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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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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사상 가장 치욕적인 판결로 남을 것”

박근혜 전 대통령 무죄 주장은 피의자의 최소한 권리라고 말하는 서석구 변호사
등록 2017-03-21 23:36 수정 2020-05-03 04:28

“헌법재판소 판결 사상 가장 치욕적인 판결로 남을 거예요. 법과 양심을 지키지 않고 세태에 편승한 겁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변호인단으로 참여한 서석구(74) 변호사는 분을 삭이지 못한 듯했다. “과의 인터뷰는 곤란하다”며 여러 차례 거절한 끝에 전화 인터뷰에 응한 그는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는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의 핵심은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의 미르·K스포츠 재단 장악 기획극”이라고 주장했다. 헌재 재판은 ‘인민재판’이자 ‘누더기 재판’이라고 했다. 헌재 판결에 불복하는 박 전 대통령의 태도는 “피의자가 무죄를 주장하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방어했다.
1980년대 진보 성향 변호사에서 보수로 전향한 그는 재판정에서 태극기를 두르는 모습이 알려져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보수단체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의 법률고문인 그는 계속 태극기집회에 참석할 것이라고 했다.
“인민재판이자 누더기 재판”

서석구 변호사가 2월11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태극기집회에 참석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서석구 변호사가 2월11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태극기집회에 참석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단에 참여한 계기는.

기존 변호인단(이중환, 채명성, 손범규, 서성건 변호사)에서 합류해달라는 제의가 왔을 때 흔쾌히 받아들였다. 박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북한인권법,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고 한-미 동맹에 헌신하는 등 민주공화국의 헌법적 가치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가 탄핵될 위기에 처한 걸 보고 안 되겠다 싶어 참여했다.

헌재가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인용할 줄 예상했나.

기각이나 각하 결정이 내려질 거로 봤다. 그런데 선고 당일 통합진보당 해산에 유일하게 반대했던 김이수 재판관이 미소를 띠고 들어서더라. ‘인용이구나’ 싶었다. 그보다 앞서 2월 말 헌재가 고영태씨를 비롯해 우리 쪽에서 신청한 증인과 증거 채택을 무더기로 거부했을 때 인용 쪽으로 기울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래도 선고 초반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 자유 침해, 국민 생명권 보호 등 3개 항목에서 탄핵 사유가 인정되지 않아서 희망을 걸었다.

만장일치 판결이 나올 줄은 몰랐다. 참담했다. 인민재판 아닌가. 헌재 사상 가장 치욕적인 판결이 될 것이다. 판결문에 촛불집회에서나 나올 말들을 담았다. 발로 써도 그런 판결문을 쓸 수는 없다.

어떤 부분이 유감인가.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과 미르·K스포츠 재단을 만들고 지위와 권한을 남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고 했다. 그러나 두 재단은 문화 융성과 스포츠 발전을 위한 국정 과제에 포함돼 있었다. 출연된 774억원도 일부는 집행되고 나머지는 재단에 있다. 금융계에 물어보니 이 돈이 박 전 대통령이나 최순실에게 건너간 것이 없다고 한다. 이게 무슨 사익 추구란 말인가.

검찰과 특검은 최순실 등은 강압 수사하면서도 고영태씨는 제대로 수사히지 않았다. 고영태 녹음파일을 보면 고씨가 이 재단을 장악해 774억원을 곶감 빼먹듯 탈취하려 모의하는 게 나온다. 그럼에도 헌재는 이 녹음파일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주심을 맡은 강일원 재판관의 진행도 무척 불공정했다. 재판관 기피 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영태가 재단 돈 탈취하려 모의”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은 재판 과정에서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가 재단을 탈취하려고 최순실과 박 전 대통령을 엮어 기획 폭로를 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헌재는 “최서원(최순실)씨가 고 전 이사 등에게 속거나 협박당했는지 여부는 탄핵심판 사건 판단과 상관없다. 박 전 대통령이 최씨와 미르·K스포츠 재단을 설립해 그가 운영하는 회사에 이익이 돌아가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 사실은 증거에 의해 분명히 인정된다”고 일축했다.

지금 헌재는 2014년 12월 8 대 1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릴 정도로 보수적이었지만, 탄핵심판 인용 결정을 내렸다. 사유가 그만큼 중대한 것 아닌가.

헌재는 통진당 해산을 결정해 신선한 감동을 줬다. 이번에도 나는 마지막 변론 때 ‘통진당 해산을 결정할 때처럼 법관의 양심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그런 양심을 지켰다면 탄핵 인용 판결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됐는가. 그건 헌재가 세태에 편승했기 때문에다.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국회와 촛불집회, 특검과 검찰에 떠밀린 것이다.

김평우 변호사가 “탄핵 인용이 되면 내란으로 간다”고 하는 등 변론 과정에서 변호인단의 거친 말과 재판 지연이 지탄받았다. 서 변호사도 재판정에서 태극기를 둘러 논란이 됐는데.

