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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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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팔아 공천권 샀나

자유한국당 충남도당 ‘공천권’ 무기로 인권조례 폐지 결정 뒤 일사천리로 의결

“지지부진한 보수 정치가 대형 교회와 유착해 지방선거에서 표를 얻으려 할 것”
등록 2018-03-06 14:20 수정 2020-05-03 04:28
한동안 보수의 주적은 ‘종북’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후 종북 약발은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됐다. 특히 평창겨울올림픽이 열어젖힌 한반도 평화의 물결은 이 흐름을 더 부채질하고 있다. 종북 약발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보수가 찾아낸 새로운 영토는 ‘동성애’였다. 보수는 이들을 새로운 적으로 삼아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충남도인권조례 폐지는 그 시작점이었다. 한국 보수가 지금 누구와 어떤 합을 맞추려는지 이 충남도인권조례가 폐지된 급박했던 나흘과, 그 나흘을 지켜본 이들의 분석을 들여다봤다. _편집자
충남 온양온천역에 걸린 충남도인권조례 폐지 환영 펼침막. 인권조례 폐지를 주도한 것은 충남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한 일부 개신교와 보수단체들이었다.

충남 온양온천역에 걸린 충남도인권조례 폐지 환영 펼침막. 인권조례 폐지를 주도한 것은 충남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한 일부 개신교와 보수단체들이었다.

“지사님과 교육감님, 의원님들께서는 무엇이 (우리나라에) 가장 시급한 것이라 보십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성서의 말씀은 동성연애를 하지 말아야 한다. (동성연애를 하면), 너희 나라가 먼 훗날에는 아이 출산을 하지 않는 저출산으로 인해서 땅속에 그냥 스며들지도 모른다(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 걱정에서 우리에게 (동성애를 하지 말라는) 성서 말씀을 주신 것 같습니다. 동성연애를 하면 자식을 낳을 수가 없죠.”

조례 최초 발의 의원이 폐지 주도

2월2일 충남도의회에서 충남도인권조례(충청남도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 폐지안을 투표하기 직전 송덕빈 충남도의원(자유한국당·논산시)이 남긴 발언의 일부다. 송 의원은 2012년 충남도에서 처음 인권조례를 만들 때 대표 발의자였다. 6년 전 제 손으로 인권조례를 발의했던 송 의원은 왜 이제 와 조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충남도인권조례는 2012년 5월10일,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이 주도해 만들었다. 충남도 인권위원회의 한 위원은 “기독교 단체들이 인권조례 폐지 운동을 벌이기 전까지 자유한국당 도의원들이 ‘도민의 인권 보호를 위해 좋은 조례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송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송 의원은 인권조례 폐지안에 찬성표를 던지기 보름여 전인 1월15일 인터뷰에서 “인권조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누려야 할 권리다. 당시 많은 의원이 찬성해 통과됐다. 조례 수정이라면 몰라도 폐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분명한 태도를 밝혔다. 그는 인권조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이유를 묻는 의 질문에 난처한 듯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인권조례를 폐지했지만, 곧 또 다른 인권조례를 발의하겠다”고 했다.

현재 충남도의회의 절대다수를 점한 것은 자유한국당이다. 전체 40석 가운데 30석을 차지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자신들이 만든 인권조례를 제 손으로 폐지하는 것에 적잖은 부담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1월29일 충남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가 이날 의결할 예정이던 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해 ‘의결 보류’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충남도 행자위는 자유한국당 의원 6명, 더불어민주당 의원 2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위원회 구성으로 보면, 자유한국당이 절대 우위였지만 행자위는 이날 “여론 수렴을 더 해야 하고,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의결을 보류하겠다”는 결론을 내고 회의를 마쳤다. 당시 회의를 방청했던 충남도 관계자는 “폐지 여부를 두고 여야 간에 실랑이가 좀 있어 정회를 했다. 카메라가 꺼지자 의원들이 한쪽에 모여 회의를 했고 의결 보류로 결정했다”며 “일방 폐지하자는 분위기는 분명 아니었고, 상임위에서 의결 보류를 선언했으니 이번 회기에서는 폐지안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성서에 따라 고민하고 폐지했다”

하지만 상황은 하루 만에 급변했다. 충남도의회 행자위가 종료된 뒤, 자유한국당 도의원 총회가 소집됐다. 총회를 거쳐 충남도당(위원장 성일종 의원) 차원에서 ‘충남인권조례를 전면 폐지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의결 보류 결정을 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다음날, 인권조례 폐지안이 충남도의회 행자위에 재상정됐다. 의장을 제외하고 표결을 벌여 5 대 2로 폐지안이 가결됐다. 상임위 구실을 하는 행자위에서 폐지안이 통과되자, 안건은 일사천리로 본회의에 상정됐다. 결국 2월2일 본회의에서 인권조례 폐지안은 찬성 25, 기권 1, 반대 11로 가결됐다. 의결 보류됐던 폐지안이 재발의돼 폐지되는 데 딱 나흘이 걸린 셈이다.

