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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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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 선행으로 답하다

난민 혐오 기승부리는 가운데 제주에서 쌓이는 예멘 난민 미담들
등록 2018-07-03 16:36 수정 2020-05-03 04:28
한 예멘 난민이 6월28일 제주 경찰이 보낸 메시지를 보여준다. 경찰은 예멘인들에게 금연구역에서 흡연하지 말 것과 무단횡단하지 말 것 등을 당부했다.

한 예멘 난민이 6월28일 제주 경찰이 보낸 메시지를 보여준다. 경찰은 예멘인들에게 금연구역에서 흡연하지 말 것과 무단횡단하지 말 것 등을 당부했다.

예멘인 누르는 6월5일 오전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을 나와 숙소로 가는 버스에 탔다가 옆자리에 덩그러니 놓인 밤색 가죽지갑을 발견했다. 살짝 벌어진 지갑 사이로 화폐가 빼곡하게 꽂힌 게 보였다.

그는 재빨리 휴대전화로 버스 번호를 찍은 뒤 차에서 내렸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사진을 보여주고 잃어버린 장소를 상세히 알려주면 주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제주 동부경찰서 오라지구대로 가 경찰에게 지갑을 건넸다.

경찰은 지갑을 열어 신분증과 현금을 확인했다. 67만2천원과 현금카드 한 장, 운전면허증이 있었다. 경찰은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 뒤 누르의 외국인등록증을 받아 신원을 확인했다. 누르는 경찰서를 나와 숙소로 돌아갔다.

지갑을 주웠을 때 누르의 전 재산은 8만원이었다. 전 재산의 여덟 배가 넘는 돈이 들어 있는 지갑을 욕심내지 않고, 열어보지도 않은 채 경찰서에 갖다준 것이다. 누르는 6월27일 인터뷰에서 “잃어버린 사람이 애타게 찾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 것이 아니니까 최대한 빨리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남의 돈은 가져가지 않는다
67만2천원이 든 지갑을 버스에서 주워 경찰서에 갖다준 예멘 난민 누르.

67만2천원이 든 지갑을 버스에서 주워 경찰서에 갖다준 예멘 난민 누르.

누르는 5월 말에도 오후 5시쯤 성산읍 근처 숙소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가 여성의 지갑을 발견해 그대로 버스 운전기사에게 건넸다. 그는 “두 번이나 우연히 지갑을 주웠지만 가져갈 생각은 단 한순간도 하지 않았다. 비록 내 수중에 한 푼도 없더라도 남의 돈은 가져가지 않는다”고 했다.

누르는 예멘의 남서쪽 도시 이브에서 나고 자랐다. 부유했던 누르의 가족은 매번 약탈의 대상이 됐다. 동네에서는 늘 총격이 오갔다. 누르가 머물던 이브 집 다락방은 수십 방의 총탄 흔적이 남았다. 2016년에는 어린 조카가 배에 총을 맞았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을 다니면서 일하던 중 바레인 여성을 만나 지난해 5월 결혼했다. 하지만 아내의 나라 바레인에 2주 이상 머물 수 없었다. 이유는 하나, 그가 예멘인이기 때문이다. 예멘인은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 주변국 어디에서도 체류가 ‘허락’되지 않는다.

결국 누르는 한국행, 아내는 미국행을 선택했다. 둘이 함께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이민자와 난민 정책에 ‘무관용 원칙’을 내세워 바레인 사람인 아내만 받아주었다. 아내는 지금 미국에서 공부하며 출산을 앞두고 있다. “아내와 2주 뒤 태어날 아기가 너무 보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여기에서 일자리를 못 구해 예멘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해봤지만, 전쟁 탓에 하늘길이 막혀 그마저도 어렵다.” 누르가 막막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을 혐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밑바닥에는 국내 치안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 있다. 예멘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예멘인들의 범죄는 보고되지 않았고, 제주도민이 잃어버린 지갑과 물건을 경찰서에 가져가 되찾아준 사례만 소개됐다. 예멘인들은 전쟁을 피해 온 자신들을 받아준 한국에 감사의 뜻을 표하며 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지만, 일부 시민은 여전히 불안해한다.

