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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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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서 ‘공생’으로

미세먼지에 대처하는 부모들의 자세
등록 2019-05-15 12:07 수정 2020-05-03 04:29
‘고양 미대촉’ 회원과 가족들이 2018년 12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청에서 열린 탈핵 강연을 들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고양 미대촉 제공

‘고양 미대촉’ 회원과 가족들이 2018년 12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청에서 열린 탈핵 강연을 들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고양 미대촉 제공

‘잿빛 재앙에서 아이들을 지키는 미세먼지 상식’.

5월8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양시 미세먼지대책촉구모임’(이하 고양 미대촉) 박선영 대표는 기자에게 책 한 권을 건넸다. 고양 미대촉은 2016년 8월에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엄마들이 모인 환경단체다. 회원 수는 100여 명이고, 회비를 내고 활동하는 정회원은 40명 정도 된다. 회원 90% 이상이 평범한 주부다. 책 은 미세먼지의 원인과 위험성, 대처법 등을 엮은 100쪽짜리 단행본이다. 고양 미대촉 회원들이 미세먼지 관련 책, 정책 매뉴얼, 언론 보도 등 150여 개 자료를 참고해 만들었다. 제작에 1년이 걸렸다. 지난 1월 ‘미세먼지 국가전략 프로젝트 사업단’의 초청으로 제작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고양 미대촉, 미세먼지 상식 단행본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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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아이를 둔 주부인 박 대표는 “임신했을 때 뿌연 하늘을 보고 걱정됐어요. 발암물질인 미세먼지로부터 내 아이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불안감이 컸어요. 그런데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미세먼지에 맞서 ‘각자도생’의 길을 가던 박 대표는 자신과 비슷한 고민과 불안감을 안고 사는 엄마들을 만났다. 그들과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에서도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알고 공기 정화 대책을 세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만들었다.

이날 박 대표와 함께 나온 고양 미대촉 정지영 회원 역시 5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그도 아이를 가진 뒤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3년 전 뉴스에서 일기예보를 할 때 미세먼지 수치는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미세먼지 수치가 안 좋은데 ‘오늘 화창하고 맑은 날씨’라고 하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어서 기상청에 미세먼지 수치 예보도 해달라고 민원을 넣었어요.”

그런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들은 말은 “예민한 엄마”이다. “아이들 건강에 큰 영향을 주는 문제인데 어떻게 예민하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나요. 예민하지 않은 게 더 이상하죠. 예전에는 미세먼지가 심해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애를 과잉보호한다’고 했는데 요즘엔 아이나 어른이나 마스크를 많이 쓰고 다니잖아요. 그렇게 점점 변하고 있어요.”

고양 미대촉에서는 그동안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하는 1인시위, 미세먼지 조례 제정 토론회 개최, 불법 소각 감시, 환경교육 강좌 개최, 미세먼지 대책 간담회 등을 했다. 박 대표는 “육아와 가사로 바쁜 엄마들이지만 다들 시간을 쪼개 환경 책 읽기 모임도 하고 환경 조례 공부도 하고 있다”고 했다. “환경문제가 다 연결돼 있어요. 미세먼지를 시작으로 불법 쓰레기 소각 등 우리 생활 속 다양한 환경 이슈를 알게 됐어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정치하는 엄마들’은 시민행동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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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의 활동가 김지애씨는 4살 아이를 둔 엄마다. 그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에게 ‘KF80 마스크’(0.6㎛ 크기 미세먼지를 80% 이상 차단할 수 있음)를 씌운다. 항상 아이 가방에 새 마스크를 넣어준다. “아이가 생후 3개월부터 아토피가 심해서 알레르기 검사를 했어요. 여러 식품군에서 알레르기 반응이 나왔어요.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제한적이니 제가 다 만들어줬죠. 그러면서 환경 쪽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김씨는 정부 미세먼지 정책에 불만이 많다. “교육부에서 올해 모든 유치원과 초등학교, 특수학교에 공기정화 장치를 설치하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교육부가 시도교육청에 배포한 공기정화 장치 사용 기준을 보면 미세먼지 나쁨이면 환기를 하지 말라고 쓰여 있어요. 문을 닫고 공기정화기만 틀면 무슨 소용 있나요. 의학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문 닫고 공기정화기를 가동하면 이산화탄소가 늘어난대요. 그러면 두통, 어지러움, 졸림 등의 증상이 나타나요. 환기도 되고 먼지도 걸러주는 전열교환기(공기순환기)가 필요한데 말이죠.”

‘정치하는 엄마들’은 지난 3월12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 앞에서 그린피스, 기후솔루션, 녹색연합, WWF 세계자연기금, 미세먼지해결시민본부 등과 함께 탈먼지·탈석탄 시민행동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봄철 동안 석탄발전소 가동을 절반으로 줄일 것과 노후 석탄발전소 수명 연장 사업을 철회하고 조기 폐쇄할 것, 기후변화 대응과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탈석탄 방안 마련 등을 촉구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유별난 부모’ 아니라 ‘미래 세대 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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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인 박태호씨는 직접 만든 공기청정기를 쓰고 있다. 올해 초 소셜벤처 ‘십년후연구소’에서 마련한 저비용·저전력의 ‘공기청정기 만들기’ 워크숍에 참여했다. “저도 아이들도 비염이 있어요. 그래서 미세먼지가 심할 때 저도 아이들도 힘들어요. 제가 직접 우리 가족의 호흡기 건강을 위해 공기청정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미세먼지뿐 아니라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박씨는 친구 아빠들 사이에서 “유별난 사람”이란 소리를 듣는다. “되도록 쓰레기를 만들지 말자는 생각에 일회용품 쓰는 걸 줄이고 텀블러를 꼭 갖고 다녀요. 쓰레기는 잘 재활용될 수 있도록 분리수거를 철저히 합니다. 전에도 그렇게 했지만 아이들 생기면서 더 열심히 분리수거를 해요. 아이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고 싶으니까요.”

교육업에 종사하는 그는 이런 관심을 계기로 지난 3월부터 제주도 초등학교에서 ‘새활용’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저처럼 어디 환경단체나 모임에 소속되지 않았지만 환경문제에 관심 있는 엄마 아빠가 많아요. 저 같은 사람이 하나하나 모여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책 에서 “우리는 사회 전체가 돌봄과 양육의 주체가 되어야 하며 사회 구성원 누구든지 엄마의 역할을 자연스레 수행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처럼 이들은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단 모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세먼지 취약계층이자 미래 세대인 우리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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