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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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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인 남북관계 해법은 대화와 협상

북한의 잇단 대륙간탄도탄 발사, 8월 위기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에게 한반도 정세를 묻다
등록 2017-08-08 14:40 수정 2020-05-03 04:28

7월28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군사당국자회담과 적십자회담 제의에 대꾸하지 않은 채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강행했다. ‘베를린 선언’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시도가 출발선에서부터 삐걱대는 형국이다.

이번 ICBM 발사에 대해 정부는 그동안 논란이 된 사드 발사대 4기를 임시 배치하고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을 협상하기로 했다.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대북 압박이 헐겁다며 ‘세컨더리 보이콧’을 언급했고, 중국은 이에 “분풀이 대상을 잘못 찾았다”며 반발했다. 은 8월2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 북한의 의도와 동북아시아의 긴장 상황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시험발사는 미국과 수교하고 평화협정을 맺기 위한 행동”이라며 “북-미 타협의 접점이 보인다면 우리도 대북 특사를 보내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미-중 접촉 체크, 견제해야</font></font>

북한이 잇달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했다.

북한은 지난해 두 차례 핵실험을 했다. 이를 통해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를 해놓아 이젠 사거리를 늘려 무기로서의 가치를 키우려는 듯하다. 7월4일 사거리 8천km짜리를 날렸는데, 불과 20여 일 만에 2천km 늘어난 미사일을 개발했다는 건 모든 역량을 사거리 연장에 투입한다는 이야기다. 사거리가 늘어날수록 미국이 불안해지고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나오리라는 계산 때문이다. 북한은 사거리를 늘리려는 미사일 시험발사를 계속할 것이다. 북한은 올해 안에 북-미 관계를 확실히 자신들이 생각하는 수준만큼 올려놓으려는 듯하다. 북한은 지난 20~30년 동안 한결같이 미국에 수교와 평화협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거리가 늘어난 미사일이 확보되면 실제 핵무기가 실린 미사일을 쏠 수 있다는 식으로 미국을 압박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 국내에서 대북정책 실패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최근 북한 인사들과 만나고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북한이 올해 안에 우선 북-미 관계에서 결정적 전기를 만들려 역량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남쪽과의 교류는 일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한다. 북한은 여러 계산을 하며 움직이는 거다.

북한의 의도가 관철될 가능성은 있나.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관련된 문제다. 처음에는 북핵 자체의 위험 때문에 이 문제가 미국의 주요 관심사가 됐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중국 압박 카드로 사용한다. 중국을 압박하는 카드로서 효용이 끝나거나 다른 카드로 압박할 수 있다면 이 문제는 그냥 둘 것이다.

미국과 중국, 북한과 미국의 줄다리기 속에 ‘코리아 패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우리를 빼놓고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은 다분히 미국적인 발상이다. 남한 정부가 별 생각이 없으면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한반도 문제를 한-미 동맹에만 근거해 풀려 하면 ‘통미봉남’(通美封南)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팀이 조금만 정신 차려 미-중 접촉을 체크해 견제하면 막을 수 있다. 국가정보원도 해외 정보만 수집하겠다고 했으니까, 제3국에서 접촉이 있는지 예의 주시해야 한다. 미국과도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대북 특사는 현시점에서 가능할까.

대북 특사는 문재인 정부 초기에 가야 했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특사가 다녀온 뒤 그 결과를 갖고 한-미 정상회담 전에 갔어야 한다. 북한은 우리 특사를 기다렸을 거다. 대북 특사를 안 보낸 것이 북한의 대남 정책 변화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북한은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부터 다음엔 진보 정권이 들어선다고 보고 잘해보자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문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미국보다 북한을 먼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얼마나 기다렸겠나. 각 나라에 특사들이 간 게 5월이었다. 한-미 정상회담은 6월 말이고. 6월 초쯤 (북한에) 특사가 갔다면 북한이 저렇게 표정을 안 바꿨을 것이다. 문 대통령도 남북관계를 중심에 두고 한반도 문제를 풀겠다고 이야기했다. 북한을 우리 페이스로 끌어들이는 조처를 해놓고 한-미 정상회담에 임했어야 했다. 이제는 (북한에) 특사를 보내도 거절할 가능성이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드 4기 배치, 잘한 건 아니야</font></font>

한국 정부가 사드 발사대 4기를 임시 배치하기로 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난 새 정부의 출범에 변두리에서 미력으로나마 일한 사람이라 그것을 잘못했다고 말하기 참 어렵다. 그러나 잘한 건 아니다. 국가 정책이나 전략은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응하면서도 두 수, 세 수 앞을 내다봐야 한다. 이 대응이 가져올 부작용과 역효과를 생각해 대비해놓고 발표해야 한다. ICBM 시험발사는 외형적으로는 군사 문제다. 그러나 한편으론 대단히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문제다. 북한은 그걸로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업그레이드하려 한다. 정치외교적 목적을 띤 군사 행위다. 그런데 국방부 차원에서만 대응을 준비해서 문 대통령이 그대로 발표한 것은 잘못됐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이나 외교부 등 다른 부처가 할 일을 안 한 건데, 그건 매우 잘못됐다.

