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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쉰이 ‘죄’인 일터

삼성화재 50살 전후 부장들 강제 보직 퇴출 뒤 사직 종용 정황 드러나

일반 직원에겐 50살 이전 계약직 전환 유도… 회사 쪽 “나이 차별 없다”
등록 2017-11-29 10:33 수정 2020-05-03 04:28
삼성화재 본사 건물이 있는 서울 서초동 삼성타운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삼성화재 본사 건물이 있는 서울 서초동 삼성타운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아빠는 대기업 다녀서 좋겠다.”

출근 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봉 차이가 크다는 아침 뉴스가 나왔다. 삼성화재를 다니는 50대 초반의 아빠 ㄱ씨는 아들이 문득 내뱉은 이 말을 듣고 쓰린 가슴을 부여잡았다. “다 그렇지는 않아….” 가슴에 품은 말은 많았지만, 도무지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쉰 살이 넘은 뒤에도 회사에 다니고 있는 ‘죄’ 때문이다.

부장 221명 중 50대는 10% 남짓

삼성화재가 입사 20년이 넘는 만 50살 안팎의 부장 등을 사실상 강제로 보직에서 물러나게 한 뒤 인사평가를 박하게 하고 퇴출을 유도하는 인사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전·현직 직원들의 증언이 나왔다. 일반 직원이 만 50살을 넘겼으면 계약직 전환으로 유도해 회사를 나가게 했다는 증언도 쏟아졌다.

인사 적체가 심한 대기업에서 정년에 가까워진 직원들에게 암묵적으로 명예퇴직을 요구한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상식’이 된 지 오래지만, ‘만 50살’이라는 기계적인 잣대를 들이대 인력 퇴출을 유도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여겨진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삼성화재의 이같은 보직 퇴출이 실제 이뤄지고 있다면 ‘나이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입수한 삼성화재의 인사 관련 자료를 보면, 2016년 말 현재 이 회사에 근무하는 부장 보직자 221명 가운데 만 53살을 넘긴 이는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만 53살은 1명, 50~52살은 28명이었다. 삼성화재의 전·현직 직원들은 이런 기이한 현상이 생긴 이유를 “나이를 기준으로 인위적인 보직 퇴출과 사직 종용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부서장은 만 50살이 되면 정리 대상자로 분류되고, 센터장이나 팀장급은 40대 후반부터 퇴직이나 계약직 전환 압박을 받는다”고 증언했다.

삼성화재 부장급 직원 ㄱ씨는 지난해 11월 상사에게 “보직에서 물러나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는 두말없이 상사의 지시에 따랐다. 보직 사퇴를 거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면 쫓겨난다. 감사를 하건 회사 인사 고과를 낮게 주건,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방법은 많다.”

보직 사퇴는 ‘원치 않는 퇴직’으로 가는 첫 관문일 뿐이다. 보직 퇴출을 당한 이들은 이후 ‘업적 및 역량 평가’(인사평가)에서 하위 등급을 받아 연봉과 성과급인 피에스(PS)가 깎이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삼성화재는 ‘EX’(탁월, Excellent), ‘VG’(매우 양호, Very Good), ‘GD’(양호, Good), ‘NI’(개선 요망, Need Improvement), ‘UN’(불만족, Unsatisfactory) 등 5단계 인사평가 등급을 매긴다. 이 중 하위 등급인 NI와 UN은 전체 직원 중 10%에게 준다. 흥미로운 점은 부장 보직에서 퇴출당한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NI 이하 등급이 매겨지는 것이다.

