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제5차 성차별·성폭력 끝장 집회. 한겨레 이정아 기자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에 대한 두 개의 고차방정식이 있다. ‘위력이 있지만 행사되지 않았고,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위력이 있었고, 피의자가 피해자의 동의를 얻었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 위력 행사 여부와 진술의 신빙성을 다퉈야 할 대상을 얼마나 ‘맥락적으로’ 봤느냐에 따라 재판부의 답은 유죄와 무죄로 갈린다.
전자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에 대한 1심 재판부의 계산식이라면, 후자는 8월20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이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언급한 판례들의 산식이다. 대법원 2017도11484, 2017도15790, 2017도2699 사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검찰은 이날 “훨씬 더 성폭력으로 보기 어려운 사안도 대법원에서 명시적으로 판결했다. 위력으로 인정했나 싶은, 위력이 아닌 듯한 것도 인정한 사례들”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1심 판결문에 견줘 판례들은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이 처음 일어나고 되풀이된 맥락부터 철저히 이해하려 했다. 상하 관계가 지속되고, 처음 피해를 본 뒤 이를 알리지 못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순응하는 등 비정상적 반응을 보이는 경향을 고려해서다.
의정부지방법원은 2017년 연예기획사 대표가 소속 가수를 위력으로 추행한 사건에 “원심은 피해자가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통해 추행에 대해 항의하지 않은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했다”며 “원심은 피해자에게 항의를 하지 않은 데에 어떤 사정이 있던 것인지 물어보고 변명할 기회를 줬어야 한다”며 원심(고양지원) 판결을 뒤집었다. 사회 통념상 피해자가 왜 항의하지 못했는지 전후 사정을 살펴야 한다는 논리다.
간음 이후 피해자의 행동이 이성적이지 않더라도 정황 등의 맥락을 짚어보고 유죄를 인정한 판례도 있다.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은 지난해 피트니스 대표이사가 종업원을 위력으로 간음한 사건에 대해 “피해자가 자존감을 상실하고 판단력조차 상실한 상태에서 가해자 요구에 순응하거나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한 일은 있을 수 있다”며 “피해자는 간음 이후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노력하는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행동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같은 해 부장이 사원을 위력으로 추행한 사건에 대해서도 여전히 많은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기 꺼리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점을 인정했다. 인천지방법원은 당시 “피고인 주장대로 피해자가 술집에서 피고인의 팔을 잡거나 (중략)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팔짱을 꼈다고 하더라도, 범죄 성립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판례 속 진술의 신빙성과 일관성을 검증받는 대상은 주로 피고인이었다. 피고인이 진술을 번복하거나 다른 증언과 견줘 일관성이 떨어질 경우 신빙성을 의심받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여성폭력방지팀장을 맡은 이경환 변호사는 과 한 통화에서 “1심 판결문에서 첫 번째 간음이 발생한 러시아 호텔에서의 상황을 보더라도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가 어떻게 이뤄졌다는 것인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며 “맥락을 간과한 채 지나치게 세부적인 개별 사안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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