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40년 가까이 보건복지 분야에서 공부하고 일했는데, 마스크 두세 개 사려고 3~4시간씩 줄을 서고 그 줄이 몇 킬로미터나 늘어서는 광경은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어요. 우리 감염병 역사는 물론, 적어도 제 기억엔 전세계 감염병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에요. 마스크 대란만큼은 변명의 여지 없이 정부가 위험소통에 완전히 실패한 사례입니다.”
일반 소통은 ‘단순’하게, 위험 소통은 ‘디테일’하게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사진)은 ‘마스크 대란’의 근본 원인을 공급 부족이나 사재기가 아닌 ‘위험소통’에서 찾았다. “‘단순하게 전달하라’는 일반적인 소통의 원칙이 있지만, 위험소통에서는 ‘최대한 디테일(구체적)하게 대응요령을 전달해야’ 할 때가 있는데” 정부가 그 ‘디테일’을 놓쳐 대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보건당국이 초기부터 가장 강조했던 예방법은 ‘마스크 쓰기’였다. 마스크 사용을 권고하더라도, 누가 언제 써야 하고 누가 언제 쓰지 않아도 되는지 등 ‘상세 정보’를 함께 강조했어야 한다. 정부가 마스크를 쓰라고만 하니, 바이러스 지식이 부족한 시민들은 ‘마스크가 생명줄’이라고 받아들였다. 촌에 사는 노부모까지 ‘마스크를 사서 도시에 사는 애들한테 보내줘야지’ 생각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꼭 보건용 마스크가 필요 없다는 점을 아는 사람도 주변 시선 탓에 마스크를 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마스크 수요가 폭발했다. 사상 초유의 마스크 품귀 현상이 벌어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3월3일 브리핑에서 “감염 우려가 높지 않거나, 보건용 마스크가 없는 상황에선 면마스크를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개정 권고안을 냈다.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권고지만 ‘수요 줄이기 꼼수’라는 오해를 받았다.
2월25일 “이르면 내일부터 마스크를 판매한다”는 정부 발표도 현장성이 결여된 ‘탁상행정’의 결과이자 잘못된 위험소통의 한 예다. 안 센터장은 “식약처와 질병관리본부(질본)는 감염병에서 신뢰를 생명으로 삼는 전문가 집단인 게 분명하지만, 의약외품인 마스크의 유통 부분은 좀 약하다”며 “고위 간부가 직접 줄 서서 마스크를 한 개만 사봤어도 그런 발표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마스크 부족 사태’는 단지 ‘마스크 문제’가 아니다. 확진자나 유증상자 이외에 전 국민이 실생활에서 마스크 부족을 체감한다. 안 센터장은 “시민들은 ‘이 작은 것 하나 해결 못하나?’라는 의구심을 갖게 되고, 정부의 위기관리에 대한 총체적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위험소통의 최대 걸림돌이 ‘불신’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다른 중요한 방역 정책에도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마스크 대란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코로나19 조기 종식 발언’도 안타까운 ‘위험소통 실패’ 사례다. 안 센터장은 “정부 내 감염병을 잘 아는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라며 “청와대에 방역 전문가뿐만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보건학,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종합적으로 포진해 있다면 방지할 수 있었던 실수”라고 말했다.
바이러스는 진정세를 보이다가도 단 한 명의 슈퍼전파자만 있어도 크게 확산한다. “조기 종식” 같은 섣부른 예측은 대통령이나 질본 관계자 등 최고 책임자급이 공표해서는 안 될 말이다. 정부 내 다른 관계자가 상황을 설명하더라도 “조기 종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도가 적당한 표현이다. 이때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는 조건이 반드시 따라붙어야 한다. 안 센터장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건 좋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를 ‘중동감기’라고 가볍게 말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은 것처럼 위기 상황 속 낙관엔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2008년 광우병 사태를 계기로코로나19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감염병 등 위험과 재난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현대사회에선 감염병 같은 전통적 위험과 신종 화학물질 등 새로운 위험이 공존한다. 거대 도시화에 따라 위험과 피해의 규모도 점점 더 대형화하고 있다. 위험은 피할 수 없더라도 불안과 불신을 최소화하는 소통, 이른바 위험소통은 가능하다. 성공적인 위험소통은 위험 요소에 대한 전문가의 판단과 일반의 인식 격차를 줄여준다. 또 위기관리 주체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높이며, 위기시 인력과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위기 수습을 앞당길 수 있다.
