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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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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할매들이 묻는다 “우리는 국민 아이가?”

사드 기습 배치된 경북 성주 소성리 마을 1박2일 현장 르포
등록 2017-05-03 13:38 수정 2020-05-03 04:28
한·미 군 당국이 사드(THA AD·고고도미사일방어) 장비를 기습 배치한 4월26일, 이날부터 ‘미군기지’가 된 경북 성주군 소성리에는 통곡과 울분이 쏟아졌다.

한·미 군 당국이 사드(THA AD·고고도미사일방어) 장비를 기습 배치한 4월26일, 이날부터 ‘미군기지’가 된 경북 성주군 소성리에는 통곡과 울분이 쏟아졌다.

4월26일 오후 6시께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 도로. 수십 대의 경찰버스를 통솔해 마을을 빠져나가려던 까만 경찰 승합차를 임순분(64) 소성리 부녀회장이 맨몸으로 막아섰다. “야, 이 ××들아. 너가 민주 경찰이가. 주민들을 개 끌듯이 끌어내놓고 간다 말이가. 다 잡아가라.”

이날 새벽 주한미군과 한국 국방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장비를 성주 골프장(롯데스카이힐 성주 컨트리클럽)에 반입했다. 끝도 보이지 않게 늘어선 경찰버스는 이들이 벌인 ‘기습 작전’에 동원된 또 다른 무기였다. 경찰은 이날 새벽 1시께부터 소성리로 통하는 5개 길목을 경찰차로 모두 막아 출입을 통제했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한대 한대 빠져나가는 경찰버스를 쳐다보며 “오지 마라, 이제” “왜 웃고 가노” 맥없이 욕설을 쏟아내던 소성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임 회장의 근처로 모여들어 “우리도 다 잡아가라” “못 간다” “막아라”며 거들었다. 꺼멓게 내려앉은 얼굴의 할아버지가 경찰 승합차에 다가가 뻣뻣하게 앉아 있는 경찰에게 말했다.

“사과하고 가이소. 대장한테 얘기해가지고 내려가지고 사과하고 가이소. 저 아지매가 병원 갔다왔거든요.” 경찰 진압 과정에서 실신해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다녀온 임 회장의 사정을 알리며 할아버지는 ‘사과해달라’고 애원하듯 말했다. 임 회장 곁에 함께 경찰차를 막아선 경북 김천의 한 엄마는 “국민을 개 잡듯이 잡는 게 경찰이냐”며 울다, 엄마를 찾아온 아들을 어루만지며 “사드가 왔어. 미안해 아들, 사드가 왔어”라며 오열했다. 세월호에 연대하는 엄마들처럼 김천 혁신도시 등에 살면서 수시로 소성리를 오가는 ‘소성리 지킴이’ 젊은 엄마 대여섯 명이 함께 울었다.

경찰차는 결국 저녁 7시께 소성리를 통과하지 못하고 후진해 뒷길로 빠져나갔다. 사드가 소성리에 기습 배치된 4월26일, 국가가 소성리 주민의 의사를 존중한 유일한 순간이었다. 경찰은 이날 진압 과정에서 할머니들을 포함한 12명이 부상으로 응급진료를 받고, 팔순·구순 노인들을 완력으로 다룬 일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80명 저항 막는 데 경찰 8천 명 새벽 동원 

주한미군과 한국 국방부가 5월9일로 예정된 대선을 고작 13일 앞두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미-중 갈등의 핵심 현안인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사실상 마무리지었다. 국방부는 주한미군이 이날 사드 배치 예정지로 지정됐던 성주 골프장에 사드 체계의 핵심 장비인 이동식 발사대와 엑스(X)밴드 레이더(AN/TPY-2), 교전통제소를 비롯해 발전기, 냉각기 등 사드 체계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장비를 반입했다고 밝혔다. 이날의 ‘폭거’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대선을 앞두고 지금 정부에서 무리하게 강행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핵 폐기를 위한 외교적 카드로 활용할 수 있게 다음 정부로 넘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애초 사드 반대에서 찬성 입장으로 돌아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사드 배치는 한-미 간 합의에 의해 이행돼야 한다”면서도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 생략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국의 사드 배치가 마무리된 직후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앞두고 백악관에서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한국이 사드 비용을 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한국 쪽에 통보했다. 그것(사드)은 10억달러 시스템이다”라고 말했다. 새로 선출될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중국과 협상해 판단할 여지를 없애버린 주권 침해적 ‘알박기’에 나선 데 이어, 비용까지 물라는 요구를 한 셈이다.

주권이 침해된 자리에서 국가의 무능을 받아낸 것은 소성리 노인들의 연약한 육신이었다. 주민들은 한-미 군 당국이 일방적으로 사드를 배치했다는 사실만큼이나 한국 경찰이 주한미군의 무기 배치에 동원됐다는 데 분노를 터뜨렸다.

