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기 민주노총 지도부 선출선거가 11월30일부터 12월6일까지 직선제로 진행된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결선투표를 치른다. 민주노총 누리집
“촛불을 기점으로 눌려 있던 것들이 분출되고 있다.”
권리는 ‘투쟁’을 먹고 자란다. ‘노조 할 권리’는 헌법(제33조)에 보장된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노동조합을 새로 결성한다는 것은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뺏기는 것처럼 노동조건이 절대 위기에 몰렸을 때 어쩔 수 없이 하는 반발처럼 ‘오해’되곤 했다.
촛불 이후 금속노조만 20개 지회 생겨그러나 지난겨울 ‘촛불’을 지나며 노동운동에 미세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촛불 이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에서만 20개 지회가 새로 생겨났다(오른쪽 표 참조). 조합원 수는 2873명이다. 얼핏 적어 보이지만 노조가 없던 곳에서 새로 만들어진 숫자다. 이들은 대부분 중소 규모 사업장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사회 모순을 직시할 수 없던, 불안정한 조건에서 일하던 이들이다. 황우찬 금속노조 사무처장은 “(노동자들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쭉 밀려왔다. 살기 점점 어려워지는데도 (나아가 저항하는 대신) 뭔가를 두려워했다. (지난 촛불집회를 계기로) 그게 사라졌다. 해방된 기대 심리가 노조 결성에 반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분석 범위를 최근 3년까지로 넓히면 금속노조 조합원은 3만 명 정도 늘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과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도 대비 조합원이 2만여 명 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연맹들의 추세도 비슷하다. 물론 이 상황이 모두 촛불 효과라고 단정할 순 없다. 원래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이었다가 재가입된 이들도 있고, 상급 단체를 두지 않던 노조가 가입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 변화된 환경을 반영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보수 정권 아래서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 딱지를 단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었다. 어디선가는 민주노총을 ‘귀족’이라 비판했고, 누군가는 ‘결사 항전’만을 떠올렸다. 강경, 종북, 반기업 같은 ‘아무 말’들과 시도 때도 없이 싸워야 했다. 이제는 아니다. 민주노총 활동가들은 “현장이 확실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과연 촛불 이후 노동운동의 역동성은 회복되거나, 꿈틀대며 생성되고 있을까.
분명 변화가 느껴진다. 지난 촛불은 각성된 시민들이 굼뜨던 정치권을 견인해 구체제의 몰락을 추동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 주역인 시민이자 노동자가 자신들이 일상에서 느끼던 경제적 불만과 노동환경의 구조적 문제를 바라보게 됐다. 시민적 각성이 사회 전반에 조용하지만 분명한 변화를 불러온 셈이다.
이를 명확히 보여준 예는 문재인 정부가 1호 정책으로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선언한 일이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홀로 탁월하기 때문에 가능한 접근이었을까. 아니다. 이런 움직임이 구체화하기 전까지 현장 노동운동가들의 무수한 헌신이 있었다. 문 대통령의 ‘깜짝 선물’에 가려 그리 부각되지 않았지만, 지난 1년여간 인천공항에서 새로 노동조합에 가입한 비정규직 수는 1500여 명에 이른다. 보수정권 내내 민주노총은 새로운 형태의 불안정 노동에 대응하며, 더 많은 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노력을 해왔다. 김종인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그 과정에 대해 “정규직 운동을 방치하고 비정규직 운동에만 치중한다는 내부 비판이 있었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흐름은 분명 민주노총이 만들어낸 성과 가운데 하나다.
시민 각성이 불러온 사회 변화이는 변화의 시작일 뿐이다. 여전히 민주노총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과 급여 조건을 갖춘 수출 대기업(재벌)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대오의 중심에 서 있다. ‘정규직 중심의 귀족 노조’라는 공격은 여전히 민주노총을 아프게 찌른다.
변화에 대한 희망과 눈앞의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민주노총에서 조합원 직선제로 새 집행부를 뽑는 선거가 시작됐다. 11월30일 시작된 투표는 12월6일까지 일주일간 이어진다. 1차 선거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월14일부터 20일까지 결선투표가 진행된다. 새 지도부의 임기는 내년 1월1일부터 2020년 12월31일까지 3년간이다.
대중적 주목이 크지 않지만 민주노총 임원선거는 대통령이나 광역단체장 등을 뽑는 공직 선거를 제외하면 전국 단위로 펼쳐지는 최대 규모 선거다. 민주노총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밝힌 선거 인원은 79만6882명이다. 민주노총 직선제 선거는 이번이 두 번째다. 2014년 첫 직선제 투표 때 선거 인원은 67만1270명이었다. 3년 사이 민주노총 조합원이 12만5천 명이 늘어난 셈이다(오른쪽 표 참조).
