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오른쪽)와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김성태 의원이 2017년 12월1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12월 임시국회가 파행되고 있는 가장 근본적 책임은 ‘문재인 개헌’을 밀어붙이면서 국회를 걷어찬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둔다.”(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2017년 12월25일 한국당 원내대책회의)
“민생을 외면하고 사법부와 감사원을 혼란으로 몰아넣어서, 자유한국당에 돌아오는 것은 무엇인가. 성난 민심뿐일 것이다.”(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12월2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무책임한 야당, 소극적인 여당지난해 12월22일 민생법안 32건과 감사원장·대법관 등 국가운영에 핵심적인 인사들의 인사청문회 보고서 3건 등 35건의 안건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무산된 뒤 여야의 ‘네 탓 공방’이 이어졌다. 여야는 서민 생활에 도움을 주는 민생법안 처리 문제보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인지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표 개헌’은 안 된다”며 국회 개헌특위 기간 연장을 주장하고, 민주당은 “2018년 지방선거 개헌 투표는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한국당 후보도 공약했던 내용”이라며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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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을 두고 여야가 다투는 동안 법안 처리를 기다려온 국민은 애가 탔다. 민생법안 가운데 2017년 안에 꼭 처리돼야 할 법안으로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안법)이 꼽혔다. 전안법은 전기용품이나 생활용품을 제조·수입하는 업자가 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이다. 이 법은 2017년부터 시행 예정이었지만, 영세 소상공인들이 비용 폭탄을 맞게 된다며 1년 유예됐다. 현재 국회 법사위 논의가 끝난 개정안은 규제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완화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영세 소상공인들은 비용 폭탄을 감수하거나 범법자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12월29일 본회의에서 35건의 안건이 처리되긴 했지만, 여야의 입장 차가 분명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국정원 개혁안 등 문재인표 ‘개혁 법안’의 입법은 일정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국민들은 정부의 적폐 청산 노력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앞으로는 국민들의 삶에 현실적인 도움 주는 민생 개혁의 요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정권이 바뀐 뒤에도 피부에 와닿는 삶의 변화가 없다면 정권에 대한 국민 지지는 언제든 꺾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절대적 지지가 필요한 문재인표 개혁 법안 처리는 더 어려워진다.
현재 개혁 입법을 막고 있는 주체는 국회 내 116석을 차지한 한국당이다. 홍준표 당대표, 김성태 원내대표 체제의 한국당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들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안마저 반대하고 있다. 12월12일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 당선된 김 원내대표는 “대여 투쟁력을 강화해서 문재인 정부의 폭정과 전횡, 포퓰리즘을 막아내는 전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정부가 성과로 내세울 개혁 입법을 순순히 처리해줄 수 없다는 각오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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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책임을 무책임한 야당에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불어민주당도 법안 통과를 위한 여야 협의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면할 순 없다. 12월20일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2017년 국정운영 성과와 과제’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여한 김남근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부회장은 “(정부·여당이)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은 뒤로 미루고 행정과 재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적폐 청산에서 민생 개혁으로 개혁의 초점과 중심을 변화해나갈 자신감과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실제 여당은 한국당의 반대가 예상된다며 자신들이 개혁 법안으로 추린 101개의 법안 목록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여당의 모습을 ‘정치 전술’이라 이해할 순 있겠지만,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여당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라 볼 순 없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전술적으로 치면 (개혁 법안 비공개가) 일리 있지만, (야당이나 시민사회와) 토론과 논쟁을 하지 않고 법안 처리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런 방식으로는 법안 처리가 난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당이 어떤 법안을 주요하게 처리할지 발표하고 이를 야당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쟁점으로 만들고 활발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김남근 민변 부회장도 “개혁 입법 추진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한국당이 이에 왜 반대하는지 드러낼 필요가 있다. 여당이 자신 없다고 쉬쉬하지 말고 안 되면 국민과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청와대와 집권당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정권 초에 무리하게 정책을 집행하려다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되면, 중반 이후부터 거꾸로 정권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서복경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 추진한 대운하 사업이 여론의 반발에 막히자 ‘4대강 사업’으로 법을 우회했다가 결국 덫에 빠졌다. 무리수는 결국 집권당의 책임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야당과 충분한 논의와 협의를 거쳐 사회적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 교수는 “제도는 한번 만들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유지해야 한다. 제도를 유지하는 힘은 사회적 동의다. 충분한 동의가 이뤄진 제도는 정권이 바뀌어도 쉽게 엎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6월 지방선거 뒤 숨통 트일 듯현재 같은 꽉 막힌 정국은 2018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선거가 끝나 각 정당이 대립각을 세울 이유가 해소되면, 정상적인 협의가 작동될 틈이 생길 것이다. 선거 결과도 중요하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두면, 야당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윤태곤 실장은 “지방선거에서 여당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면 여당에 여유가 생겨 협치가 가능하고 야당도 한발 물러서는 식으로 풀리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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