주한미군의 사드 장비가 반입된 것은 이날 새벽 4시45분~아침 7시께였다. 한국 경찰 8천여 명은 그보다 4시간 전인 새벽 1시께 소성리에 투입됐다. 경찰은 소성리 마을 입구에 앉아 사드 장비 반입에 저항하는 주민, 김천 시민, 원불교 교도, 가톨릭 신자 등 80여 명을 새벽 4시께 도로 밖으로 끌어냈다. 사드 장비가 진입하는 길을 막고 있는 장애물을 치우기 위한 ‘민간인 소개 작전’이나 마찬가지였다. 도로 밖으로 나온 주민들이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것도 원천 봉쇄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들 발밑으로 기어들어가려던 할머니들이 크고 작은 타박상을 입었다. 평생을 법 없이 살아왔을 시골 촌로들의 입에서 이날 하루 종일 “평화가 도륙됐다” “점령됐다” “군사작전” “계엄령” “괴물” 등 과격한 언어가 튀어나왔다.

“태극기 떼고 성조기 달아라” 

경찰 진압 과정에서 가슴을 다친 할머니가 4월27일 오전 119 구급차에 실려갔다. 이를 지켜본 소성리의 할머니들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경찰 진압 과정에서 가슴을 다친 할머니가 4월27일 오전 119 구급차에 실려갔다. 이를 지켜본 소성리의 할머니들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열린 ‘사드 배치 원천 무효 소성리 수요집회’에선 평소 마이크를 잡지 않았던 주민들이 앞다퉈 마이크를 잡고 자신들이 간밤에 목격한 공권력의 배신을 증언했다. 소성리 노인회장 신동옥(84) 할아버지는 “노인들 몇이 사는 이 골짜기에 경찰 한두 사람만 보내도 말 잘 들을 텐데”라고 말했다. 그는 고작 70가구 100여 명이 사는 소성리에 수천 명의 경찰 병력이 들이닥친 현실을 이해하지 못해 울먹였다. “(성주 경찰이라면) 삼거리에서 직진해야 하는데 좌회전해서 김천으로 올라갔다. 다 서울 경찰이다. 그동안 한민구 국방부 장관 욕 안 해봤는데, 오늘 아침에는 ‘한민구 새끼, 경찰들을 어디 써먹을 데가 없어서 이런 데 써먹느냐’는 생각이 들어 정말 분했다.”

‘참다복 꿀참외’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사드 가고 평화 오라’는 조끼를 입은 할머니들은 고개를 숙이고 종종 꺼칠한 손에 얼굴을 묻었다. 집회 참가 행렬의 제일 뒤에서 일행을 ‘사수대’처럼 지키고 서 있던 젊은 엄마들은 할머니들과 함께 울었다. 엄마들 앞을 지나가는 경찰에게 “늬들이 할머니들한테 어떻게 했나” “태극기 떼고 성조기 달아라”고 소리쳤다.

소성리 주민들과 소성리 지킴이들은 사드 핵심 장비를 실은 미군 군용트럭이 지나가버린 소성리 입구를 쉽게 떠나지 못했다. 평소 마을회관 앞마당에서 열리는 촛불집회는 이날 소성리 마을 입구에서 열렸다. 사회를 보던 손소희 조직팀장이 “자리를 옮겨서 할까요” 할머니들에게 물었지만, 할머니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집에서 겨울 파카를 입고, 모자를 쓰고, 담요를 덮고 집회에 참여했다.

손 팀장은 “오늘은 정신없어서 밥하기 힘드니까 김밥이랑 떡이랑 먹읍시다. 김밥은 초전면 고산리 부녀회에서, 떡은 61년 소띠 부인회에서 보내줬습니다”라고 말했다. 소띠 부인회가 주문한 떡은 애초 하얀 떡이었는데 소성리 가는 떡인 줄 아는 떡집에서 추가 비용이 드는 쑥떡을 만들어줬다고 임순분 부녀회장이 말했다.

“소성리가 제2의 광주, 제2의 세월호”

이웃한 김천과 다른 지역에서 달려온 시민 100여 명이 저녁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이들은 이날 새벽 현장에 달려오지 못한 죄책감을 견디지 못했다. 성주군청 사드 반대 촛불집회의 ‘월요가수’라는 정진석(49)씨는 “새벽에 못 와서 죄송하다”고 사과하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김천혁신도시에 산다는 중학생·초등학생 두 아이의 엄마 ㄴ(42)씨는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앉아 “우리한테는 소성리가 제2의 광주, 제2의 세월호”라고 말했다. 경남 밀양 송전탑, 서울 광화문 세월호처럼 소성리도 사회적 ‘성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김천혁신도시 엄마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는 ‘사드’ 게시판이 따로 있을 정도로 ‘김천맘’들은 소성리 일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ㄱ씨 옆에 앉아 함께 온 엄마들에게 담요 등을 나눠주던 ㄴ(36)씨는 “애기들 학교 보내놓고 오니까 늦었더라. 할머니들이 우리한테 못 막아서 미안하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의 얼굴은 곧 눈물범벅이 됐다. “우리가 못 와서 미안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전국 사람들이 몰라서 미안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할머니들이 못 막아서 미안하다고 해야 해요.”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김천혁신도시에서 수시로 소성리를 찾는다는 ㄴ씨는 소성리 할매들의 고립된 처지를 비관하며 또 울었다.