누르가 지갑 주인을 찾아준 다음날인 6월6일 새벽 1시, 또 다른 예멘인 압둘라(가명)는 제주 시내 패스트푸드 가게 앞에서 길에 떨어진 지갑과 스마트폰을 발견했다. 당시는 라마단 기간이어서 낮에 음식을 먹지 않았고, 해가 진 뒤 허기를 해결하려고 나선 참이었다.

예멘 경제 마비, 뿔뿔이 흩어진 형제들

5분쯤 물끄러미 지갑과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못 본 척 지나쳤다. 압둘라는 “아랍권에서는 임자 없는 물건을 주우면 경찰이나 분실물센터에 바로 갖다줘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원칙은 그렇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압둘라 역시 지갑을 열어보지 않고 휴대전화와 함께 오라지구대로 가져다줬다. 지갑에는 주민등록증과 8만7천원, 체크카드가 그대로 있었다. “숙소에서 일하는 한국인 친구에게 ‘한국에서 지갑을 주우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묻자, 그냥 두고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게 좋다고 했다. 괜히 경찰서에 가져갔다가 돈이 모자라거나 하면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압둘라는 그런 상황을 의아해했다.

압둘라는 예멘에서 영어 통번역을 전공했지만 대학을 마치고도 일을 구할 수 없었다. 후티 반군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연합군의 내전이 격화된 뒤 예멘의 경제는 마비됐다. 친형제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스위스, 미국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도 지난해 4월 예멘을 떠나 말레이시아로 갔다가 1년간 머문 뒤 제주도로 왔다.

압둘라는 “지갑은 잃어버린 사람에게 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 예멘인들은 한국의 법과 문화를 가르쳐주기만 하면 다 따르고 평화롭게 지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제주에 체류 중인 예멘 난민이 분실물을 찾아준 사례는 누르와 압둘라 말고도 최소 두 건 더 있었다. 제주동부경찰서는 6월 한 달 동안 네 번이나 예멘인이 분실한 지갑을 찾아 경찰서에 갖다줬다고 밝혔다. 지난 1일에는 한 예멘 난민이 제주시청 근처에서 주운 지갑을 가져다줬고, 21일에는 55만원이 든 지갑을 열어보지 않고 경찰서로 가져왔다. 은 분실물을 돌려받은 제주도민들과 수차례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아준 것은 고맙지만 여전히 예멘 난민을 보는 국내 시선이 곱지 않아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외국인 범죄율 내국인보다 낮아

예멘 난민들과 관련된 범죄 신고는 아직 없다. 김상훈 오라지구대장은 “순찰하면서 이야기해보면 (예멘 난민들이) ‘한국에서 법질서를 어기면 큰 불이익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범법 행위는 안 하겠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주민들은 낯선 중동권 외국인이 한꺼번에 많이 들어와 불안한 눈치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예멘인들과 연락망을 짜고 소통하며 법질서를 지켜달라고 당부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멘 난민들에게 숙소를 제공한 한 제주도민은 “우리가 뉴스로 본 무슬림에 관한 소식이 전쟁과 테러가 많아서 선입견을 갖기 쉽지만, 같이 살면서 지켜본 예멘인들은 친화력이 높아 금방 한국 사회에 적응할 것 같다.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 등이 여전히 정부 조치에 불만을 갖고 있지만 도내 여론도 많이 차분해진 상태다”라고 했다.

