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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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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점을 두려워하던 ‘15살’이 아니다

서울 ㅁ여중 생물 교사의 1년간 성추행 사실 알린 이유지씨

“학교가 제대로 사과하고 변화해야”
등록 2018-03-27 16:58 수정 2020-05-03 04:28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폭로’는 어제오늘 시작된 일이 아니다. 늘 있어왔지만, 늘 들리지 않았고, 늘 의심당했다. 한국 사회에서 #미투는 두 달 가까이 이슈의 중심에 있지만, 동시에 거센 반격의 파고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위험한’ 말하기를 이어가고 있다. 2018년 1월29일, 서지현 검사의 #미투 이후 연극·영화·대중음악·사진·언론·정치권·대학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심지어 서울 청계광장에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한 ‘2018분 동안의 이어말하기’에선 3월22일 오전 9시22분부터 3월23일 오후 2시까지 1박2일 동안 쉬지 않고 ‘미투’가 이어졌다.
틈만 나면 성추행하는 사장, 가슴을 한라봉에 비유한 친척 어른, 큰길에서 엉덩이를 툭 치며 지나간 20대 청년,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의 가슴을 꼬집으며 ‘얼마나 몽우리가 잡혔는지 보자’고 말했던 담임교사, 가정폭력에 20년째 벌벌 떠는 엄마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약한 나…. “얇은 가닥가닥 존재했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미투라는 큰 밧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26번째 발언) 3월의 찬 새벽을 채운 말들은 얼지 않고 모두 기록되어, 이 시대 여성들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제1205호는 한국 사회 일상에서 이어지는 ‘강간 문화’를 고발하는 미투 가운데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스쿨미투’에 주목했다. 2월28일 전교조 여성위원회가 페이스북에 꾸린 ‘스쿨미투’(school me_too) 페이지에는 3월23일 현재까지 모두 79개의 ‘스쿨미투’가 올라왔다. 제보 내용이 삭제된 2건을 제외한 77건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70.1%에 해당하는 54건이 학생이 교사에게 당한 사례였다. 교사가 학생에게 가하는 성범죄가 매우 우려할 만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은 7년 전, 1년 동안 교사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서울 ㅁ여중 졸업생 이유지(22)씨를 만났다. 그는 ‘2018년 스쿨미투’를 학교에서 학교 바깥으로 끌어낸 첫 번째 고발자다. 7년 전 벌점을 두려워하던 15살 소녀들은, 강한 여성으로 돌아와, 위험에 처한 15살 후배들을 구하고자 했다. _편집자
3월22일 오전 9시22분부터 3월23일 오후 7시까지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선 ‘2018분의 이어말하기’가 열렸다.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는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서 많은 여성은 성차별·성폭력 없는 세상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이어 말했다. 연합뉴스

3월22일 오전 9시22분부터 3월23일 오후 7시까지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선 ‘2018분의 이어말하기’가 열렸다.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는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서 많은 여성은 성차별·성폭력 없는 세상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이어 말했다. 연합뉴스

“3월 안에 그 학교 그만두시고 자수하세요. 아니면 폭로하겠습니다.”

3월6일, 이유지(22)씨는 페이스북에 올린 이 글로 포문을 열었다. 7년 만의 ‘폭로 경고’였다. 이유지씨는 만 15살이던 중학교 3학년 때, 서울 관악구 ㅁ여자중학교 생물 교사에게 1년간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

이유지씨는 처음엔 피해 사실을 상세하게 폭로하지 않았다. 첫 글 뒤 교사에게 전하는 두 번째 글을 올렸다. “선생님께서 해야 되는 일 1. 페이스북 본인 계정에 사과문 업로드하기 2. 자수/ 선생님께서 하면 안 되는 일 1.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기 2. 발뺌” 김씨는 가해 교사가 자신에게 직접 연락하지 못하도록 친구에게 부탁해 ‘대리인’ 역할을 맡겼다. “보통 가해자들이 처음에는 사과하는 척하다가, 꼭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 좋아하는 사이였다, 발뺌을 하잖아요. 정말 사과한다면 스스로 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역고소 부담도 덜고 싶었어요.” 이씨가 가해자에게 ‘자수’를 권하는 이유다.

피해자에게도 일상이 있다

3월11일, 차곡차곡 ‘폭로 이후’ 단계를 밟아나가던 이씨를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는 이씨는 숏커트 머리에 검정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코트 안 흰 티셔츠에는 ‘여성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GIRLS CAN BE ANYTHING)라는 문구가 써 있었다. 그는 페미니스트 사진모임 ‘유토피아’에 참여하고 있다. 4월 전시를 위해 모델로 촬영한 사진을 하루 전 페이스북 계정에 올렸다. 3월25일 서울 홍대 앞에서 준비 중인 작은 공연 연습도 열심히 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념이 있잖아요. 우울에 빠져 있고, 약하고, 자책하고…. 하지만 피해자에게도 일상이 있고, 피해자도 웃어야 하고, 피해자도 즐길 수 있어요. ‘성폭력 피해자라면서 어떻게 웃어? 어떻게 그래?’라는 반응이 있는데, 저를 보여줌으로써 ‘당신들이 말하는 그런 피해자는 없다’는 걸 꼭 알려주고 싶어요.” 이씨는 인터뷰 시작부터 단단하게 말했다.