삼성그룹 차원의 50대 보직 퇴출 의심

ㄱ씨는 “과거에는 한 번도 NI 등급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런데 보직 사퇴 뒤 바로 NI 등급이 나왔다”고 말했다. 실제 이 ㄱ씨의 ‘업적 및 역량 평가’를 확인해보니 2000년 이후 하위 등급을 받은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하지만 보직 사퇴 직후인 2016년 하반기 평가 등급은 NI였다. ㄱ씨는 “NI 등급을 받으면 PS(성과급)가 절반 이상 깎인다. 연봉 협상에서도 불리하다. 2014년과 2015년 말 보직에서 밀려난 다른 부장들도 NI를 받아 연봉이 15%가량 깎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는 이 문제가 사내외에서 공론화돼 회사가 연봉을 깎진 않았다. 하지만 PS는 여전히 제대로 못 받는다. 이런 급여 삭감이 3년만 지속되면 대리 수준의 연봉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삼성화재의 성과급은 일반적으로 연봉의 30%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과급이 깎이면 실제 소득도 급격하게 줄어드는 구조인 셈이다. 결국 이런 대우를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퇴직을 선택하게 된다.

ㄱ씨는 자신이 겪은 현실을 인권위 조사에서 소상하게 밝혔다. ㄱ씨에 따르면 회사는 이에 대해 “나이 차별이 아니라 실적 부진과 조직 관리의 문제 때문에 낮은 등급을 줬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일 잘한다고 부서장을 시켜준 것은 회사다. 부서장을 그만둔 뒤 갑자기 실력이 떨어졌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ㄱ씨는 자신과 주변의 다른 부장들이 겪은 차별이 삼성화재가 아닌 삼성그룹 전체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 물론 암암리에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일 뿐, 명확한 물적 증거는 없다.

“삼성 계열사의 인사 가이드라인은 그룹 미래전략실 영향을 받는다. 만 50살을 기준으로 보직 퇴출을 하는 일은 정년이 55살이던 7~8년 전부터 있었다. 1950년대 후반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많아 이 문제를 풀려고 그룹 차원에서 나이를 기준으로 인사 가이드라인을 정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라 본다. 정년 55살 시대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정년이 만 60살로 늘어났는데도 같은 기준이 적용돼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상시근로자가 300명 이상인 사업장에서 정년을 60살로 연장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이 개정된 것은 2013년,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1월부터다.

서너 차례 면담 뒤 더 버티기 힘들어
삼성화재의 한 부장 출신 인사는 2016년 10월 48~53살 부서원들을 계약직으로 전환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아래 사진은 당시 이 직원이 회의 내용을 받아적은 업무 수첩의 일부다. 삼성화재 직원 제공

삼성화재의 한 부장 출신 인사는 2016년 10월 48~53살 부서원들을 계약직으로 전환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아래 사진은 당시 이 직원이 회의 내용을 받아적은 업무 수첩의 일부다. 삼성화재 직원 제공

수난을 당하기는 일반 직원도 마찬가지다. 부장급은 보직에서 퇴출당하지만, 일반 직원이 만 50살을 넘기면 계약직 전환을 요구받는다. 삼성화재의 한 부장이 2016년 10월 부서장 회의 중 업무수첩에 작성한 글을 보면, 회사가 만 50살 안팎 부서원을 계약직으로 전환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내용을 작성한 삼성화재 부장은 과 한 인터뷰에서 “상무가 부서장 회의에서 2014년부터 90명을 퇴직시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2016년에도 만 48~53살 직원들의 계약직 전환 등을 유도하라고 지시했다. 연봉 4200만원에 성과급을 지급하고 좀더 쉬운 일을 배정한 뒤 60살까지 일하는 ‘무기계약직’이나 1년 일하고 실적을 봐서 1년 더 계약하는 ‘1+1 계약직’ 등으로 전환하라는 지시였다”고 말했다. 그는 “부서원들에게 계약직 전환이나 퇴직을 권유한 부서장 중 일부는 그다음 달인 11월 회사의 요구로 보직 사퇴를 해야 했다. 토사구팽이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 든 직원들을 내보내려는 회사의 시도는 집요하고 치밀하다. 삼성화재 직원 ㄴ씨는 “부장이 아니라도 50살이 가까워지면 인사 파트 쪽에서 계속 면담 요청이 들어온다. ‘내년에 퇴직을 하면 명예퇴직금이 훨씬 줄어든다’며 퇴직이나 계약직 전환을 종용한다. 물론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절대 대놓고 나가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나가라는 뜻인 걸 안다”고 말했다.

