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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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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단체 불법 갑질에 범죄자가 됐다

특수임무유공자회와 사업하던 ㅇ씨, 뒷돈 요구 응하다 실형까지…

보훈단체 비리 끊이지 않는데 국가보훈처는 수수방관
등록 2019-01-26 15:14 수정 2020-05-03 04:29
서울 신수동의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 모습. 박금구 대표(오른쪽)를 비롯해 다수의 회원들이 <한겨레21> 기자에게 고질적인 수익사업 비리를 고발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서울 신수동의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 모습. 박금구 대표(오른쪽)를 비롯해 다수의 회원들이 <한겨레21> 기자에게 고질적인 수익사업 비리를 고발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2014년이었어요. 공동 사업 2년째를 맞아, 한창 잘나갈 때였죠. 갑자기 2억원을 더 내놓으라는 거예요. 그전에도 다달이 수백~수천만원씩 수시로 뒷돈을 가져갔거든요. 현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원재료 살 돈이었어요. 그거 빼내 쓰면 안 된다고 했죠. 그랬더니 횡령 혐의를 씌워서 나를 쫓아낸 겁니다.”

1월15일, 경기도 안양의 집 근처에서 만난 ㅇ씨는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2013년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이하 특임유공자회)를 만나기 전까지, ㅇ씨는 하수처리장의 기계와 배전반을 생산하고 있었다. 경기도 화성에 공장이 있었고, 매출이래야 10억원대에 불과했다. 공공기관 수의계약으로 물량을 따낼 수 있는 특임유공자회와 만난 것은 처음 1년여 동안은 축복이었다. “사업을 키우고 현금도 챙겨줄 테니, 나도 먹고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특임유공자회에서 갖은 방법으로 사업 자금을 빼내갔지만, 한동안은 먹고살 만했어요.”

특임유공자회 간부가 한 해 3억원 뜯어가

ㅇ씨는 특임유공자회와 합법적인 파트너십을 꿈꿨다. 화성의 같은 공장에서 같은 직원들을 데리고 같은 물건을 생산하지만, 모든 법적 소유권은 특임유공자회로 넘겼다. 따로 이면계약도 확보해두지 않았다. 보훈단체는 수익사업을 직접 수행해야 한다는 법적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 종전의 대표이사 명함도 버리고 특임유공자회 기전사업부 본부장이란 새 명함을 만들었다. 어찌 보면 내 재산을 통째로 거저 넘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혼자서는 사업을 키우기 어려운 사정이었기에 과감하게 모험의 길을 선택했다.

다행히 공동 사업은 대성공이었다. 10억원 정도이던 연매출이 1년 남짓 만에 130억원(2014년)으로 10배 이상 불어났다. 폭발적 성장세였다. 역시 공공기관에서 사업을 따내는 특임유공자회의 ‘완력’은 대단했다. 어떤 민간업체도 상상할 수 없는 가공할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돈벼락이 쏟아지자, 인간의 욕심이 발동했다.

당시 특임유공자회는 기전사업부 등 4개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전체 사업을 관장하던 ㅈ씨가 처음부터 뒷돈을 요구했다. ㅇ씨의 아내를 직원 명부에 올려놓고 매달 200만원씩 현금을 만들어 보냈다. ㅈ씨의 아내 이름도 직원으로 올려, 추가로 월 200만원을 급여통장으로 보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수시로 수백만~수천만원을 불쑥불쑥 요구했다.

만기 출소 뒤 사업 복귀한 간부

“궁리 끝에 공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직원들을 정규직인 것처럼 꾸몄어요. 돈세탁으로 월 2천만원씩을 추가로 마련한 거죠. 달리 돈 조달할 방법이 마땅치 않잖아요. 그 돈을 쥐고 있다가, ㅈ씨가 달라고 할 때마다 빼준 거예요. 자동차 안에서도 주고, 사무실 안에서도 주고, ㅈ씨 집 가까운 보라매공원 근처 카페에서 쇼핑백에 담아 준 적도 있어요. 나중에 차근차근 계산해보니, 2년 동안 3억원은 되더라고요. 검은돈이라 근거를 마련해놓지 않은 게 원통하죠. 서로 횡령이니 배임수재니 다툴 때 법원에서는 1억3천만원밖에 인정을 못 받았거든요.” ㅇ씨는 2년 동안 함께 사업을 벌이면서, 자기는 월급 40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돈세탁 자금에서 추가로 월 400만원 정도를 썼지만 영업 비용으로 많이 지출했다.

2014년 2억원 요구를 거절하자, ㅈ씨가 ㅇ씨에 대한 내부감사를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정규직 인건비로 꾸며 월 2천만원 돈세탁한 사실을 꼬투리로 잡았다. 이 일이 빌미가 되어, 검찰 조사가 시작됐고 두 사람은 모두 구속되고 말았다. 2016년 2심 재판에서 둘 다 1년6개월형을 받았고, ㅈ씨는 2억원의 추징금도 내야 했다. 재판 과정에서, ㅈ씨가 군대 고철을 납품받아 재판매하는 불용사업부 거래업체 대표한테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총 7700만원을 정기적으로 상납받은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두 사람이 징역을 사는 동안, ㅇ씨가 세운 화성 공장은 특임유공자회가 직접 꾸리는 사업체로 완전히 넘어갔다. 사업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잘될 리 만무했다. 그래서 특임유공자회는 만기 출소한 ㅈ씨를 차선책으로 불러 기전사업 본부장에 임명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다시 횡령 문제가 터져 ㅈ씨도 특임유공자회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ㅇ씨는 “30살부터 하수처리기계와 배전반 만드는 일을 했다”면서 “화성 공장을 다시 찾을 길은 없지만, 이제는 믿고 사업을 함께할 수 있는 새 파트너를 찾고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이하 전우회)에서도 최근 정규직 직원들을 시급제 직원으로 강제 전환하는 과정에서, 쓰레기종량제 봉투를 생산하는 수지사업소의 자금을 빼내 쓴 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전해지고 있다. 전우회의 한 전직 직원은 “특임유공자회의 ㅈ씨처럼 전우회 간부들이 수지사업소 자금을 수시로 빼내 썼고, 그 때문에 수지사업소 자금이 고갈됐다”면서 “수지사업소를 운영하는 ㅇ씨가 고발 운운하자 최근 이사회에서 재료비 2억원을 지원해주고 인건비도 대신 내주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훈단체 수익사업에서 구체적인 횡령 혐의 등이 쏟아지고 있지만, 국가보훈처에서는 해당 사건에 직접 구체적인 감사를 벌이거나 검찰에 고발하는 등의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특임유공자회 박금구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ㅈ씨의 기전사업부 비리 사건으로 수익사업의 불법적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때도, 국가보훈처는 특임유공자회에 아무 조처도 하지 않았다”면서 “국가보훈처는 보훈단체 수익사업 비리의 공동 정범”이라고 비판했다. 불법의 실상을 훤히 알면서도, 서류상 요건을 갖췄다는 등의 이유로 사실상 비호해준다는 것이다.

국가보훈처 비호하나

전우회나 특임유공자회 같은 국가보훈단체는 수익사업을 벌이더라도, 엄격한 법적 조건을 지켜야 한다. 국가보훈처 복지사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고, 보훈처장의 사업 승인을 받은 뒤, 단체가 사업을 직접 수행해야 한다. 수익금은 당연히 회원 복지를 위해 써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요건을 다 지키면서 사업하는 보훈단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남의 이름을 빌리거나 뒷돈을 빼돌리고, 쥐꼬리만큼 남긴 이익금마저 회원들 복지에 거의 쓰지 않고 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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