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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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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잘못된 재판의 피해자 될 수 있다”

‘약촌 사건’을 다룬 <재심> 실제 주인공 박준영 변호사 인터뷰…

“억울하다는 사람 계속 나오는데 재심 환경은 척박해”
등록 2017-08-22 18:14 수정 2020-05-03 04:28
박준영 변호사가 8월17일 서울 서초구에 자리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박준영 변호사가 8월17일 서울 서초구에 자리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경찰과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으로 이어지는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긴다. 무고한 시민이 흉악한 범죄자로 둔갑하거나 실제 저지른 범죄보다 훨씬 더 무거운 형벌을 감당해야 한다. 그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재심’ 사건이다.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약촌 사건)이나 ‘전북 완주 삼례 3인조 강도치사 사건’(삼례 사건)을 비롯해 최근 알려진 재심 사건에서 범죄자로 몰린 이들은 적게는 3년, 길게는 21년까지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이런 실패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그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은 8월17일 서울 서초구 한 사무실에서 약촌 사건을 다룬 영화 의 실제 주인공 박준영 변호사를 만났다.

박 변호사는 2007년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수원 사건)의 변호를 맡으며 재심과 인연을 맺었다. 이 사건은 2007년 5월14일 경기도 수원에서 10대 중반 청소년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경찰은 사건 초기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해 주변 노숙인들을 중심으로 용의자를 추렸다. 처음에는 노숙인 2명을 범인으로 체포했고, 이후 청소년 5명을 공범이라고 발표했다. 국선변호인이던 박 변호사는 나중에 붙잡힌 청소년 5명 가운데 형사 미성년자인 1명을 제외한 4명의 변호를 맡았다. 이후 처음 붙잡혀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강인철(가명)씨 사건의 재심을 담당한 것이 첫 인연이었다.

‘수원 사건’에서 처음 재심을 맡았다.

처음엔 (범죄자로 몰린) 아이들의 국선변호인이었다. 사건을 검토해보니, 아이들이 무죄라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 아이들의 재판에서 앞서 잡힌 노숙인 2명을 증인으로 불렀다. 한 명은 범행을 인정했고, 다른 한 명인 강인철씨는 부인했다. 내가 맡은 아이들은 2009년 1월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후 강씨도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 영등포교도소로 찾아갔다. 그에게 억울하냐고 물었다. 그는 “정말 억울하다”고 했다. 그러면 아이들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2010년 7월 대법원에서 아이들의 무죄가 확정됐다. 그리고 강씨의 재심을 청구했다.

“‘약촌 사건’ 때 처음부터 긴장했다” 법원은 좀처럼 재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때만 해도 재심이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아이들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다시 말해 공범이 무죄가 된 것이다. 그러면 다른 공범인 강씨도 재심으로 무죄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울고법에서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너무 놀랐다. ‘재심이 보통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공부하고 더 열심히 재판 준비를 했다. 이후 대법원에서 재심 기각을 내린 서울고법의 결정을 파기해 결국 재심이 이뤄졌다.

처음 재심이 기각됐을 때 거대한 벽을 만난 느낌이었을 것 같다.

실제 공범이 무죄판결을 받아도 재심이 안 되는 판례가 있었다. 정보나 공부가 부족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법원이 굉장히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만 해도 검찰이나 경찰이 뭔가 잘못된 것을 잡아주길 기대하기 힘들었다. 법원이 사건을 바로잡아야 재수사나 후속 조처를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법원도 만만치 않았다. 재판부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만 해도 재심에 대한 법원의 인식이 그랬다.

그다음 ‘약촌 사건’을 했다.

수원 사건의 재심을 하던 중 약촌 사건이 들어왔다. 이때는 처음부터 긴장했다. 2013년 4월 재심 청구를 했는데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2015년 8월이 이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였다. 공소시효가 지나 진범을 기소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재심 결정이 날 가능성이 없었다. 초조했다. 결국 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해 진범을 공개하는 기획을 진행했다. 그때는 사건을 공론화해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고 이를 통해 재심 결정을 촉구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결국 공소시효 만료를 2개월도 안 남긴 2015년 6월에 재심 개시 결정이 나왔다.

아버지 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김신혜씨 사건도 맡았다.

2015년 1월 재심을 청구한 사건이다. 이전처럼 책상에 앉아 기록을 보는 방식이 아니라 발로 뛰면서 사건 담당 경찰을 만나고 직접 증거를 수집하려 노력했다. 계기가 있었다. 김신혜씨 사건을 맡던 중 (유우성씨 간첩 조작 사건을 맡았던) 장경욱 변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간첩 조작 사건의 변호를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때 장 변호사, 의 최승호 PD와 함께 사건을 맡았는데 신세계를 만났다. 모든 것을 직접 했다. ‘증거 수집은 이렇게 하는구나’를 배웠다. 언론 취재와 변호사의 증거 수집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담스럽다고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직접 사건 당사자와 수사 경찰을 만나는 등 법정 밖에서 증거를 적극적으로 찾았다.

“진범 나오지 않으면 재심 잘 이뤄지지 않아” 재심이 어려운 이유는.

