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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과 낙선 그 이상

보수 아성 대구, 풀뿌리 모범생 과천, 무소속 프로젝트…

<한겨레21>이 주목한 지방선거 숨은 주역 ‘애프터 인터뷰’
등록 2018-06-19 17:14 수정 2020-05-03 04:28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로 서울 마포구 구의원에 무소속 출마(제1213호 포토2 ‘우리 동네 소속 차윤주입니다’)한 차윤주씨가 지난 6월14일 새벽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자신의 득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그는 19%를 득표했지만, 2등에 300여표 뒤져 낙선했다. 박승화 기자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로 서울 마포구 구의원에 무소속 출마(제1213호 포토2 ‘우리 동네 소속 차윤주입니다’)한 차윤주씨가 지난 6월14일 새벽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자신의 득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그는 19%를 득표했지만, 2등에 300여표 뒤져 낙선했다. 박승화 기자

선거가 끝났다.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바른미래당 유승민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3위에 그친 안철수 전 의원도 정계 은퇴를 고려할 만큼 상처를 입었다. 큰 판의 변화는 분명했다. 은 6·13 지방선거에 앞서 ‘지방정치’ ‘동네정치’로 표현되는 작은 정치판의 변화 가능성을 모색했다. 대구, 경기도 과천 등 서로 다른 지역의 정치와 인물들의 도전을 들여다보거나 ‘무소속 프로젝트’로 정당정치의 한계와 필요성을 따져보는 실험도 살펴봤다. 막상 선거에서 누군가는 당선되고 누군가는 낙선했다. 그들을 다시 찾아 그 결과만이 아니라, 도전의 의미와 내용을 되짚어봤다.

대구 훈풍의 시작은 ‘출마자 풍년’

“이제 시작입니다.”

대구 남구 구의원이 된 더불어민주당 이정현(35) 당선인은 선거비 보전을 받기 위해 비용을 따져보는 중이었다.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하고 싶었다.” 그는 “선거기간 중 가장 힘든 건 더위였다”고 말할 만큼 여유도 보였다. ‘민주당이라고 욕만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걱정은 옛말이 됐다.

이 당선인에게는 김부겸 민주당 후보가 대구 칠성시장 선거 유세 중 삿대질하는 시민에게 “얼굴도 안 보고 찍어주는 그런 정치, 그런 선거 언제까지 할 낍니까”라고 호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016년 국회의원선거이니 불과 2년 전이다. 상전벽해인 셈이다. 이 당선인은 선거기간 내내 변화를 몸으로 느꼈다. 당선은 결과일 뿐이다.

이런 변화는 어디서 왔을까. 김부겸이라는 정치인이 지방선거, 총선 등 연이은 도전으로 국회의원이 된 것은 그 시작이었다. ‘빨갱이’라는 낙인이 더는 통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70% 넘는 지지와 민주당의 전례 없는 지원은 변화를 가속했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분위기도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이유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후보가 선거판에 등장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장,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등에 출마한 후보자는 89명이었다. 여당(옛 열린우리당)으로 선거를 치르던 제4회 지방선거에서 55명이 지금까지 최대였다. 제6회 지방선거의 24명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마저도 제5회 선거 15명보다 많이 늘었다고 위안 삼기도 했다.

후보 89명이 대구를 흔드니 예전에는 민주당 후보조차 없었던 시의원에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4명이나 당선이 됐다. 대구 지방선거 역사상 처음이었다. 민주당 출마자 46명 중 45명의 당선인이 나온 구의원 선거는 앞으로 대구에서 치러질 크고 작은 선거에서 더 큰 변화를 예고했다. 구의원은 지방자치의 중핵이기도 하지만, 선거철마다 현장의 표를 다지는 정당의 기반이기도 하다.

후보의 양적 증가가 정치 지형의 질적 변화를 이끈 양질 전환일까. 섣불리 답을 내기는 어렵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틀림없지만, 언제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도 존재한다. 이 당선인은 ‘정치인’이라는 말을 낯설어했다.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이라고 했다. 겸손으로 읽혔지만, 정당정치가 지방자치와 더 밀착했다면 정치인이라는 말을 오히려 더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과천 ‘풀뿌리 후보’들 모두 낙선

대구의 강풍이 훈풍이라면, 과천에 불어닥친 것은 이상한파다. 과천의 풀뿌리 정치는 선거 뒤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곳곳에서 나온다.

