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국회의원들은 어김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작 필요한 노인과 환자, 의료진이 쓸 마스크가 부족하므로 건강한 사람은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코로나19가 젊고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지 않으므로 일상생활을 멈출 정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야당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마스크 수급 관리와 방역에 ‘실패한 정부’와 여당이라는 인식을 최대한 강하게 심어주려는 의도입니다.
위기소통(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이것을 메시지 관리의 실패 사례로 꼽습니다. 코로나19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범적인 정치인 사례는 바다 건너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의 품격을 보여줬습니다. 그는 3월4일(현지시각)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마스크는 쓰지 마세요. 의료진이 쓸 수 있게 말이죠.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과학 지식을 따르세요.”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세계보건기구(WHO)는 감염병 범유행 시기에 위기소통(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첫 번째 원칙으로 ‘신뢰’를 꼽는다. ‘감염병 소통 가이드북’(2008년)을 보면 WHO는 “감염병 소통은 대중과 보건당국 사이에 신뢰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믿음이 없다면 보건당국이 감염병과 관련한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더라도 대중이 제공받은 정보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감염병 대응, ‘신뢰 자본’이 중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신뢰가 중요하다는 데 이견을 제기하는 전문가는 없다. ‘지역사회 감염’ 전망이나 ‘중국발 여행객 입국 금지’ 등 각론을 놓고선 이견이 엇갈렸던 의학, 보건학, 역학, 감염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도 모두 신뢰의 중요성에 수긍한다.
질병과 치료를 ‘의학’과 ‘과학’의 영역으로만 생각했다면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감염병을 낫게 하는 건 치료제고, 걸리지 않게 예방하는 건 백신”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는 현재 치료제와 백신이 없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 앞에서 의과학 해결책이 없다는 사실에 공포감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를 통해 이미 이러한 불확실성을 경험했다. 메르스 종식에는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도 중요했지만 사회 공동체의 협조도 큰 구실을 했다. 한국에서 메르스가 유행한 지 1년이 지난 2016년 7월,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5 메르스 백서>는 감염병 종식의 열쇠를 이렇게 기록한다. “메르스 유행은 유전학적 기술이나 첨단 의약품으로 통제된 것이 아니다. 역학조사와 격리, 검역과 같은 전통적 방역 조치에 의해 종료됐다.”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적 자본인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했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WHO에서 말하는 신뢰는 무엇인가? 무엇을 어떻게 믿는 것일까? 정부, 여당, 야당, 의사협회, 확진자와 접촉했을지 모르는 옆집 이웃, 언론? 중요도와 우선순위에서 차이는 있으나 모든 종류의 신뢰가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정부는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장 빠르게 제공해야 한다. 확진자 정보를 언론이 잘못 보도하는 것과, 보건당국이 잘못 파악하는 것은 다른 의미가 있다. 후자가 대중에게 더 큰 불안감을 줄 것이다.
신뢰도, 질본 높고 청와대·언론 낮아
코로나19 사태를 헤쳐나가는 한국 사회의 신뢰 수준은 어떨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최근 공개됐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장) 연구팀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두 차례(2월 초와 말) 실시한 ‘코로나19 설문조사’ 연구 결과를 3월4일 공개했다. 설문조사를 한 두 시점 사이에 위기경보가 ‘경계’에서 ‘심각’으로 높아졌다.
유 교수팀이 1차, 2차 조사 결과를 비교분석한 것을 보면 현장에서 코로나19 방역을 담당하는 질병관리본부(질본), 공공의료기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높아졌지만 청와대와 중앙정부, 언론 보도에 대한 신뢰는 낮아졌다.
2차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질본에 대해 81.1%가 “신뢰한다”고 해, 신뢰도가 1차 조사 결과(74.8%)보다 6.3%포인트 높아졌다. 국립대병원·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신뢰도도 72.6%에서 79.3%로 6.7%포인트 올랐다. 지자체도 55.4%가 “신뢰한다”고 답해, 1차 결과(52.5%)보다 신뢰도가 조금 높아졌다.
반면 청와대에 대한 신뢰 의견은 49.5%로, 1차 조사 때(57.6%)보다 8.1%포인트 떨어졌다. 방역을 맡은 중앙부처인 보건복지부에 대한 신뢰도는 68.1%에서 67.3%로 낮아졌다. 코로나19 정보를 전달하는 소통 창구인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39.9%가 “신뢰한다”고 답해, 1차 조사(46.4%)보다 6.5%포인트 하락했다.
