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한 교회 목사로부터 ‘그루밍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11월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형법에서는 항거불능 상태에서 간음 또는 추행한 자를 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항거불능 상태란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의미한다. 교회 성폭력 피해자들은 일반 성폭력 사건과 다른 특수한 이유로 심리적으로 항거불능 상태에 놓이곤 한다. 신도들한테 목회자는 영적 지도자이자 조언자이기 때문에, 목회자의 요구를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 거부하지 못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이 점을 잘 아는 가해자들은 반성경적으로 성서를 오용해 신도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야곱에게는 레아와 라헬이라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레아는 야곱의 첫 부인이지만 야곱이 사랑한 사람은 둘째 부인 라헬이었다. 너는 야곱을 섬긴 라헬처럼 목사를 섬기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현대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강변이지만, 한국여신학자협의회 부설 기독교여성상담소가 상담한 실제 사례다. 목회자였던 가해자는 창세기에서 야곱이 한 자매인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아들인 사례를 빙자해 피해자로 하여금 유부남인 자신을 성적으로 섬기도록 하는 성폭력을 정당화했다. 목회자의 말을 믿었던 피해자는 뒤늦게 교회 안에 ‘라헬’이 너무 많다는 걸 알았고, 자신이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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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여성상담소는 “성서 속 족내혼(같은 씨족·종족·계급끼리 하는 결혼)·시형제 결혼(가문의 남자가 죽었을 때 남자 형제가 형수나 제수에게 대를 잇게 해주는 제도)·일부다처제 등 결혼 풍습은 오늘날에는 통용될 수 없는, 수천 년 전 팔레스타인 지방의 결혼 풍습”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야곱이 자매를 아내로 맞아들인 것은 실제 이스라엘의 종교와는 무관한 이방의 풍습이었다. 창세기를 보면, 야곱은 처음부터 라헬을 사랑했는데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 레아와 먼저 관계를 맺게 되었다.
성경에서는 오히려 자매를 아내로 두는 걸 금하고 있다. 구약 레위기 18장18절을 보면 “너는 아내가 생존할 동안에 그의 자매를 데려다가 그의 하체를 범하여 그로 질투하게 하지 말지니라”라며 한 남자가 자매에게 동시에 장가드는 당시 풍습을 금했다. 기독교에서 진리이자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예수는 더 나아가 자기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음욕을 품고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간음하였다”(마태복음 5장28절)고 선언했다.
성경에는 군주 시대 왕들의 화려한 여성 편력이 등장하는데, 이를 성폭력 근거로 악용한 목회자도 있었다. “솔로몬이 1천 명의 궁녀를 거느렸듯이 나는 여인을 취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식이다. 군주 시대에 왕이 아내를 여럿 두거나 후궁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현대사회 대부분의 국가에서 ‘중혼은 범죄’라는 상식조차 거부한 궤변이다. 기독교여성상담소는 “오늘날 목회자는 ‘군주 시대의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목회자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돼야 할 뿐, 여러 명의 여자를 취하는 특권을 가진 자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교회 성폭력 가해자들은 자신을 감히 하나님 반열에 올려놓고 성서를 오용하기도 했다.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듯 가장 소중한 것을 주의 종에게 바쳐라”는 요구가 대표적이다. 이 역시 실제 사례인데, 여성 신도들이 가장 소중한 ‘성’을 목회자에게 바쳐야 한다는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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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여성상담소는 “창세기 22장 속에 등장하는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만 받으셨고, 이삭을 번제물로 받지 않고 끝까지 보호하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나님은 여성들에게 성을 바치라고 요구한 적이 없을뿐더러, 하나님께 바치듯 자신에게도 소중한 것을 바치라고 요구하는 것은 목회자가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성중독자인 가해자들은 ‘수치를 모르고’ 성경을 음란하게 오용하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에덴동산이 어떤 곳이냐? 그곳은 벗고 있어도 수치를 몰랐다. 영적인 사람은 벌거벗고 서로 보고 있어도 수치를 느끼지 않는다”며 성적인 관계를 강요한 경우다.
창세기에서 인간은 순종하지 않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현재 인간은 에덴동산에 살고 있지 않다. 또한 옷을 입고 벗는 것이나, 어떤 옷을 입느냐 하는 것은 문화의 표현으로써 시대나 문화의 제약을 받는 행위이지 영적인 수준과는 관련이 없다. 기독교여성상담소는 “영육 이원론적 사고는 본래의 성서적 전통이 아니”라며 “영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람은 결코 다른 여성을 벌거벗겨서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신약 베드로전서 5장14절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문안하라’는 구절을 성욕을 채우는 데 악용한 목회자도 있었다. “영적인 사람은 입도 맞추고 사랑을 나눌 수 있지만, 일반 성도와는 이같은 아름다운 행위를 나누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아직 육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피해자를 꾄 경우다. 기독교여성상담소는 “성서에 나오는 키스로 하는 인사는 성서 시대, 그 사람들의 풍습일 뿐”이라며 “(입 맞추는 풍습이 이어져 내려온) 서양인들은 영적이거나 성결(거룩하고 깨끗함)하지 않아도 서로 키스로 인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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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신학자 1세대인 최영실 성공회대 명예교수는 (기독교여성상담소)에서 ‘성서 오용의 예와 올바른 해석’ 등 성서 관련 내용 개정을 맡았다. 최 교수는 인터뷰에서 “옛날 마녀사냥도 성서 구절을 빌미로 행해졌다”며 성서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목회자가 설교하거나 반대로 목회자를 하나님처럼 섬기는 분위기가 얼마나 해로운지 강조했다.
최 교수는 “성서 오용은 성경을 전체 맥락에서 해석하지 않고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벌어지는 일”이라며 “성서의 역사적 배경과 저자의 의도를 무시하고 문자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시대마다 새 진리를 주는 성서를 옛 문헌으로만 묶어두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실제로 예수님은 구약성서의 문자를 넘어서 본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싸우셨다”며 “구약이 예수의 선포로 인해 재해석됐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수가 율법(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명령으로,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모세오경, 또는 구약성경을 뜻함) 조문에 얽매여 하나님이 말씀하신 본질을 저버린 율법주의자들을 향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마태복음 7장23절)고 소리쳤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조언이다.
교회 성폭력 도움받을 곳 연락처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기독교여성상담소 02-2266-8275
여성긴급전화 1366
(사)한국성폭력상담소 02-338-2890
탁틴내일 청소년성폭력상담소 02-338-8043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02-739-8858
천주교성폭력상담소 02-825-1272
벧엘케어상담소 02-896-0401
한국성폭력위기센터 02-883-9284
이레성폭력상담소 02-3281-1366
(사)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02-3013-1399
세종YMCA 성인권상담센터 041-862-9191
(사)부산성폭력상담소(통합) 051-558-8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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