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도쿄생활자네트워크’는 지역정당 가운데 가장 활동력이 왕성할 뿐만 아니라 여성이 지방자치의 주인공으로 나서 ‘생활정치’를 전파하고 있다. 1977년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출범해, 이듬해 첫 지방의원이 당선된 뒤 지금까지 모두 184명의 지방의원을 배출했다. 3월9일 도쿄도 신주쿠에 있는 도쿄도의회 의사당에서 니시자키 미쓰코(사진) 도쿄생활자네트워크 대표위원을 만났다. 의석수가 적은 지역정당이 지방의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묻자 “보육, 환경,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민사회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치인에겐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 정책과 법률을 만들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대기업 박차고 생협 운동 투신</font></font>
젊을 때 대기업에 다녔던 니시자키 대표는 거대한 조직사회에서 사람이 부품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것에 의문을 느끼고 회사를 나왔다. 이후 결혼해 아이를 낳은 뒤 ‘아이에게 안심하고 줄 수 있는 먹거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생협 운동에 뛰어들었다. 생협 활동을 꾸준히 하다 ‘정치가 시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해주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직접 정치에 나서기로 했다. 그리고 도쿄도의원으로 3선을 거친 뒤 지금은 도쿄도의원인 야마우치 레이코와 거주지인 세타가야구의 구의원을 지원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니시자키 대표는 ‘주민자치’를 일본 정치의 핵심이라고 했다. 그는 “여태껏 중앙정치는 상명하달식이어서 실제 생활 현장에서 주민이 원하는 정책을 받아안지 못했다. ‘우리를 빼놓고 우리와 관련된 일을 정하지 말라’는 슬로건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도쿄생활자네트워크는 어떻게 탄생했나.원래는 식품 안전이나 환경 등 생활 주변에서 겪는 문제를 생활협동조합 ‘도쿄생활클럽’ 회원들이 주민 청원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생활클럽 회원만 생활의 안전을 확보할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우리의 안전기준에 맞추고 소비자가 더 좋은 물건을 선택하도록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에서 정치활동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지방의회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정책을 직접 말해줄 의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으면서 정치 조직화를 꾀하게 됐다.
지역정당으로서 도쿄생활자네트워크의 특징은 뭔가.우선 의원의 직업화나 특권화를 막기 위해 최대 3선(12년)으로 임기를 제한한다. 새로운 세대를 의회에 보내 훈련해야 조직의 건강성이 지속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을 의원으로 배출하고 정치 참여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둘째는 의원의 보수를 시민 활동 자금으로 쓰는 것이다. 도쿄도의원은 월 100만엔(약 1천만원)을 보수로 받는다. 이를 도쿄생활자네트워크에 기부해 자금 사용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셋째는 선거를 회원 스스로 치르는 것이다.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모두 자원봉사자다. 선거 자금도 대부분 직접 모금해 마련한다.
의원 순환제가 인상적이다. 장점도 있지만 전문 역량이 쌓이더라도 이를 발휘할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을 듯하다.그런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지난해 여름까지 도의원 3선을 거쳤고 이후 도의회 선거 때 신인 후보와 교대했다. 의원직을 내려놓았다고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되레 의원 출신 베테랑 간부들이 조직을 떠받치고 전문성을 살려 다른 의원들을 돕기 때문에 지역정치의 영향력이 더 강화된다. 나는 현재 도쿄도의원인 야마우치 레이코와 내가 사는 세타가야구의 구의원을 지원하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자민당도 우리의 인식 공유” </font></font>
현재 도쿄도 내 의원 55명이 모두 여성이다.우리의 활동은 육아나 간병, 식품 안전, 환경 등 여성들, 누구보다 주부가 생활 현장에서 겪는 목소리를 의회에 내놓지 않으면 정책 변화가 없다는 인식에서 시작됐다. 처음 도쿄도의원으로 당선된 회원이 의회에서 식품 안전이나 아이들 교육과 관련한 질의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집안일을 의회에 가져오지 말라는 야유가 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남성 중심 사회였던 것이다. 지금은 도쿄생활자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중앙정당에서도 생활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동안 가장 관심을 갖고 추진한 활동이나 정책은 무엇인가.교육과 육아, 환경, 복지를 우선하는 지역사회 만들기를 지향해 관련 분야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우리는 출범 이후 꾸준히 “육아와 간병은 사회가 해야 할 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앞장섰다. 육아와 간병의 사회적 책임 문제를 처음 지방의회 차원에서 제기한 것도 도쿄생활자네트워크다.
현재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은 무엇인가.주민의 정치 참여율을 높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중앙정치는 상명하달식이어서 실제 생활 현장에서 원하는 정책을 받아안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를 빼놓고 우리와 관련된 일을 정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는 슬로건에 주목한다. 주민의 요구가 정치에 반영되지 않으면 아무리 그럴듯한 제도를 만들어도 실생활 적용에 문제가 생긴다.
주민 참여를 어떤 방식으로 유도하고 있나.주민과 지방의회·지방정부가 만나 토론하는 ‘시민과 행정 협의회’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현재 19차까지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지방의원들은 발언하기보다는 주민과 행정관청을 연결해주는 파이프 구실을 맡는다. 주민 쪽 대표자가 도청에 질의하고 이에 담당자가 답하는 식이다. 이런 모임은 도쿄생활자네트워크가 처음 시행했다. 이외에 ‘한마디 제안’ 운동으로 주민 참여를 유도한다. 부정기적으로 도쿄생활자네트워크 의원과 회원들이 지역주민을 찾아가 그들의 의견을 모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한국 소수정당이 지방의회 진출하려면 </font></font>
한국에서 6월에 지방선거가 있다. 한국에선 소수정당이 지방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우리가 해온 것처럼 주민의 요구를 받아안고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내서 한 발씩 주민 생활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성이 주변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냈을 때 비로소 정치가 성립한다는 점을 내세운 것이 도쿄생활자네트워크가 지방의회에 진출하는 결정적 포인트였다. 다양성을 중시하지 않는 정치가 생활로부터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정치에서 여성이 소수자였다는 점도 그렇지만 외국인, 장애인, 성소수자, 아동, 고령자 등 다양한 소수자들로 사회가 구성돼 있다.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쿄(일본)=<font color="#008ABD">글 </font>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font color="#008ABD">사진 </font>이경주 한겨레TV PD lee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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