“네이버 보셨어요. 댓글부대 풀려가지고. 박근혜 찍었으니 죽어라, 니네들이 찍었으니까 니네들이 당하는 거지 무섭게 몰아세우고. 아무도 모르게 덮잖아요.” 용암면에서 소를 키운다는 하재상(57)씨가 말했다. “사람들이 보면 대번 알지. 오늘은 서로 말을 잘 안 할라카지. 마음이 먹먹해서. 얼굴 딱 보면 눈물 날 정도로 우울하더라. 우리가 288일째 촛불을 들고 애를 먹었는데 허무하게 한 방에 끝나네.”

“이름은 (말하기) 싫다”고 한 ㄷ(85) 할머니는 경찰이 자신을 “업신여겼다”고 말했다. “양쪽에서 꽉 모다 들드이만은 이 발 땡기고 저 발 땡기고, 뒤에서 밀고 그래가지고 꺼내버렸지. 다리 하나 들고 발 들고 하니 끌려가지, 뭐 어짜노. 그래 끌리나갔다. 점방집(매점) 문 앞에 갖다놓고 방에 가라카면서 업어다놓데. 점방집 아저씨가 자기 방에 갖다놓고 이불 덮어놓고 그래 놔두더라고. 그래 놔둔 게 쪼매 낫더라고. 그래 업신여기더라카이깨네. 그 사드 차가 올라간게 젊은 양반들이 통곡을 하고, 나도 울고. 초상났다, 초상났어. 나도 울고 너도 울고.”

“아이고 대한민국이 우째 이래 됐노”

다음날 오전에 만난 ‘점방’ 주인 강희성(71)씨에게 ㄷ할머니 얘길 물었다. 한참 말이 없던 강씨는 담배를 피우다 말고 방에 들어가 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우리 형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눈물을 안 흘렸는데…. 어제 그 사드 무기 미군이 몰고 어리석은 경찰들이 그거 막고, 그거 보이 나 어제 마이 울었어. 아이고 대한민국이 어째서 이래 됐노.”

4월27일 오전 10시께 소성리 마을회관에 밀대를 끌고 도착한 이들은 모두 80대 이상 ‘할매’들이었다. 할머니들은 이름을 묻는 기자에게 “우리는 시집올 때 어디서 왔는지 그걸로 부른다”며 집실댁, 대구댁, 남실댁, 성주댁, 조실댁이라고 당신들을 소개했다. 이날 마을회관에 누워 있던 인동댁(82) 할머니는 가슴 통증을 호소하다 결국 119 구급차에 실려갔다. 인동댁 할머니는 “많이 불편하시냐”는 기자의 물음에 경찰한테 당한 상황을 설명하다 심한 기침을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119 구급대원에게 실려 나가는 인동댁 할머니를 지켜본 할머니들은 혼이 난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구부리고 퀭한 얼굴로 말이 없었다.

할머니들은 26일 새벽 경찰한테 찍히고 밟히고 맞은 이야기를 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81살로 할머니들 사이에서 ‘새댁’으로 통하는 도금년 할머니는 “요기 그 양철(방패를 이르는 말) 있잖아. 그래, 그기 막 이 지랄해서 거기 박아갖고” 하며 손등 절반이 붉게 멍든 부분을 보여줬다.

마을회관에 모인 할머니들은 모두 파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 조실댁 할머니는 “리본 달고 어디 가면 사드 반대하는 사람이라. 사드 찬성하는 사람도 있거든. 그럼 말도 안 해”라고 말했다. 다른 할매들도 너도나도 목소리를 높여 “(리본을) 다 달아야 한다”고 했다. 22살에 소성리에 시집왔다는 성주댁(87) 할머니가 원통한 듯 말했다. “우리는 국민 아닌고. 우리는 국민 아이가. 아들 키워서 군대 다 보냈고, 세금 다 냈고, 자녀들도 세금 다 바쳤다. 다 같은 국민인데 우리 소성 사람은 사람으로 안 보고 여기다 사드 갖다놓는 성주군수가 참으로 분하고 원통하다.” 귀가 어두워서 말을 잘 못한다던 집실댁(87) 할머니가 귀를 가까이 대고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말을 받았다. “그 말은 맞소. 늙었다뿐이지 (우리도) 국민이잖아. 우리 할 일은 다 했다.”

왜, 치욕은 늘 국민의 몫이어야 하는가. 성주 할매가 대한민국에 묻는다.

성주(경북)=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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