안 센터장은 한국 사회가 공중보건 위기에서 위험소통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기를 2008년 광우병 사태가 일어났을 때로 본다. 그 후로 주로 식품 파동이나 감염병 사태 때 위험소통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곤 했다. 주요국에선 오래전부터 공중보건 위기시 위험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목표·방법에 대한 고민을 했다. 미국에선 이미 1970년대 후반 환경보호청(EPA)이 위험소통의 7대 원칙을 정립했다. 한국 식약처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관련 기관이 EPA와 비슷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안 센터장이 설명한 ‘7대 원칙’은 이렇다. “대중을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하라, 대중의 구체적 불안을 경청하라, 솔직하고 투명하게 이야기하라, 다른 신뢰성 있는 전문가들과 협력하라, 언론이 요구하는 것을 잘 응답하고 충족시켜라, 피해자에게 연민을 담아 정확히 말하라, 신중하게 계획하고 평가하라.” 미국의 저명한 위험소통 전도사 피터 샌드먼은 여기에 조금 더 고난도 미션(임무)을 추가했다고 한다. “존경심을 갖고 적대자(정치적 반대자)를 대하라, 설혹 존경할 만한 대상이 아닐지라도. 그리고 실수를 바로 인정하고, 잘하겠다고 약속한 뒤 약속을 지키라.” EPA 7대 원칙이든 샌드먼의 조언이든 조금만 생각해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일인데, 위기의 순간 그 기본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모든 위험소통 주체가 이 원칙에 바탕을 두고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지만, 주체별로 특히 강조하는 주안점이 있다. 정부와 보건당국의 경우 “정부 안에서 한 사안을 두고 두 목소리가 나오면 안 된다”는 철칙이 있다. 안 센터장은 “국민이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 불안과 공포가 증폭되기 때문”이라며 대표적 사례로 메르스 사태를 꼽았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지역사회 감염이 아니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도 된다고 했고, 교육부는 학부모들이 불안해하니 당분간 휴교하자고 공개적으로 이견을 보였다. 그런 면에서 안 센터장은 “이번에 전국이 동시에 휴교한 건 잘한 일”로 본다.
매스미디어는 당연히 위험소통의 주요 당사자이지만, 성공적인 위험소통의 큰 걸림돌이기도 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론은 위기 상황에서 공포를 더욱 조장해왔다”는 게 기자 출신 안 센터장의 냉정한 평가다. “언론이 소해면뇌상증을 ‘광우병’으로, 반코마이신내성장구균을 ‘살 파먹는 박테리아’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을 일으키는 진드기를 ‘살인진드기’로 부르는 등 질병에 대해 극도의 공포를 조장한다”는 비판이다. 그는 “언론의 과장이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들어 일정 부분 예방 효과를 거두기도 하지만, 혐오와 차별과 과잉 격리 등 엄청난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분석했다.
언론은 혐오도 조장한다. 모든 신종 감염병이 처음엔 혐오적인 작명 경향을 보이지만, 병원체와 감염경로가 드러나면 제 이름이 붙여지기 마련이다. 전세계가 (중국) 우한폐렴을 코로나19로 고쳐 부르는데 가 끝까지 ‘우한 코로나’를 고집하는 것은 언론이 혐오를 조장하는 생생한 사례다. 안 센터장은 “만약 미국에서 코로나19가 시작됐으면 가 그랬겠느냐”며 “세계보건기구(WHO)가 2015년부터 특정 지역에 대한 ‘낙인찍기’가 될 수 있는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의 몽니를 비판했다.
