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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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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삼성의 직원 사찰

휴대전화 위치추적·채증·미행·감시·도청 의혹…

직원들 일상적 공포, 제대로 수사된 적 드물어
등록 2018-03-06 18:06 수정 2020-05-03 04:28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2008년 3월2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서 삼성노동자 위치추적 사건 재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2008년 3월2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서 삼성노동자 위치추적 사건 재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삼성의 직원 감시는 유령과 같다. 곁에서 배회하는 것을 느끼지만 실체를 붙잡긴 힘들다. 증거를 손에 움켜쥐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빠져나갈 구멍이 생겨난다. 삼성웰스토리가 회사와 분쟁 중인 직원의 컴퓨터를 캡처(갈무리)하는 방식으로 감시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지만, 그 실체가 제대로 규명될지 자신하긴 힘들다.

2005년 검찰의 부실 수사

삼성의 직원 감사 사례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2004년 불거진 삼성SDI 노동자 등의 ‘위치추적 사건’이다. 2004년 7월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과 노조 결성을 준비하던 삼성SDI 노동자 등은 자신의 휴대전화가 복제되고 위치가 추적된 사실을 확인하고 이건희 삼성 회장 등을 검찰에 고소했다. 당시 위치추적 피해자로 파악된 사람만 20여 명에 이르렀다. 대부분 삼성 내 노조 설립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다. 위치추적이 퇴근 시간 이후 집중적으로 이뤄졌고, 불법 복제된 휴대전화의 발신 기지국이 삼성SDI 수원 공장 근처라는 이유로 이건희 삼성 회장, 김순택 당시 삼성SDI 대표이사 등을 피고소인 명단에 올렸다. 회사가 위치추적을 한 정황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2005년 2월 휴대전화가 복제되고 위치추적이 있었던 사실은 확인했지만, (위치추적을 실행에 옮긴) 피의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다며 기소 중지 결정을 내렸다. 당시 검찰은 “수사 결과 누군가가 고소인들의 휴대전화를 몰래 복제한 사실은 밝혀졌다. 그러나 전화를 불법 복제한 ‘누군가’를 찾아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누군가를 기소 중지했다”고 밝혔다. 또 “누군가를 밝히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와 삼성 관계자들의 연관 여부를 밝힐 수도 없어, 누군가를 밝힐 때까지 삼성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는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당연히 부실 수사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위치추적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과거 삼성 구조조정본부(미래전략실의 전신) 법무팀장이던 김용철 변호사는 2008년 1월 인터뷰에서 “당시 구조본 인사팀 팀장이었던 노인식 부사장에게 ‘(삼성SDI 노동자들을 표적 삼아) 정말 위치추적을 했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고개를 어색하게 끄덕이며 시인하더라”고 말했다. 또 삼성전자 인사팀에서 근무했던 서아무개씨는 삼성일반노조에 구체적으로 누가 위치추적을 시도했는지 제보한다. 이를 통해 검찰이 ‘누군가’라는 기묘한 단어로 표현했던 피의자를 특정한 김성환 위원장은 2008년 3월 삼성을 검찰에 고소했지만 서울중앙지검은 두 달 만에 재수사가 필요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김 위원장은 2009년 2월 다시 삼성을 고소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결국 이 사건의 범인은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노조 설립시 즉시 징계할 수 있도록”

삼성의 직원 감시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삼성은 노조 결성 움직임을 보이는 직원에게 대대적인 사찰을 벌이기도 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입수해 2013년 10월 공개한 이른바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보면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가 직원 ‘100과사전’을 제작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문건에는 ‘핵심 문제인력 프로필 정비 및 채증’ 항목 밑에 “노조 설립시 즉시 징계할 수 있도록 비위 사실 채증 지속”을 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더불어 “SMD(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문제인력의 체계적 관리를 위해 문제인력 개개인에 대한 ‘100과사전’을 제작, 개인 취향, 사내 지인, 자산, 주량 등을 꼼꼼히 파일링하여 활용 중”이라고 적혀 있다. 기업이 노조 결성 움직임을 보이는 직원들에게 광범위한 사찰을 했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대법원은 2012년 1월 이 문건을 삼성에서 작성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노조 활동을 사찰한 사실이 들통나기도 했다. 은 2015년 3월 계열사들의 주주총회가 집중된 날 삼성이 노조원과 민원인 등을 사찰한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대화 화면을 공개했다. 회사 쪽 직원 27명이 참여한 카톡방에는 “(삼성테크윈지회장 등 노조 간부 8명이) 테크윈 주총 장소인 성남 상공회의소에 도착, 피켓시위 준비 중입니다” “[정보사항] 07:46 테크윈지회 시위 정○○ 외 3명 전자(C)동 정문 앞 피켓시위 전개” 등 노조 활동 사찰 정보를 공유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삼성에버랜드 등 계열사에서 노조 설립을 시도할 때마다 회사에 미행이나 감시를 당했다는 증언도 이어진다. 김용철 변호사가 쓴 책 에도 관련 내용이 나온다. “삼성구조본 감사팀의 감사 기법은 수사정보기관을 능가한다. 이를테면 감사 대상자가 지방 어느 호텔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동시에 그의 위치와 결제 내역을 알 수 있다” “삼성에서 감시와 도청은 일상 업무였다. 삼성 임직원들이 주고받는 이메일은 모두 감시를 받는다. 공식적으로 일정 용량 이상의 메일만 확인한다지만, 이를 믿는 직원은 없었다” 등의 대목이다.

삼성웰스토리에 또다시 나타난 유령

이 그동안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삼성 직원들 역시 감시의 공포를 느낀다. 자신이 친한 사람과 나눈 은밀한 대화나 퇴근 뒤 외부에서 한 행동을 회사 쪽이 모두 파악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한 삼성 계열사 직원은 “사실일지는 모르지만 많은 직원이 회사에서 휴대전화나 컴퓨터 정도는 들여다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의심이 제대로 조사나 수사를 거쳐 명확히 규명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삼성의 직원 감시와 관련된 수사는 늘 석연치 않은 이유로 실체를 밝히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회사도 명확한 증거가 드러나지 않는 이상 “그런 사실이 없다”며 부인하는 전략으로 일관해왔다.

다시 한번 실체를 밝힐 기회가 왔다. 이번 삼성웰스토리 사건을 통해 삼성 곁을 떠도는 ‘직원 감시’라는 유령을 잡을 수 있을까.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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