이 나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주장이 엇갈린다. 인권조례 폐지 반대 운동을 벌이며 여야 도의원 모두를 만났던 충남인권행동(충남인권조례지키기 공동행동) 관계자들은 “도의원들이 미심쩍게 움직이자 자유한국당 충남도당 차원에서 ‘공천권’을 무기로 압박했다”고 증언했다. 이들이 지목하는 인물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공개적 자리에서 여러 차례 ‘동성애=에이즈 확산’이란 신념을 밝힌 자유한국당 충남도당 위원장 성일종 의원이다. 그가 공천권을 내세우며 조례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자, 도의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물론 성 의원은 이 주장에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맞선다. 자유한국당 충남도당 의원들도 인권조례 폐지 의결 보류 직후 “의원 총회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윗선의 압력이나 상부의 지시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자유롭게 결정했다”고 주장한다. ‘공천권을 매개로 압박이 있었느냐’는 의 질문에 한 자유한국당 도의원은 “공천권 같은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말끝을 흐렸다.

인권조례 최초 발의자로 폐지 반대에서 일주일여 만에 찬성으로 돌아선 송덕빈 의원은 좀더 솔직한 속내를 들려줬다. “인권조례를 만든 당사자지만, 종교인 7만7천 명이 이 조례를 폐지해달라고 서명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한국에선)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데 인권조례가 출산에 조금이라도 저해되는 게 아닐까 싶어,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성서에 따라 고민하고 폐지시켰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폐지에 반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송 의원은 “그런 사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극우 종교 세력에 정치가 굴복한 ‘사건’

결국 자유한국당 충남도의원들은 인권조례의 사회적 의미를 높게 평가해 조례를 제정했지만, 극우 개신교의 압박에 굴복해 폐지로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쏟아낸 의견을 모아보면 “눈 밝은 목사님들이 인권조례에 담긴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에 따른 차별금지 조항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선거를 앞두고 충남도 유권자 25%에 이르는 기독교인들의 의사를 무시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솔직한 폐지 이유다. 극우 기독교 세력이 조례 제정·폐지 같은 정치 영역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셈이다. 충남도인권조례 폐지를 극우 개신교 세력이 그동안 한국 인권운동이 쌓아올린 여러 성과에 처음으로 의미 있는 반격을 가한 ‘사건’으로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충남도 인권조례 폐지는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완고한 종교 원리를 신봉하는 일부 극우 기독교인들의 독단적 믿음이 자유한국당이란 보수정당을 움직여 인권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사건이다. 헌법 제20조에는 “정치와 종교는 분리된다”고 적혀 있지만, 인권조례 폐지로 자유한국당은 헌법적 가치를 부정한 채 특정 종교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정당이 됐다. 자유한국당은 윤리규칙 제20조에 “당원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중략)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어떠한 차별도 하지 아니한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원칙은 인권조례 폐지로 사문화됐다.

인권조례 폐지 이후 기독교 커뮤니티와 블로그에는 충남의 승리를 발판 삼아 전국 인권조례를 모두 폐지해야 한다는 격문이 날마다 설파되고 있다. 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인권이 국가의 정체성을 흔들어놓고 있으며 복음과 민주주의마저 친북 좌파에게 내주었다. 개헌을 하게 되면 고려연방제가 되어 종교의 자유가 금지당할 것”이라는 선전까지 횡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북한의 사회주의 노선에 전도된 문재인 정권과의 체제 전쟁을 선포한다”는 논평까지 냈다.

정치-교회 유착고리 ‘동성애 반대’

이 흐름을 막기 위한 결정적 변곡점은 코앞으로 다가온 6·13 지방선거가 될 전망이다. 현재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전국 13%에 불과하다(한국갤럽 조사). 더불어민주당이 44%로 1위를 달리고 그 뒤를 바른미래당(8%)과 정의당(6%)이 좇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고 주장하며 김영철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한 등을 계기로 극단적인 ‘종북 프레임’을 펼쳤지만, 지지율 부진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이들에게 기댈 언덕은 이제 극우 개신교뿐이다. 충남도인권조례가 폐지되는 과정을 지켜본 인권활동가들은 이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진한 보수 정치가 대형 교회와 유착해 지방선거에서 표를 얻으려 할 것이다. 이들을 잇는 연결고리가 바로 ‘동성애 반대’ ‘인권조례 폐지’의 전면화일 것이다.” 우리가 충남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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