사실 과거엔 스페인 독감처럼 감염병 이름에 나라나 지역 이름을 붙인 적이 많았다. 16세기엔 매독균에 대해 잘 모르고 사생활과 관련된 ‘부끄러운 성병’이라고만 알았다. 프랑스에서는 ‘나폴리병’, 네덜란드는 ‘스페인병’, 러시아는 ‘폴란드병’, 폴란드는 ‘독일병’, 조선에서는 ‘당나라병’, 일본은 ‘포르투갈병’으로 불렀다. 나라마다 제각각 ‘평소 감정이 안 좋은 나라 이름’을 병명으로 부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의 행태는 다분히 전근대적이기도 하다.
고위급은 모르는 위험소통흥미롭지만 사소한 곁가지-가령 신천지의 이단성-에 주목하는 것 역시 지속해서 되풀이되는 언론의 과오다. 방역에 집중해야 할 역량을 쓸데없는 곳에 분산되게 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벌어지는 특수한 상황-예를 들면 생필품 사재기-을 일반화함으로써, 시민들을 부추겨 상황을 악화하는 것도 언론의 잘못된 위험소통 사례다.
안 센터장이 정부·보건당국·언론이 위기 상황에서 저지르는 ‘미스 커뮤니케이션’(소통 착오)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건 지속적인 사전 교육이다. 그는 주요 위험소통 관련 기관에서 자주 강의한다. 하지만 실무자만 참석할 뿐 국장급 이상 고위 관계자가 강의에 참석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실제 대국민 위험소통은 고위급이 하는데, 정작 고위급들은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않는다”며 “평소 대외적인 소통을 많이 해서 자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평상시 소통과 위기시 소통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수시로 언론 브리핑을 맡아온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이 이번에 ‘대구·경북 봉쇄’ 발언으로 사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안 센터장은 “언론사도 차장·부장급 기자들이 보도준칙을 얼마나 읽어봤을지 의문”이라며 “위험 상황에서 지금 같은 ‘공포팔이’ ‘경마’식 보도를 지양하려면 현장 기자뿐 아니라 데스크 교육이 절실하다”고 제안했다.
시민도 ‘감염병 리터러시’ 길러야시민들도 위험소통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안 센터장은 “시민들 스스로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악성 바이러스’가 되는 현상”을 그 예로 들었다. 에이즈 때는 “동양인은 안 걸리는 서양 병이다”, 중증호흡기증후군(사스) 때는 “김치를 먹으면 안 걸린다”, 메르스 때는 “코 밑에 바셀린을 바르면 안 걸린다”는 비과학적인 소문이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처럼 널리 공유됐다. 이번에 “뜨거운 물을 마시면 좋다” “확진자 동선 100m 앱” 등 잘못된 정보는 정부나 전문가, 언론발 가짜뉴스가 아니라 ‘시민발’이다. 안 센터장은 “시민들도 기성 매체에서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내용을 들으면 퍼트리기 전에 일단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며 “조금만 확인해보면 뜨거운 물 마시기 같은 ‘의협 권고’는 가짜뉴스고, 확진자가 다녀간 곳을 사나흘 뒤 방문해 감염된 전례가 없다는 것도 알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시민들이 독해력을 높이면 정부가 의도적으로 연출한 거짓 정보도 줄어들 수 있다. 가령 군을 동원한 길거리 소독, 확진자가 다녀간 건물의 외벽 소독 등은 실제 방역 효과가 제로에 가까운 ‘전시행정’이다. 안 센터장은 “시민들이 ‘열심히 한다’고 칭찬하면 정부는 계속 그럴 것”이라며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엉뚱한 데 물자를 낭비하면서 거리 감염이 가능하다는 근거 없는 불안을 조장하는 정부 조처를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도 ‘감염병 리터러시(글과 말에 담긴 지식과 정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 ‘바이러스 리터러시’를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 스스로 독해력을 높이는 것 이외에 “정부가 체계적으로, 끊임없이 전문가 입을 통해 시민의 정보 해독력을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