일단 기록이 없다. (1999년 2월 일어난) 삼례 사건은 2015년 3월 재심을 청구했는데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록 자체가 없었다. 다행히 SBS 팀이 예전에 이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로부터 직접 기록을 찾아줬다. 그러던 중 진범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설득하면 진범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와 부산으로 내려가 진범과 긴 이야기를 나눴다. 사건 피해자인 할머니 산소도 함께 찾았다. 가 그 사진을 1면에 보도했다. 이를 통해 사회적 관심이 커졌다. 2016년 7월8일 결국 재심 결정이 내려졌다. 그 뒤 가 움직였다. 수사 과정을 질타하는 사설을 낸 것이다. 재심 결정이 날 때마다 항고를 해온 검찰이 이 사건에서는 항고를 포기했다. 이렇게 진범이 나오는 경우가 아니면 재심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어디 흔한가.

재심의 어려움을 해결할 방안은 있나.

재심 환경은 척박하다. 억울하다는 사람은 계속 나오는데 재심이 가능한지 분석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이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나도 앞으로 몇 건이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을 바꿔보기 위해 2016년 2월 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서 ‘재심법률지원소위’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재심을 제대로 진행해 한국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알리고 싶었다. 재심은 변호사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직접 증거를 찾고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법의학자, 의학자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변협 회장이 바뀐 뒤 비법률가들의 관여를 사실상 막았다. 일할 수 있는 토대가 사라졌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러면 활동을 못한다”고 항의했다. 이후 조직적으로 재심을 지원하는 곳은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악은 정말 평범하다’는 생각을 했다” 국가기관이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결국 국가기관이 재심 지원을 맡아야 한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건을 검토해 재심 사유가 되는지, 증거는 있는지, 증인은 찾을 수 있는지 등을 알아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요즘처럼 개인정보 관리가 잘되는 상황에선 사건 관계자의 주소 하나 알아내기 힘들다. 공권력의 조사 권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늘 뼈저리게 느낀다.

수사기관과 법원도 재심의 걸림돌 아닌가.

재심을 하다보면 재심 사건의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나 수사한 검찰과 경찰에 큰 문제가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가장 큰 문제는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것이다. 경찰에 가면 “우리가 잘못 수사했다는 증거가 뭐냐. 검찰이 기소하지 않았냐”고 한다. 검사에게 경찰의 위법한 수사에 대해 말하면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나.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고 변명한다. 법원은 “검찰과 경찰이 조작하고 왜곡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라고 발뺌한다. 단계별로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구조다. 경찰과 검찰이 수사하고 1심·2심·3심을 거치며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사법 절차다. 하지만 지금의 사법 절차는 잘못이 더 굳어지고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요즘 수사권 조정 등의 문제로 검찰과 경찰이 상대의 잘못을 부각하려는 것 같지만 내 경험은 다르다. 그들은 암묵적이고 견고하게 서로를 지켜왔다. 검사는 피의자가 범행을 부인하면 위증죄로 기소한다. 변호사가 경찰을 증인으로 신청하면 검사는 반대한다. 모든 재판부가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 재판부는 검경 수사의 문제점을 밝히는 것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가장 문제가 많았던 재심 사건은 무엇인가

지금 재심을 준비하는 ‘부산 엄궁동 사건’(1991년 11월 공무원 사칭 혐의로 임의동행해 경찰서에 출두한 2명이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사건. 아직 재심 개시 결정이 나지 않았다)이다. 고문을 포함한 가장 잔인한 사건 조작이 있었다. 그리고 사형이 구형됐다. 만약 사형 선고가 이뤄졌으면 어쩔 뻔했나. 두 사람은 21년을 꼬박 복역하고 출소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모두 사라졌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어, 사건을 담당한 경찰을 만나러 갔다. 누군가는 백세 노모를 부양하는 효자고, 누군가는 자식 사랑이 지극한 아버지였다. 그 모습을 보며 ‘악은 정말 평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악인이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해 잘못된 일을 했고 그걸 감추려다보니 일이 커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재심 사건의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악은 너무나 평범하기 때문에 역으로 누구라도 잘못된 수사나 재판의 억울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검찰과 경찰이 정의 실현에 함께했으면” 수사기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재심을 하다보면 수사기관들은 법원에서 판결을 바로잡지 않는 이상 자신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잘못은 경찰이나 검찰에서 하고 나중에 법원에서 바로잡은 뒤에야 사과나 반성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잘못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엄궁동 사건부터 그랬으면 좋겠다. 를 통해 부각됐고, 당시 변호인이던 문재인 대통령도 억울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재심 사유도 차고 넘친다. 이런 사건에 수사기관이 나서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적극 확인해봤으면 좋겠다. 검찰과 경찰이 정의 실현 과정에 꼭 함께했으면 좋겠다.

법원에도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억울하지 않으면서 억울하다고 이야기하고 눈물 흘릴 수도 있고 자신의 잘못을 감출 수도 있다. 하지만 억울하지 않으면서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시간과 비용이 드는 일이다. 그 일을 오래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랜 시간 억울함을 주장했고 그 과정이 진지했고 적잖은 비용을 들였고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짜 억울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고 사건을 바라봐주면 좋겠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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