동료 변호사의 말에 이렇다 저렇다 하는 건 적절치 않다. (은 김평우 변호사와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내가 법정에서 태극기를 두른 건 태극기집회 참여자들이 요청해 잠시 포즈를 취한 것이다. 부적절했다고 인정하지만 대단한 잘못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헌재는 180일 안에 결론을 내면 되는데도 서둘렀다. 우리가 재판을 지연시켰다고 할 수 없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퇴임일에 맞춰 굳이 판결을 내려야 하는가. 그가 임기 종료 전에 탄핵심판을 내려야 할 역사적 사명을 띤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한 나라의 대통령 탄핵을 결정하는 재판인데 증인과 증거를 많이 채택해 치열하게 조사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헌재는 우리가 요구한 증인과 증거 채택을 대부분 거부했다.

“법정에서 태극기 두른 건 부적절”

서 변호사는 “검찰과 특검이 수사 과정에서 최순실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게 장시간에 걸친 강압 수사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순실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협박을 받아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고 전했다. 특검은 지난 1월 말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의 이같은 주장에 “어떤 강압 수사나 자백, 강요 등도 없었다”며 “일방적 주장에는 대응하지 않겠다”고 반박한 바 있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검찰과 특검의 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헌법 제84조에 대통령은 외우내환의 죄가 아니면 재직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돼 있다. 박 전 대통령의 혐의는 외우내환의 죄가 아니다. 검찰,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을 수사할 권한이 없고 대통령도 협력할 의무가 없다. 게다가 검찰과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과 공범자이며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고 공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박 전 대통령이 수사에 협력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최순실 구속 하루 뒤인 지난해 11월4일 대국민담화에서 박 전 대통령 스스로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 최대한 협조하겠다. 이미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에도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담화는 지켜지지 않았다. 변론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 몇 차례 만났는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설 직전 두 차례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을 최측근으로 둔 건 실수다. 그러나 사익을 추구했다는 건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이고 언론 보도는 과장된 것이다”라고 하더라. 미르·K스포츠 재단도 정상 운영됐고 이사회에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분들이 들어가 있으며 한 푼도 사적으로 챙긴 것이 없다고 했다.


<i>“헌재의 판결은 촛불 주장과 같고 북한의 선동과 궤를 같이한다. 촛불집회를 두둔하는 국회의 탄핵 발의는 대한민국에 대한 선전포고이고 반란이었다.” </i>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참여 누적 인원이 1500만 명을 넘었다. 촛불이 곧 민심 아닌가.

누누이 말하지만 촛불집회는 일반 시민이 아닌 민주노총이 주도한 것이다. 그들이 총동원령을 내렸고 일반 시민의 참여는 적었다고 본다. 탄핵에 찬성해 촛불집회에 참석한다고 다 종북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은 김정은 신년사에서 촛불집회를 전 인민의 항쟁이라고 부추기며 탄핵 뒤엔 남조선 인민들이 보수를 매장하라고 선동한다. 촛불 세력 쪽은 자신들이 탄핵 국면에서 승리했다고 난리지만 그 순수성은 이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땅에 떨어졌다. 이런 촛불집회를 진정한 민심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헌재의 판결은 촛불 주장과 같고 북한의 선동과 궤를 같이한다. 촛불집회를 두둔하는 국회의 탄핵 발의는 대한민국에 대한 선전포고이고 반란이었다.

“촛불집회는 민주노총이 주도”

서 변호사는 1982년 부산 최대 공안 사건인 ‘부림 사건’ 담당 판사였다. 대구지법 단독판사였던 그는 검찰이 각각 10년과 5년형을 구형한 피고인 3명에게 선고유예와 집행유예, 징역 1년이란 가벼운 형량을 선고했다. 이후 좌천된 그는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는 2년 전 종합편성채널에 출연해 “당시 판결은 잘못됐다. 후회한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에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대구·경북 지역의 운동권 재판 변론을 도맡았다. 그게 정의고 인권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운동권과 친해지고 나니까 내게 김일성 주체사상 책을 선물하는 등 주사파가 많아 충격을 받아 회의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탄핵심판 인용 결정이 잘됐다는 응답이 80%를 넘는데.

신뢰하지 않는다. 미국 대선을 보라. 미국 언론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괴물이니 ‘또라이’니 하면서 사정없이 불공정 보도를 했다. 여론조사기관도 힐러리 클린턴이 된다고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지 않은가.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도 마찬가지다. 조작된 여론을 진정한 여론이라고 할 수 없다. 1월7일부터는 태극기집회가 촛불집회를 압도했는데도 언론은 편파 보도만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면서 헌재 판결에 불복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박 전 대통령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탄핵 사유를 다 인정하는 게 돼버린다. 그는 피의자 신분이고 검찰의 수사 대상이다. 피의자로서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고 최소한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이를 인민재판하듯 비판하는 것은 맞지 않다. 너무 ‘인격살인’을 당했다.

검찰 수사를 앞둔 박 전 대통령의 새 변호인단에는 참여하지 않는가.

헌재 재판 과정에서 검찰·특검의 강압적 인권유린 수사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돕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검찰을 자극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변호사 선임계를 내지 않았다.

태극기집회에는 계속 참여할 것인가.

3월18일 서울에서 열리는 태극기집회에 갈 것이다. 지난 3월1일 태극기집회에는 건국 이래 최대 인파가 참여했다. 밤이 깊으면 새벽도 가깝다. 헌재가 황당한 판결을 했지만 우리에게는 위기 때마다 나라를 구한 하나님 성령의 섭리가 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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