청와대와 중앙정부,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한 이유는 명확하다.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신종 감염병이 유행하는 상황에선 정보의 불확실성이 높은데 이것에 대해 섣부르게 장담하면 신뢰도가 추락하는 계기가 된다. 오늘 발표한 내용이 내일 바뀔 가능성이 있다면 최대한 상세하게 모든 가능성을 설명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문재인 대통령의 ‘조기 종식’ 발표와 정부의 ‘마스크 착용’ 관련 소통이다. 문 대통령은 2월13일 재계 인사들과 한 간담회에서 “방역 당국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는 머잖아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는 이틀째 확진환자가 나오지 않아 일부에서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왔지만, ‘종식’을 언급한 것은 섣불렀다. 2월1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감염경로가 확인되지 않았던 29번째(82) 환자가 나왔고, 18일 신천지 신도였던 31번째(61) 환자가 나오면서 코로나19 감염은 전국으로 확대됐다.
섬세하지 못한 소통, 공포 조장
‘마스크 사용’과 관련해서도 정부는 소통에 실패했다. 문 대통령은 2월25일 ”마스크 문제는 우리 수요를 감당하기 충분한 생산능력이 있다”며 국민을 안심시켰다. 28일 청와대에서 여야 4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도 “대책을 내놓았으니 모레까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정부를 믿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의 공적 물량 공급 확대에도 일선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산술적으로도 하루 생산량이 1천만 장인데 모든 국민이 매일 바꿔가면서 쓰기엔 충분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3월3일 “마스크를 신속하고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불편을 끼치는 점에 대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마스크 수급에 어려움을 겪자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비상시에는 일회용 마스크를 재활용할 수 있고, 면마스크를 써도 충분하다”고 했다. 1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감염 예방을 위해서는 KF94, KF99 등급의 (보건)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던 식약처의 발표를 스스로 뒤집은 것처럼 비쳤다. 보건 전문가들 역시 “코로나19가 공기 전파로 감염되지 않기 때문에 건강한 젊은 사람은 마스크를 꼭 쓸 필요가 없다”고 입을 모았지만, 대중의 공포는 이미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마스크 사용과 관련한 정부의 위기소통 실패는 코로나19 대응에서 아쉬움이 큰 대목으로 기록될 것이다.
신종플루가 유행할 때, 질본에서 전염병대응센터장을 맡았던 전병율 차의과대학 교수(예방의학)는 <한겨레21>에 “전파력이 강했던 신종플루 당시에도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이용 중에 감염된 사례는 없었다. 코로나19 방송 인터뷰에서도, 줄기차게 침방울(비말)로 감염되는 코로나19도 호흡기 질환 증상이 있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아니면 마스크를 꼭 착용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꼭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마스크 구매에 뛰어들면서, 정작 꼭 써야 하는 취약계층이 마스크를 구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훈재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사회의학)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노인 만성질환자들과 마스크를 놓고 경쟁해서는 안된다. 그분들에게는 마스크가 여러 예방수칙의 하나가 아니라 생명보호 안전띠 의미가 있다”고 했다.
불확실하다면 어디가 불확실한가
과학 지식에 근거하지 않은 과도한 공포 분위기가 조장된 데는 정부의 위기소통 방식이 섬세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2월25일 문 대통령은 대구시청을 방문해 ‘코로나19 대구지역 특별대책회의’를 주재했다. 회의에 코로나19 확진자인 자신의 비서와 밀접 접촉한 이승호 대구시 경제부시장이 배석했는데, 청와대는 회의장에 있었던 취재진과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자가격리를 권고했다. 질본은 “접촉자의 접촉자는 자가격리 대상자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청와대가 자체적으로 격리 조치를 한 것이다.
“코로나19는 노약자나 호흡기 질환자가 아니면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메시지를 보내는 정부가 이런 ‘공포’ 반응을 보인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훈재 교수는 “감염병과 관련한 메시지는 질본에서 일관되게 나와야 하고 청와대나 나머지 부처는 확성기 역할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질본이 아닌 다른 정부 부처와 지자체 관계자들이 현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 없이 ‘틀릴 수 있는 발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개는 국민의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서’다. 의도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확실치 않은 정보를 대중에게 전파하고 시간이 지나 그것이 아니라고 뒤집으면 더 나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당장은 불안감을 줄일 수 없더라도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국민은 그 정도 불확실성을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유명순 교수팀 연구를 보면 응답자 중 90%가 “불확실한 이슈에 대해 어느 부분이 불확실한지, 당국이 파악하지 못한 것을 명료하게 알려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76.1%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단정적으로 확실성을 강조하는 리더는 못 미덥다”고 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다양한 이해당사자 간의 일관성 있는 대응, 관계 부처 간 공조 체제를 구축해 대중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2016년 쓰인 <2015 메르스 백서>는 이렇게 위기소통 원칙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정부의 실패는 반복됐다. 전병율 교수는 “백서에 명시한 내용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직책을 맡는 사람이 바뀌어서다. 과거의 실패를 통해 반성하고 백서를 보며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위기소통을 바로잡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조사 결과를 보면 방역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다. 이 외에도 지역사회 효능감 같은 중요한 신뢰자본도 높은 편이다. 위기돌파를 위해 할수있는 일이 많다.” 유명순 교수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당부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