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2일 인천공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뒤로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라고 쓰인 펼침막이 걸려 있다. 문재인 정부의 1호 정책이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직후인 지난 5월12일 인천공항을 방문했을 때 내걸린 펼침막에 적혀 있던 문구다. 대통령이 이곳을 찾기 불과 일주일 전, 인천공항은 보도를 통해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고용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이라 지적받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공항을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문재인 1호 정책’으로 내놓았다. 사람들은 ‘노동 존중 사회’의 예고편을 봤다며 환호했다. 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황급히 “비정규직 노동자 1만 명을 올해 안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2017년 달력은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대통령과 사장의 ‘약속’은 어디쯤 와 있을까.
연내 물 건너간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결론부터 말하면, 인천공항 비정규직 1만 명의 연내 정규직 전환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6개월 전 ‘시간’(올해 안)과 ‘숫자’(1만 명)를 못박아 간접고용 노동자를 직접고용하겠다고 약속한 인천공항공사 쪽 말은 그동안 크게 달라졌다. 인천공항공사는 ‘항행 관리 시스템’(항공기와 차량 등을 목적 지점에 이르도록 하는 운행 기술) 인력을 중심으로 한 생명안전 밀접 업무자 854명만 공사가 직접고용하고 나머지는 ‘자회사(또는 별도 공공기관)가 고용하거나(1안), 아웃소싱 용역 전 분야를 자회사로 고용하는 안(2안)’을 내밀며 두 달째 버티고 있다. 또한 자회사를 통한 고용을 할 때만 ‘고용 승계’를 하고, 직접고용을 할 땐 ‘청년 선호 일자리’에 대한 사회정의 차원에서 ‘공개 경쟁 채용’을 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 뒤, 정부는 지난 7월20일 관계 부처 합동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추진 계획’(이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은 “사회양극화 완화 및 고용-복지-성장 선순환 구조의 마중물 역할을 위해 공공부문이 선도적으로 정규직 전환과 차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그 첫 번째 원칙으로 ‘상시·지속 업무는 정규직 전환’할 것을 공공부문에 권고했다. ‘상시·지속 업무’의 기준은 ‘연중 9개월 이상, 향후 2년 이상 지속 예상 업무’로 정해졌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은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 하지만 이 가이드라인에는 정부의 선의와 의지를 모두 태워버릴 ‘불씨’가 있었다.
가이드라인은 ‘직접고용’과 ‘자회사 고용’에 대한 합의를 노사 전문가 협의체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자회사 고용의 경우 ‘용역 형태의 운영을 지양하라’고 권고했다. 직접고용을 할 때 ‘청년 선호 일자리’는 “다른 노동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하도록 했다. 얼핏 보면, 전문가가 참여해 노사 간에 기우는 힘의 관계를 보완하거나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고르게 배분되도록 신경 쓴 세심한 정책적 배려로 읽힌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인천공항공사 쪽은 정부 가이드라인의 빈틈을 맹렬히 파고들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인천공항공사는 권고대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논의하는 노·사·전문가협의체(노사전협의체)를 꾸렸다. 정규직 전환 연구용역 보고서도 발주했다. 애초 노조 쪽은 사 쪽에 연구용역 보고서를 공동으로 발주하자고 제안했다. 사 쪽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조가 “정규직 전환 연구를 사 쪽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것에 반발”했지만 전체 연구비의 30% 정도 규모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노동문제연구소 컨소시엄에 연구용역이 나눠 발주되는 것으로 정리됐다. 정규직 전환 방식을 두고 2개의 연구가 진행되는 셈이다. 이후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 논의는 두 연구기관의 중간 보고서를 기초로 노·사·전이 테이블에 마주 앉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2020년까지 정규직 전환도 난망사 쪽 발주로 정규직 전환 연구를 하는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의 중간 보고서를 보면, 정규직 전환 방식으로 ‘자회사 전환’과 ‘직접고용’ 두 가지를 모두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판단의 추는 기울어져 있다. “자회사 전환을 할 땐 가이드라인에 따라 최소한의 평가 절차를 통해 채용”해 고용 승계가 가능하지만, “직접고용을 할 땐 청년 선호 일자리는 경쟁 채용 방식이 원칙”이라 경쟁 채용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연내 1만 명 정규직 전환’에서 ‘854명만 직접고용, 나머지 인력은 자회사 고용’으로 하염없이 후퇴한 인천공항공사의 입장은 결국 이 보고서가 바탕이 됐다. ‘고용 승계되는 자회사 전환과 공개 경쟁 채용을 거쳐야 하는 직접고용’ 가운데 선택하라는 제안이다. 노동계는 “능률협회컨설팅 보고서는 결국 사 쪽의 주장에 논거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라며 “사 쪽이 보고서 뒤에 숨었다”고 비판한다.
외부 전문기관의 보고서를 근거로 한 사 쪽의 입장 변화 뒤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전환은 엉뚱한 방향의 잡음을 내고 있다. 인천공항에는 정규직 직원이 1천 명 정도 있다. 주로 비정규직 직원을 관리하는 사무직이다. 애초 이들은 그동안 진행돼온 상황을 방관했다. 정부가 가이드라인까지 발표한 상황에서 개입할 여지가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사전협의체에도 정식 멤버로 들어오지 않고, 발언권 있는 참관자로만 참석했다. 하지만 지난 11월24일 열린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안 공청회’에서 이들은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피케팅을 하며 전면에 나섰다. 한국노총 소속 인천공항 정규직 노동자들은 “무임승차! 웬 말이냐! 공정사회! 공개채용!” “결과의 평등 NO! 기회의 평등 YES!”라고 쓰인 팻말도 들고 공청회장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정규직 노조는 “힘든 취업 경쟁을 거치지 않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은 공정사회에 어긋난다”고 외쳤다.
현재 인천공항공사 사 쪽은 60개에 달하는 인력 용역 업체 계약 가운데 연내 종료할 수 있는 업체는 14개뿐이라며, 2020년까지 20개 정도의 용역 업체가 남아야 한다는 얘기까지 하고 있다. 연내 전환은 고사하고 2020년까지 정규직 전환이 불가능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인천공항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에 맞춰 제2터미널 개항을 앞두고 있다. 개항 목표일은 2018년 1월18일이다. 제2터미널을 안정화하려면 최소 개항 한 달 전부터는 시험 운행에 들어가야 한다. 공사는 12월16일부터 시험 운행에 들어갈 방침이다. 제2터미널 개항으로 업무가 폭주하는 틈을 타, 자연스럽게 협의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 전에 ‘854명’과 ‘1만 명’ 사이 어딘가에서 노사는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 대해 박준형 공공운수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은 “사 쪽이 현재 낸 안은 받을 수 없다”며 “정부조차 인천공항공사 쪽이 낸 안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비정규직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시작한 정책인데 다시 좌절을 안긴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현 정부 ‘노동 존중 사회’ 일단 좌절이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는 주체는 정부지만, 고용노동부는 한발 떨어져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부문 비정규직 TF(태스크포스)’ 역시 인천공항공사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이를 사례 삼아 본격 가동될 전망이다.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1만 명을 올해 안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약속이 사실상 파기됐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노동 존중 사회가 일단 좌절됐음을 뜻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오매불망 바라는 모든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가 마른침을 삼키며 인천공항을 바라보고 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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