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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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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해충론’과 ‘재판 거래’의 잘못된 만남

법외노조화는 어떻게 구축됐나…

전교조를 ‘벌레’ 취급한 대통령과 재판을 ‘거래’로 안 대법원장의 합작품
등록 2018-09-04 15:44 수정 2020-05-03 04:29
2005년 12월13일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이 서울 명동에서 열린 ‘전교조로부터 우리 아이 지키기 운동’ 거리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자료

2005년 12월13일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이 서울 명동에서 열린 ‘전교조로부터 우리 아이 지키기 운동’ 거리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우리 아이) 전교조에게 못 맡긴다”.

2005년 12월13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반대하는 어깨띠를 두르고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거리 집회에 나섰다. ‘전교조’ 세 글자는 강렬한 새빨간색으로 강조돼 있었다. 이틀 뒤 박 대표는 서울 신촌 일대 거리 선전전에서 “한 마리 해충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일 수 있고,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 이번 날치기법이 시행되면 노무현 정권과 전교조는 이를 수단으로 사학을 하나씩 접수할 것”이라며 이른바 ‘전교조 해충론’을 설파했다. 과격한 발언을 삼가며 줄곧 ‘영애의 품격’을 유지해왔던 박 대표에겐 이례적으로 거친 언사였다. 박정희 정권의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4·19 교원노조) 탄압을 보고 자란 박 대표가 전교조를 뼛속 깊이 불온시한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박근혜 취임 8개월 뒤 법외노조화

박 대표는 이때 53일간의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거리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여세를 이어 8년 뒤엔 대통령이 됐다. 전교조가 고용노동부로부터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건 박 대통령 취임 8개월 뒤였다. 2013년 10월24일, 해직교사 9명을 버리지 않으면 조합원 5만 명이 넘는 전교조를 노조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압박이 현실화했다. 전교조에 대한 대통령의 증오, 그리고 색깔론으로 정국 불안을 타파하려는 고전적 정치 공학이 결합된 ‘청와대 기획 작품’이라는 의혹이 짙었다.

이런 심증은 다양한 물증으로 점차 확증돼가고 있다. 2016년 말 공개된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김영한 비망록)을 보면, 청와대는 1심 본안 선고 전부터 강력한 전교조 법외노조 추진 의지를 내비친다. 2014년 6월15일 업무수첩에는 “전교조 재판-6/19 재판 중요. 승소시 강력한 집행”이라며 1심 승소시 대응 준비 상황이 적혀 있다. 6월19일 1심 본안에서 고용부가 승소하자 6월20일 업무수첩에는 “교육부 전교조 관련 공문 시행, (전임자) 복귀 명령, 직무이행 명령” 등 구체적 후속 조처가 촘촘히 나열돼 있다. 실제 교육부는 이날 전교조 전임자에게 휴직 허가를 취소하고 복직 명령을 내렸다. 같은 날 업무수첩에는 “전교조-고용부에 조치토록-ILO(국제노동기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외무부 통하여 취지 전달토록” “(전교조가) 국제적 연계(를 통해) 정부 압박(시). 긴 프로세스 끝에 얻은 성과. 앰네스티, ILO 대사들로 숙지토록” 등 청와대가 정부 부처·기관을 총동원해 전교조에 대한 전방위 압박을 주도한 정황이 드러난다.

전교조는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2013년 10월24일 이후 5년간 7차례나 엎치락뒤치락 ‘법외노조’와 ‘법내노조’를 오가며 피 말리는 소송의 세월을 보냈다. 대법원이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상고심 판결을 2년6개월이나 지체하면서 아직도 ‘끝’을 내지 못한 상태다(표 참조). 이 소송 과정에서 박근혜의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 양승태 사법부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재판 거래’를 시도한 문건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지난 5월25일 발표된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조사 보고서와 현재진행형인 검찰 수사 결과다.

청와대의 노골적 재판 개입 의지

전교조는 판결이 날 때까지 고용부의 법외노조 통보 처분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신청했고, 1·2차 신청 모두 승소했다. 2014년 9월19일 서울고법이 2차 법외노조 통보 효력정지 결정을 내린 다음날 김영한 업무수첩을 보면 “전교조 관련 대처 ①즉시항고 인용 ②헌재결정(법외노조 근거가 된 교원노조법 제2조)-합헌”이라며 사법부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시도한 정황이 포착된다. 9월22일 업무수첩에서도 “전교조 가처분 인용-잘 노력해서 집행정지 취소토록 할 것” 등 재차 청와대의 재판 개입 의지가 나타나 있다.