이 요구에 응하지 않는 이들은 인사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매기고 연봉을 깎는다. 결국 계약직 전환이나 명예퇴직을 택할 수밖에 없다. 만 55살이 넘어 해마다 연봉의 10%를 줄이는 ‘임금피크제’까지 적용받으면 월급이 반 토막 나는 건 순간이다. “50살이 넘으니 회사가 출근하는 데 2시간 가까이 걸리는 사업장으로 발령냈다. 아주 먼 곳은 안 보낸다. 50km가 넘으면 회사가 오피스텔을 마련해줘야 한다.”(ㄴ씨)

만 50살에 회사를 그만둔 ㄷ씨의 증언도 비슷하다. “회사는 보통 12월에 인사를 한다. 인사 한두 달 전부터 만 50살 전후 직원들에게는 인사 파트에서 면담하자는 전화가 걸려온다. 명예퇴직금 줄 테니 나가달라는 이야기인 것을 뻔히 아니까 ‘거래처다’ ‘회의 중이다’ 등의 핑계를 대고 피한다. 50대면 아이들에게도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갈 때다. 직장인이 별수 있나. 회사에 남아야 한다. 하지만 결국 면담에 응해야 한다. 나도 서너 차례 면담한 뒤 더 버티기 어려워 결국 회사를 나왔다.”

그는 “샐러리맨의 꿈은 열심히 일해서 월급 받고, 실적 좋아 승진하고 존경받으며 회사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화재는 만 50살 넘는 직원들을 회사에서 사라져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바보가 되고 돌팔매질당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올해 만 50살이 된 이들은 1967년생이다. 40대 후반인 ㄹ씨는 자기에게 닥쳐올 운명을 예감하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선택했다. “삼성에 남아 있었으면 3~4년 뒤 인사 파트에서 면담을 요청할 것이다. 자존심 긁는 소리를 하고, 그래도 버티면 감사 거리를 찾을 것이다. 험한 꼴 보기 전에 회사를 나왔다.” 그는 “노력하면 실적은 높일 수 있지만 나이는 바꿀 수 없는 것 아닌가. 나이를 기준으로 쫓아내면 직원들은 무기력해진다. 그렇게 쫓겨난 직원들은 가정경제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삼성화재에 다니다가 다른 손해보험사의 임원으로 일하는 ㅁ씨는 “다른 회사에도 나름의 퇴출 구조가 있지만 삼성화재가 유독 나이를 기준으로 직원들을 내모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의 한 차장도 “우리 회사는 50대 중반 부장들도 회사를 잘 다닌다. 나이를 기준으로 인위적으로 보직자들을 물러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화재 쪽 “능력 따라 평가했을 뿐”
서울 서초동 삼성타운에 삼성 계열사 사옥들이 늘어서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서울 서초동 삼성타운에 삼성 계열사 사옥들이 늘어서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삼성화재는 이런 의혹이 사실인지를 묻는 의 질문에 “직원들에 대한 나이 차별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보통 45~46살에 부장을 달고 5~6년이 지나면 임원 승진 여부가 갈린다. 임원이 되는 사람은 소수고 후배들도 승진해야 하기 때문에 부서장이 만 50살 전후에서 자연스럽게 보직에서 물러나는 상황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이를 기준으로 강제로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하는 경우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일반 직원에게도 특정 나이를 넘었다고 해서 계약직 전환을 요구하거나 명예퇴직을 종용하는 경우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삼성화재 쪽은 현재 나이 차별과 관련해 인권위 조사가 진행 중인 사실을 인정하며 “인권위 조사 결과를 최대한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을 조사 중인 인권위 관계자는 “조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없다. 조만간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삼성화재가 창립 60주년을 맞는 해다. 실적도 좋아 올 3분기까지 삼성화재의 영업이익은 1조3174억원으로, 지난해에 견줘 28%나 늘었다. 회사에 9개월 만에 1조원이 넘는 이익을 가져다준 직원 5623명은 회사처럼, 60살 정년을 축하받을 날이 올까.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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