“참패입니다.” 과천시장 후보로 이번 선거에 나섰던 안영(48) 전 시의원의 목소리에서 안타까움이 여러 갈래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시민통합후보’로 뜻을 함께한 동료들의 예상 밖 패배는 본인의 낙선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였다. “시의원 후보가 모두 낙선한 건 이변”이라며 “당장 시민감시를 위해 필요한 (과천시) 자료 제출 요구부터 어렵게 됐다”고 했다.

지금까지 과천에서는 풀뿌리운동으로 상징되는 단체들이 모여 시의원 후보를 내고 ‘자연스럽게’ 당선돼왔다. 이번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 2월 지역정치 네트워크 ‘과천시민정치 다함’이 꾸려졌고 정의당·녹색당 등 진보정당이 함께하면서 더 자신감을 얻었다. 그렇게 안영 후보뿐만 아니라 전 과천풀뿌리 대표 구자동(47) 후보, 전 두근두근방과후 운영위원장 안수정(47) 후보, 성미선 후보(녹색당 기초비례) 등이 선거운동에 나섰다.

화려한 시작과 달리 선거기간 내내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 대형 이슈는 평화를 주장하는 여당과 발목 잡는 야당의 구도로 지역 분위기를 몰고 갔다. “이번만큼은 자유한국당 후보를 시장으로 당선시켜서는 안 된다”는 말이 돌았고, 안 후보에게 단일화 요구가 있을 만큼 여당을 지지하는 전략투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결과는 세 후보 모두 낙선이었다. 패배보다 어려운 게 반성과 성찰이다. 먼저 왜 시민들의 외면을 받았는지부터 따져볼 계획이다. 안 후보는 “정치적 환경보다는 철저한 내부 반성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다. 이들에게 겨울은 시작됐다. 앞으로 4년, 과천 풀뿌리 정치는 어떤 모습이 될까.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서울 마포구 나선거구에 출마한 차윤주 후보에게서 낙선의 절망감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다” 시작한 정치, 계속할지 말지를 일단 고민 중이었다. ‘12년차 기자 윤주씨, 나 대신 세금 좀 감시해줄래요?’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한 선거, “우리가 이번 지방선거에 작은 메시지 하나는 던진 것 같은데…”라는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도전은 사실 무모했다. 정치부 출입기자였던 차 후보도 마포가 어떤 곳인지 알았을 것이다. 3선인 노웅래 의원은 부친인 노승환 의원과 함께 다선 의원이다. 대를 이어온 지역정치의 중심에 그와 민주당이 있다. 마포에서 무소속이라니, 처음부터 힘든 선택이었다.

아무나 정치할 수 없는 걸까

선거기간에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을까. 낮은 인지도, 쪼들리는 재정, 조직의 열악함 등 그가 언급했을 만한 항목은 넘쳐났다. 하지만 그의 답안에는 현직 구의원이 누구인지 제대로 모르는 ‘깜깜이’ 선거에 대한 답답함이 빼곡했다. “2등도 구의원으로 당선된다는 것을 모를 정도더라고요.” 구의원 후보가 누구인지 관심 밖인 현실, 이렇게 해서는 지방자치가 제대로 될 리 없다는 걱정이 이어졌다.

“정당정치가 바로 서야 한다는 대원칙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정치가 (지역구) 국회의원에 종속된 현실을 볼 때 구의원은 정당에서 자유로우면 어떨까 한다.”

그가 정치를 계속할지 전화 인터뷰 내내 궁금했다. 그를 이끈 것은 “정치는 아무나 할 수 있다”며 시작한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였다.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프로젝트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차 후보를 포함해 서울시 금천구 다선거구 곽승희(31) 후보, 마포구 사선거구 김정은(38) 후보, 마포구 아선거구 우정이(40) 후보는 모두 낙선했다. 그렇다면 프로젝트는 실패한 것일까. 답은 차 전 후보가 고민 끝에 내리는 결론에 있을 것이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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