이유지씨는 강한 피해자다. 가해 교사는 그가 요구한 4가지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 곧바로 페이스북 메시지로 연락해왔다. “그가 ‘만나자’ ‘만나서 말하자’고 했어요. 대리인을 통해 말하라고 했어요.” 대리인 계정을 통해 가해 교사는 처음에 사과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사표를 냈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얼마 뒤 대리인을 통해 물었다. “중학교 3학년 학생을 좋아해서는 안 되는데 좋아했었다는 것. 이로 인해 상처가 되었으니 교사로서 당연히 퇴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이 되어서 바로 퇴사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묻고 싶은 것은 저만의 마음이었던 건지를 묻고 싶습니다.” 피해자의 ‘마음’을 궁금해하던 가해 교사는 예측한 대로 경찰서에 자수하지 않았고, 페이스북 계정에 자신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적고 사과하는 사과문을 올리지도 않았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이씨는 페이스북에 가해 사실을 올렸다.

이씨는 가해 교사의 ‘마음에 대한 질문’에 답했다. “저는 순수하게 선생님을 좋아하는 중학생이었어요. 선생님은 저보다 18살이 많은, 통기타반과 밴드부를 담당했던 ‘선생님’이었죠. 제자가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해서, 학생을 만지고, 신체적 감정적으로 착취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 비뚤어진 마음을 ‘좋아했다’는 로맨스로 꾸미고 변명하지 마세요.”

“교사에게 학생을 만질 권리는 없다”

방과후 통기타반 교사였던 가해 교사는 이씨의 통기타가 부러지자 “같이 사러 가자”고 서울 낙원상가에 데려갔다. 제자가 기타를 사는 걸 도와주고 맛있는 밥도 사줬다. 그때까지는 평범한 사제간이었다. 그러나 이후 사적으로 연락하기 시작했다. ‘공부하느라 힘드니 바람을 쐬자’는 말과 함께 유명한 ‘데이트 장소’들로 김씨를 데려갔다. “거북목이라 안마해준다”며 스킨십을 한 뒤 “선생님이 안마해줬다고 말하지 마”라고 입단속을 시켰다. 카카오톡을 통해 ‘섹시한 사진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대화 후에는 ‘카톡방 잘 나가라’고 단속하고, ‘카톡 다 지우라’고 점검했다. ‘핸드폰 잠그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추행은 점점 심해졌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햄버거를 사왔다”며 이씨를 불러내 추행했다. 이씨는 “그리고 다시 친구들이 있는 도서관으로 돌아가는 길이, 내 자신이 지옥 같았다”고 말했다. 학원이 끝나는 시간을 묻고 “기다리고 있다”며 차에 태우고는 집 근처 어두운 곳으로 데려가 추행한 뒤 집에 데려다줬다. 중3 여름께는 추행의 강도가 더욱 심해졌다. 주말 부부인 그는 그즈음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마련했고, 그곳으로 이씨를 불러들였다. “추행의 횟수를 따지면 100번도 넘을 거예요. 3학년 봄부터 졸업할 때까지.”

이씨는 말했다. “몇 번이나 끊자고 말했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말했어요. 혼란스럽다, 힘들다, 말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날 다시 말을 걸고, 학교에서 복도에서 만나면 손을 잡고 인사했어요. 제가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은 졸업밖에 없었어요. 졸업만을 기다렸어요.”

이씨가 이런 가해 사실들을 몇 가지 증거와 함께 페이스북에 폭로하자, 이씨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닌 게 됐다. “너무 놀랍게도, 친구, 후배 등 많은 ㅁ여중 선후배들이 응원해줬어요.” ㅁ여중 졸업생들은 해당 가해 교사는 물론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학교 문화에 대한 고발을 시작했다. 이씨와 같은 해 ㅁ여중을 졸업하고 현재 미국에서 공부하는 조영선(22)씨는 “학교가 순종적인 여성상을 강조했다. ‘여자는 발목을 보이면 안 된다’며 반드시 발목까지 올라오는 흰 양말을 신게 했다. 속옷 색깔까지 흰색으로 교칙에 정해져 있었다. 색깔 있는 속옷을 입은 학생에게는 ‘너는 남자 꼬시려고 이런 색깔 속옷을 입었냐’ 등의 말을 했다. 교무실에 들어갈 때는 밖에 가방과 외투를 무조건 모두 벗어놓고 문을 열고 허공에 인사해야 했다. 마이(재킷) 단추를 잠그지 않고 교무실에 들어가면 벌점을 받는 등 교사에게 엄청난 제왕적 권위가 부여돼 있었다다”고 말했다.