지난 3년 사이 조합원이 많이 늘어난 조직은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건설연맹, 서비스연맹 등이다. 늘어난 조합원들의 특징을 꿰뚫는 키워드는 ‘비정규직’과 ‘중소 사업장’이다. 한석호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은 “(그동안 조합에 가입하지 않던) 밑바닥 노동자, 비정규직들이 들어오는 추세가 보인다. 열악한 노동조건 아래서도 여러 불안감으로 나서지 못했던 주변부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 예로 최근 공공운수노조에 학교 비정규직 노조가 대거 가입했다. 금속노조엔 그동안 적극적인 조직화 대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중소 사업장들에서 눈에 띄는 성과가 이뤄지고 있다. 서비스연맹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가 유입됐고, 대형 병원 중심이던 보건의료노조에도 중형 병원 노동자와 기존 노조의 조합원이 아니던 비정규직이 대거 가입했다. 화학섬유연맹에는 그동안 노동자성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파리바게뜨 노동자들이 새로운 조합원으로 가세했다.
정파에 휘둘리지 않는 12만5천 명이렇게 가입한 12만5천 명은 기존 정파 구도에 크게 얽매여 있지 않다. 첫 위원장 선거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선거에 대한 관심도 높다. 이들의 선택에 따라 기존 조직표 예측을 뛰어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한 노동조합 활동가는 “중심부에 있던 기존 노동자에게 중요한 것이 임금이라면 새로 가입한 노동자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안전망이다. 이 차이는 크다. 경제적 감각에서만 노조를 보던 기존 시각에 사회적 감각이 더해지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새로 출범한 방송작가노조 이미지 지부장 역시 “비정규직 문제에 더 적극적인 입장을 가진 후보가 누구인지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민주노총 선거는 4파전 양상이다. 기호 1번 김명환 후보는 전 철도노조 위원장, 2번 이호동 후보는 전 발전노조 위원장, 3번 윤해모 후보는 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4번 조상수 후보는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이다. 그동안 민주노총 선거는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 등 정파 구도에서 합종연횡으로 진행됐다. 이번에는 양상이 좀 다르다. 정파 구도는 있지만 정파 간 차이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쟁점이 특별히 없기 때문이다. 4명 가운데 전임 한상균 지도부 노선을 계승하는 2번 후보만 빼곤 세 후보(기호 1번, 3번, 4번)가 ‘노조 할 권리’를 공약의 맨 앞에 세웠다. 노조 활동을 못했던, 하더라도 제대로 하기 어려웠던 사회적 풍토를 바꾸겠다는 태도다. 그래서 언론들은 이번 민주노총 선거의 쟁점을 새 지도부가 들어서면 ‘사회적 대화’로 참여할 것인가, 즉 정권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로 이해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민주노총 현 집행부도 동의한다. 한석호 사회연대위원장은 민주노총이 앞으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후보별로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따지고 보면 크게 이견이 없다. 정권 교체 뒤 사회 개입 전략을 피할 수 없고, 피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김종인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위원회 방식의 대화만 있는 게 아니라 노정, 노사 대화가 모두 사회적 대화다. 더 중층적이고 다층적인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대화에 부정적 태도를 취해온 금속노조 쪽 역시 “금속노조의 기본 입장은 사회적 대화를 하자는 것이다. 다만 과거 노사정위원회는 합의란 이름으로 일방적인 노조의 양보를 요구하는 협의체였는데, 그런 사회적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차기 민주노총 집행부 앞에 쉽지 않은 과제가 놓여 있다. ‘노동하기 좋은 나라’를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의 시대에 민주노총은 어느 정도 정부가 제시하는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대정부 투쟁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새 집행부 ‘주변부 노동자’ 품어야하지만 새 집행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대적 과제는 아직 노조의 우산 안에 들어오지 못한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를 대거 품는 일이다. 한국의 젊은 노동자들은 20대 초반부터 취업 전까지 여러 아르바이트와 인턴을 전전하다, 20대 후반 양극단의 선택을 맞게 된다. 소수는 그나마 안락한 대기업 체제에 편입되지만, 대다수는 복잡한 원청과 하청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한 차별 체계로 들어가 평생을 산다. 서비스란 이름으로 다양한 감정노동을 견뎌내야 하고, 그 과정에 노동자로서 당연히 주장해야 할 권리는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기댈 곳 없는 현장 노동자들은 지금도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에게 민주노총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회적 대화든 투쟁이든 우리 곁에 존재하는 ‘주변부 노동자’가 노동운동의 중심이 될 때 민주노총도 현재의 틀을 깨고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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