, 착 달라붙어 얼굴을 누르는 테두리 때문인지 튀어나오려는 것 같다. 고글 테두리가 시야 각도를 좁혀놓았으므로 고글 속 눈망울은 항상 정면만 응시한다. 두리번거릴 줄 모르는 눈망울들. 그래서 눈망울과 눈망울이 만날 때는 두 쌍의 시선이 평행하게 맞서게 된다. 심쿵이나 띠옹! 또는 어떤 ‘떨림’이 있을 법한 눈인사가 오갈 법도 한 각도이지만, 고글 속 눈망울들은 서로를 아무 감정 없이 바라본다.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찾아낸다면 ‘너도 힘들구나’라는 위안이나 ‘나만 힘든 게 아니구먼’이라는 위로다.
‘안심진료’가 시작됐다. 코로나19 확산에도 안심하고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이다. 우리 병원도 안심병원 서비스를 시작했다. 호흡기 질환을 가진 외래환자와 입원환자의 진료 공간과 동선이 타과 환자들과 겹치지 않게 만들었다. 안심진료를 하기 위해 병원 내부 공사가 진행됐다. 건물 밖에는 컨테이너 두 채가 새로 들어섰다. 호흡기 질환 환자는 외래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 내부로 들어오는 길도 다르고, 입원할 때의 동선과 입원실도 구분된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안심병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진은 마스크에 고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선별진료에 더해서 안심진료까지.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고글 속에 갇혀 지내는 눈망울들. 불쌍한 눈망울들. 하루빨리 이 시기가 지나가야 한다. 고글 속 눈망울들이 동태 눈알처럼 희미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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