졸업생·재학생의 ‘with you’
2015년 서울 한 공립고등학교 교장 등 보직교사 5명이 동료 교사 10명과 제자 130여 명을 성추행·성희롱한 사건이 드러나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서울교육단체협의회 소속 회원들이 당시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학교 성폭력 근절 대책 촉구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세상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한겨레

2015년 서울 한 공립고등학교 교장 등 보직교사 5명이 동료 교사 10명과 제자 130여 명을 성추행·성희롱한 사건이 드러나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서울교육단체협의회 소속 회원들이 당시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학교 성폭력 근절 대책 촉구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세상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한겨레

이유지씨는 이 학교가 등교시 속옷 검사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등교할 때 선도부에서 ‘속바지 입었냐’고 물어보면 치마 옆 지퍼를 10cm 정도 내리고 속바지 입은 걸 보여줬다. 그때 남자 선생님도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ㅁ여중 복장용의규정엔 △커트 형태의 머리는 허용하지 않는다(2018년 폐지) △여름에는 흰색, 연분홍색, 베이지색 등의 속옷과 속바지를 착용한다 등의 내용이 있다. 2012년부터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돼 학생들은 복장, 머리 등을 통해 개성을 실현할 권리가 있지만, ㅁ여중은 여전히 단발머리는 귀밑 10cm, 묶었을 때는 귀밑 35cm, 머리핀은 검정색 등 매우 세세하게 복장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 졸업생은 페이스북에서 #metoo #withyou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가해 교사가 담임이었던 1학년 때 반 친구들이 참 많이 맞았습니다. 앞머리가 길어서, 과학실에 늦게 온 학생이 있어, 반 전체가 연대 책임으로 맞았습니다. 손찌검을 할 것처럼 손을 휙 들어올려 겁을 주고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척하는 제스처를 장난으로 해오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유지님의 고발을 보고서 우리는 모두 가해 교사가 가해 당시 내뱉었을 말투와 제스처를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교사의 지시에 의문을 가질 수 없고 양말 색깔까지 통제받던 분위기에서 가해 교사가 어떤 물리적·감정적 폭력을 행사했는지를.” 이 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학교의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문화가 학생이 피해를 당하고도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누가 말해주고, 설명하지 않아도 ‘위력에 의한 성범죄’ 개념을 깨닫고, 피해자를 지지했다.

이유지씨는 같은 학교를 다녔던 졸업생 등에게 지지를 받고 있지만, 아직 학교 쪽 사과는 받지 못했다. 오히려 ‘피해자가 고소를 미루고 있어 해당 교사를 직위해제시킬 수 없다. 그로 인해 수업 결손이 생기고 있다’는 2차 가해를 했다. 최아무개 서울 ㅁ여중 교장은 3월14일 학부모 총회에서 “가해 교사를 빨리 사직시키고 후임 교사를 들여야 학교에서 학생의 수업 결손을 막을 수 있다. 그러려면 수사 개시 통보가 와야 하는데 피해자가 고소를 미루고 있어서 수사 개시가 되지 않고 교사 채용에 지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의 설명은 다르다. “사립학교법에 따라 사립학교 교원에 대한 징계 권한은 학교 법인에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직위해제를 요청한 상태다. 지금 어느 정도 사실관계가 인정되기 때문에 공립학교였다면 직위해제한 상태에서 다음 성범죄 사건 해결 절차를 밟을 것이다.”

‘미투’ 시대, 학교는 ‘제자리’

이 사건이 알려지며 서울시교육청은 3월12일부터 서울 ㅁ여중의 성범죄 사건에 대한 특별감사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ㅁ여중에서 지난해에도 교사 둘이 학생에 대한 성범죄로 각각 직위해제(정교사)와 계약만료(기간제 교사)된 것이 드러났다. 문제는 학교가 이 사건을 학생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덮으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일어난 성범죄 사건은 반드시 교육청에 보고하도록 돼 있지만, ㅁ여중은 2건 가운데 1건은 보고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은 추가 성범죄 여부는 물론 2건의 교사 성범죄를 은폐한 정황까지 감사 범위에 포함시켰다. 또 이 학교의 권위적 교칙 등 학교 규율을 검토하기 위한 컨설팅도 할 예정이다.

조영선씨 등 ㅁ여중 졸업생 300명은 3월21일 온라인으로 시민 2338명의 서명을 받아 학교에 사과 요청문을 보냈다. 사과 요청문에는 서울 ㅁ여중의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사과 결여 △성폭행 사건에 대한 학교의 잘못된 대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학교에 만연한 신체·언어 폭력 △학교의 부적절한 교육관 △학교의 폐쇄적인 분위기를 바로잡고 사과하라는 요구가 담겨 있다.

이유지씨는 “학교가 제대로 사과하고, 권위적인 문화와 비민주적인 교칙 등을 다시 검토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지금도 이 동네에 살고 있어 학교 앞을 지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아프다. 이 사실을 공론화하기 위해 부모님께 (피해 사실을) 알리기로 결심한 날에는 이유 없이 하루 종일 토하기도 했다. 자해를 하고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다.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의 그런 시절에 대해서, 학교와 가해 교사는 사과해야 한다. 내가 받은 상처를 또 다른 여성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당하게 하고 싶지 않다.”

스쿨미투는 결국 ‘미래를 위한’ 미투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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