사드 배치 재개로 한-중 관계가 더 악화될 텐데.

중국에서 반발하며 나오는 대목은 앞으로 돌이키기 어려울 듯하다.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따라 사드 4기 임시 배치를 취소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아니면 현재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둘러댄 것인지 모르겠다. 이번 사태에 신속히 대응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사건에 늑장을 부리다 참사가 난 것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 아닌가 싶을 정도다. 물론 청와대가 새벽 1시에 즉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한 것은 좋았다. 그러나 국방부에서 대책을 준비해도 이후 각 부처 장관들과 모여 조율했어야 한다. 너무 즉각적으로 대책이 나왔다. 한-중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데 말이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신속한 대처가 미덕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이번엔 너무 급하게 대통령 말씀을 내보냈다. 이 과정에서 조율 과정이 생략됐다. 이를 어떻게 수습할지 외교부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8월 위기설’은 장삿속 </font></font>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등으로 인해 한반도에 8월 위기가 온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차피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은 연례행사다. 북한도 실제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훈련이 아님을 알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도 훈련 대응 차원에서 미사일 시험발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미국도 8월이면 국방예산 심의가 한창일 때다. 그래서 (군부로선) 위기설이 도는 것이 유리하다. 장삿속이다. 미국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 선제 공격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상태다. 미국이 북한을 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위기가 닥치려면 북한이 도발해야 한다. 그러나 한-미 군사훈련이 진행되고 여러 가지 미국의 전략 자산이 출동할 준비가 된 상황에서 북한은 절대 도발하지 않는다. ‘8월 위기설’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있다.

야당은 단호한 대북 제재를 계속 요구하는데.

북한 제재 수단은 두 가지밖에 없다. 군사적 제재와 경제적 제재다. 정치적 제재는 중국과 러시아가 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얘기할 것도 없이 불가능하다. 경제적 제재를 보자. 한국은행 추계를 보면 지난해 북한의 경제성장률이 3.9%다. 이는 이제껏 행한 경제제재가 소용없다는 증거다. 중국이 뒷문을 열어줘 경제적 제재의 효과가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중국의 협조는 어차피 기대할 수 없다. 북한 경제가 완전히 붕괴하면 수많은 난민이 중국에 넘어올 테고, 중국은 경제와 치안 쪽에서 타격받게 된다. 이 때문에라도 중국은 북한에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다. 중국 책임론은 번지수가 틀린 이야기다. 북한이 ‘핵 카드’로 받아내려는 대가는 미국만이 줄 수 있다. 북한은 1950년대부터 제재가 있음에도 살아남는 힘을 비축해왔다. 또 다른 제재 수단은 군사적 제재다. 이는 전쟁을 뜻한다. 북한을 압박해 핵을 포기하고 미사일을 쏘지 않도록 하자는 말은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이 내는 대책이다. 결국 해결책은 대화와 협상밖에 없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타이밍이 중요한 대북 특사</font></font>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이 난관에 부딪혔는데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애초에 우리가 먼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미·중·러·일에 이어 다섯 번째로 북한에 특사를 보내 북한 정권에 희망을 줘야 했다. 그 기회를 놓쳤다. 그래서 지금 북한이 북-미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으로 본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타협의 접점이 보이면 그때라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북 특사를 보내 남한을 빼놓고 북-미 양자 간에 잘될 수 없음을 보여줘야 한다. 북한에 미국과만 수교해서 끝날 일이 아니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때가 아니다. 지금은 북한이 완전히 남북관계를 틀어막은 채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당분간 중국처럼 도광양회(韜光養晦·어둠 속에서 몰래 힘을 기른다)식으로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올해 후반기 이후 기회가 오리라고 본다. 그동안 한-중 관계를 잘 정리해둬야 한다. 남북관계는 어차피 북-미 간 가닥이 잡혀야 뭘 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

<font color="#008ABD">글</font>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font color="#008ABD">정리</font> 류석우 교육연수생
<font color="#008ABD">사진</font>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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