이후 9월30일 고용부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효력정지를 취소해달라’며 재항고했다. 최근 검찰 조사에서는 고용부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상상을 뛰어넘는 청와대의 소송 개입 정황이 흘러나왔다. 10월8일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이 재항고 이유서를 고용부에 전달했고, 고용부가 이를 그대로 대법원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재항고 이유서를 법원행정처 문건과 비교하면 상황은 한층 심각해진다.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법원행정처가 법외노조 사건 등과 관련해 청와대와 정치적 흥정을 시도한 문건을 다량 확보한 바 있다. 특히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고용부 재항고 전날인 2014년 10월7일 날짜로 작성된 ‘(141007)재항고 이유서(전교조-Final)’가 발견된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고용부가 청와대에서 받은 재항고 이유서를 대법원에 제출하기 전날, 법원행정처가 재항고 이유서와 매우 흡사한 문건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가 재항고 이유서를 사전에 ‘감수’해줬거나, 최악의 경우 아예 ‘대필’해 청와대에 보내줬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심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로부터 8개월 뒤인 2015년 6월2일 대법원은 고용부의 재항고를 받아들여 전교조를 다시 법외노조화했다. 두 달 뒤인 8월6일 박 대통령과 양 대법원장이 회동하기에 앞서 7월28일 법원행정처가 만든 ‘현안 관련 (대법원장) 말씀 자료’를 보면, 대법원의 법외노조 효력정지 파기환송 결정을 “(사법부의) 대표적 (정부) 협력 사례”로 들고 있다.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입수한 재판 거래와 재판 개입 의혹 문건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사건도 법외노조다.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의 법외노조화 결정 방향, 결정 시기, 후속 조처까지 제시하는 문건을 여러 건 생산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법외노조 사건의 경우 사법부가 이 사건을 매개로 청와대와 ‘거래’를 했다는 흔적을 이미 숨길 수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진보 성향 재판관 교체 가능성도 염두

가령 법원행정처 내부에서 2014년 12월3일 작성·보고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집행정지 관련 검토’를 보면, 서울고등법원의 법외노조 효력정지 인용 결정과 관련해 청와대가 “크게 불만을 표시”하고 “비정상적인 행태로 규정”했으며 “사법 관련 최대 현안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법원이 고용부의) 재항고 기각 결정시”에는 상고법원 등 대법원의 중점 추진 사업에 “상당한 손해”가 발생하리라 우려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대법원의 고용부 재항고 인용’이 이뤄질 경우 청와대와 대법원 모두에 “상당한 이득”으로 분석하면서, 결정 시점까지 저울질하고 있다. 가장 극적인 시점으로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심판 선고기일 이전을 언급하고 있다. 이때가 “대법원이 국정 운영의 동반자·파트너라는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할 수 있는 시점이라는 분석이다.

본안 사건의 결론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법외노조 통보 효력정지 신청을 인용했던 재판장(민중기 수석부장판사)의 인사 교체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듯한 표현도 나온다. 민중기 재판장은 진보 성향 우리법연구회 출신의 노동법 전문가로, 대법원 시나리오대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었다. 이후 본안 2심은 민중기 재판장이 황병하 재판장으로 교체된 뒤 선고됐다. 재판장 교체와 본안 사건 결정 시점 역시 문건의 내용과 일치했다. 법관 인사이동은 법원행정처가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 같은 재판’에 가장 손쉽게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이다.

공개된 문건들의 내용이 실행됐는지는 수사 대상이지만, 결과적으로 문건 내용과 실제 벌어진 일이 상당히 일치했다. “잘 노력해서 집행정지 취소토록 할 것”이라는 김영한 업무수첩 내용에도 부합한다. 법원행정처 스스로 법외노조 효력정지 사건에 관한 대법원 결정을 정부 협력 사례로 내세우기도 했다. 법외노조 재판을 놓고 정치적 거래가 이뤄졌을 수 있다는 가정은 합리적 추측 범위 안에 있는 셈이다.

“적폐 집단의 결탁과 검은 거래의 산물”

법원행정처가 문건만 만들고 재판이나 법관 인사이동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사건 처리 방향과 시기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것 자체가 재판의 독립을 훼손하는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다. 이 점은 대법원 특별조사단도 인정하고 있다. 전교조는 “법외노조화가 박근혜-양승태 적폐 집단의 결탁과 검은 거래의 산물이라는 것은 민주시민들이 이미 상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를 직권 취소해야 한다”고 결단을 촉구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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