제주도에서는 예멘인과 주민, 경찰이 평화롭게 살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예멘 난민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제주도 불법 난민 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허가 폐지/개헌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청원글에는 6월29일 오후 현재 53만 명 넘는 사람이 찬성했다. 청원인은 “자국민의 치안과 안전, 불법체류 외 다른 사회문제를 먼저 챙겨주시기 부탁드린다”며 난민신청자들이 앞으로 일으킬 수도 있는 사회문제에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난민들이 잠재적 범죄자고, 이들의 범죄율이 높다는 믿음은 근거가 없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연구자료 ‘공식 통계에 나타난 외국인 범죄의 발생 동향 및 특성’을 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동안 내·외국인 범죄 인구 10만 명당 검거 인원을 비교한 결과, 내국인 검거 인원이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의 검거 인원 지수가 가장 높았던 2011년을 기준으로 봐도 10만 명당 검거 인원은 내국인이 3524명이었고, 외국인은 1591명으로 2.2배 가까이 많았다.

내국인의 범죄율이 외국인보다 훨씬 높지만 외국인 범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왜곡됐다. 2016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최영신 연구원 등이 발표한 ‘외국인 폭력범죄에 관한 연구’를 보면 한국인은 대체로 ‘외국인이 내국인보다 위험하고, 이주노동자의 범죄율이 높으며, 외국인 범죄는 대부분 불법체류자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사람보다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 더 위험하다’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응답한 내국인은 전체 응답자의 58%(500명 중 290명)이고, ‘이주노동자의 증가로 범죄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응답한 내국인은 75%(375명)에 이르렀다.

난민에 대한 오해가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조짐도 있다.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들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직후인 6월21일에는 국내 예멘 난민을 포함한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카페 ‘난민대책 정의행동’이 개설됐다. 카페 회원수는 개설된 지 열흘도 안 돼 2500명으로 늘어났다. 카페 게시글은 중동에서 온 이슬람교 난민들이 돈을 벌기 위해 불법 브로커를 통해 입국한 ‘가짜 난민’이며 이들이 잠재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범죄자가 되고 IS(이슬람국가) 같은 테러리스트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담긴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6월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가짜 난민 추방’ 집회를 열 계획도 세웠다.

난민을 혐오하는 쪽에서 계속 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 난민 관련 통계를 내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난민만을 대상으로 연구할 가능성은 작다. 국내 거주 난민 수가 너무 적어 의미 있는 결과를 끌어내기 어렵고, 조사 자체가 ‘차별’이라는 인식이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 관계자는 “난민에 따로 범주를 설정하는 행위 자체가 반인권적이기 때문에 스웨덴 같은 선진국에서는 아예 난민 범죄 통계를 집계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고 설명했다.

이슬람 문화도 바뀌고 있다

지갑과 스마트폰을 주워 경찰서에 갖다준 압둘라는 “최근 예멘 난민을 둘러싼 루머가 퍼지면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느낀다.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게 보여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우리가 잠재적 성범죄자라거나 테러리스트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한국인 눈에는 모든 무슬림이 같아 보이겠지만 살인과 성범죄를 일삼는 IS는 무슬림의 율법을 따르지 않는다. 무슬림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예멘 난민 포비아(혐오증)’의 기저에 깔린 여성 차별 문제도 예멘인들은 ‘근거가 없다’며 일축했다. 드물게 여성 혼자서 제주도로 온 아비다(가명)는 예멘 남성이 여성을 하대하고 폭행을 일삼는다는 일부 주장에 “무슬림 남성이 여성을 억압한다는 것은 명백히 거짓이다. 이슬람 문화권도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과거 남성이 여성의 사회활동을 좋아하지 않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보기 힘들다. 일부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기도 하지만, 그건 다른 문화권도 마찬가지 아닌가”라며 반문했다.

근거 없이 퍼지는 이슬람 루머에 법무부는 우려를 나타냈다. 법무부는 6월29일 급증한 예멘 난민심사를 위해 제주출입국·외국인청 난민심사 담당자 증원 방침을 밝힌 뒤 “지나친 온정주의나 과도한 혐오감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인터넷 등에 사실이 아닌 내용이 유포되는 데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제주=이재호 기자 ph@hani.co.kr,
사진 박승화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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